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청(鬱菁)
【정견망】
어린 시절 새옹지마(塞翁之馬 역주: 변방 노인이 말을 잃은 이야기) 이야기를 보면서 새옹은 드라마 속 점쟁이처럼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견할 수 있어야 사물의 좋고 나쁨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중에야 세상의 이치는 진리(真理)와 정반대임을 깨달았다. 새옹은 비록 미래를 예견할 수 없었을지 모르지만, 그는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속인의 관념에 미혹되지 않았다. 그는 남들이 좋은 일이라 여기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은 아니고, 남들이 나쁜 일이라 여기는 것이 반드시 나쁜 일은 아니라고 여겼다. 때문에, 그는 인생의 여러 가지 환상(幻象)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어느 날 “내가 여러분에게 예를 들어 주겠다. 불교 중에서는 인류사회의 모든 현상이 모두 환상이고 실제적인 것이 아니라고 한다.”(《전법륜》)를 공부할 때 각종 연상이 떠올랐다. 우리가 존재하는 공간에서 보는 물질이 환상(幻象)이고, 내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일이 환상이며, 내가 다른 사람의 표현을 보는 것도 환상이고, 내가 만나는 마난(魔難)도 환상이며, 심지어 내 느낌마저도 환상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를 이 환상에 미혹되고 이 환상에 이끌려 헤어나기 힘들게 만들었는가?
오랫동안 매일 아침 연공을 견지하는 것은 내가 하고 싶어했지만 늘 돌파하지 못하던 것이다. 어느 정도 시간 버티고 나면 또 흐지부지해졌고 또 일정 시간을 버티고 나면 다시 일어나지 못했는데 이렇게 반복되었다. 나는 각종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또 언젠가는 기상할 때 마(魔)가 나를 일어나지 못하게 교란하고 있음을 알고, 그것을 청리(淸理)하는데 집중했다. 그 기간에는 일어나기 쉬웠다. 이렇게 약 1년 넘게 견지했지만 또 이전과 같은 그런 상태에 빠졌다.
어느 날 자명종이 울렸는데 창밖에서 매서운 바람이 불었다. 손을 내밀면 얼어버릴 것 같은 차가운 온도를 느끼며 따뜻한 이불은 나를 또 나태하게 만들었다. 나는 문득 사람의 느낌은 일종의 환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불 속에 있으면 느낌이 편안한데, 그것은 나태를 조장하고 안일함을 기르는 마귀굴[魔洞]로 이곳에 들어가면 수련인의 의지를 갉아 먹는데 그것이 바로 불편함이다. 일어나면 춥고, 가부좌를 틀면 아프고, 포륜(抱輪) 하면 팔이 무겁게 만들어 사람에게 불편한 느낌을 준다. 수련인이 연공 할 때면 본체(本體)가 신체(神體)로 전화(轉化)하고, 고생을 겪으면 흑색 물질이 백색 물질로 전화되는데 그럼 곧 편안해진다. 그 후 나는 아주 빨리 일어났다.
다시 찾아보니 “연공은 아주 고생스럽고 잠은 아주 편안하다”는 이런 관념이 내가 날마다 아침 연공을 견지하는 것을 가로 막는 것 외에 또 “연공은 중요하지 않다”는 관념이 있었다. 이러한 관념은 법에서 자신의 집착이 빠져나갈 구실을 찾는 데서 온다. 연공은 법 공부와 마음 수련에 비하면 뒤에 놓이지만 그렇다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특수한 상황에서 연공할 시간이 없다면 시간을 찾아 보충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특수한 상황을 정상적인 상태로 간주할 수는 없다. 사부님께서는 “완정(完整)한 한 세트 성명쌍수 공법이라면 닦기(修)도 해야 하고 연마(煉)도 해야 한다.”(《전법륜》)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을 엄격히 요구해야 한다.
이후 매일 알람이 울리면 나는 스스로에게 “연공은 아주 중요하다, 이불 안은 편하지 않고 일어나서 연공하면 편안하다.”고 일깨워 준다. 매일 이렇게 하자, 한 달, 두 달, 점차 자신의 관념이 바뀌는 것을 발견했다. 설사 실내 온도가 0도라도 날마다 망설임 없이 일어나 연공할 수 있었다. 서서히 나는 정말로 연공이란 매일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처럼 꼭 필요한 일이 되었음을 느꼈다. 그리고 연공이야말로 편안한 것임을 느꼈다.
이 일을 통해 나는 나를 환상에 미혹되게 하는 주요 원인이 관념(觀念)임을 발견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은 수련 중에서 많은 관(關)을 넘어야 하는데, 원인은 사람이 출생한 이후 끊임없이 인류사회 인식 중에서 각종 각양의 관념이 생김으로써 이로부터 집착이 생긴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사회는 바로 고난(苦難)과 이익의 향수(享受)가 병행하는 세계이며, 당신이 아무리 돈이 많고, 어떠한 사회계층에 있든지 간에 인생은 바로 많은 고난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고통은 사람으로 하여금 고달프게 하기 때문에, 그리하여 사람은 자각적이든 비자각적이든 고난에 대항하는데, 목적은 좀 행복하게 살려는 데 있다. 그러므로 행복을 추구하는 중에서 사람은 어떻게 하면 자신이 피해(傷害)를 받지 않고 어떻게 잘 살며 어떻게 해야만 비로소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공명을 성취하며 어떻게 더 많은 것을 얻고 어떻게 강자가 되겠는가 하는 등등이 형성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런 경험이 있는 동시에 또한 인생의 관념이 형성되었고 경험은 또 실천 중에서 관념으로 하여금 완고(頑固)하게 변하도록 하였다.” (《정진요지 3》〈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
이 단락 법(法)에서 나는 관념이 집착을 낳는 원인임을 깨달았다. 아울러 모든 집착은 단지 사람이 인류라는 이 환상 속에서 편안히 살게 만들고 인류라는 이 층차를 뛰어나오기 어렵게 만들 뿐이다. 수련인으로서 속인을 뛰어넘어야 하는데, 인간 세간의 각종 환상(幻想)을 벗어나려면 먼저 관념을 전변(轉變 역주: 근본적인 방향의 전환)해야 한다. 이에 나는 관념을 전변해 내가 겪은 일들을 마치 환상을 보는 듯한 심태로 보려고 시도했다.
살면서 모순을 만났을 때,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늘 우선 나쁜 일이라고 여기고 마음이 불편해지면서 화가 나고 불평한다. 그런 다음 다시 법리(法理)를 이용해 자신의 그 마음을 가라앉힌다. 지금 나는 이 모순은 환상으로 나를 제고시키기 위해 연화(演化)해 나온 것이라고 먼저 생각한다. 내게는 아직 쟁투심, 질투심, 남이 말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 내려놓지 못한 이익심이 있기에 이는 아주 좋은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잠시 후, 모순이 환상처럼 연기처럼 사라졌다.
경찰이 집에 찾아올 때도 전에는 “경찰이 찾아오는 것은 모두 나를 박해하기 위함”이란 관념에 가로막혀 도처로 피하고 두려움에 떨며 분통을 터뜨리는 등의 마음이 생겨나 오랫동안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지금 나는 관념을 전변해 경찰이 찾아와 소란을 피우는 것은 환상이고 진실한 상황은 그들을 우리 집에 보내 배후의 사악을 제거하고 그들을 구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그럼 나는 곧 발정념으로 경찰을 조종해 악을 행하는 사악을 제거한다. 그럼 우리가 주동적으로 각종 방식을 찾아 경찰이 진상을 똑똑히 알 수 있게 해서 그들이 사악의 조종하에 대법에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환상은 사라졌고, 상황이 변해 경찰이 찾아오면 숨는 것에서 우리가 경찰을 찾아가면 경찰이 숨는 것으로 변했다.
동수가 속인의 핸드폰에 깊이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때, 예전에는 그를 원망하고 무시하는 등 사람 마음으로 대했다. 그런 후 속인처럼 그들을 비난하고 강요했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이제 나는 자신에게 동수의 표현은 환상이라고 알려준다. 한편으로는 내게도 같은 사람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이런 환상이 연화되어 내게 보여주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악이 동수의 정념을 억제한 것이다. 나는 표면적인 환상에 미혹되어선 안 되며 또한 남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사부님의 제자이고 사부님께서 모두 관할하신다. 내가 할 일은 그를 도와 발정념하고, 그와 함께 법을 많이 공부하고, 연공을 많이 하며, 발정념을 많이 하는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수는 자신의 행동을 바로잡았고 갈수록 더 정진했으며 나 자신도 제고되었다.
신체가 불편할 때면 예전에는 내 몸 어딘가 병이 있다고 생각했다. 한동안 수련하고 나서 자신의 어디엔가 누락이 있어 구세력의 박해를 받는다고 생각했다. “누락이 있으면 박해받을 수 있다”는 이런 관념에 제한되어 자신의 상태가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했다. 지금 나는 그것마저도 환상으로 여긴다. 우리 신체는 사부님께서 정화해 주셨고 사부님께서는 천 개 만 개도 넘는 기제(機制)를 우리에게 내려주셨기에 우리는 병이 있을 수 없으며 그 누구도 우리를 움직일 수 없다. 그럼 이런 불편한 현상이 나타난 원인은 무엇인가? 바로 나더러 층차를 제고하라는 것이다. 층차를 제고하려면 심성을 제고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자신에게 마땅히 제거해야 할 어떤 사람 마음이 있는지 한번 찾아보아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이 가장 내려놓기 어려운 것은 관념이다. 어떤 자는 가짜 이치(假理)를 위해 생명을 바칠지언정 개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관념 자체는 오히려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다.”(《정진요지》〈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
후천적으로 형성된 이런 관념은 마치 층층의 안개와 같아서 인간 세상의 이런 환상을 더욱 미혹시켜 사람이 스스로 헤어나기 어렵게 만든다. 내가 깨달은 것은 환상에서 벗어나려면 곧 관념을 전변해야 하는데 관념을 전변하려면 법을 많이 공부하고 마음에 들어가도록 법 공부를 해야 한다.
개인의 깨달음으로 층차에 한계가 있으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7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