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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인의 선(善)과 악(惡)의 배치 (하)

효평(曉平)

【정견망】

9. 법을 잘 배우다

동수 을(乙)은 선량하고 겸손하다. 내가 깨달은 것은 자아의 배후에는 오만방자, 유아독존, 자신이 비범하다고 여기며, 횡포를 부리는 등의 일부 마성(魔性)이 있어서 사람들과 어울리면 쉽게 자신을 높이고 남의 스승이 되려 하고 남을 업신여기기 쉽다.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표현에서는 곧 신사신법(信師信法)이 제 위치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반대로 자아가 약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때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행동할 수 있다. 이러면 심성(心性)도 쉽게 사부님 말씀에 따라 사부님의 법을 100% 믿으며 자아의 인식을 중시하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사부님께서는 《원만을 향해 나아가자》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당신들이 책을 볼 때 난잡한 생각을 하면 그 책 속의 무수한 불(佛)ㆍ도(道)ㆍ신(神)은 당신의 가소롭고도 가련한 사상을 보고 있고, 사상 속의 업력이 가증스럽게 당신을 통제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데 당신은 아직도 잘못을 고집하여 깨닫지 못하고 있다. 또 어떤 일하는 사람은 장기간 책을 보지 않고 법 공부를 하지 않는데, 이 어찌 대법(大法)의 일을 잘할 수 있겠는가? 무의식중에 당신들은 아주 만회하기 어려운 큰 손실을 조성했다. 교훈은 당신들을 더욱 성숙시킬 것이다. 낡은 사악한 세력이 당신들의 사상적인 틈을 타지 못하게 하자면 유일한 방법은 바로 다그쳐 법 공부를 하는 것이다.”

법을 잘 배우지 못하면 때로 사람마음이 좋은 일을 나쁜 일로 변하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원래 법을 실증하는 좋은 일을 했지만 구세력이 배치한 사람마음에 이끌려 자만하면 아래로 떨어진다. 또한 쉽사리 아주 힘들어질 수 있고 심지어 색심(色心)에 이끌려 동수를 교란할 수 있다.

전통문화 이야기에서 보면 수련인에게 색심을 일으키는 각종 교란은 모두 중죄(重罪)에 속한다. 옛말에 “천 개 강물을 휘저을지언정 도인(道人)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색심, 쟁투 등을 지니면 이는 동수 속에서 교란하는 것과 같아서 성결(聖潔)한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다.

법을 공부할 때면 각각의 공간에서 모두 작용을 일으키며 사부님께서 화강암이나 빙산 등을 제거해주실 수 있다. 대법은 사부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가장 큰 은사(恩賜)이며 법을 떠나면 구우주(舊宇宙) 생명의 심성인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적지 않은 동수들이 법 공부가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막상 하려고 하면 마치 힘이 부족한 것 같고 장기간 착실히 하기 어려워한다. 내가 보기에 일부 마성의 물질이 법공부와 연공 발정념을 교란한다.

제4장 공법 구결에 ‘심청여옥(心清似玉 마음이 옥처럼 맑다)’이 있다.

내가 깨달은 것은 옥(玉)은 청량(淸凉 맑고 시원)한 것이다. 즉 뜨겁고, 조급하고, 격동되고, 요란을 떠는 것은 마성을 지닌 것이며 마음이 평화롭고, 냉정하며, 청량하고, 텅 비어, 정(定)에 들어가면 곧 순정(純淨)한 자비의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일을 할 때 심태가 순정하면 사부님의 섬세한 점화 및 사부님께서 부여하신 지혜를 날카롭게 느낄 수 있으며, 일사일념(一思一念)에서 심성을 지킬 수 있고 일을 완수해도 과시하지 않으며 ‘공로’를 잊을 수 있다. 이 매 한 걸음을 잘 하는 것이 바로 법을 실증하는 것으로 이것은 법을 잘 배워 대법(大法)을 길잡이로 삼는 것과 떼어놓을 수 없다.

열정, 의욕, 심지어 급히 공을 이루려는 것에 의지하면 법을 실증할 수 없다. 우리는 본래 온갖 마성을 지닌 구우주의 생명이었다. 우리가 매일 법 공부를 하는 것은 곧 대법에 의해 새로 만들어지고 마성을 제거하는 것으로 이렇게 해야만 사람 구하는 일을 잘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해하기에 법을 잘 배우는 것은 단지 양(量)만이 아니라 마땅히 경건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배우는 것을 포함해야 하며, 또한 곳곳에서 법에 따라 해야 한다. 가령 법리에서 우리더러 질투하지 말라고 했지만 우리가 여전히 누구누구를 질투하고 또 장기간 이렇게 한다면 이는 법리를 보고도 무시한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전법륜』을 읽을 때 사상이 전일하지 않고, 다른 것을 생각하며 수련 중에 전념하지 못한다. 이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과 같으며, 시간을 낭비할 뿐만 아니라, 본래는 제고해야 할 때이건만, 오히려 마음에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문제와 일부 일들을 생각하는데, 제고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명혜문장 《공경치 않는 마음으로 불경을 쓴 후과(後果)》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부탁을 받고 불경을 베끼도록 의뢰받았으나 나중에 명부(冥府 저승)에서 고초를 겪는다. 원인은 그에게 사경(寫經 경전 베껴쓰기)을 부탁한 사람들은 본래 이 공덕(功德)을 통해 좋은 곳에 전생(轉生)하고자 기대했지만 그가 경전을 쓸 때 멋대로 생각했고 심지어 음탕한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기 때문에 그들이 공덕을 얻지 못하고 난폭한 몸으로 전생하자 명부에 가서 그를 고발했기 때문이다.

구세력이 체계적으로 배치한 사람마음은 법을 잘 배워야만 타파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구세력의 ‘계획’을 집행할 수 있다. 또는 색심(色心)을 제거하지 않아 동수를 교란하거나, 쟁투심 때문에 무의식중에 동수를 밀어버리고 포기하게 만들어 일을 망칠 수 있으며, 또는 하나의 난(難)과 관(關)에서 사람마음과 업력을 없애지 못해 쌓으면 큰 난이 될 수 있다. 또는 항목에서 사람마음이 좋아하는 것을 만족시켜 팽창할 수 있다.

나는 이런 것들은 모두 구세력이 배치한 사악한 수법이라고 보는데 오직 대법만이 타파할 수 있다. 법에서 내가 이해하기에 법에 부합하지 않는 염두와 언행은 신(神)에 의해 일일이 기록된다. 예를 들어, 남이 말하지 못하게 하거나 남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등인데 동수 문장에 따르면 호법신들이 이에 따라 점수를 깎는다고 했다.

일부 수련에 소질이 있는 동수들은 선량하고 겸손하며 관대하고 냉정하다. 이들의 말은 마치 입에서 연꽃을 말하는 것과 같고, 자랑하지 않으며 캐묻지 않고 남을 비난하지 않으며 또한 남을 칭찬하는 것도 아주 드물다. 속인들은 동수 을(乙)이 마치 보살과 같다(상화롭고 자비하다는 의미)고 하는데, 을은 마치 어린 양처럼 선량한 느낌을 준다. 법 공부를 잘해야만 사악을 해체하고 대자비를 드러낼 수 있다.

을(乙)은 문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수련에서 얻음(得)이란 대법 일을 하는 가운데 대가를 치러서 얻은 게 아니라 대가를 치르는 과정에서 수련자의 강렬한 염원으로 중생을 구도하는 각종 상황과 모순의 충돌 속에서 기꺼이 자신의 내면을 변화시키려 하고 이를 통해 안에서 밖에 이르기까지 자기 이 생명에 대한 해탈과 정화 속에서 얻는 것이다.”

나는 일을 할 때 마음이 조급해지게 하는 배후의 사람마음이 많은 것을 발견했다.

첫째, 분별심. 어떤 일은 더 가치 있다고 여겨서 조급하게 하고 다른 것은 돌보지 않는데 그 배후에는 급하게 공을 세우고 큰 공을 탐하는 것 등이 있다.

둘째, 사부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느낌을 더 신뢰한다. 먼저 법 학습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늘 많은 시간 일을 하는 것이 더 빠를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며, 결국 늘 일은 많이 하지만 공은 반감된다. 마치 차를 빨리 몰아 추월하려다 보면 오히려 사고가 나고 교통법규를 지키는 것이 가장 좋은 것과 같다. 제자로서 사부님 말씀을 따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며 지름길을 가려다 오히려 돌아가게 된다.

셋째, 눈으로 본 것만이 확실하다는 무신론적 사유는 이 공간을 중시하고 다른 공간을 무시하게 한다. 일을 하는 것이 법을 공부하는 것보다 진전과 성과를 더 잘 볼 수 있다고 느낀다.

나는 전에 일부 집착을 없앴다고 느꼈지만, 느낌을 믿지 말고 사부님께서 알려주신 것을 경건하게 경청해야 한다고 알려주는 많은 점화가 있었다. 예를 들어, 욕망을 끊고, 투철하게 이치를 깨닫는 등은 모두 색심(色心)을 제거해 표준에 부합하는 것을 대표하진 않으며 어쩌면 여전히 아주 차(差)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때 꿈이나 또는 다른 방식으로 점화할 수 있는데,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내려놓고 경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일찍이 색심이 심했던 이들은 철저히 패물(敗物)을 제거해 표준에 도달해야 하며,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개인적으로 보기에 색심의 표현에는 많은 것들이 포함되는데, 예쁜 얼굴이나 좋은 목소리를 좋아하거나 상냥한 태도 및 눈을 즐겁게 하는 물건을 좋아하는 것 등.

10. 오만과 팽창을 경계

일찍이 한 고승(高僧)이 “하늘이 당신더러 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있다면 그럼 당신을 보호하시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 역시 이 말에 깊이 동감하는데 내 의견을 말해보겠다. 만약 내가 꿈에 그리던 것을 가졌다면, (자아가) 얼마나 팽창할지 모른다. 나는 일찍이 누군가를 몹시 부러워한 적이 있는데 만약 내가 그와 같은 장점을 가졌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보기 싫은 많은 사람들을 우습게 볼 자격이 있을 거라 여겼다. 이 얼마나 무서운 생각인가! 하늘이 내게 이런 장점을 주지 않으신 것에 대해 감사드려야 한다. 그렇지 않고 내 심성에만 의존했다면 그럼 나는 곧 마도(魔道)로 나아갔을 것이다.

홍진(紅塵)의 거센 물결 속에서 “좋은 물건”은 마치 다루기 힘든 스포츠카와 같다. 권력, 명성, 미모 등등. 어느 것 하나만 잘못 다뤄도 모두 사람을 망치기에 충분하다. 성공과 명예를 마주하면 사람은 아주 쉽사리 오만해진다. 때문에 반드시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데 고금(古今)에 아주 많은 교훈이 있다.

성공과 강점은 도취와 향수(享受)를 위한 게 아니며, 향수하는 만큼 팽창하는데, 향수의 배후에는 자신을 과시하는 것 등이 있다. 능력이 뛰어나서 큰일을 하거나, 심지어 외모가 좀 좋거나 자신이 남보다 더 많이 감당했다고 생각하는 등등은 모두 자아에게 이용당해 교만해질 수 있다. 나는 아주 우습게도, 과거 어떤 방면에서 심성이 좀 향상되자마자, 좀 차(差)한 이들을 무시했고, 남들이 깨닫지 못한 것을 좀 깨달아도 늘 자아에 이용당해 자신을 치켜세웠다. 사람마다 각기 장점이 있기 마련인데, 안하무인(眼下無人)이었으니 대단히 슬픈 일이다.

동수 갑은 매우 선량하고 자신의 장점을 담담히 볼 뿐만 아니라, 자신이 우대를 받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불공평하다며 미안해 한다. 동수 병(丙)과 정(丁)의 업무는 고급 주류(主流)사회 유형에 속한다. 그녀들은 모두 소질이며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 사람을 대할 때도 성실하고 겸손하며 뛰어난 점이 있어도 자신을 치켜세우지 않는다. 병(丙)은 늘 사람마음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녀들이 그 누구에 대해서든 조금이라도 짜증 내는 기색을 본 적이 없다.

사실 이런 동수들 역시 적지 않지만 대부분 남의 주목을 받지 못할 뿐이다. 나는 겸손한 사람이야말로 아주 지혜롭고 청성하다고 본다. 속담에 “자신을 무슨 대단한 인물처럼 여기지 말라”는 말이 있다.

션윈(神韻) 공연 중에 〈소화상(小和尙)〉 프로그램이 있다. 나는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수시로 자아를 없애는 소화상의 처지가 불성(佛性)을 자양하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대화상(大和尙 큰스님)은 “풍선처럼 부풀리기” 쉬운데 사실 듣기 싫은 말을 좀 듣고 “풍선”에서 “바람”을 좀 빼는 것이 나쁜 일만은 아니다.

남들의 천시를 받으면서도 오히려 늘 희희낙락할 수 있어야지만 비로소 ‘고인’(高人 심성이 높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는 마치 대지(大地) 가장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생명의 양분을 섭취하는 것과 같다. 반대로 과도한 칭찬과 성공에 뒤따르는 팽창은 마성(魔性)을 증가시키고, 고생스레 얻은 ‘성과’로 자아를 더욱 크게 만들어 갈수록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듣지 못하게 한다.

일부 교훈들을 관찰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수련이란 반드시 자기를 ‘비우는(放空)’ 지혜가 있어야 한다. 일의 성과가 쌓여감에 따라 수시로 자신의 ‘경력’, ‘공로’, ‘희생’, ‘능력’ 등을 철저히 내려놓고 잊어야 하며, 수시로 ‘미혼탕(迷魂湯 역주: 원래 저승에서 이승의 기억을 지우는 약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남을 유혹하는 말이나 행동을 비유한다)’을 경계해야 한다.

이런 것들은 아마 자아에서 나왔거나 또는 주변의 칭찬에서 나올 수 있다. 절대 일을 하는 것에 따라 오만해지거나 팽창해선 안 된다. 그럼 마치 점점 더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것과 같아서, 일정한 때가 되면 짐 속의 마성과 업력이 쌓여 큰 난을 형성해 구세력에게 이용당해 자신을 해칠 수 있다.

수련계에서는 오만 때문에 떨어진 이야기가 많은데 석가모니 부처의 사촌인 데바닷다가 바로 그 예다. 그는 능력이 대단히 뛰어나서 수많은 승려들과 신자들의 숭배를 받았지만 오만하고 잔인해서 많은 업을 지어 지옥에 떨어졌다. 명혜 문장 《오만》에서는 “사탄이 타락한 이유는 교만 때문인데 자신이 아름답고 마음이 고상하며 지혜롭다고 기고만장해져서 극도의 자아도취에 빠져 결국 여호와를 배반해 천사에서 마귀로 추락했다. 신(神)과 마(魔), 천당과 지옥의 분수령 중 하나가 바로 오만임을 알 수 있다.”라고 했다.

오만의 표현은 아주 다양한데, 남을 무시하는 말투나 참을성이 없거나, 남을 설교하고 훈화하려고 하는 등등. 모두 자신을 치켜세우고 평등하지 않은 것으로 겸손은 말할 나위도 없다. 배후에는 남을 얕잡아보는 오만한 마음이 있는데 자신은 아마 모를 수 있다. 수련을 잘한 일부 동수들은 누구를 대하든 상의하는 말투로 하며 곳곳에서 남을 존중하고 자신을 낮춘다.

나는 난(難)에 처한 동수(병업이나 정진하지 못하는 등)를 도울 때 쉽게 우월감을 느끼는 것을 발견했는데 마땅히 평등하고 겸손한 마음을 유지해야 하며, 상대보다 낫다고 여겨 사람을 존중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어떤 동수는 전통사회나 서방에서는 차분하게 말하고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 기본적인 매너라고 말했다. “할 말이 있으면 얼마든지 말해보세요”를 하지 못한다면 당문화(黨文化)의 요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전에 사람마음이 불타올라 사람속의 ‘좋은 물건’을 구하고자 탐냈으며, 그런 것을 지니면 도도하고 팽창해서 남을 무시하곤 했다. 또는 수시로 부러워하거나 질투하면서 늘 마음에 두곤 했다. 나는 남을 선량하고 겸손하게 대할 수 있는 동수들은 기본적으로 탐욕심이 없고, 자신의 장점과 다른 사람의 장점을 모두 아주 담담하게 보며, 오만하거나 남을 깔보지 않고, 남을 부러워하거나 질투하지도 않으며, 내심이 평온하고 담담한 것을 발견했다.

맺음말

나는 신사신법(信師信法)과 법을 잘 배우는 것이 수련에서 가장 우선임을 깨달았는데 법(法)만이 마성(魔性)이 가득한 생명을 ‘조사정법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신성한 사명을 이행할 수 있는 합격한 제자로 다시 만들어낼 수 있다. 일사일념(一思一念)이 법을 떠나지 않고 선념(善念)과 겸손을 지켜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신은 모든 사람의 반응이 선념(善念)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악념(惡念)에서 나온 것인지를 보고 있으며, 그에 따라 그 생명을 남기고 남기지 않고를 결정한다.”(《2008년 뉴욕법회설법》)

이 교류 문장을 쓰면서, 나는 생각하거나 글을 쓰면서 엄격하게 법(法)으로 대조해 사람마음을 없애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문장이 발표되어 설사 반응이 좋다 해도 수련에서 제고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내가 이해하기에, 사람이 아니라 신(神)이 (수련에 대해) 점수를 매기기 때문인데, 신은 표면적인 성과를 보지 않고 사유의 동기를 보는데, 바로 이런 각도에서 심층(深層)의 염두를 심사한다. 동수를 일깨울 때는 선(善)해야 하며 마난(魔難)속에 있거나 또는 세상을 떠난 동수를 언급할 때도 선해야 한다.

어떤 동수는 이미 인간세상에서 수련의 길을 완주해 수련의 답안을 이미 제출했다. 때문에 유감을 남길 수는 있지만 우리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마땅히 존경을 유지해야 한다. 동수나 자신을 막론하고 그 누구의 부족이라도 모두 선의와 이성으로 해야 하며 “모질고” “비판적인” 당문화의 심태로 하지 말아야 한다.

이번에 글을 쓰면서 문득 문장을 보완하거나 고치고 싶을 때면 사부님의 점화를 느낄 수 있었다. 글을 거의 완성했을 때, 나는 자신이 제기한 몇 가지 문제가 제고된 것을 발견했다. 가지(加持)해주신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이상은 개인의 작은 체험으로 동수들과 함께 격려하고자 한다. 법에 있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동수 여러분 감사합니다!

(완결)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4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