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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언양어: 관념의 ‘틀’

산우(山雨)

【정견망】

최근 사부님께서 설법에서 말씀하신 ‘관념(觀念)’과 ‘틀[框框]’에 대해 작은 깨달음이 생겼다.

우선 관념의 관(觀)은 ‘관(關)’과 발음이 같다. 즉 ‘관념(觀念)’은 ‘관념(關念)’으로 사람을 가두는 생각인 동시에 수련인에 대해 말하자면 뛰쳐나가야 할 관(關)이다.

사람들은 틀을 흔히 2차원으로 인식하는데 틀을 언급하기만 하면 우선 떠올리는 것이란 유리창틀이나 그림틀과 같은 것이다. 이런 틀은 모두 2차원으로 생각 자체가 하나의 틀이다. 틀은 또 삼차원도 있는데 가령 두 광주리[筐筐]의 입구를 서로 겹친 것이 있다. 광주리를 뜻하는 ‘광(筐)’은 틀을 뜻하는 ‘광(框)’과 발음이 같다.

한 층 높은 각도에서 보자면 이 한 층의 이치는 사람을 속박하는 것이자 틀린 것으로 진리가 아니다. 이 한 층의 이치에는 범위가 있는데 범위의 극한이 바로 이 틀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석가모니ㆍ노자가 그때 말한 이치는 모두 우리 은하계 범위 내의 이치였다.”(《전법륜》)

그런데 틀은 사람을 속일 수 있다. 때문에 틀은 또 속임을 뜻하는 ‘광(誆)’과 발음이 같다. 틀은 고대에 관문(棺門 시신을 넣는 관의 문짝)이란 뜻으로 쓰였다. 생명이 고층에서 아래로 한층 내려가게 되면 저층의 이치에 속박당하고 기만당하는데 이는 마치 사람이 죽어서 관속에 갇힌 것과 같다. 수련해서 되돌아가려면 곧 이 한 층의 모든 관념의 속박을 타파해야 하는데 ‘관문(棺門)’을 열어야만 부활할 수 있다.

이번에는 껍질[殼]을 말해보자.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껍질은 연속적인 것으로 위에 간격이 없다고 여긴다. 사실 확대해서 보면 분자로 구성된 그 어떤 껍질이든 모두 간격이 있는 것으로 이는 마치 촘촘한 목재로 만들어진 광주리와 같다.

집착(執著) 역시 관념이다. 집착에 대응하는 껍질은 마치 촘촘한 재료로 만든 삼차원의 광주리와 같다.

두 입구가 마주보게 결합한 광주리는 마치 구체(球體)의 외각(外殼 겉껍질)과 같다. 소우주(小宇宙)의 외각 역시 ‘틀’과 같다. 제2층 우주의 외각 역시 ‘틀’과 같다. 단지 이 제2층 우주의 틀이 커지는만큼 이를 구성하는 입자 성분 역시 상응해서 미시적으로 된다. 다시 말해서 더욱 세밀(간격이 더 작아짐)해진다. 수련인이 대응하는 그 한 층 우주 관념의 틀을 제거하면 그 틀(외각)은 더는 이 수련인을 가둘 수 없다. 만약 그 한 층 우주를 초월할 에너지를 갖췄다면 신체는 커질 수도 있고 작아질 수도 있다. 커지면 그 틀만큼 커져서 그것을 터뜨릴 능력이 있다(물론 수련인은 자비롭기에 정말로 이렇게 하진 않을 것이다). 작아지면 그 틀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입자보다 더 작아져서 그런 입자들 사이의 간격을 가볍게 뚫고 나올 수 있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는 단지 자신의 해탈에 도달할 뿐만 아니라 그 한 층 우주의 경계를 돌파하는 동시에 첫째, 자신을 그 한 층 신우주(新宇宙)의 법에 동화해야 하고 둘째, 그 속의 중생을 구도해야 하며 셋째, 그 속에서 구도할 수 없는 변이된 생명들(구세력)을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

 

원문위치: https://zhengjian.org/node/285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