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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집착이 사람을 구함에 영향 주다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최근 ‘스타(明星)’에 집착하거나 속인을 좋아하다가 번거로움을 초래했다는 일부 동수들의 글을 보고 나 역시 계발을 받았다. 나도 이런 과정을 겪었는데 이를 써내어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나는 20여 년의 정법노정에서 아주 많은 것을 감당했는데, 노교소에서 큰 박해를 받았으며, 구치소에서 정념정행으로 뛰쳐나온 경험도 있다. 나는 진상을 알리며 사람을 구하는 방면에서 전전긍긍하면서 전력을 다해왔다. 다년간 꾸준히 직접 만나 진상을 말하고 ‘삼퇴(三退)’를 해왔다. 만약 내가 굳이 여성 스타의 뉴스를 보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미 삼퇴시킨 사람의 수가 10만 명을 돌파했을 것이다.

중공이 도시를 봉쇄하고 QR코드 확인을 보급한 후 나는 핸드폰이 없어서 거의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이에 나는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가끔 뉴스를 검색하기도 했다. 서서히 여자 스타에 관한 뉴스 검색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점차 한 여자 스타를 좋아하기 시작했고 그녀의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그녀의 경력, 학력 등이 내 관념에 부합했기 때문인지 나는 점점 더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날마다 그녀를 보지 않으면 몸마저 근질근질했다.

이렇게 보다보니 어느덧 1년이 지났다. 내가 자신이 스마트폰에 중독된 것을 알았을 때, 나는 행동에 나섰다. 휴대폰을 다른 사람의 집에 놓고, 법을 더 많이 배우자 좀 좋아졌다. 그러다 외출할 때 핸드폰이 필요해 다시 폰을 가져오면 다시 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가져오고 내려놓고 하면서 집착하고 집착을 내려놓았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이 중독을 없앨 수 있었다. 나는 이 단락의 경험을 몹시 후회하는데 나는 이 일을 통해 사악의 교란에 대해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흔히 사람이 좋은 일을 할 때 마음속에 아주 아름답고 신성(神聖)한 그런 상태가 나타난다. 이때 문득 머릿속에서 한 가지 좋지 않은 생각이 떠오르면 이런 신성한 심경(心境)을 망치게 된다. 가끔은 자신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따라 하다가 나중에 반응이 온 다음에야 이미 잘못된 일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내가 바로 이런 상황이었다. 날마다 세 가지 일을 다 하고 있고 특히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방면에서 아주 잘 했으니 마음이 당연히 신성한 상태여야 한다. 하지만, 조금만 느슨해지면 그 순간, 핸드폰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고, 이 사악의 교란은 사상업력(思想業力)을 통해 강화되었다. 또 사상업력 속에 끊임없이 침투해서 점차 휴대폰 속 여자 스타를 보길 좋아하는 중독으로 변했다.

서서히 침투하기 때문에 뚜렷한 해악이 그리 크진 않지만, 사악은 오히려 사상 속에 장벽을 설치해, 사람의 일면과 신(神)의 일면을 분리시켜, 사람의 일면이 집착의 해악을 인식하지 못하게 했다. 이를 통해 점점 더 심하게 만들어, 결국에는 스스로 헤어날 수 없게 한다. 이는 대법제자가 노교소나 감옥에서 박해를 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사악이 같은 수단을 써서 사람과 신의 일면을 분리시키고, 사람의 일면을 박해해 강제로 전화(轉化)시키려는 것이다. 박해는 노교소와 감옥뿐 아니라 바깥의 상대적으로 느슨한 환경에서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단지 노교소나 감옥만큼 표현이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을 뿐이다.

나는 이것이 하나의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임을 발견했다. 많은 동수들이 세 가지 일을 빠뜨리지 않고 하고 있지만, 늘 일부 쉽게 눈에 띄는 집착을 내려놓지 못한다. 어떤 동수는 다년간 너무 강퍅하게 말하는 상태를 줄곧 고치지 못했고, 어떤 동수는 다년간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으며, 어떤 동수는 다년간 신체의 병업을 없애지 못했고, 어떤 동수는 다년간 시종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면서도 오히려 “진상을 알려 삼퇴를 한다”는 말로 덮어 감추는 등등.

다년간 이렇게 내려놓지 못하는 집착을 지니고 걸어왔다. 해외 동수들이 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알린 과정을 보면, 많은 경우 모두 법 공부와 수련이 제고된 후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하는 장벽을 돌파하는데 정말로 착실하게 수련 승화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대륙 대법제자들이 잘한 것도 아주 많지만, 여기에서 나는 단지 내가 본 현상을 한번 말해 여러분이 귀감으로 삼기를 바랄 뿐이다. 중국 대륙의 환경에서는 사악의 박해를 돌파해야 하고, 또 자신의 개인 안전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해야 하고, 시시각각 자신의 수련제고를 중시해야 하며, 사악이 틈을 타지 못하게 해야 한다. 대륙 대법제자는 확실히 간고한 환경 하에서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또 반드시 명백해야 하는데 오직 법을 잘 공부하고 자신의 정념을 수련해야만, 비로소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하는 일을 잘 할 수 있다! 한 가지만 중시하고 다른 두 가지를 소홀히 하면 자신에게 손실을 끼치고 중생을 구하는 데도 손실을 끼칠 수 있다!

동수가 들려준 한 가지 일이 내게 아주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 번은 동수 집에 갔는데, 몇몇 동수들이 막 나가서 진상을 알리고 돌아왔는데 몇 사람이 몹시 흥분했다. 그 중 한 사람이 법을 공부할 때는 깨닫지 못했고, 분명하지 않았는데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한 후 돌아오니 곧 다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나는 이런 상태를 이해하긴 하지만, 이 견해에는 그다지 공감하지 않는다.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것으로 법 공부와 도(道)를 깨닫는 것을 대신할 수 있는가? 동수는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한 후, 법속의 이치를 깨달았다고 말하는데, 이는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주시는 격려일뿐, 이런 식으로 도를 깨닫는 것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또 법에서 “心性(씬씽)이 얼마만큼 높으면 공도 얼마만큼 높다”(《전법륜》)고 하셨지, “삼퇴를 얼마만큼 시키면 공도 얼마만큼 높다”고 하진 않으셨다. 내 생각에 이렇게 생각하는 동수들이 하나나 둘이 아니라 많은 동수들이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것으로 심성수련과 안으로 찾음을 대신할 수는 없고 삼퇴를 시키는 것으로 정념정행(正念正行)을 대신할 순 없다. 사실 이런 말은 마땅히 그렇게 강조해선 안 된다. 하지만 내가 직접 겪은 경험을 통해 보자면 많은 동수들이 나처럼 세 가지 일을 하는 비율이 맞지 않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일을 잘한다고 해서 자신의 심성제고를 대신하는 것은 아니며, 사악한 교란을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심성에 누락이 있으면, 발정념을 해도 사악의 교란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을 공부하되 마음을 닦지 않으면 더욱 제고할 수 없다. 많은 동수들이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할 때 정념이 있어야 하며 자비로운 심태를 유지해야 함을 안다.

하지만 우리가 진상을 알리지 않을 때도 정념을 가져야 하며 또한 늘 심성을 닦고, 상화한 심태를 유지해야 한다! 이는 동수에 대한 요구가 높은 게 아니라, 한 수련인으로서 기본적인 요구다! 만약 내가 시시각각 자기 심성의 파동을 중시할 수 있고 늘 안으로 자신의 집착을 발견할 수 있으며, 법 공부를 꾸준히 견지할 수 있다면, 발정념으로 사악의 교란을 아주 빨리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그렇게 오랜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도 조정할 수 있다!

여기서 내가 바라는 것은 단지 다른 동수들이 나를 거울로 삼아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수련하고 사람을 구하는 소중한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으면 한다. 수련이란 물을 거슬러 배를 타는 것과 같아서 전진하지 않으면 후퇴다. 의식하지 못한 작은 집착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결국에는 큰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대법제자들이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악이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서 자신의 작은 집착에 걸려 넘어져 유감을 남기지 않기를 바란다. 이렇게 하면 자신에게도 중생에게도 모두 손실이다.

이상은 단지 개인의 깨달음이니 단지 참고로만 제공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25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