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법(法)에서 내가 이해하기에 대법제자는 하나의 정체(整體)이자 일체(一體)다. 그렇다면 마땅히 이 법리로 구체적인 문제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아래에서 층차에 한계가 있지만, 나의 작은 깨달음을 써내어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나는 종종 사람마음이 무거운 동수를 보면 못마땅하다. 가령, 화를 잘 내거나 질투를 잘하는 이런 동수들을 나는 몹시 경멸한다. 한 동수가 내게 “그의 일이 바로 당신의 일이고 당신의 일이 바로 그의 일”(《2002년 워싱턴DC법회설법》)이라고 일깨워주었다. 즉, 다른 사람의 심성(心性) 문제 역시 단순히 그의 문제만이 아니라 바로 나의 일이다. 그렇다면 내가 상대방을 정면(正面)으로 도울 방법은 없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법에 있는 생각이다.
반면 나처럼 (동수를) 혐오하거나 경멸하는 것은 그 어떤 정면(正面) 작용도 일으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동수를 자신과 완전히 분리하는 생각이다. 다른 사람의 약점을 보고 혐오하는 이런 생각은 사실 사람 중에서 “가난한 사람을 싫어하고 부자를 사랑하는” 사람마음과 아무런 구별이 없는 것으로 가난한 사람을 보고 도와주기는커녕 비웃는 것이다.
또 일부 동수들이 너무 바빠서, 법 공부를 중시하지 못하고, 마음 수련도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과거의 나는 역시 못마땅하게 여겼고 심지어 싸늘한 시선으로 상대방이 마난(魔難)을 겪는 것을 바라보곤 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정체’적인 각도에서 고려해보면 이 동수들 역시 아주 큰 대가를 치른 것으로 단지 세 가지 일을 잘 평형(平衡) 시키지 못했을 뿐이며 또 사실 객관적인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자신의 생각과 깨달음을 함께 나눠 교류할 수 있는데 이렇게 하면 몹시 바쁜 이런 동수들이 생각할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아마도 ‘정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
예를 들자면 마치 전투를 치르는데 전선(前線)에서 돌격하는 이도 있고, 후방에서 지원하는 이도 있는데, 어느 한 부분도 없어서는 안 된다. 마땅히 누가 감당한 것이 더 많고 누가 누구보다 공로가 큰지 구별하지 말아야 하며, 이런 것들을 모두 ‘정체’의 일부로 생각하고,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정체’에 힘을 보태야 한다. 동수들은 마치 정사대전(正邪大戰)이란 이 ‘전쟁터’에서 서로 돕는 병사들과 같지 않은가?
그러므로 정확한 생각은 마땅히 동수를 대신해 그의 장점과 좋은 일을 기뻐해야 하며, 동수의 약점과 마난에 대해 입장을 바꿔 생각하고 도와주며, 연민과 자비심을 가져야 한다. 말하자면 동수의 즐거움을 함께 즐거워하며 동수의 근심을 함께 근심해야 한다. 나는 동수를 자신과 분리해 문제를 생각하는 관건적인 이유는 바로 사(私)라고 보는데 ‘정체’적인 각도에서 생각할 때가 바로 사(私)를 제거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홍음 3》〈조사(助師)〉에서 “대법제자는 정체(整體)이거니 사부의 정법을 도와 사악한 바람을 막아내네”라고 말씀하셨다. 개인적으로 이해하기에 ‘사악한 바람[邪風]’에는 당문화, 현대관념, 마귀문화 등이 포함되는데, 이런 ‘사악한 바람’은 단지 속인들이 대법 진상을 받아들이는 것을 교란할 뿐만 아니라 또 동수들의 착실한 수련, 진수(真修) 및 법에 동화하는 것을 교란한다. 그러므로 동수들이 ‘정체(整體)’가 되어 ‘사악한 바람’을 함께 막아내야 한다. 예를 들어 서로 법리와 전통 이념, 수련 심득을 서로 공유하는 이런 것들이 모두 ‘사악한 바람’을 깨는 ‘예리한 무기’가 된다.
사부님께서는 신경문 《험악을 멀리하라》에서 “그것은 사부가 당신들에게 서로 구조(救助)하게 하고, 서로 사람을 구하는 동시에 자신을 구도하게 한 것인데, 이것은 말후에 중생들이 서로 구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내가 이해하기에 동수들은 마땅히 “서로 구해야”하는데 그 방식의 하나는 서로 좋은 경험과 법에서의 인식을 공유함으로써 서로 마음의 매듭을 풀어주고 집착을 타파하는 것이지, 당 문화식으로 서로 혐오하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5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