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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위안”의 교훈

흑룡강 대법제자

【정견망】

2023년 6월 초 어느 날 오후, 사람들을 만나 진상을 알리던 도중 남방(南方)에서 우리 시에 비단이며 식품을 전시하러 온 부스들을 지나갔다. 전시회 마지막 날이라 일부 부스는 이미 철거된 상태였다.

내가 서양삼(西洋蔘)과 같은 고급 건기식을 판매하는 부스에 갔을 때 한 중년 여성이 서양삼 등 두 가지 제품을 고르고 있었다.

그녀가 내게 말했다.

“가족들과 늘 이 두 가지 보약을 가루로 만들어 매일 미지근한 물에 조금씩 타서 하루에 한 번 먹으면 면역력을 키울 수 있어요. 지난 몇 년간 역병 기간에도 우리 부부는 한번도 ‘양성’이 나타난 적이 없어요.”

그녀는 내 귀에 대고 말했다.

“제가 저 사람들과 가격을 협상해서 원래 그램당 8.89위안에서 3.89위안으로 낮췄어요. 이것은 약국에서 산 것보다 5배 싸니까 여기서 사시면 좋아요.”

내가 곁눈질로 주위를 둘러보니 안에 남자 한 명만 이쪽 좌판을 보고 있었고, 부근에 사람이라곤 거의 없었다. 나는 이에 그녀에게 다가가, 어느 직장에서 은퇴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모 공장에서 퇴직했고 올해 58세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께 돈 한 푼 쓰지 않아도 되는 묘수를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삼퇴(三退)하면 평안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왜 삼퇴를 해야 하는지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그녀는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승낙하고 자신의 이름을 알려 주었다. 이때 물건을 팔던 남자가 그녀가 고른 서양삼 등 두 가지를 각각 계량기에 올려 무게를 잰 다음 종이에 기록해 가루로 만들어 표시를 한 비닐봉지에 넣고 계산기를 두드렸다.

내가 보니 78 등 몇 가지 숫자가 보였다. 소금 봉지 크기밖에 안 되는 소량이라 당시 나는 그저 70여 위안이라고만 생각했다. 이 여사가 “아주 적당하니까 사세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가 직접 몇 개를 골라주었고, 나도 두 개를 골랐다. 나는 그들에게 많이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 판매하던 남자도 내 것의 무게를 달아서 가루로 만들어 봉지에 넣었다. 그녀가 돈을 지불하는데 위챗으로 5천 위안을 내고는 또 나머지 2천여 위안을 현금으로 지불했다.

나는 이 상황을 보고 판매자에게 내 물건은 얼마인지 물어보기 바빴다. 그는 5천 3백여 위안(역주: 우리 돈으로 약 95만원)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때 급히 자신이 단위를 혼동한 것 같고 이렇게 비쌀 줄 몰랐다고 해명했다! 또 수중에 이렇게 큰 돈도 없었다. 그래서 지갑을 꺼내 그에게 보여주었는데, 안에는 200위안밖에 없었다. 나는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이때 판매하던 남자가 말했다.

“벌써 가루로 빻았는데, 이걸 누구한테 팔아요. 만약 당신이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해서 다른 사람이 다 만들었는데, 당신이 돈이 없다면서 음식이 필요 없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내가 말했다.

“당신이 분쇄하기 전에 마땅히 내게 금액을 알려줬어야 해요. 원래 살 생각이 아니라 저 여자분 비위를 맞추려고 몇 개 골랐는데 이렇게 비싼 줄 몰랐어요? 지금 제가 가진 200위안을 당신에게 보상비로 드리겠습니다.”

그는 “제가 당신과 함께 집에 가서 돈을 받아올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집에도 돈이 없고 월급은 아들이 보관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200위안 현금을 탁자 위에 놓았다. 내가 막 떠나려고 하자 그때 한 젊은이가 다가와서 말했다.

“200위안을 받았으니 그래도 물건을 드려야죠.”

그리고는 봉지에서 조금 꺼내 작은 비닐봉지에 넣고 또 무게를 달아보더니 아주 작은 플라스틱 숟가락을 꺼내서 내용물을 한 번에 하나씩 먹으면 된다고 했다.

나는 “필요 없어요. 나는 이 물건이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억지로 내게 물건을 주면서 가져가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 스스로 생각해보니 속인만도 못한 어리석은 짓을 했다. 나는 속으로 매우 낙담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이 일을 말하고 싶진 않았다. 보름이 지난 후 날마다 우리 집에 와서 저녁을 먹는 둘째 아들에게 이 물건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원래 그때 이걸 사려고 한 이유는 너희 형제들에게 주어 면역력을 강화해 더 이상 ‘양성’ 반응이 나타나지 않게 하려고 한 거란다. 하지만 최근 법을 베끼는 법 공부와 마음 수련을 통해 나는 이런 생각과 방법이 모두 틀렸음을 알았단다. 그래서 이걸 버렸으면 해.”

아들은 비록 수련을 하진 않지만 늘 내 수련을 지지해왔다.

아들이 말했다.

“어머니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리고는 이 소위 건기식을 쓰레기봉투에 던졌다.

나는 아들에게 말했다.

“엄마가 25년을 수련했어도 아직 이런 어리석은 짓을 하니 만약 수련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많은 크고 작은 어리석은 일들을 저질렀을지 모르겠구나.”

일요일에 큰아들 집에 가서 밥을 먹다가 큰아들과 또 이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큰아들이 말했다.

“제가 하는 일이 바로 이런 일인데 왜 제게 전화를 안 하셨어요?”

내가 말했다.

“이건 다 내 잘못이란다! 나는 이 일에서 교훈을 배워야 한다!”

이번 일을 통해 나는 수련 중에 어떤 일을 만나더라도 뭔가 맞지 않는다고 느끼면 즉시 멈추고 안으로 찾으면 반드시 알아차리기 힘든 사람 마음과 사람의 관념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절대 무심코 넘어가지 말아야 하는데 작은 일을 닦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배후에는 각종 크고 작은 집착심들이 있으니 반드시 경계하고 고쳐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당신에게 한 가지 진리를 알려주겠다.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이번 일을 통해 나는 배후에 숨겨진 여러 가지 사람 마음을 보았다.

첫째, 체면을 중시하는 허영심(虛榮心)이다. 나는 학창시절부터 사회에 나와 일할 때까지 이 마음이 아주 컸다. 늘 체면이 깎이기 보다는 차라리 신체적인 고통을 원했다. 심지어 수련에 들어온 이후 이것은 마땅히 닦아 버려야 할 사람 마음임을 알면서도 여전히 수시로 표현되어 나왔다.

예를 들어, 설 전에 한 동수가 노년 동수들을 위로한다면서 돈을 모았는데, 나는 마지막으로 갔다. 나는 현장에서 다른 두 동수가 천 위안을 기부하는 것을 보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집에 가서 천 위안을 보냈다. 목적은 다른 사람들이 내가 인색하거나 소심하다고 오해하지 않게 하려던 것이다. 이것은 체면을 중시하는 내 마음의 진실한 표현이다.

이외에도 평소 친척과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내가 내야 할 돈이든 아니든 모두 내가 내는데, 남들이 나더러 인색하다고 할까 봐 근심했다. 이 허영심 때문에 앞서 언급한 에피소드가 생긴 것이다.

둘째, 싼 것을 추구하는 이익지심(利益之心)이다. 나는 평생 비교적 검소하게 살았고 늘 알뜰하게 살아왔다. 그래서 삶의 소소한 일들에서 자신도 모르게 싼 것을 추구하는 이익지심을 양성했는데 제거하기가 아주 어려웠다. 평소 나는 큰돈을 쓰다 손실을 입으면 그래도 웃으면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작은 이익은 오히려 내려놓기가 아주 어려웠다.

예를 들어, 일상생활에서 장을 보거나 쇼핑할 때면 늘 품질은 좋고 저렴한 것을 사고 싶어 하는데 싸고 좋은 물건이 내 생활과 쇼핑의 이념이 되었다. 나는 서서히 이익에 대한 집착이 몸에 배었고 심지어 아주 작은 손실마저도 가슴이 아팠다. 나는 상점에 가서 물건을 살 때 세일하는 게 아니면 절대 사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이익에 대한 집착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법리가 점차 명확해지고 심성이 제고됨에 따라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싼 것을 추구하는 이익지심임을 알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오늘 이 관건적인 역사 시기에 그 돈 한푼, 아주 적은 것에 수련인의 경지, 심태, 집착, 원만과 원만에 이를 수 없음이 모두 드러나 있다. (사부님 멈추심) 어떻게 할 것인가?”(《각지설법 13》〈2015년 미국서부법회설법〉)

나는 진작 나의 이익심과 그것의 위험을 발견했다. 지금 나는 이익심을 한창 제거하고 있는데, 마땅히 이 마음을 제거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싼 것을 추구하는 이익지심을 아직 깨끗이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에피소드가 발생했던 것이다.

셋째는 사부님을 믿지 않고 법을 믿지 않는 마음이다. 이번에 건기식을 사려고 했던 것은 두 아들에게 주어 아이들이 무사히 역병의 재난을 이겨낼 수 있게 하려던 것이다. 인간 세상의 정(情)이란, 사람의 뼛속까지 형성된 사람의 이치라 수련인이라면 정말로 내려놓아야 한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자식 정을 포함해서, 그 어느 것이든 가져갈 수 있는가? 우리 수련인은 자비(慈悲)를 말한다. 우리는 속인의 정 대신 자비를 사용해야 한다.

게다가 지금의 역병은 사당분자 및 그들과 한패가 되어 신을 믿지 않는 그런 나쁜 사람들을 도태시키려는 것이다. 두 아들의 가족들은 진작 삼퇴 했으니 단지 ‘9자진언(九字真言)’만 열심히 외면 그만이지, 무슨 보약을 사줄 필요가 있는가? 이는 신사신법하지 못한 표현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전법륜》 제3강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물론 우리가 말했듯이, 사람은 모두 자신의 이 관념이 옳지 않고 마음이 바르지 않기 때문에 번거로움을 불러온다.”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당신이 만약 心性(씬씽)을 파악하지 못하고 당신이 이것을 추구하고 저것을 추구한다면 틀림없이 번거로움을 불러올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또 일찍이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당신은 대법제자의 원만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알고 있는가? 당신 앞뒤의 모든 일을 모두 사부가 당신에게 책임져 주고 있는데 당신이 무슨 걱정을 할 필요가 있는가? 당신이 걱정한다고 될 일인가? 당신이 배치할 수 있단 말인가? 당신이 말해서 될 일인가? 나는 여러분에게 이 이치를 말하지 않았는가? 그에게 복이 없다면 당신이 무엇을 배치하든지 모두 소용이 없다. 그러나 사부는 오히려 당신에게 배치해 줄 수 있으며, 있든지 없든지 나는 모두 배치할 수 있다. 당신은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가? 오로지 당신이 수련하기만 한다면 나는 무엇이든 모두 당신에게 책임져 줄 것인데, 이를 말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당신들이 수련을 잘하지 못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책임질 수 없다.”(《2003년 정월대보름설법》)

이에 나는 대법제자는 너무나도 행복하며 아무것도 상관하지 말고 전부 집착할 필요가 없으며 자연스러움에 따르면서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만 하면 된다며 감탄했다.

이번 일의 전후(前後) 과정을 통해 사부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현재 자신의 수련 상태 및 문제의 엄중성과 엄숙성을 보게 하셨다. 정말이지 수련에 작은 일이란 없다!

개인 층차에 한계가 있으니 옳지 못한 점이 있다면 자비로 바로잡아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5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