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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찰기 … 명리정

조수심(趙樹深)

【정견망】

[역주: 찰기(札記) 또는 차기(劄記)란 한문 문장의 한 형식으로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생각이나 견문을 메모하는 것을 말한다.]

당문화(黨文化)가 대륙에서 범람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보기에 많은 경우 인류가 명리정(名利情) 속에서 죽어라 추구하기 때문에 사령(邪靈 공산사령)이 빈틈을 탔기 때문이다. 가악투(假惡鬪)는 사실 명리정이 극단화되어 열매로 맺힌 패과(敗果 썩은 열매)다.

가령 명(名)을 추구하는 사람은 말에 과장을 더하고 자신을 드러내며 과시하는데 이는 ‘가(假)’에 속한다. 또 이를 추구하는 사람은 인의(仁義)하지 못하고 돈을 위해 살생하는데 이는 ‘악(惡)’에 속한다. 정이 넘치는 사람은 미혹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데 남이 선(善)하게 해도 자신은 또 화를 내며 악이 일어나면 자신도 이끌리는데 이는 바로 ‘투(鬪)’에 속한다.

명리정(名利情)은 속인의 약점을 조성하는데 세상이 사령(邪靈)의 유혹하에 선악(善惡)을 가리지 못하는 것 역시 이런 원인 때문이다. 박해 초기 사령은 자녀의 승진, 취학, 연금, 임금 등에 대한 사람의 집착을 이용해 수련인을 전화(轉化 전향)하고 협박했다. 그것은 다른 것은 할 줄 모르고 우습게도 이런 재주뿐이다.

명리정에 대한 생명의 집착이 오래되면 귀신으로 타락하거나 또는 마귀가 된다. 말법(末法)시기 물욕이 횡행하며 사람은 대부분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게 아니라 썩은 귀신을 따르며 미친 듯이 기뻐한다. 수련인이 명리정을 내려놓지 못하면 그럼 또 어찌 되겠는가?

명(名)을 추구하지 않으면 말에 과장을 섞지 않고 착실하니 진(真)에 속하고, 이(利)를 추구하지 않으면 매사에 무사무아(無私無我)하며 일에 부딪혀 타인을 고려할 수 있으니 선(善)에 속하며, 정(情)을 담담히 볼 수 있다면 마음이 잔잔한 물과 같아 세풍에 휩쓸리지 않으니 인(忍)에 가깝다. 명리정에서 멀어질수록 진선인에 더욱 부합한다. 그러므로 수행(修行)은 형식을 보지 않는데 도(道)를 닦지 않아도 신선이 될 수 있다.

어떻게 명리정을 담담히 내려놓을 것인가는 홍진(紅塵) 속의 사람들이 역대로 고려하지 못한 일이다. 사실 사람이 되어 이 방면의 일을 고려하기 시작했다면 이것이 바로 미혹을 깨는 법선(法船)에 이미 오른 것이다. 수행인이 관(關)이나 난(難)을 만나 자신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생각이 통하지 않는다면 대개는 명리정에 대한 집착을 죽어라 끌어안고 내려놓지 않아 조성된 것이다.

명리정에 대한 집착은 사람의 생활을 힘겹게 만든다. 때문에 사당(邪黨)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우외란(內憂外亂)을 벗어나지 못한다. 중생을 구함은 그 자체가 명리정을 뛰쳐나온 것으로 자신과 중생의 공간장에서 검은 구름을 깨끗이 씻어낼 수 있다.

세계의 미래는 바로 사람이 명리정을 담담히 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진정한 복분(福分)은 닦아서 온 것이다. 삼계(三界)에서 복(福)과 화(禍)는 모두 허환(虛幻)에 속한다. 현대파의 것에 더욱 집착할수록 더욱 미친다. 때문에 전통의 길로 돌아가는 것은 명리정을 제거함에 반드시 걸어야 할 길이다.

현대파의 것은 대개 외계의 과학기술에서 유래하는데 외계인 역시 사람 이 한 층의 것으로 여전히 명리정이 있다. 그러나 전통의 길은 창세주(創世主)께서 깔아주신 것으로 하늘과 통한다. 그러므로 이 길은 단지 명리정과 인연을 끊을 뿐만 아니라 또한 신우주(新宇宙)의 대문을 두드릴 수 있다!

현대파의 것에서 일부는 다른 공간에서 벌레로 표현된다. 삼계는 모두 흙에 속하기 때문에 명리정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은 모두 벌레처럼 땅속을 기어다닌다. 즐거움이라고? 과학이 가져온 즐거움은 대부분 다른 공간 사람의 신체가 벌레에 물린 것으로 고통을 초래한다. 그러나 수행인이 제고할 때 꾹 참으면서 가져온 불쾌감은 바로 다른 공간의 신체가 기뻐 노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명리정을 내려놓지 않으면 삼계를 나가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생로병사는 최종적으로 여전히 명리정을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수행인은 잃음을 중시하고 버림을 중시하는데 우주 특성에 동화해 최종적으로 도(道)를 얻고 날아 올라가는 것만이 진정으로 만세(萬世)에 이름을 날리는 것이다.

명리정 세 글자를 고층차에서 보면 사실은 무덤과 같다. 왜냐하면 삼계로 온 생명은, 신(神)의 눈에 기본적으로 사망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부활이라고? 그러자면 새로운 신체가 필요한데 새로운 신체는 동시에 한 세트의 새로운 영혼이 필요하다. 명리정에 집착하면 곧 자신의 새로운 신체를 연련(演煉)하길 거절함과 같다. 그러므로 어떻게 명리정을 인식할 것인가는 모든 사람들이 피해갈 수 없는 시험문제이자 인류 생존에서 극히 관건적인 것이다.

수련인이 자신의 직책을 잘 수행하려면 반드시 명리정을 잘라버려야 한다! 그것들의 배후가 구우주의 신경(神經)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바르게 걸어가는 것만이 집으로 돌아가는 유일한 길이다. 이 길에 명리정과 관련된 벽돌은 단 하나도 없다.

명리정은 밖으로 찾는 것과 ‘혈연(血緣)’관계가 있는 것으로 더욱 집착할수록 더욱 자신을 찾지 않는다. 안으로 찾음은 바로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나침반이다. 항로를 잃는 것은 백분의 백 안으로 찾지 않기 때문인데 무슨 명리정이든 모두 안으로 찾음을 두려워한다.

더 착실히 수련하는 사람일수록 더 은혜에 감사할 줄 안다. 왜냐하면 우리의 눈을 가리는 것이 바로 명리정이고 우리가 그것들을 제거할 때면 사존께서 우리의 성공을 위해 감당하신 간고한 노고를 더욱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사정법(助師正法)하려면 명리정을 타파해야만 한다.

사존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동수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7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