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미(子微)
【정견망】
내가 문장 한 편을 쓰면서 아직 완성하지도 못했는데 일부 문제가 있어서 며칠간 시간이 지연되었다. 그런데 5월 7일 정견망에 접속해 한 편의 문장을 읽는데 뜻밖에도 제목 위에 녹색으로 “당신의 원고가 이미 전송되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당시 나는 좀 당황했다. 나는 아직 문장을 발표하지 않았는데?
나는 문득 깨달았다.
‘이것은 정견망이 나더러 빨리 문장을 써서 발표하라고 일깨워주는 것이구나.’
서둘러 사이트에서 나와 문장을 작성했다. 문장을 쓰는 한편 나는 자신이 시간을 다그치지 못한 것에 대해 자책하고 또 반성했다.
나는 10여년 전 한 동수와 함께 있을 때 일이 생각났다.
당시 나는 동수에게 말했다.
“꽃무늬 비석을 하나 봤는데 어느 용기 안에 있었고 비석에 새겨진 것이 지워져서 아주 깨끗했어요. 꽃무늬가 아주 아름다웠는데 위에 ‘정견윤회이야기’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비석의 바닥이 흰색 거품으로 덮여 있었어요.”
당시 동수가 내게 말했다.
“당신에게 이런 사명이 있는 겁니다! 윤회문장을 잘 쓰고 진지하게 대해야 합니다!”
나는 생각했다.
‘원래 나는 윤회문장을 써서 세월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독자들에게 윤회 속의 그런 일들의 진상을 알리기로 약속했었구나!’
이 문장을 쓸 때 나는 자신이 쓴 일부 문장들과 내가 쓴 일부 인물들이 생각났다. 생각하고 생각해보니 눈물이 안개처럼 올라왔고 마음이 쓰라린 느낌이 들었다.
나는 어떤 동수들이 윤회문장 보기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윤회문장을 작가 입장에서는 자아를 바꾸고 자아를 버리고 역사상의 자아와 직면하는 과정이다. 사실 어떤 것들은 건드리고 싶지 않은데 말하자면 쓰고 싶지 않다. 그것을 건드리지 않으면 마음이 조용하고 스스로 즐거울 수 있지만 일단 쓰게 되면 곧 윤회 속에 들어가 윤회 속의 그런 급격한 변화를 감수하게 된다.
《누란의 비밀을 풀다(解密樓蘭)》란 문장을 쓸 때 나는 누란왕국이 훼멸될 때까지 쓰고 나서 계속 쓰는 게 너무 어렵다고 느꼈다. 앉아서 글을 쓰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내가 과연 직면할 수 있을까? 여전히 기억할 수 있을까? 아니면 활달해질 수 있을까? 왜냐하면 당신이 본 것은 미혹 속의 과거이고 이런 것들은 당신이 살았던 나라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기억이 석방되어 나오고, 당신과 당신 가족들이 겪은 모든 것들이 동시에 석방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또, 미혹 속에 있는 사람의 감촉이 있는데 일종의 강렬한 감정인데 뭐라 말하기 힘든 고통이다.
왕후의 절망적이고 비참한 죽음, 이지를 상실한 국왕의 광기, 왕자가 병으로 침대에 쓰러지고 반란군이 집결하는 등 이런 세부적인 장면들이 마치 비디오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보면서도 볼 수 없었지만 오직 계속해서 글을 써야만 다음 줄거리를 볼 수 있었다. 내 기억에 나는 이틀을 회피했지만 최후에 억지로 앉아서 글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또 마음이 괴로웠다.
내가 느끼고 깨달은 것은 글을 쓰다가 어려움에 봉착하면 곧 자신이 제고하고 내려놓을 것이 있는 것이다. 문장을 다 완성해야만 모든 감정 변화가 비로소 안정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윤회 중에 쌓인 것들이 깨끗이 씻기는 것이다. 이 과정은 바로 당신이 마음을 움직이고 다시 마음을 조용히 하는 것이다. 한참 지난 후 다시 그 문장을 볼 때면 곧 그것이 당신과 무관하다고 느낀다. 그것은 대법 사이트의 자산으로 그것은 단지 당신의 손을 거쳤을 뿐이며, 당신의 여과와 가공을 거쳐 모습을 드러냈을 뿐인데 바로 이런 것이다.
마찬가지로 왕소군에 관한 문장 《인연이 정해져 역사를 이루다(緣定史成):삼세의 인연으로 역사를 이루고 소군이 변경을 나가 아름다운 문장을 빚어내다(三世情緣成曆史 昭君出塞鑄華章)》은 삼세(三世)에 걸친 윤회를 다뤘다.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일부 감정들이 드러났는데 나는 황태극(皇太極)과 해란주(海蘭珠)가 초원에서 이별하는 것을 보면서 아주 진한 정(情)을 발견했다. 하지만 글을 쓰는 과정에서 마치 어떤 것들이 풍화되어 떨어져 나간 것처럼 여과되었다. 내가 느낀 것은 글을 쓸 때와 같은 시공 속에서 시간이 감정을 녹여 이지로 걸러낸 정신이었다.
나는 자신에게 말했다.
“보라, 역사상 그 정이 얼마나 무거운가, 너는 그렇게 많은 고생을 겪었고 지금은 아주 청성한데 네가 기억할 뿐만 아니라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한요(寒窯)》를 쓸 때는 설평귀(薛平貴)와 왕보천(王寶釧)이 헤어질 때 이 두 사람의 정이 아주 중한 것을 느꼈다. 그래서 아무리 보내려 해도 내려놓지 못했는데 이 단락의 기억이 마치 비디오처럼 제거할 수 없었다. 왕보천이 고생을 겪는 것을 보면서 나는 마음이 쓸쓸해졌고 또 까닭 모를 눈물이 흘러 내려 더는 쓸 수 없었다. 나중에 마음이 가라앉은 후에야 다시 쓸 수 있었다. 내가 느끼고 깨달은 것은 승화와 제고는 글을 완성한 후에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수련의 요소가 안에 있다.
어떤 것은 대체 내가 어떤 문장을 썼는지 잊어버려 더 이상 쓸 수 없었다. 나는 사부님 법상 앞에 무릎을 꿇고 말씀드렸다.
“사부님, 더는 쓰고 싶지 않습니다.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갑자기 자신이 옳지 못한 것을 느꼈는데 이는 사존께 하소연하는 것이고 책임을 미루는 것으로 옳지 않다. 나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눈물을 닦으며 속으로 더는 이렇게 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동수의 문장을 보니 동수가 일찍이 역사 속에서 전생하는 과정 중에 우희(虞姬)였는데 우희는 항우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 자살한다. 그 문장을 쓴 동수는 금생에도 당시와 비슷하게 바람 불고 나무 그림자가 드리워지면 마음속에 까닭모를 괴로움이 솟구쳐 올라왔다고 했다. 내 생각에 윤회를 쓰는 동수들은 아마 모두 유사한 느낌이 있었을 텐데 자신이 직접 겪은 것과 같은 그런 느낌이 든다.
내 기억에 《산굴 속 참혹한 죽음의 진상 대법 수련에서 미혹 타파(慘死山洞見真相,大法修煉破迷局)》란 글을 쓸 때 산굴에서 비참하게 죽는 장면을 쓸 때 문장의 진도를 나가기가 아주 어려웠다. 때로는 그 어떤 감정이 떠오르더라도 반드시 한 편의 문장을 완성해야 한다고 굳게 결심해야만 견지할 수 있다.
나는 “썩은 도끼자루 참된 구결 오묘하게 신과 통하니 한 판 두니 몇 년이 지났구나.(爛柯真訣妙通神,一局曾經幾度春)”라는 구절을 보면서 깊은 감동이 있었다. 아주 오랜 세월 속에서 그런 다채로운 과거 일들은 써낼 가치가 있다. 이 과정은 일종의 깨끗이 씻고 승화하는 과정이자 또한 다른 사람이 이익을 보길 희망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 속에서 나타난 고통들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어쩌면 생명이 괴멸(壞滅)시기 천상에서 겪은 원죄(原罪)의 요소일지 모른다.
5월 9일 새벽, 나는 신필(神筆)이 나타난 것을 보았다. 그것이 장난스럽게 혀를 내밀어 나는 보고 웃었다.
신필이 말했다.
“주인님이 원고 독촉을 받으니 좀 부끄럽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그래, 내가 서둘러 원고를 완성한 후 보냈단다. 나중에 또 확실히 설명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느꼈고, 또 보충했는데 정견망 동수들이 수정된 원고를 보낼 때까지 기다려줬으면 했어.”
신필이 또 말했다.
“주인님이 또 윤회문장 한편을 쓰시는데 아직 쓰지 못하셨어요. 그 문장을 써내시면 괜찮을 겁니다. 알고 있는 모든 윤회는 마땅히 전부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역사이고 역사이야기는 귀감이 될 수 있고 또 미래에 남길 수 있으니까요. 당사자들이 자신의 일을 말하면 신뢰도가 높을 것이고 또 역사의 진상을 써낼 수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나도 쓰려고 생각하지만 다만 아직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지금은 좀 바쁘거든.”
이렇게 말하자 신필이 또 아주 기뻐했다.
나는 어떤 동수들은 자신의 일부 윤회 과거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아는데 이것을 문장으로 써낼 것을 건의한다. 사전(史前)의 서약을 실현하는 것이든 본래 역사를 환원하는 것이든 써내는 것은 일종의 헌신이며, 또한 자신을 돌파하는 것이다. 과감하게 자신을 견지한다면 나중에 승화된 후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정견망의 기이한 원고 독촉 방식 때문에 이 문장을 쓰게 되었다. 자신의 일부 소감과 깨달음을 적어 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독자들의 지적과 양해를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3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