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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를 사부님의 배치에 맡기다

글/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며칠 전 연속으로 두 차례 발이 아픈 현상이 나타났다. 처음 한번은 오른쪽 엄지 관절이 벌겋게 붓고 아팠는데 예전 통풍과 증상이 같았다. 나는 당시 ‘고생을 겪고 난(難)을 당하는 것은 좋은 일이며 발이 아플 때 업력이 아래로 없어지고 신체도 정화되는데 다시 말해 자신이 이전에 지은 업의 빚을 갚는 것이다. 이는 아주 좋은 일을 만난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 후로는 더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튿날 오전에 보니 부종이 가라앉았고 아프지 않고 좋아졌다. 또 하루가 지나자 왼발 안쪽이 아팠는데 나는 또 마찬가지로 대했다. 그러자 이튿날 또 좋아졌다. 이 이틀간 발이 붓는 현상이 아주 빨리 다 사라졌다.

나는 전에도 두 차례 통풍 증상이 나타난 적이 있었다. 한번은 발이 너무 심하게 부어 신발을 신을 수 없고 통증이 심해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삼일 간 집에서 내려놓지 못했고 나중에 점차적으로 붓기가 좋아졌다. 또 한 차례는 통풍증상이 전처럼 심하진 않았지만 대략 반달 정도 지나서야 좋아졌었다.

나는 이번에 두 차례 모두 구세력이 배치한 박해로 대하지 않았고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소업(消業)으로 간주했다. 며칠 전에 출현한 이번 두 차례 증상을 나는 또 그것들을 소업으로 대했는데 차이점이라면 이번 두 차례는 속으로 아주 기뻤고 진정으로 내심에서부터 그것을 좋은 일로 여겼다. 달갑게 이 고통을 받아들였고 마음속에 아무런 부담도 없었으며 단번에 내려놓았고 더는 그것을 고려하지 않자 아주 빨리 좋아졌다.

이전 두 차례는 비록 내가 소업으로 간주하긴 했지만 속으로 여전히 한 가닥 기대하는 마음이 있어서 소업이 좀 빨리 끝나길 바랐다. 그것을 완전히 좋은 일로 여기고 대하지 못했으며 이렇게 했기 때문에 소업 시간이 비교적 길어진 것이다. 내게 든 느낌은 바로 이 병업(病業) 현상을 당신이 그것을 오직 수련인이 소업(消業)하는 좋은 일로 여기고 제고할 기회로 여기면서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 편안히 여기고, 마음을 단번에 내려놓고 그것을 상관하지 않으면 아주 빨리 지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병업현상은 수많은 동수들이 세상을 떠나거나 또는 수련을 포기하게 만들었고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데 끼친 영향이 상당히 크다. 나는 자신과 동수들의 수련경험을 총괄해 자신의 얕은 인식을 한번 말해보고자 한다.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 정념(正念)이 매우 충족하고 또 우주의 이치에 부합되면, 구우주(舊宇宙)든 신우주(新宇宙)든 모두 이런 이치가 있는바, 한 생명의 선택은 그 자신에 의해 결정되며, 역사상에서 그가 어떤 소원을 빌었든 결정적인 순간에는 여전히 그 자신에 의해서 결정된다.”(《각지설법 2》〈2002년 미국필라델피아법회설법〉)

“나는 리훙쯔(李洪志)의 제자이다. 다른 배치는 다 필요 없고, 모두 승인하지 않겠다. 그러면 그것들은 감히 하지 못하므로 모두 해결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정말 할 수 있다면,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할 수 있다면 사부는 반드시 당신을 위해 처리해 줄 것이다.”(《2003년 정월대보름설법》)

“물론 구세력이 배치한 이 일체를 우리는 모두 승인하지 않으며, 나, 이 사부가 승인하지 않으므로 대법제자도 당연히 모두 승인하지 않는다. (박수) 그러나 그것들은 필경 그것들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하였는데, 대법제자는 더욱 마땅히 더 잘해야 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중에서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한다. 수련 중에서 마난(魔難)에 부딪힐 때 자신을 닦아야 하고 자신을 보아야 하는데, 이는 구세력이 배치한 마난과 그것들이 배치한 마난 속에서 어떻게 잘할 것인가 하는 것을 승인하는 것이 아니며, 이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구세력 자체의 출현과 그것들의 배치한 일체마저 모두 부정하는 것으로, 그것들의 존재마저 승인하지 않는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그것의 이 일체를 부정하며, 그것들을 부정하고 배제하는 중에서 당신들이 행한 일체야말로 위덕이다. 그것들이 조성한 마난 속에서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승인하지 않는 가운데서 자신의 길을 잘 걷는 것이며, 그것들 자체를 제거하는 마난의 표현마저도 승인하지 않는다. (박수) 그럼 이 각도에서 볼 때, 우리가 마주한 일은 바로 구세력에 대한 전반적인 부정이다. 그것들이 최후로 발악하는 표현을 나와 대법제자들은 모두 승인하지 않는다.”

(《각지설법 4》〈2004년 시카고법회설법〉)

병업현상은 때로는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것으로 공(功)이 자라고 신체를 조정할 때도 견디기 힘든 느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표현이 그리 심각하진 않다. 대다수 병업현상은 모두 구세력이 배치한 것으로 이는 사실이다.

구세력이 병업현상을 배치하는 구실은 우리에게 사람마음이 있다는 것으로 이를 통해 우리가 수련에서 제고하도록 돕는다는 구실로 고험을 배치하는데 실질적으로는 병업고험을 통해 당신이 신사신법(信師信法)할 수 있는가 검증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수련인은 병이 없다는 말을 믿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만약 당신이 믿는다면 그럼 당신을 놓아주고, 만약 믿지 못한다면 그럼 사람 몸을 끌어가 당신을 도태시켜 떠나가게 한다.

병업현상이 출현한 후, 다시 말해 구세력의 배치가 이미 발생해 존재하는 이런 때에는 우리 앞에 한 가지 선택이 놓여 있는데 바로 감당하거나 또는 감당하지 않는 것이다. 이 선택권은 우리 자신의 손에 있고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한다면 그럼 구세력은 곧 사람 몸을 끌어갈 때까지 계속해서 박해를 배치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음에도 구세력이 당신을 더 건드린다면 이는 승인받지 못하고 억지로 더한 박해에 속하기 때문에 그것이 죄를 짓는 것이다. 이때 사부님께서는 당신의 주관자가 될 수 있으며 구세력이 더 이상 당신을 건드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아울러 구우주의 구(舊) 이치 역시 구세력이 더는 당신을 건드리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때문에 구세력은 곧 당신을 건드릴 수 없으며 박해는 곧 중지될 것이다.

그렇다면 승인과 불승인(不承認)의 경계를 어떻게 정하는가? 여러분들이 참고로 삼을 수 있도록 개인의 깨달음을 한번 말해보고자 한다.

사부님의 배치는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고 전면적으로 3가지 일을 잘하는 것이다.

구세력의 배치는 대법제자를 박해해 수련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우리는 구세력 자체의 출현과 그것들의 배치한 일체마저 모두 부정하는 것으로, 그것들의 존재마저 승인하지 않는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그것의 이 일체를 부정한다.”

(《각지설법 4》〈2004년 시카고법회설법〉)

사부님께서는 이미 아주 명확하게 근본적으로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셨고 심지어 구세력의 존재마저도 승인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해야만 구세력의 배치를 가장 철저하게 승인하지 않는 것으로 다시 말해 구세력의 배치를 전반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어떤 한 가지 일은 3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일의 발생과 존재, 일의 과정표현 및 일의 최종적인 작용 결과가 그것이다. 구세력의 배치 역시 이렇게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전반적으로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한다는 것은 바로 전체 일의 세 부분을 전반적으로 부정하고 모두 승인하지 않아야 하는 것으로 심지어 그것의 발생과 존재조차도 승인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 비록 구세력의 배치가 이미 발생해서 존재하고 있지만, 다시 말해 그 병업현상이 이미 출현했지만 우리는 곧 그것이 출현하지 않는 것처럼 대한다면 바로 근본적으로 그것을 별일 아닌 것으로 보고 처리하는 것으로 그것을 상관하지 않는다. 동시에 우리는 이 병업현상을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수련인의 소업으로 여기고 좋은 일로 간주하면서 그것을 사부님의 배치에 맡기고 우리 자신도 그것을 상관하지 않고 무엇을 해야 하면 여전히 그것을 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구세력이 배치한 일을 사부님께서 처리하도록 맡기고 일체를 다 사부님의 배치에 따라 대하면서 오직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만을 걷는 것과 같다. 사부님께서 이 일을 접수해 관할하실 때면 문제가 곧 해결된다.

여기서 가장 관건적인 문제는 바로 사부님께 일을 맡겨 배치할 수 있는가 여부다. 오직 우리가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구세력이 더 이상 우리를 건드리는 것은 승인받지 않고 억지로 가한 박해에 속하기 때문에 그것이 법을 어기는 것이라 함부로 우리를 건드릴 수 없다. 우리가 사부님의 배치에 따라 소업으로 대하는 것을 선택하면 이는 사부님께서 배치하도록 선택한 것과 같아서 사부님께서는 곧 우리를 접수해 관할하실 수 있으며 문제가 곧 해결된다.

실제로 병업현상을 만났을 때 어떤 동수는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이것이 구세력이 배치한 박해라는 것인데 이 일념(一念)이 나오면 이미 구세력의 배치가 존재함을 이미 인정한 것과 같다. 이미 구세력의 배치에 따라 자신을 끼워 맞춘 것으로 구세력은 박해자이고 나는 박해 받는 자가 된다. 당신이 이렇게 생각하면 이는 당신 스스로 구세력의 배치에 따라 이 일을 마주한다고 선택한 것과 같고 이는 당신이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한다고 선택한 것과 같다.

당신이 승인했다면 그럼 당신이 접수하고 원하는 것과 같으며 구세력의 배치를 원한 것이다.

“우리 이 우주 중에는 이런 이치가 있다. ‘당신 자신이 구하는 것은 누구도 상관하지 않으며, 당신 자신이 가지려 하면 누구도 상관하지 않는다.’”(《전법륜》)

기왕에 당신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 사부님께서도 간섭하실 수 없고 오직 구세력이 당신을 박해하는 것을 지켜보실 수밖에 없다. 오직 당신이 구세력의 배치를 인정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것을 선택해야만 비로소 사부님께서 당신을 관할하실 수 있고 당신을 위해 주관하실 수 있다.

당신 자신의 행동 표현이 당신의 선택을 대표한다. 당신이 행동으로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을 때 만약 구세력이 계속 그것의 배치를 당신에게 강요한다면 이는 강제로 당신의 선택을 바꾸는 것과 같다.

이렇게 하면 바로 “한 생명의 선택은 그 자신에 의해 결정된다”(《각지설법 2》〈2002년 미국필라델피아법회설법〉)는 법리를 위반한 것으로 그것이 법을 어긴 것이다.

반대로 말해서 당신 자신이 무엇을 원한다면 그럼 그것은 당신 자신의 선택이고 누구도 강제로 당신의 선택을 개변시킬 수 없다.

“당신이 가지려는 것은 누구도 상관하지 않는데, 이것이 이 우주의 이치다.”(《전법륜》)

실질적으로 구세력의 배치는 곧 우리의 심성에 누락이 있는 빈틈을 탄 것이다. 만약 우리가 단호하게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하지 않을 수 있다면 이것은 곧 이 빈틈을 메운 것으로 구세력 도 방법이 없게 된다.

우리는 이전에 안으로 찾아 누락을 찾아 메우는 것에 습관이 되어 있지만 때로는 해내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어떤 사람마음은 자신조차 인식하지 못하기에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마음을 제거하지 못한다. 이렇게 하면 구세력의 배치가 곧 우리 몸에서 발생하게 되는데 이런 상황에 직면해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한 가지 해결방법을 알려주셨다.

그것이 바로 “나는 리훙쯔(李洪志)의 제자이다. 다른 배치는 다 필요 없고, 모두 승인하지 않겠다. 그러면 그것들은 감히 하지 못하므로 모두 해결될 수 있다.”(《2003년 정월대보름설법》) 다시 말해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시시각각 늘 대법제자의 신변을 지켜주시며 우리의 수련을 배치하신다. 구세력이 어떻게 배치했든 사부님께는 동시에 늘 “장계취계(將計就計)”의 배치가 있으시다.

구세력이 배치한 병업현상이 나타난 후 우리 앞에는 동시에 두 가지 배치가 놓여 있다. 하나는 구세력의 배치이고 다른 하나는 사부님께서 이 일을 겨냥하신 “장계취계(將計就計)”의 배치다. 이 두 가지 배치 중에서 우리는 선택해야만 한다.

만약 당신이 구세력이 배치한 박해에 따라 대한다면 이는 당신이 구세력의 배치를 선택한 것과 같다. 만약 당신이 사부님께서 배치한 수련인이 소업하는 것을 선택하고 그렇게 대한다면 그럼 당신은 사부님의 배치를 원하는 것이다.

“한 생명의 선택은 그 자신에 의해 결정된다.”

(《각지설법 2》〈2002년 미국필라델피아법회설법〉)

당신이 누구의 배치를 선택했다면 그가 와서 당신을 주관하는데 선택받지 못했으면서 억지로 당신을 관할하려 한다면 이는 곧 한 생명의 선택을 강제로 개변하는 것으로 그것이 법을 어긴 것이다.

대법제자의 수련은 오직 사부님만이 관할하실 수 있다. 앞으로 그 어떤 일을 만날 때라도, 그 누가 배치한 일이 나타났든 상관하지 말고 우리는 몽땅 다 사부님께서 관할하시도록 맡겨야 한다. 다시 말해 모두 사부님의 배치에 따르는 것으로 대해야 한다.

만약 병업현상이 나타났다면 그럼 사부님의 “장계취계” 배치에 따라 수련인의 소업으로 대하고 그것을 수련에서 제고할 좋은 기회로 간주하며 이 좋은 기회를 이용해 업력을 제거하고 심성을 제고하며 자신을 승화하면 된다.

만약 납치당한 현상이 나타났다면 그럼 사부님의 “장계취계” 배치에 따라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것으로 대한다면 법을 실증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구세력의 배치를 이용해 길을 잘 닦고 구세력이 배치한 기초 위에서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걸어가면서, 전면적으로 3가지 일을 잘하고 법을 실증하며 중생을 구도해 대법제자의 역사적 사명을 잘 완성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어떤 일이 나타나든 모두 사부님의 배치에 따르는 것으로 대한다면 늘 사부님의 배치 속에서 수련하고 늘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걷는 것이다. 소위 구세력의 배치란 사부님의 “장계취계” 배치의 밑바탕이 아닌 게 없다. 최종적으로 사부님의 “장계취계”배치의 일부분이 아닌 것이 없다.

근본을 따져보면 최종적으로 우리에게 있어 오직 사부님의 이런 한 가지 배치만이 잇는 것으로 다른 배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전반 이번의 박해이든지, 구세력이 배치한 그 일체이든지, 사실은 벌써 나의 정법의 이 일 중에 계산되어 있으므로 그것들은 법을 파괴하지 못한다.”(《2003년 애틀랜타법회설법》)

내가 보기에 구세력의 표현은 마치 동물부체와 같아서 만약 우리가 그것을 상관하지 않고 구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당신을 건드릴 수 없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승인하고 그것을 원한다면 그것은 곧장 올라와서 당신을 통제하고 당신을 박해할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그 어떤 문제에 봉착하든 더는 주동적으로 구세력의 신상과 연계해선 안 된다. 이후로 우리의 수련은 구세력과는 무관하며 우리는 오직 사부님만이 관할하시는데, 오직 사부님의 배치에 따라 수련해야만 한다.

“수련하기에 어떤 일도 모두 좋은 일”(《세계 法輪大法의 날 설법》)이라는 사부님의 말씀을 명심하면서 우리 아주 기쁘고 정정당당하면서도 떳떳하게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수련의 길을 걸어갑시다!

이상은 현 단계에서 개인 수련 중의 얕은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33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