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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이 초조해하다

명추(明秋)

【정견망】

사존께서는 설법중에 말씀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말하는데, 당신은 사람 몸이 있고 육신이 있기 때문에, 극히 특수한 이를 제외하고 나는 모두 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우스갯소리 하나 하자. 우리 자리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확실히 아주 잘 수련했는데 당신들이 다리를 틀지 못하면 천상의 그 보살들이, 저 수련하는 사람 좀 보세요, 아직도 다리를 틀지 못하네 하고 입을 가리고 웃는다.”(《스위스법회설법》)

이는 사존의 초기 설법에서 언급하신 문제이니 만약 동수들 중에 지금도 다리를 틀기가 힘들다면 보살들이 어떻게 보는지 아는가?

어느 날 내가 동수와 함께 발정념을 할 때 동수가 반가부좌를 했다. 나는 (천목으로) 보살이 나타난 것을 보았다. 보살은 동수의 다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엄숙하게 말했다.

“수련을 20여 년이나 했지만 아직도 다리를 틀지 못하네.”

사실 동수의 전체적인 연공상태는 그리 낙관적이지 않았다. 그녀는 “결가부좌를 하면 다리가 아파서 견지할 수 없어요.”라고 말한다. 그래서 정공을 연마할 때 전반 30분은 반가부좌를 하고 나중 30분만 결가부좌를 한다. 나는 동수의 안일함 마음이 무겁고 또 나태하며 잠을 많이 잔다고 본다. 하지만 동수는 늘 자기 다리가 아프다면서 돌파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이튿날 정념 중에 나는 동수 앞에 ‘몸 고생은 고생이 아니다(勞身不算苦)’라는 다섯 글자가 나타난 것을 보았다. 내가 눈을 뜨고 보니 동수는 결가부좌를 하고 있었다. 나는 사존께서 제자를 격려해주시는 것임을 깨달았다.

이에 동수에게 본 장면을 이야기하고 우리는 함께 사존의 시를 외웠다.

마음 고생

원만은 불과(佛果)를 얻나니
고생을 낙으로 삼노라
몸 고생은 고생이 아니나니
마음 수련이 가장 어렵도다
고비마다 반드시 넘어야 하는데
곳곳마다 마(魔)로다
백 가지 고생 한꺼번에 내리거니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겠노라
세상 고생 겪을 대로 겪나니
세간 벗어나면 부처로다

(《홍음》〈마음 고생〉)

사실은 이에 앞서 일부 일들이 있었다. 한번은 동수가 법 공부하러 오지 않았다.

내가 말했다.

“분명 늦잠을 자고 있을 겁니다.”

그러자 다른 한 동수가 말했다.

“다른 동수에 대해 부면(負面)사상을 갖지 말아야 해요. 아마 다른 일이 있을 겁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동수가 집에서 자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도 아주 깊이 자고 있었다.

어느 날 동수가 늦게 왔다. 동수가 들어온 후 나는 “여기 안일한 대신선(大神仙)께서 오셨네”라는 목소리를 들었다.

내가 동수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자 웃었다. 이 웃음이 나는 그리 합당하다고 보지 않는데 웃음 자체는 동수가 개의치 않는다는 것인가? 아니면 잘못을 덮어 감추려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창피하기 때문인가? 만약 즐겁게 웃었다면 이는 옳지 않다. 수련을 엄숙하게 대하지 못한 것으로 사존의 점화(點化)에 대해서도 미안할 것이다!

한번은 내가 동수의 몸에 ‘안일(安逸)’이란 두 글자가 적힌 것을 보고 동수에게 말해주었다. 또 한 번은 그녀의 공간장이 노란색 모래 같은 물질로 가득 찬 것을 보았는데 나중에 짙은 남색의 물질이 또 나타났다. 개인적으로 이는 나태한 물건과 대응하는 색으로 본다. 동시에 동수의 몸에 ‘나(懶 게으르다는 뜻)’란 한 글자가 나타난 것을 보았다. 이런 것들도 동수에게 모두 말해주었지만 그러나 동수에게 큰 변화가 없는 것을 발견했다.

사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의 불성은 선(善)으로서, 慈悲(츠뻬이)로 표현되며 일을 함에 우선 남을 고려하고 고통을 참고 견딜 수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사람의 마성은 곧 악(惡)으로서, 살생하고, 훔치고 빼앗고, 이기적이고, 사념(邪念)적이며, 시비를 걸고, 선동하며 요언을 날조하고, 질투하고, 악독하며, 발광하고, 게으르고, 인륜을 어지럽히는 등등으로 표현된다.”(《정진요지》〈불성과 마성〉)

나는 동수가 고생을 겪을까 두려워하는 것과 그녀의 안일심・나태를 분리할 수 없다고 본다. 나는 나태와 안일, 향수, 더러움, 색심(色心), 늦잠을 자고 식탐 등 일련의 것들은 모두 좋지 않은 것으로 수련 중에서 마성(魔性)의 것으로 수련에 대한 일종의 저애로 본다.

수련이란 자신에 대해 책임지는 일이다. 우리는 생생세세 대법을 얻기 위해 무수한 고생을 겪었고 심지어 머리가 잘린 적도 있었다. 최후 시각에 이미 법을 얻었는데 만약 결가부좌의 고통마저도 감당하지 못한다면 이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이제 보살들은 입도 가리지 않고 비웃는데 더 이상은 볼 수 없다고 말한다. 동수는 마땅히 크게 분발해야 하지 않겠는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