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로(堯路)
【정견망】
어떤 동수가 CCTV에 대법제자가 찍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에 무심코 한 차례 모니터링을 했는데, 모니터링에서 보니 나는 빈 그림자[虛影]로 나타났다. 때로는 절반이 빈 그림자였고 때로는 전체가 빈 그림자였는데, 신체가 투과되어 내 몸을 통과해 뒤에 있는 물체가 보였다. 내가 등에 짐을 지고 가면, 짐은 정상으로 나타났지만, 오직 짐과 그림자 하나만 걷고 있었다. 아울러 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정상적으로 나타났다. 생각해 보니 최근 1~2년 내게 이런 상태가 나타났는데 나는 좋다고 생각해 이를 써낸다.
바로 ‘내(我)’가 진선인(真善忍)으로 구성되어 있고, 내 특성이 위타(爲他)하기 때문이다. 내 원래 몸은 진선인으로 구성된 것이다. ‘나’라는 이 개념을 구성하는 모든 내용이 바로 진선인이고, 일사일념(一思一念) 일언일행(一言一行)도 위타에 다가갈 것을 요구했다. 때문에 위타하는 이 근본을 지켰고, ‘나’를 지켰는데 다시 말해 진아(真我)를 지켰다. 집착이 있는 곳을 쉽게 인식할 수 있었고 집착심이 일단 싹터 나와도 오직 ‘내’가 ‘진선인’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만 하면 즉시 그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잡아서 배제할 수 있었다. 이 상태에서 수련이 간단하게 변했다.
예전에 개인 인식에 따라 수련하던 상태에서는 내게 어떠어떠한 집착이 있으니 나는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집착 자체가 자신임을 일단 승인하고 나서 집착(나) 속에서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한도 끝도 없는데, 한도 끝도 없이 생겨나고 한도 끝도 없이 제거해야 한다.
내가 바로 진선인으로 구성된 이 상태에서 발정념 하면, 안으로 청리하는 것은 ‘내’ 범위 안에서 진선인에 부합하지 않는 물질들이고, 밖으로 청리하는 것은 우주 중에서 진선인에 부합하지 않는 물질들이다. 안으로 찾음은 또 내 범위 안에서 진선인에 부합하지 않는 그런 집착, 관념, 악념(惡念), 색심(色心) 등을 찾는 것이고, 법 공부에서 점차 다지는 것 역시 ‘나’다. 이 상태에서는 자신의 범위 안에서 진선인에 부합하지 않는 집착심을 비교적 쉽게 인식할 수 있다. 이런 상태 하에서 사심(私心)과 온갖 집착은 본래 마땅히 존재하지 말아야 할 것인데 왜냐하면 위타(爲他)한 특성에 부합하지 않고 진선인에 부합하지 않으며 위타한 ‘나’와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사심(私心)은 비교적 쉽게 드러나고 즉시 인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상태에서 집착이 일단 표현되어 나올 때, 오직 ‘내’가 진선인으로 구성되었다는 생각만 하면, 즉시 그것을 인식하고 배제할 수 있다. 일념을 움직여도 위타(爲他)에 부합하지 않고, 진선인 표준에 부합하지 않으며, 바르지 못한 일체가 마치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자연스럽게 인식되는 것 같다. 정념(正念)을 지키고 생각을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생각을 지켜 움직이지 않으면 곧 관(關)을 통과하기에 충분하고, 본성의 일면(一面)이 저절로 법을 바로잡아 표준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을 깨끗이 제거한다. 즉 표준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을 바로잡을 수 있다. 이 상태를 지켜내면 수련이 간단하게 변하는데 대도(大道)란 지극히 간단한 것이다. 이는 정법 수련의 현 단계에서 나의 한 가지 상태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는 법에서 정(定)해져 있다고 말씀하셨다. 나도 ‘내’가 바로 진선인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감수하는 이 상태 하에서, 진(真)‘아(我)’는 우주 과정에 들어가지 않을 수 있지만 나(我)는 또 우주 과정에 들어갈 수 있고 또 거기에서 해탈해 나올 수도 있다.
여기서 우주로 들어간다는 것은 우주 중의 사물에 대해 생각을 움직이거나 집착하는 것을 말하고, 해탈이란 생각을 움직이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해탈하는 방법이 집착 제거이기 때문에 수련에서 층차를 제고함이란 바로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다. 집착이 없고 무형(無形 형태가 없음)인데, 무형이지만 또 일체를 형성할 수 있다. 집착이 없고 누락이 없도록 수련해야만 원만할 수 있다. 이것이 내가 현재 인식하는 수련의 본질이다.
오직 ‘내’가 곧 진선인으로 구성되었다는 생각만 하면, 무슨 병업이요 무슨 구세력이요 누가 당신을 움직일 수 있겠는가! 아주 힘이 있음을 느낄 것이다. 동시에 또 쉽게 밖으로 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이며 개인적으로 구하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 이 상태에서 다시 사람을 구한다면 또한 쉽게 자비롭고 좋은 심태로 들어가도록 조정 할 수 있다.
타당하지 못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72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