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것은 사람의 질투심을 생기게 할 수 있는데, 다른 사람이 만약 잘되면,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평형을 이루지 못한다. 그것은 이런 문제가 나타날 것이다.”(《전법륜》)
이 단락의 법을 공부할 때 내심에 진동을 느꼈는데,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法)이 바로 나를 말씀하시는 것임을 느꼈다. 이에 법으로 자신의 심태를 살펴보았다. 다른 사람에게 무슨 좋은 일이 있을 때면 나는 남을 대신해 기뻐하지 않았고 오히려 마음속으로 시샘을 느꼈는데, 사상 깊은 곳에 한 가지 좋지 않은 물질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이 잘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이 얻은 좋은 것은 진짜가 아니길 바라는데 이런 현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때로는 또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면서 일부 구실을 찾아 자신을 기만하고 마비시키고 이를 통해 소위 마음의 작은 평형을 얻는다.
나는 원래 질투심이 이렇게 강렬하고 두려운 것임을 인식하지 못했다. 오늘 사부님의 이 단락 법이 내게 큰 충격을 주었는데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전법륜》)란 이 구절 법은 글자마다 무게가 아주 무거웠고 매 글자마다 모두 내 마음을 겨냥했다. 법에 대조해 가늠해보니 나는 얼마나 불선(不善)하고 심태는 또 그렇게 왜곡되어 있었는데 심지어 속인만도 못했다. 정말이지 대법제자라는 호칭에 자격이 없었고 천상 뭇 신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수련인의 마음은 운운중생(芸芸眾生)을 싣는 범선인데 당신의 마음이 이렇게 협애하다면 어떻게 배에 실은 중생을 모두 피안(彼岸)으로 실어갈 수 있겠는가? 자신이 남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한번 돌아보니, 웬일인지 친척과 친구들과 늘 서로 화목하게 융합하지 못했다. 나는 이 문제 때문에 오랫동안 고민해봤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고 이에 원한심(怨恨心)이 생겼다. 지금 사람들은 어찌 이리 까다롭고 내 처지는 왜 이렇게 불공평한지 분노하며 다른 사람들이 나를 잘 대해주지 않는다고 여기는 등등이었다.
사부님께서는 《대법홍전 25주년 뉴욕법회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제자: 베이징에서 얼마 전에 정체 중에서 나타났던 동수들의 쟁론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만 비로소 가장 순정한 것이고, 정체에 대해 더욱 좋은 것입니까? 질투심 문제가 장기적으로 정체의 협력에 영향 준 것이 아닙니까?
사부: 이 질투심을 당신은 반드시 버려야 한다. 이 물건은 무시무시한 것이며, 그것은 당신의 모든 수련을 다 해이해지게 만들 것이고, 당신을 망칠 것이다. 질투심이 있어서는 안 된다.”
현재 층차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질투심은 이미 잘 수련된 모든 마음을 아주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 자신을 돌아보면 반복적으로 질투심에 이끌려 여러 차례 마성(魔性)을 폭발시켰는데 마성을 폭발하는 동시에 자신이 정체(整體)적으로 미끄러져 내려감을 느꼈다. 수련이 제 상태가 아니니 사람의 밑바닥까지 떨어지고 잘 수련한 마음이 마치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이때 나는 더 낙담하고 소침해졌는데 때로는 심지어 또 더는 수련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에 와서 보자면 바로 질투심이 초래한 결과였다.
질투심에 대해 나 역시 마땅히 제거해야 함을 알았지만, 마치 말로만 하고 실제 내심으로는 진정하게 중시하지 못했고 엄숙히 대하지 못했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수련은 엄숙한 것이다.”(《대법수련은 엄숙한 것이다》)라고 하셨지만 나는 해내지 못했고 또 여러 차례 잘못을 저질렀다. 잘못을 저지른 후 또 후회하면서 이렇게 반복적으로 어느 한 점에서 맴돌았지만 아무리해도 벗어나지 못했고 여전히 그 테두리에서 맴돌았다.
내가 보기에 나는 근본적으로 이 질투심이란 염두를 제거할 생각이 없었다. 질투심은 일종 극단적으로 이기적이고 험악한 것이기 때문에 남을 질투하는데 바로 자신이 얻지 못했거나 또는 남보다 많이 얻거나 남보다 좋은 것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의 이치이지 정념(正念)으로 대한 것이 아니다. 속인의 실(失)과 득(得)은 그의 업력에 근거해 배치한 것으로 하늘의 이치가 일체를 가늠하기에 조금의 오차도 없다. 그러나 잘 수련하지 못한 집착은 사념(私念)을 일으킬 수 있고 이익을 위해 쟁투하게 할 수 있는데 이렇게 하면 끊임없이 질투에 양분을 더해준다.
구우주의 특성은 위사위아(爲私爲我)한 것이라 질투심의 근원은 사(私)다. 그럼 질투심이 존재한다는 것은 바로 즉 자신의 공간장(空間場)에 구우주의 변이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질투심은 다른 집착심과 차이가 있는데 질투심은 강대한 악념(惡念)을 띠는데 이런 악(惡)의 요소가 있기 때문에 내심이 극도로 좁아지고 사(私)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데 사람 이 표면에서는 끊임없이 사(私)를 위해 표현하고 질투 때문에 미치게 만든다.
이 “화약 연기 자욱한” 전쟁터에서 구우주의 변이된 사(私)는 곧 이런 자욱한 연기를 빨아들여 전쟁터에서 ‘전리품’을 수확한다. 그러나 이것에 피동적으로 이끌린 사람은 오히려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저 마성이 폭발해 심정이 더 나빠지고 상태도 나빠진다고만 여긴다. 나 역시 이 방면의 체험이 있다. 원망을 풀어서 좋아지는 게 아니라 마치 진창에 한걸음 더 깊이 빠진 것처럼 무형 중에서 일종의 물질이 유혹하는 것을 느끼는데 끊임없이 당신에게 질투란 허환(虛幻)을 던져 당신이 끊임없이 말려들게 한다.
질투심이 공간장에서 생존할 수 있는 이유는 법을 잘 배우지 않고 진정으로 도(道)를 깨닫지 못했거나 또는 사람의 이치로 눈앞의 허환(虛幻)을 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간 세상을 잠시 머물다 떠나는 여관으로 비유한다면 그럼 잠시 머무는 여관에서 당신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누구누구는 어떻다고 할 것인가? 당신과 관계가 없으니 당신 마음 역시 이끌리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된 목적은 당신 선천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것으로 눈앞의 모든 것은 환상(幻象)임을 똑똑히 알기 때문이다. 당신더러 이 환상 속에서 깨달아내고 수련해내게 한다. 만약 마음이 정말 법(法)에 있다면 그럼 당신은 곧 법을 얻어 미혹을 타파한 것으로 그때는 무슨 질투심이든 다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신이 이미 뛰쳐나왔기 때문인데 질투란 단지 사람 이 한 층 공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잘 수련해 법에서 제고해 올라가는 것만이 가장 좋다.
마음 하나를 찾아내니 마치 공간장에서 한 무더기 패물(敗物)을 청리한 것처럼 내심(內心)이 아주 청정하고 평화로워졌다. 바깥 세계를 봐도 깨끗하고 밝았다. 이를 통해 수련의 아름다움과 안으로 찾는 신기(神奇)를 체험했다.
작은 수련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598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