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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션윈공연을 본 심득 (하)

가가소도(呵呵笑道 허허 웃음)

【정견망】

후반부 첫 작품은 ‘선아비무(仙娥飛舞)–하늘을 나는 선녀들’이다. 이 작품은 다시 한 번 선경(仙境)의 아름다움을 직접 보여주면서 관객들에게 생명의 내원과 돌아갈 곳은 속세가 아니라 천국임을 일깨워준다. 공연 첫 시작부터 관객들이 이 점을 명심하길 희망한 것으로, 이렇게 하면 이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하는 가운데 이 핵심을 잘 기억할 수 있다.

프로그램 마지막에 뭇 선아(仙娥)들이 마치 장거리 비행을 하는 듯한 대형을 이룬다. 내가 이해하기에 선아가 대표하는 것은 많은 정신(正神)들이 비록 직접 인간 세상에 내려오진 못할지라도 역시 층층 아래로 걸어내려와 사람과 아주 가까운 시공(時空)에 와서 수행하는 사람들 및 선량한 사람을 찾아 몰래 보살피고 있다.

선아는 마지막 프로그램에 다시 등장하는데 나는 이것은 단지 첫 작품이 마지막 작품과 호응할 뿐만 아니라 사실 그녀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존재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깨달았다.

후반부 두 번째 작품은 ‘당 현종과 양귀비’다. 여덟 글자로 개괄하자면 “주색(酒色)으로 나라를 망치니 인생은 꿈과 같구나(酒色誤國 人生如夢)”이다. 사회자가 이 작품을 아주 낭만적인 사랑이야기로 소개하면서 또 날마다 술 마시고 춤을 춘다고 했다. 아마 많은 관객들이 여기까지 들었을 때 아주 좋다고 여기거나 부러워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자는 계속해서 황제가 아예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고 말한다. 아마 이때쯤이면 많은 관객들이 이미 정신을 차리고 이 속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양귀비가 목을 매달아 자한 후에도 현종은 여전히 밤낮 그녀를 그리워하며 꿈속에서 계속 그녀와 춤을 춘다. 하지만 깨어난 후 모든 것이 공허할 뿐이고 오직 쓸쓸함과 적막만 남은 것을 발견한다.

현종은 만년에 《괴뢰음(傀儡吟)–꼭두각시 인형을 노래하다》이란 시를 썼다.

나무 깎고 실 엮어 노인을 만드니,
피부는 닭의 피부처럼 쭈글쭈글하고 머리는 백발이라 진인(真人)과 같구나.
잠시 놀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버려두나니
인생이란 한바탕 꿈과 같구나.”

刻木牽絲作老翁
雞皮鶴發與真同
須臾弄罷寂無事
還似人生一夢中

이 작품의 이치는 사실 어느 누구든 적용할 수 있다. 황제에 대해 말하자면 주색으로 나라를 망쳤지만, 다른 사람들에 대해 말하자면 주색은 가문을 망치고 업무를 망치며 인생을 망치고 또 수행(修行)을 망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통치자인 황제마저도 인생이란 꿈과 같다고 했으니 다른 사람들은 또 무엇을 내려놓지 못한단 말인가?

이 이야기는 또한 동시에 사부님께서 설법에서 말씀하신 이치를 체현한다.

“각종 계층에서 모두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으며, 부동(不同)한 계층에는 부동한 모순이 존재한다. 높은 계층에는 높은 계층의 모순 형식이 있는데, 모두 모순을 정확하게 대할 수 있으며, 어느 계층에서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든지 각종 욕망과 집착심을 모두 담담하게 내려놓을 수 있다.”(《전법륜》)

후반부 세 번째 작품은 ‘물동이 인 여인들’이다. 이 작품은 앞서 언급한 평형(平衡) 외에도 물 항아리는 또 보살이 대자비로 대지에 감로(甘露)를 퍼뜨리는 것을 상징한다.

후반부의 네 번째 작품은 ‘노지심’이다. 역사적으로 전업(專業) 수행이 등장했는데 전업 수행에는 그 의미와 역사적인 필요성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수행의 필요조건이자 유일한 방식은 결코 아니다. 노지심은 좋은 승려는 아니지만 정의감이 투철한 좋은 사람이다. 그는 원래 의협(義俠)을 실천했으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해 악당 진관서(鎮關西)를 때려죽인 후 관아의 체포를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출가했다. 그의 운명에서 또는 그의 수행의 길에서 그가 화상이 될 운명이 아니었다면 그가 중노릇을 하는 것은 짧은 에피소드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런데 노지심은 천성이 솔직하고 의리가 있었으며 용감하고 두려움이 없는 그야말로 도심(道心)의 체현이었다. 때문에 그는 단순히 세간(世間)에서 세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고층 생명의 사랑과 가지를 받았을 것이다. 우리는 노지심을 좋아하는 동시에 몇 가지 점에 대해 주의할 필요가 있다.

첫째, 절대 ‘계(戒)’를 어겨서는 안 된다. 노지심은 술을 아주 좋아했는데 이는 그가 부원신(副元神) 수련을 했음을 의미한다.

둘째, 절대 영웅임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데 박해 속에서 사악에 협조하거나 주동적으로 사악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

셋째, 외부의 적을 물리치긴 쉽지만 내부의 적을 제압하기는 어렵다. 만약 끊임없이 보다 높은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안으로 집착을 찾으면서, 자신의 내심 세계 속에서 탐관오리나 무뢰배들과 유사한 좋지 않은 것들을 포함해, 깨끗이 제거한다면 이것이 바로 공력을 들여야 할 곳이다.

후반부 다섯 번째 프로그램은 ‘고풍추월(古風秋月)’로 얼후(二胡) 독주다. 이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평은 높고 상쾌한 가을 밤 하늘에는 보름달이 떠 있다. 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달빛은 보는 사람이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한다.

달아! 너는 얼마나 오랫동안 인류와 함께 했느냐? 너는 인류와 함께 홍몽(鴻濛)을 걸어왔고 여러 차례 전란(戰亂)과 평화를 함께 했구나. 너는 오늘도 여전히 하늘 높이 걸려 있지만 인류는 한 세대 한 세대 교체되며 이어져왔다. 너는 고인(古人)들의 이야기를 내게 들러줄 수 있는가? 윤회의 의미란 무엇인지 말해줄 수 있느냐?

인생의 의미에 대한 사색과 깨달음은 나로 하여금 기뻐 저절로 춤추게 하는데 밝은 달빛아래 노래하며 춤추는데 기쁘고 너무 신이 나서 마치 달빛과 혼연일체가 된 것처럼 결국 세상의 모든 근심과 번뇌를 잊은 것같다.

후반부 여섯 번째 프로그램은 여성 고전무용이다. 이 춤은 앞서 이미 언급한 평형 외에도 또 도(道)가 하나를 낳고, 하나가 둘을 낳으며, 둘이 셋을 낳고, 셋이 만물을 낳는 법리를 표현한다. 법(法)은 변화가 무궁하며 우주는 풍부하고 다채롭다. 생명의 표현은 다 달라도 모두 법의 체현이다. 생명은 서로 다르지만 서로 존중하며 무조건 서로 협조한다. 이 춤은 또 ‘자아통제/자제력’이 두드러지는데 마치 이렇게 해야만 신운(神韻)을 체현하는 것 같다.

반면 속인사회 속의 그런 방탕한 공연・회화 등은 마(魔)의 정보로 가득 차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사부님께서 《논어》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인류의 탐색은 기술 경쟁을 위한 것이고 구실은 생존 조건을 개변한다는 것인데, 많게는 신을 배척하고 인류의 도덕적 자아단속(自我約束)을 방종(放縱)하는 것에 기초를 두었다. 이런 이유로 과거 인류에게 출현했던 문명이 여러 차례 훼멸되었다.”

후반부 일곱 번째 작품은 몽골 ‘젓가락 춤’이다. 사람이 술을 마시지 않아도 사람이 절로 취하고 색이 사람을 미혹시키지 않아도 절로 미혹된다. 만장한 역사의 윤회 속에서 사람들은 점차 술에 취해 길을 잃었고 자신이 온 길과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망각했다. 다행히 서로를 돕고 일깨워주는 형제들이 있어 여러 차례 ‘그’를 일깨워준다.

깨어난 후 스스로 그는 주체할 수 없는 기쁨과 흥분에 환호작약(歡呼雀躍)한다. 그는 인생이란 창세주(創世主)를 기다린 것으로 창조주께서 이미 오셨으며 최후의 진상이 크게 드러나 곧 ‘구도받게’ 됨을 알았다. 그는 이에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며” 이 기쁜 소식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자 한다. 젓가락으로 자기 몸을 두드려 소리를 내는 것은 아마도 자신을 더욱 채찍질하는 의미일 것이다.

후반부 여덟 번째 작품은 대법가곡이다.

후반부 아홉 번째 마지막 작품이 ‘법정인간(法正人間)’이다. 인류 역사의 마지막 막이 펼쳐지는데 대법이 전해지는 것부터 시작한다. 중간에 있는 세 명의 여자 무용수들은 손에 보서(寶書)을 받쳐 들고 있고, 바깥쪽 네 명의 남성 무용수들이 뛰어오르는 것과 공중 회전은 대법제자가 장차 사면팔방에 대법을 전하는 것을 상징한다.

이와 대비되는 것은 현대 사유와 행동 방식이 사람을 가둬, 냉담하고 이기적으로 변하고, 허환(虛幻)의 세계에 빠져들어 스스로 온갖 고통과 재앙을 초래하는 것이다.

대법제자들[《서유기》 당승사도(唐僧師徒)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 할 수 있음]은 개인적인 보답을 추구하지 않고 순정하고 선량하게 세인을 도우며 세상 기풍을 바로잡는다. 설령 자신에게 상처를 준 ‘우수 당원’이 신체적인 고통을 겪는 모습을 보고 대법제자는 그를 버리지 않고 위로하고 구도해 그에게 희망을 주고 운명을 바꾸게 해준다. 대법제자들의 자비와 정념(正念)이 하늘을 감동시키고 땅을 움직였다. 사악이 미친 듯이 대법제자를 더욱 박해하려 하자 천지가 진노해 거대한 쓰나미가 산을 뒤흔든다. 때마침 창조주께서 나타나 쓰나미를 물리치고 중생과 창우(蒼宇)를 구해 주시니 온 하늘이 함께 경축한다.

마지막으로 션윈 음악을 들으며 느낀 깨달음을 나눠보고자 한다. 먼저 분명히 밝혀둘 것은 필자는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악리(樂理 음악의 이치)에 대한 지식도 없는 그저 평범한 관객에 불과하다. 내가 감수하고 깨달은 것은 법에서 얻은 것이다.

프로그램 북을 살펴보니 대부분 작품의 작곡을 다 사부님께서 하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선율(旋律) 배후의 내함과 의미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기술 수준의 제고는 두 방면인데, 하나는 배우 자체로서, 무대 위의 배우 그 자신의 기술적인 제고이고, 또 하나는, 무대 위의 배우는 음악 반주에 맞춰하기에 음악이 듣기 좋지 않으면 전체적인 효과가 파괴되어 버린다. 아울러 소리는, 신(神)은 그것으로도 인체의 좋지 않은 것을 청리하며, 게다가 심층까지 파고 들어갈 수 있어 아주 큰 정면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션윈의 모든 것은 사람을 구하는 데에 모두 유용한 것으로, 기술이 높은 예술가, 그는 음악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깨우치게 할 수 있고, 신전문화(神傳文化)를 발양하고 전통문화를 회복하는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각지설법 13》〈2015년 미국서부법회설법〉)

션윈쭤핀(神韻作品) 사이트에서 음악가이자 지휘자인 진영(陳纓)은 《전통문화와 음악》 제5집에서 음악과 무용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개괄했다.

“선명한 리듬을 지닌 음악은 무용의 운율(韻律)을 강화해 무용의 풍격과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감정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키고 펼쳐내게 한다.” 동시에 음악의 리듬은 또 “무용동작의 시간치에 해당해 동작의 속도, 길이 강도, 폭 등을 결정한다.”

션윈 사회자가 오케스트라나 독주(獨奏)를 소개할 때면 종종 “음악(樂)이 먼저고 약(藥)이 나중이며”, “훌륭한 음악은 천지와 조화를 이룹니다. 덕음아악(德音雅樂 덕을 지닌 고상한 음악) 늘 들으면 사람의 몸과 마음이 평안해지고 즐거워서 근심을 잊을 수 있습니다.”라고 한다.

만약 션윈(神韻)이란 이 무대가 인류라는 이 큰 연극의 축소판이라면, 그럼 인류 역사에서 무대 음악에 대응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 생각에 각종 다양한 예술형식이 바로 그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인류의 도덕은 인류의 예술에 영향을 주고, 예술은 역으로 또 인류에게 영향을 끼친다.”(《음악과 미술창작회설법》〈미술창작연구회설법〉)

인류사회에는 춤과 노래, 음악, 회화, 조소(彫塑), 시사(詩詞)와 소설 등 문학 작품, 오페라, 평서(評書 중국 전통문예의 하나로 장편 이야기를 도구를 사용해 말하는 것), 영화 등 다양한 예술 형식이 있다. 고인은 “글은 도(道)를 싣는 것”이라 했다.

사실 모든 예술형식이 도를 싣는 것이다. 낮은 층차에서 말하자면 이런 예술 작품은 사람들에게 오락과 소일거리를 제공하지만 그 내함과 작용은 단지 이런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독자/관중/애청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작품 속 등장인물의 품행에 감동하고 영향을 받으며, 정서를 함양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한다. 더 확대하면 어느 한 사회에서 그 시대 사람들의 풍속과 도덕을 형성한다. 마치 《9평 공산당》에서 언급한 것과 같다.

“전통문화 속에는 ‘하늘, 도(道), 신(神), 부처, 명(命), 연(緣),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 염(廉), 치(恥), 충(忠), 효(孝), 절(節)’ 등이 관통되어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평생 글을 몰라도 전통 연극과 평서에 대해서는 오히려 익숙하며 이런 문화 형식은 모두 민간의 백성들이 전통적 가치관을 습득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여기서 나는 시선 이백(李白), 서예가 왕희지 등 역사상 수많은 예술가들을 떠올려보았다. 천백 년 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사상이 제고되고 감동해서 추동력을 얻고 평생 바른 방향을 추구하고 꿈을 꾸게 했는가? 아울러 이 속에는 얼마나 많은 창세주의 심혈(心血)이 들어 있겠는가? 이를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연주할 때면 엄격하게 지휘자의 지시에 따라야 하고 전체 공연단은 또 무대 총감독의 신호에 따라야만 전체 공연이 조율되어 질서 정연하며 가장 좋은 감상효과에 도달할 수 있다. 전반 사회가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은 모두 배치가 있는 것이다. 그 속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해야 할 것은 법(法)을 스승으로 모시고, 정진하며 수행해서 끊임없이 자신의 심성 경계[心性境界 배우들의 기예(技藝)에 해당]를 제고하고, 동시에 다른 동수들을 겸손하게 대하고, 협력 중에서 자아를 내려놓고, 공동으로 조사정법해 중생을 구도하는 역사적인 홍원(洪願 홍대한 소원)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상은 개인의 얕은 깨달음이다. 이를 써서 함께 나누고자 한 것은 첫째 은혜에 감사드리기 위함이고 둘째는 보다 좋은 의견을 이끌어내기 위함이다.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2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