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美逸)
【정견망】
수련이 후기(後期)로 갈수록 ‘집착(執著)’의 변종(變種), ‘집착’의 마변(魔變)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어떻게 변하든 절대 그것의 부면(負面) 사상을 따르지 말아야 하는데, 수련인이 만약 수련인의 상태가 아니라면 아주 위험하다. 사실 사존(師尊)께서는 일찍이 이 방면의 법리를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얼마나 많은 동수들이 중시하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후기로 갈수록 구세력은 아무것도 아니고 그저 귀(鬼)에 불과할 뿐이다. 왜냐하면 구세력은 더는 그 어떤 것에도 참여할 자격이 없으며 조사정법(助師正法)은 대법제자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틈을 타서, 히스테릭하게 교란하고 파괴할 수 있는데 수련인이 일단 그것을 방임해 ‘명리정(名利情)’을 포함한 사람속의 일체를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다면 곧 바닥없는 함정에 떨어질 것이다.
즉, 진정한 수련인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데 내 생각에 이 역시 수련자가 일정압백사(一正壓百邪)하는 정력(定力)의 체현이기에 번거로움이 줄어들 것이다. 또 무슨 꿈속의 점화요 무슨 천목으로 본 것이나 외래 정보의 무슨 충고 따위를 믿지 말고 대법 법리의 요구에 따라 세 가지 일을 잘해야만 비로소 합격한 대법제자가 될 수 있다.
도덕이 상실된 때에 대겁난(大劫難)은 단지 인류뿐만 아니며 각자(各自)의 표준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생명을 포괄한다. 왜냐하면 기회는 이미 아주 많이 주어졌고, 인류의 존재는 “명리정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구세력과 ‘정(情)’이 결탁해 대법제자들을 불구덩이 속으로 끌어당기고 있지만 정법(正法)의 기세가 한번 쓸고 지나감은 엄숙하고 공평한 것으로 그 어떤 생명도 모두 그 안에 있다. 그러므로 대법제자는 절대 일체 사악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사악은 다 한패거리로 “나쁜” 것들은 늘 함께 모이기 마련이며 서로 의기투합하고 서로 결탁해서 그것들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이용해 “좋은” 생명을 훼멸하려 한다.
변종 ‘집착’이 아무리 죽으려 하지 않고, 그것이 내게 무엇을 강요하려 하든, 그것이 내 귀에 어떻게 몰래 속삭이며, 어떤 틈을 파고들려 하든, 그것이 어떤 마(魔) 어떤 귀(鬼)로 변하든, 그것은 모두 내가 아니다. 그것이 나를 미혹시키려 하고, 내가 되고자 하며, 주입식으로 나를 통제하려 하고, 아울러 내게 그것이 나라고 말하고, 나더러 그것의 몸에 비친 내 그림자를 보게 만들어 나더러 그것이 나라고 인정하게 하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인이기 때문에 여전히 자신을 닦아야 한다. 안으로 찾음은 법보(法寶)이고, 일체 교란과 파괴를 승인하지 않는 이유는 애초에 모든 것을 소유하고 차지하려 한 것이 ‘사(私)’이기 때문이다. 구우주(舊宇宙) 사심(私心)의 변종・변이는 그것이 멸망을 향해 나아가게 되었을 때 팽창・폭발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죽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극도로 사악한데, 그것은 살아있는 생명으로 그것 역시 자신을 구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것은 반드시 죽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진아(真我)가 아니고 또한 정법을 교란하는 마두(魔頭)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우주(新宇宙)로 갈 수 없으며 반드시 도태되고 훼멸될 것이다. 기왕에 대법제자에게 조사정법의 사명이 있다면 가장 먼저 자신을 잘 닦고 자신을 바로 보아야 하며 그 어떤 사악에게도 흔들리지 말아야지만 진정으로 조사정법(助師正法) 할 수 있다. 사악은 내가 계속 그것들의 음모를 간파하는 문장을 쓰는 것을 더욱 원치 않으며 또한 내가 계속해서 진상을 알릴 기회와 시간을 갖길 원하지 않기에 늘 교란하고 저지하려 한다.
지금의 우리는, 소위 과학기술이 발달한 현대인으로, 말하자면 변이인(變異人)・변종인(變種人)만도 못하며 일찍이 “사람이 되는” 기본준칙을 잃어버렸다. 수련인으로서 사존께서 알려주신 천기 속에서 우리는 모든 생명은 이미 패괴(敗壞)되어 반드시 멸망해야 하는 말기(末期)에 도달했음을 알고 있다. 마치 어떤 제품의 생산날짜와 유통시기, 기한경과가 있는 것과 같다. 비유가 그다지 적합하진 않지만 실제로는 큰 차이가 없다.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 도태된 제품은 대부분 다시 회수되어 이용할 수 있다. 아마도 인류의 지혜와 도덕에 근거할 것인데 회수되어 재생산에 이용되는 것은 정말 좋은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은 마치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식으로 또는 구세력이 배치한 것처럼, 구우주의 모든 생명에 대해 모두 자신이 자신을 통제한다고 속이면서 온갖 궁리를 다하지만 사실 일체는 다 헛된 것이다. 왜냐하면 구세력의 사유에 따르면 일체는 다 진정으로 아름다울 때로 돌아갈 수 없고 모두 낡은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새로워지려면 그럼 껍데기만 깨끗이 씻고 외피만 바꿔서는 안 되며 내부를 다시 배치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진정으로 안에서부터 밖으로 갱신된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 공정이 얼마나 거대한가. 생명이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말하기는 쉽지만 사람의 머리로 아무리 탐색해도 도저히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니 자신의 생각대로 하고자 한들 어찌 가능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 아무것도 볼 수 없으면서 하늘을 날려 하는데, 어떻게 날 수 있겠는가? 상상에 의존하든 얼마나 되는 돈으로 교환하든, 마약을 먹고 일시적인 환각에 의지하든 그것은 사문왜도(邪門歪道)가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는 것이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인류의 모든 심태는 인류 생명의 영혼까지도 훼멸시킬 수 있다.
생명은 반드시 자신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 정시하고 경건하게 참회하며 신불(神佛)께 가지(加持)와 도움을 청하며 진심으로 수련해 정도(正道)로 돌아가야만 비로소 천국의 성경(聖境)으로 돌아갈 수 있다.
삼계에서 육도윤회(六道輪迴)하는 모든 생명이 만약 사람 몸을 얻고서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오히려 일체 욕망에 얽매인다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생각해보라. ‘명리정’이란 더러운 똥구덩이 속에 있는 생명도 물론 그 속에서 즐거울 수 있다. 마치 똥구덩이 속에 사는 생명과 흡사하게 파리는 여전히 똥구덩이가 향기롭다고 여길 수 있는데 비록 그것이 날 수 있을 지라도 말이다.
오늘까지 수련하면서 나는 일체 집착과 사람마음, 일체 욕망과 만족을 모르는 끝없는 탐욕은 모두 생명의 원죄(原罪)와 관련된 것임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삼계속의 정(情)과 색욕 이는 구우주 속에서 일찍이 높은 층차에 있었던 생명이 순정(純淨)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집착의 맹아(萌芽)와 변이로 인류의 이치는 우주에서 반대로 되는 이치이다. 혹자는 이를 바른 법리와 배치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럼 내가 만약 인류에 연련하며 돌아갈 것을 잊는다면 이는 물결 따라 흘러가면서 흙탕물을 휘젓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 수행인(修行人)으로서 가장 먼저 제거해야 할 것이 바로 더러운 색욕의 염두이며 이는 우주의 바른 법리에 동화하는 요구이다. 정과 색욕을 없애지 않고 무슨 수련을 말할 수 있는가? 어떻게 수련하든 이는 남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는 것에 불과할 따름이며, 수련장소를 어지럽히는 사마(邪魔)다. 남녀관계를 단속하지 못한다면 “귀혼(鬼混 직역하면 귀신과 함께 어울린다는 뜻으로 특히 정당하지 못한 남녀의 야합을 뜻함)”이란 단어로 진상과 장면을 표현할 수 있다.
자고로 사찰에서 청수(淸修)하던 이들은 모두 속세를 도피해서 속세속의 큰 지혜를 표현하지 않았는가. 지금의 인류사회는 정말로 시끄러워서 요마귀괴(妖魔鬼怪) 역시 모두 양복을 입거나 가사를 입고 있다. 사람의 얼굴은 알아도 마음은 모르는 것이 현대사회의 진실한 모습이자 사실이다.
안색을 바꾸거나 마음의 가책도 없이 거짓말을 하고 음모(陰謀)를 꾸미는데 가련하거나 좋은 사람처럼 가장한다. 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익을 챙기려는 자들이 자신이 가장 관심이 필요하다고 하며 스톡홀름증후군이 사람마다 모두 있다. 생명을 함부로 낭비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고 자신의 생명과 양지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이들이 거리에 가득하다.
돈이 있어야만 친구가 되고 돈이 있어야만 태도가 좋아지며 돈이 있어야만 어울릴 수 있고 돈이 있어야만 어른이 될 수 있고 돈이 많아야 사람들이 아첨한다. 가족, 친구, 부부, 자녀도 서로 돈이 있어야 관계가 좋아진다. 돈을 입에 다는 것이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원동력이다. 돈만 추구하고 돈만 생각하는데 돈을 언급해야만 관심을 갖는다. 인류사회의 덕(德)은 이미 완전히 돈으로 대체되었다. 왜냐하면 아무도 더 이상 덕을 언급하는 사람이 없고 보다 많은 이들이 돈을 언급하길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세상이 그래 위험하지 않단 말인가!
허스(合十)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38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