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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심”을 말하다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일을 하려는 목적심(目的心)이 아주 강하다. 목적심이란 내 생각에 탐심(貪心), 구하는 마음으로 수련인이 반드시 없애야 할 강렬한 마음과 욕망이다.

일찍이 나는 퍼레이드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 길에서 몇 사람을 삼퇴(三退)하도록 설득해야만 수확이 좀 있다고 느꼈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만족하지 못했다. 또 아이를 데리고 대법 활동에 참가하면 아이가 단지 놀기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며, 이 과정에서 아이가 직접 진상 자료를 배포해야만 의미가 있다고 느낀다. 또 속인과 접촉하면서, 만약 뭔가를 이용해 진상을 알리지 않으면 시간 낭비라고 여기는데 다른 것은 다 무의미하다고 본다. 또 집에 손님이 오면, 시간과 정력을 들여 접대하지만 마지막에 진상을 알릴 기회가 없다면 곧 헛수고라 손해라고 여긴다.

겉으로 보면 한마음으로 진상(真相)을 알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배후에는 강렬한 목적심이 있다. 어떤 목적을 달성해야만 신이 나고, 즐거우며, 가치가 있다고 느끼고 그렇게 해야지만 기뻐한다. 만약 예상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불만스럽고 짜증나며 낙담한다. 아울러 눈앞의 목적만을 중시하다보니, 시야와 흉금이 좁아져서 수련인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평온과 담담함이 부족하다.

사실 수련과 생활은 한데 결합되어 있으며 사람이 늘 신이 나고 잘나가기란 불가능하다. 대개는 담담하고 평범한데 겉으로 보면 마치 진상과 무관한 일상의 일부로 보인다. 만약 사람 마음이 담담하다면 분별심(分別心)과 목적심이 강렬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전에 흥분해서 들떠 있던 모든 것들은, 수련에서 표현되는 것은, 곧 가치가 크다고 여기는 일에 참여하길 좋아하고, 남들이 부러워하거나 감동적인 형식을 좋아하며, 성공과 가치를 추구하며, 남을 초월하는 것을 추구하는 등의 사람 마음을 전반적으로 수련 속에 옮긴 것이다. 이런 사람 마음을 끌어안고 수련하면서 가장 좋고 가장 많은 것을 얻으려 했는데 수련이란 바로 이런 사람 마음을 내려놓는 것임을 오히려 몰랐다.

과거에, 나는 모두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좋은 일과 나쁜 일을 아주 분명하게 구별했다. 동수들과 대조해보니 사실 그렇지 않음을 발견했는데 바로 나의 목적심이 너무 강한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예를 들어, 동수 A는 흔히 내가 마땅히 기뻐했을 일에도 흥분하지 않고, 내가 좋지 않다고 여기는 것에도 낙담하지 않는다. 한번은 A의 수련하지 않는 남편이 아이를 안고 사당(邪黨)의 만회(晚會 역주: 중공 사당 CCTV에서 방송하는 신년 갈라)를 보러 방에 들어갔는데, 나라면 아마 격렬하게 반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동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가 방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소란을 피우며 가만히 있지 못하자 남편은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밖으로 내보냈다. 또 A의 남편이 나중에 또 대법을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어느 단계에서 법을 공부하고 연공하려 했는데 아마 나였다면 몹시 흥분했을 것이다. 가족이 빨리 법을 얻어야 하는데 얼마나 기쁜가. 하지만, A는 여전히 이에 대해 담담했고 환희심이 없었다.

또 동수 B는 파트로 일을 하는데 근무시간이 너무 길었다. 계산해보니 법 공부와 연공 시간이 매우 빠듯해 보였다. 나는 들으면서 이런 일은 해선 안 되며 나라면 직장을 옮기고 수련을 제1순위로 놓겠다고 했다. 하지만 내게 아주 인상이 깊었던 것은 B에게 이런 말을 했지만 마음이 아주 차분해서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나중에 어느 단계에서 B는 전업으로 항목을 할 기회가 있었다. 날마다 세 가지 일을 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조건인가! 나였다면 또 사람 마음과 환희심이 올라왔겠지만, B는 기뻐하거나 환희심을 드러내지 않았고 여전히 담담했다.

동수들과 대조하면서 나는 자신의 목적심과 탐욕심을 보았다. 일이 잘되면 기뻐하고, 역경을 만나면 근심했다. 수련인은 마땅히 “총애와 치욕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말아야” 하는데, 즉 마음이 이끌리지 말아야 한다. 설사 수련을 위하고 진상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늘 사람 마음이 아니라 순정(純淨)한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목적심, 분별심 및 구하려고 하는 마음 등 강렬한 사람 마음은 제거해야 한다. 목적심이 너무 강하면 때로 과격해지는데, 보다 큰 목적을 달성하려고 또는 보다 빨리 목적을 달성하려 할 때면 과격해지거나 극단으로 가거나, 더 빠르고 더 큰 지름길로 가려고 하는데 사실 모두 사람 마음으로 계산해서 자신을 총명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결과는 흔히 원하는 것과 정반대가 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박해 당초에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하나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만(萬) 가지 움직임을 제압할 수 있다(一個心不動能制萬動)고”(《2014년 샌프란시스코 법회 설법》)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不動心] 힘이 아주 큰 것을 깨달았다. 동수 A는 남편이 아이를 안고 사당(邪黨) 프로를 보러 들어갔을 때 화를 내거나 싸우지도 않았고 아이가 오염될까 걱정하지도 않았으며, 그 어떤 사람 마음도 일으키지 않고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며 사부님께서 관할하실 것을 믿었다. 다른 공간에서 빈틈을 타지 못하자, 사부님께서 순식간에 도와서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도 마찬가지인데 설령 말을 꺼낼 기회가 없더라도 자비롭고 상화(祥和)하며 사람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자신의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이런 계산을 내려놓음), 또한 예기치 못한 효과가 있을 수 있다. 사람의 명백한 일면(一面)이 자비를 느낄 수 있는데 설사 단지 대법 수련자임을 아는 것만으로도 역할이 아주 클 수 있다. 하물며 다른 공간에서 모두 돕고 있음에랴. 반대로 목적심을 갖고, 이익을 교환하거나, 의도적으로 선을 표현하려 하면 오히려 생각한 것을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다른 공간에서는 이런 사람 마음을 아주 똑똑히 볼 수 있어서 교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련은 속인을 초월하는 것으로 사람의 정(情)과 사람의 이치에 합당한 많은 논리를 없애버려야 한다. 예를 들면, 많은 힘을 들여서 나한으로 수련 성취되었다면, 수련인으로서 당연히 기쁘겠지만, 기뻐함은 잘못이고 마음을 움직이지 않아야만 옳다. 사당(邪黨)이 대법제자를 아주 잔혹하게 박해하니 그럼 당연히 미워하게 되는데 그러나 미워함은 잘못이며,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것만이 옳다. 다른 일은 말할 나위도 없는데, 눈에 보이는 좋은 일이나 나쁜 일에 이끌리면 그것이 바로 사람이고,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면 곧 신(神)의 상태다. 사람 마음이 없다면 구세력이 틈을 탈 수 없으며 사부님 법신(法身)께서 바로 관할하실 수 있다.

작은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바로잡아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68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