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오랫동안 나는 이런 마음을 의식하지 못했는데 동수들과 교류할 때면 늘 자각적이든 비자각적이든 상대방에게 이렇게 건의하곤 했다.
“제가 보기에 이 일은 당신이 마땅히 이렇게 하면 확실히 좋겠습니다.”
또는 “그 일은 그렇게 하는 게 확실히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때로 상대방이 내 말을 듣지 않으면 곧 자신의 인식을 표현하는데 조급해하며 상대방이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 대해 속으로 좀 불편함을 느꼈다.
“당신은 왜 내 말을 믿지 않는가? 나는 당신을 위하려는 것이 아닌가?”
이런 식으로 남에게 일을 배치하려는 표현은 자사(自私)하고 또 자아(自我)적이지만 모두 자연히 형성되어 나는 줄곧 무슨 잘못으로 여기지 않았다. 비록 때로는 상대방의 각도에 서서 문제를 생각할 수 있었지만 사상 깊은 곳에선 여전히 조용히 자신의 의견을 급히 표현하려 했고 상대방이 단번에 받아들이면 좋아하고 기뻐했으며 받아들이지 않으면 속으로 불편해하거나 심지어 원망하는 마음이 나왔다.
“내 의견이 얼마나 좋은가? 당신은 왜 받아들이지 않는가? 당신이 좋은 것을 가지려 하지 않으면 당신은 무엇을 가지려 하는가?”
이런 생각은 구세력(舊勢力)과 마찬가지인 것으로 자아를 억지로 더하는 것이자 가장 강력한 사(私)로 자신의 인식・관념・집착을 사용해 상대방을 가늠하고 남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런 상태는 자신의 수련이 얼마나 잘되었음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경지(境界)가 낮은 표현이다.
한번은 법 공부 소조에서 법공부를 마친 후 아주 장시간 병업 상태에 있는 동수와 교류했다. 당시 매 사람이 다 자신의 인식을 말했는데 거의 끊임없이 많은 말이 있었다.
어떤 이는 “당신이 내 말에 따라 하면 가장 좋아요”라고 했고 어떤 이는 “당신이 내 말에 따라 하면 틀림없이 좋아진다고 장담할 수 있어요.”라고 했다.
7~8명의 동수가 각각 다른 말을 했는데 어떤 이는 말투가 또 아주 강경했다.
“당신은 어찌하여 정념(正念)이 이렇게 차한가? 이렇게 해서 어찌 신(神)으로 성취될 수 있겠는가? 빨리 집착을 내려놓으라!”
당시 나 역시 감정이 격해져서 많은 말을 했는데 말을 마친 후 속으로 뭔가 불편한 느낌이 들었고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는 법(法)과 틀어진 것으로 동수를 도우면서 그를 위한 기점에 서서 교류한 게 아니라 남에게 일을 배치하고 내 인식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마치 의사가 진맥을 한 후 자기 처방이 기사회생할 수 있다고 자신하면서 환자에게 “반드시 내 처방에 따라 약을 먹어야 합니다”라고 거듭 강조하는 것 같았다. 환자가 속으로 심해서 받아들이지 못할 때면 나는 또 기뻐하지 않고 철이 강철로 되지 못한다고 원망하고 또 다른 동수에게 “그는 근기가 부족하고 오성이 차해요. 만약 당장 돌파하지 못한다면 내가 보기에 아주 위험해요”라고 탄식했다.
이것이 정념의 교류인가? 이게 동수를 돕는 것인가? 이는 구세력을 돕는 것이다. 수련인의 경지는 법리인식의 깊이에서만 체현되는 게 아니라 대화하는 말투나 선심(善心)에서도 체현된다. 동수에게 일을 배치하려는 것은 이미 사람 위에 있는 것이다. 병업 중의 동수 상태가 어떻게 나빠져도 상관하지 않는 게 아닌가? 교류란 늘 평등해야 하는 것으로 동수더러 온화하고 청성하게 정념이 올라올 수 있게 해야만 비로소 성공적인 교류가 된다.
내가 보기에 적지 않은 동수들이 병업 중의 동수와 교류할 때 이런 표현이 있는데 압력을 줄이기보다는 오히려 가한다. 이런 각종 처방은 마치 병업 중의 동수더러 의기소침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지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으로 듣기 싫어하게 만든다.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은 병업 중의 동수는 대다수 정념이 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일보까지 온 것으로 아마 고만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봄바람 같은 따스함이지 설상가상(雪上加霜)이 되어선 안 된다. 동수를 소중히 여기고 동수를 아껴야 하며 동수의 병업상태에 이끌려선 안 되는데 동수 사이에 눈에 거슬릴게 뭐가 있는가? 어느 누구든 곤두박질칠 때가 있고 동수를 돕는 심태와 감당이 바로 경지의 표현이다. 신우주의 신(神)은 완전히 다른 사람을 위하는 좋은 생명이니 우리는 이 방면에서도 닦아내야만 한다.
이 한 점을 인식한 후 나는 아주 많은 좋지 않은 것들을 제거한 것을 느꼈고 교류할 때 과거처럼 자신의 인식을 그렇게 중시하지 않았으며 더는 동수에게 일을 배치하지 않았다. 상대방을 위하는 기점에 서서 평화로운 심태로 교류할 수 있었으며 상대방이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자 상대방도 가벼워졌고 나 역시 가벼워졌다.
현 층차에서 얕은 견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47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