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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안인사와 전통회귀

우련(雨蓮)

【정견망】

올해 설을 쇠면서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새해가 다가오니 동수들을 찾아가 사부님께 올리는 문안 인사를 기록해 이를 명혜망에 발표해서 사존에 대한 제자들의 경의와 감사를 표현해야 한다!”

그날 몇몇 동수들을 찾아갔지만 결과는 뜻밖이었다. 사존께 드리는 문안인사라는 말을 듣자마자 어떤 동수는 아주 난감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또 어떤 동수는 말했다.

“수련을 잘하지 못해서 무슨 할 말이 없어요.”

어떤 동수는 말했다.

“사존께 문안인사를 하는데 어떻게 문안을 드리죠? 사부님 생신을 축하드린들 당신이 수련을 잘하지 못하면 사부님께서 좋아하실까요? 자신이 잘하겠다고 말하고 잘하지 못한다면 이는 사존을 기만하는 것이 아닙니까?”

내가 말했다.

“당신의 수련이 어떠하든지 사존에 대한 문안인사는 마땅히 해야 합니다. 법에서 이렇게 다년간 수련했고 우리에 대한 사존의 은전(恩典)을 안다면 당연히 사존께 감사 인사를 표시해야 합니다!”

5.13 전에 나는 또 같은 일을 하면서 한 동수에게 말했다.

“곧 5.13 즉 사존의 생신이 다가오는데 사존께 드릴 말씀이 있으면 내가 당신을 대신해 명혜망에 올려드리겠습니다.”

그러자 동수는 좀 움찔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렇게 사양했다.

“수련을 잘하지 못해서 할 말이 없습니다.”

내가 말했다.

“당신은 (수련을) 아주 잘했어요!”

동수는 곧바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명혜 라디오에 나오는 그런 동수들과 비교하면 차이가 아주 멀어요.”

하지만 내가 고집을 부려 동수는 몇 마디 문안인사를 했다.

이 외에 다른 한 동수도 같은 태도였다. 나는 속으로 기쁘지 않았다. 사존께 문안 인사를 드리는 것은 원래 좋은 일이지만, 동수들의 말에 기분이 상했다. 나는 자신이 심성을 잘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나는 생각해보았다.

‘수련을 잘하지 못하면 사존께 문안인사를 하지 말아야 하는가? 이는 대체 어떤 심리인가?’

전통적인 의미에서 사존께 문안 인사를 드리는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내가 보기에 명절에 사존께 인사를 드리는 것은 일종의 예의이자 전통이며 또한 감사의 표시이다!

특히 우리는 대법 수련자로서 이렇게 다년간 수련하면서 당신이 수련을 잘했든 못했든 늘 사존의 가호와 점오(點悟)가 있었고 우리는 모두 사존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는지 알고 있다!

사존께서는 지옥에서 우리들의 이름을 지워 주셨고, 우리의 신체를 조정해 수련할 수 있게 해주셨으며, 또 우리를 위해 업력(業力)을 없애주셨고, 우리가 역사적으로 빚진 억울한 원한을 평형시켜 주셨으며, 우리가 천계(天界)에서 진 업채(業債 원죄)도 갚아주셨다. 사존께서는 정말로 우리를 위해 아주 많은 것들을 하셨고 아주 많은 것들을 감당하셨다.

나는 늘 사존께서 제자를 위해 너무나 많은 것을 하셨으니 문안 인사로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고 정진하려는 노력을 표시하는 것은 불성(佛性)의 표현이라 여겼고 우리는 반드시 사존의 은혜에 감사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 더럽고 혼탁한 속세에서 청성(淸醒)해진 후의 소감을 표현해야 한다!

나 자신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두 날짜는 반드시 기억하는데 하나는 바로 5.13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법을 얻은 날이다. 5.13은 세계 파룬따파(法輪大法)의 날로 세간 중생들의 희망이자 중생에 대한 창세주의 은전(恩典)이다. 나는 또 내가 법을 얻은 날을 영원히 잊을 수 없는데 위대한 사존과 연(緣)을 맺고 생명의 희망을 찾은 날이자 새로운 생명을 얻은 날이니 기쁘고 또 축하할 날이다.

아직 수련하지 않는 형님께 내가 물었다.

“이번 명절에 사존께 문안 인사를 드리려 하는데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세요?”

그러자 형님은 곧바로 아주 행운이라는 표정으로 축복의 말을 하기 시작했다.

“사존께선 노고가 많으셨고 아주 위대하시며 사존의 제자들은 정말 대단합니다….”

때로는 글로 쓰는데 한참을 써서 대법에 대한 자신의 인식과 사존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표현한다.

나중에 내가 형님에게 사존께 보낸 문안인사가 사이트에 발표되었다고 알려주자 그는 몹시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문안인사가 명혜망에 게재된 것을 아주 대단한 일로 여겼다.

형은 아주 영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또 언제 대법 사부님께 문안인사를 드릴 수 있어?”

내가 말씀드리자 그는 급히 반복하면서 이는 꼭 기억해야 할 큰일이라고 여겼다.

나는 생각해보았다.

‘수련하지 않는 사람조차 사존에 대한 감격을 아주 기쁘게 표현하니, 대법제자로서는 더욱 마땅히 자신의 인식을 제고해 사존에 대한 문안인사를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여겨야 한다.’

고대 전통에서 설 쇠는 것을 예로 들자면, 사람들은 하늘을 공경하고 조상을 기리면서 지난 한 해의 부족을 반성하고 새해를 전망하며 자신이 발전과 신령(神靈)의 보우를 얻게 되기를 희망했다. 또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시기에 순수하고 깨끗한 생각으로 심령을 제고하기 위해 한 가지 아름다운 소망을 약속했다. 사람의 마음이 선(善)을 향하면 신령이 보호해주는데 이것이 바로 천인감응(天人感應)의 표현이 아닌가!

그렇다면 한 수련자로서 사존에 대한 문안인사를 하는 게 그리도 어렵단 말인가? 나는 이것을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사존께 문안인사를 올릴 때, 순정(純淨)한 염두를 내보내는 것은 사존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외에 또 자신의 부족을 찾아서 한 가지 마음의 소원을 발출해 자신이 잘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이는 불성(佛性)의 체현으로 사존의 가지(加持)를 얻을 수 있다.

반대로 자신이 정진하지 못하는 것을 알기에 또 회피하면서 부끄러워서 사존께 문안인사를 하지 못하겠다면 이는 당신의 체면이 중요한 것인가 아니면 사존에 대한 문안과 감격이 중요한가? 당신이 현 상태를 유지하는게 중요한가 아니면 자신에게 한 가지 동기를 부여해 자신의 정진을 추동하는 게 중요한가?

내가 보기에 위대한 5.13을 맞아 사존께 문안인사를 올리는 것은, 수련인에 대해 말하자면, 당신 천국세계의 중생들이 모두 영광으로 여길 것이며, 모두 하나의 거대한 진동일 것이며, 모두 비할 바 없이 영광스런 일로 여길 것이다.

이상은 문안인사와 세계 파룬따파의 날을 경축하는 것에 대한 개인의 생각이다. 타당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3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