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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의 최신 경문을 학습한 작은 깨달음

무명(無名)

【정견망】

오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대법 속에서 수련하는 것이 얼마나 엄숙한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대단히 신성(神聖)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위엄이 두드러진다. 또한 생명이 갱신하는 과정인 동시에 서약을 실현해야 한다. 매일 강대한 정념을 품고 바닥이 없는 사악의 잔혹한 박해에 직면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길은 오직 대법(大法)이란 이 길뿐이다. 해낼 수 있으려면 오직 법을 잘 공부해서 진수자(真修者)가 되어야 한다! 전제는 반드시 진심(真心)으로 수련하려고 생각해야 하는데 진심이어야 한다!

하지만 법을 잘 공부하는 관건은 또 ‘잘(好)’이란 글자에 달려 있다. 오직 법이 좋고 책임이 막중한 것을 마음속으로 깨달아야만 진심으로 법을 공부할 수 있고, 진심으로 수련할 수 있다···. 그러나 법 공부는 기왕에 흰 종이에 검은 글자의 이치를 똑똑히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또 배후의 내함(內涵)도 보아야 한다(둘 중 하나라도 없어선 안 된다). 오직 순정(純淨)한 심태를 지니고 법을 공부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법이 순정하기 때문이다. 오직 순정한 심태를 품어야지만 법이 요구하는 표준에 도달할 수 있고 이렇게 해야만 법이 펼쳐질 수 있고 비로소 진정으로 도(道)를 깨달을 수 있다.

수련함에 안으로 마음을 닦는 것이 관건이다. 내함(內涵)을 보았으면, 법에 따라 해야 한다. 해내면 제고되고 심성이 제고되면 반대로 법을 배울 수 있다. 법을 배우고 또 따라서 한다면 곧 변화가 크고 제고도 빠를 것이다. 배움 속에 수련이 있고, 수련 속에 배움이 철저해지는 것을 형성해야 하는데 법(法)에서 혼연일체(渾然一體)를 이뤄야 한다. 자신이 늘 양성 순환에 처해 있고 끊임없이 정진 속에 있는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법을 잘 배우는” 것이다.

무엇이 믿음인가? 오직 진수(真修)뿐이다! 문제에 부딪히면 법을 생각할 수 있고 또 엄격하게 법에 따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오직 법에 따라 하는 것만이 진정한 믿음이다! 이렇게 해야 진수다! 절대 무슨 말로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진수는 조금이라도 나태해선 안 된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은 진정으로 착실히 수련할 수 있는가 여부야말로 신사신법(信師信法)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이다.

서약을 실현하고 대법제자가 사람을 구하려 한다면 정념(正念)에 달려 있다. 사람을 구할 때는 반드시 정념이 강해야 한다! 오직 강대한 정념이 있어야만 배후의 사악한 요소를 해체해서 사람 속의 좋지 않은 것을 억제할 수 있다. 이렇게 해야만 진아(真我)가 돌아와 태도를 표시할 수 있고, 진정으로 사람을 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구도하는 것은 그 생명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정념은 법에서 내원하며 정념이 강할수록 사람을 구하는 효과가 좋고, 힘이 클수록 구하는 사람이 더 많아질 수 있다. 진정으로 우리가 사람 속에서 하는 모든 것은 그저 일종의 운반체일 뿐이고 하나의 형식으로 서약의 실현과 사명을 실행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우리의 정념을 통해 펼쳐져 나오는 것이 바로 법이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사람을 구하는 동시에 늘 수련을 잊지 말아야 하며 수련을 사람을 구하는 속에 녹여 넣어야 한다. 구도(救) 속에 수련이 있고, 수련 속에 구도가 있으며 법에서 혼연일체를 이룬다.

사람을 구하는 법은 원용한 것이다. 기왕에 이치를 잘 배워야 할 뿐만 아니라 또 투철히 깨달아야 한다. 사람을 구하는 핵심은 정념이고, 진상을 알리는 것은 보조일 뿐이다. 구체적으로는 그 취향에 따르고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하는데 이렇게 해야만 사람을 구하는 좋은 효과를 낼 수 있고, 서약을 실현할 수 있다.

법을 잘 배우는 것이 근본인데 목적은 사람을 더 잘 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구하는 것은 또 서약 실현을 위한 것이고, 서약을 실현함은 진정한 회귀(回歸)를 위한 것이다.

법에 대한 작은 이해와 인식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7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