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섬(纖纖)
【정견망】
우리는 흔히 금기서화(琴棋書畵 고금 바둑 서예 그림)가 모두 신전문화(神傳文化)에 속한다고 말하는데 그럼 그 의미는 대체 어디에 있을까? 사실 이런 것들을 통해 신(神)과 통하려는 것이다. 순양(純陽)도인이란 도사가 남긴 것으로 알려진 다음 시에서 진상(真相)을 알려준다.
썩은 도끼자루 참된 구결 오묘하게 신과 통하니
한 판 두니 몇 년이 지났구나.
굴에서 나온 이래 적수가 없나니
늘 상대에게 양보했다네.
爛柯真訣妙通神
一局曾經幾度春
自出洞來無敵手
得饒人處且饒人
“썩은 도끼자루 참된 구결 오묘하게 신과 통하니
한 판 두니 몇 년이 지났구나”
여기서 ‘썩은 도끼자루’(爛柯)에 대해 어떤 이는 바둑을 구경한 이야기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장기를 구경한 이야기라고 하는데 사실 이런 것은 다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장기나 바둑이나 모두 신전문화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또 ‘참된 구결[진결(真訣)]’이란 그리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많은 요소들이 다 참된 구결인데 우리가 종종 보는 것은 그저 표면에 불과할 뿐이다.
여기서 참된 구결이란 신(神)과 통할 수 있는 것이니 다시 말해 신과 소통할 수 있거나 심지어 신으로 수련 성취할 수 있다는 뜻이다.
뒤에서 시인은 한 판 바둑에 몇 년이 지나갔다고 한 것은 마땅히 가리키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아마도 참된 구결을 이해하려면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한 것을 가리켰을 것이다. 사실 여기서 참된 구결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다시 말해 진정으로 신과 통하는 것은 표면이 아니라 이 참된 구결이다.
많은 사람들이 바둑을 생계수단으로 삼고 있지만 중시하는 것은 승패(勝敗)일 뿐이다. 하지만 바둑의 승패는 결코 바둑의 참된 구결이 아니다. 진정으로 참된 구결은 바둑을 두면서 우주의 이치를 깨닫는 것으로 명예와 이익을 내려놓고 이를 통해 생명이 승화되는 것이다. 승패를 중시하다보면 원하는 곳에서 벗어나 엉뚱한 곳으로 가버린다.
“굴에서 나온 이래 적수가 없나니
늘 상대에게 양보했다네.”
많은 사람들이 동굴에서 나온 이래 적수가 없었기 때문에 늘 상대에게 양보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즉 먼저 자신이 능력을 갖춘 후에야 남에게 양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도 이치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각도를 바꿔서 본다면 시인이 “굴에서 나온 이래 적수가 없는” 원인이 바로 “늘 상대에게 양보”했기 때문이다. 인간세상의 이치는 반대로 된 이치[反理]로 참된 구결은 바로 반대로 된 것이다.
바둑을 두는 각도에서 보자면 우리가 상대방의 약점을 보았을 때 어쩌면 이것이 상대의 유인책일 수 있다. 만약 상대에게 양보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상대 패를 죽이는 수를 쓰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도리어 상대의 함정에 빠지지 않아 패배하지 않게 된다.
윤회의 각도에서 문제를 보자면 당신이 한번 이겼으면 또 한 번 지는 것으로 이렇게 해야만 공평한 것이다. 즉 패배가 있으면 승리가 있는 것이 윤회의 이치이자 인간세상의 이치다. 진정으로 “늘 남에게 양보할 수 있다”면 그럼 아예 적이 존재하지 않게 되며 모두가 다 친구가 되는데 그럼 절대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적수가 없다는 것은 이미 인간세상의 이치를 초월한 것으로 이미 명리(名利)를 담담히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종의 수행(修行)이다. 진정으로 이 점을 해낼 수 있다면 그럼 도(道)를 닦아 신선이 될 수 있다.
예전에 무협영화 한편을 본 적이 있다. 장삼풍(張三豐)이 마교(魔敎) 응왕(鷹王)과 싸울 때 장삼풍은 마왕을 이길 수 있었지만 결국 상대방에게 한 수를 양보해 서로 비겨 화해했다. 이것이 바로 “늘 상대에게 양보한” 것이 아닌가. 만약 줄곧 억지로 이기려고만 한다면 그 누구라도 언젠가 고수(高手)를 만나 패배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고수가 “늘 상대에게 양보할 수 있고” 모두들 이렇게 할 수 있다면 그럼 모두 적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이치는 이렇게 간단한데 참된 구결 역시 아마 이렇게 간단할 것이다. 때문에 바둑을 두는 것 역시 수행이다.
바둑을 두는 이치에는 사람의 선량과 자비가 포함되어 있고 또한 참고 양보하는 이치가 포함되어 있으며 또한 무수히 많은 사람이 되고 신(神)이 되는 이치가 있다. 사람은 모두 명리(名利)를 추구하는 것으로 진정으로 명리를 내려놓는다면 그럼 바로 수련하는 것이다. 사람이 신전문화(神傳文化)를 벗어나면 그럼 곧 사람의 뿌리를 잃어버리게 되어 결말 역시 가장 비참해질 것이다. 그 어떤 한 문(門)의 신(神)이 전한 기예(技藝)라도 그 배후는 모두 간단하지 않으며 모두 신과 통한다. 이것이 바로 신전문화의 진실한 목적인데 즉 사람을 구도해 천국으로 되돌아가게 하려고 전한 것이다.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28314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