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혜각(慧覺)
【정견망】
나는 사부님 고향(역주: 길림성 장춘시)의 대법제자로서 영광스럽게도 법을 일찍 얻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오히려 제대로 수련하진 못했다. 제1판 《전법륜》을 다 읽은 후 그저 대법은 사람더러 좋은 사람이 되라는 것이라는 얕은 차원에 머물렀다. 선(善)을 닦아야 함을 알았지만 머릿속에 가득한 것은 어려서부터 주입당한 당(黨) 문화 사유방식이라 수련이란 명목으로 오히려 당 문화와 각종 집착심의 울타리 안에서 맴돌았다.
결과는 짐작하다시피 종종 자신이 다른 사람을 위해 사심 없이 희생했다고 생각했지만 도리어 상대는 싸늘하게 변했고 가정 관계도 잘 처리하지 못했으며 또 법을 실증하는 데 영향을 주었고 정체(整體)에 간격을 조성해 속인들이 이해할 수 없게 만들어 중생이 구도 받는 것을 방해했다.
감춰진 가족 정(情) 아래에서 종종 정념(正念)을 느슨히 하여 속인에 흐르게 했으며 시시각각 자신을 수련인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특히 가족 동수(남편)와 가정관을 늘 잘 넘기지 못해 질투심에 사로잡혀 늘 법으로 다른 사람을 가늠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문제가 있으면 안을 향해 찾는 이것은 대법제자와 속인의 근본적인 차이이다.”(《정진요지》〈대법 산동 보도소에〉)를 해내지 못했다.
이에 나는 주변의 작은 일부터 시작해 매 차례 심성(心性)을 제고할 기회를 꽉 잡기로 속으로 결심했다. 먼저 자신을 낮추고 겸손함을 배워야 한다. 부부관계에서 늘 자기주장이 강했던 예전 태도를 고쳐야 하는데 법리적으로 이는 당 문화의 독소임을 깨달았다. 전통문화에서 여자에 대한 표준은 유순하고 겸손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홍음 5》〈다시 만들다〉에서 “전통으로 돌아가면 길이 하늘로 통하리니”라고 말씀하셨다.
생활 속에서 나는 남편을 가급적 이해해주었고 전반적인 경제 환경에서 남편이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애쓰는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어, 남편은 주로 차량을 유지하고 수리하는 일을 하는데 육체노동이라 더럽고 또 힘들다. 반면 나는 귀하게 자란 딸이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힘든 일을 해본 적이 없다. 남편이 아무리 바빠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늘 남편 혼자 일을 하다 보니 돈을 벌 수 없었다. 과거에 나는 그의 부족한 모습만 보았고 늘 내 방식대로 돈을 벌면 더 쉽다고 생각했으며 배려가 아니라 원망만 했다.
늘 원망하는 마음으로 남편을 손가락질하면서 남편의 고생은 무시했고, 사려 깊은 이해와 존중을 잃었다. 또 남편의 세심한 배려를 당연하게 여겼으니 이런 심태 하에서 선(善)은 더욱 있을 수 없었다. 사존께서 《각지설법 6》〈아태지역 수련생회의 설법〉에서 지적하신 “정으로 사람의 혼인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란 도의(道義)를 지키는 외에 부부 사이에는 또 하나의 은혜가 있다.”를 망각했다.
알았으면 착실히 수련해야 하는데, 나는 ‘수련’ 속에 실천의 뜻이 있음을 깨달았고 사부님 법(法)의 요구에 따라 하기로 했다. 그래서 남편이 차량 수리 도구들을 청소할 때면 더러워질까 두려운 마음(장비 도처에 시커먼 엔진오일이 있다)을 내려놓고 자발적으로 장갑을 끼고 남편을 도와 짐을 옮겼다. 물건이 대부분 쇠로 된 것들이 아주 무거웠지만 내가 조금 힘을 좀 쓰면 남편의 업무량도 줄어들고 최소한 정신적으로 분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편이 비이성적으로 화를 낼 때도 가급적 그와 따지는 것을 피하고, 안으로 찾았으며 자신의 어떤 마음이 건드려졌는지 찾아 그것을 제거했다. 종종 내가 “안으로 찾는” 방면에서 잘했을 때면 남편의 수련 상태 역시 훨씬 좋아졌다. 바로 생활의 작은 부분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바로잡고 법리(法理)에서 승화했다.
어느 날 낮에 날씨가 몹시 더웠다. 점심을 먹은 후, 한 고객이 급히 장비를 사용해야 해서 남편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쉬지도 못하고 쪼그려 앉아 준비해야 했다. 나는 많은 생각 없이 아직 먹다 만 반 공기 밥을 내려놓고 선풍기(공업용 대형 선풍기라 끌기 힘들다)를 한 대 끌고 와 얼른 남편에게 바람을 보내 온도를 내려주었다. 남편이 웃으면서 “드디어 좀 자상해졌군.”라고 말했다.
나도 빙긋 웃으며 가볍게 말했다.
“이게 선(善)이에요, 아무 잡념도 없는 순정한 선으로, 심령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데 정(情)이 아니랍니다. 정은 사(私)라 나는 원하지 않아요.”
이것이 바로 내가 대법에서 닦은 선(善)으로, 내 생명 깊은 곳에 생생세세 묻혀 있던 선이 마침내 닦여 나온 것이다. 바로 그 순간, 내심이 아주 상화(祥和)롭고 순진(純真)했으며, 가벼워져서 온몸의 매 한 세포가 줄곧 신체 표피에 이르기까지 매 층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것을 느꼈다.
이상의 경험을 통해 나는 또 수련이란 흔히 아주 사소하고 평범한 곳에서 체현된다는 것을 깨달았고, 당신이 가장 알아차리기 힘든 곳이 흔히 바로 가장 쉽게 집착심이 빠져나가 잡지 못하는 곳임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정진하지 못해서(여기에는 또 나의 개인적인 수련 요소도 있다) 구세력이 배치한 통풍 가상에 오랫동안 방해를 받아왔는데 나는 늘 그가 정진하는 못하는 모습만 눈여겨보고, 핸드폰에 집착하는 부족만 보면서 그가 대법에 먹칠한다고 많은 원망과 비난을 했는데 법리에 부합하는 정념(正念)이 적었다. 그러자 자연히 남편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고 정념(正念)도 깎여나가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이 역시 내가 수련에서 승화해야 함을 알았다. 그를 보지 말고 오직 자신의 어디가 법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지만 보아야 한다. 가장 먼저 그를 선념(善念)으로 대하고, 신체적인 감당이 극한에 다다랐을 때 늘 무리하게 화를 내더라도 가급적 참았고 또 안으로 자신의 집착심을 찾았다.
남방의 날씨는 비교적 덥고 일교차도 별로 없어 무더우면 집집마다 에어컨을 켜는 것이 이미 습관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남편의 몸에 또 부정확한 상태가 나타나 나더러 에어컨을 틀지 말라고 했다. 나는 에어컨을 틀고 남편에겐 이불만 덮어주면 된다고 했지만 남편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내키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전에는 집에서 늘 내 위주였고 그는 늘 내 필요에 따랐기 때문이다.
나는 수련인은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곧 에어컨을 끄고 선풍기만 틀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선풍기만 틀어도 안 되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내 입장을 말해도 통하지 않았다. 남편은 선풍기도 틀지 말고 꼭 틀어야 하면 선풍기를 천정 방향으로 돌리라고 했다.
실내 온도가 30도가 넘었는데 이때 내 마음속 깊은 곳에 고수하며 버리지 않으려던 사(私)가 자아를 건드렸다.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고 단호하게 선풍기를 내 방향으로 향하게 했다. 그러자 남편도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침대에 눕는 순간, 나도 모르게 “수련은 위타(爲他)한 것”이란 말이 흘러나왔다. 나는 바로 몸을 일으켜 세워 앉았고, 재빨리 선풍기를 남편이 원하는 대로 천정방향으로 조절한 후 다시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굵은 땀이 흘러나와 축축해져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예 침대를 밖으로 내놓고 창가에 누웠다. 더는 더위를 생각지도 말자며 마음속으로 구자진언(九字真言)을 외니, 약간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고 어느새 잠이 들었다. 문득 누군가 내 옆에 서 있는 것을 느꼈고, 눈을 떠보니 남편이 내 옆에서 선풍기를 조정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 고민도 없이 “나한테 돌릴 필요 없어요.”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때 작은 바람이 불어 딱 알맞았고, 다시 선풍기를 마주하기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남편이 놀라서 물었다.
“당신도 선풍기를 직접 쐴 필요 없어!?”
그렇다, 나는 선풍기 바람을 직접 쐴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착실한 수련의 길을 걸으면서 작은 일에서 자신의 집착심을 잡고 최대한도로 자아를 포기하자 사부님께서 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을 보내주셨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쓰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하나 있다. 1999년 7.20 이전 장춘(長春)대법제자들이 개최한 파룬따파(法輪大法) 서화(書畫)교류전에 참가한 적이 있다. 전시회가 끝난 후, 나는 장춘 현지에서 비교적 법을 일찍 얻은 몇몇 대법제자들(대부분 사부님 학습반에 참가한 적이 있음)과 체육관 1층에서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퇴직한 한 여자 동수가 작은 길에서 앞으로 달려 나왔는데, 내가 반응하기도 전에 지프 한 대가 안쪽 주차장에서 나왔다. 알고 보니 그 동수는 다른 사람을 위해 주차장의 큰 철문을 열어주려 했던 것이다. 차가 나간 후, 그 동수는 다시 힘들게 문을 닫았다.
당시 나는 오성(悟性)이 낮았다. 이는 사실 사부님께서 내게 동수의 표현을 보여주어 착실하게 수련하라고 점화해주신 것이었지만 나는 마음이 좀 불편했고 동수가 좀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동수의 몸에서 대법에서 내원한 자발적으로 대법에 동화한 착실한 수련이 체현되어 나온 위타(爲他)와 선량(善良)을 보지 못했는데 여기에는 당 문화를 제거한 후 체현되어 나오는 겸손함을 포함한다.
마침내 오늘에 이르러, 진심으로 착실히 수련하기 시작한 후에야 나는 비로소 그 동수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이 점에서 나는 과거 그 동수보다 20년 이상 뒤쳐진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66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