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백(漸白 점차 명백해짐)
【정견망】
사부님께서는 《전법륜 2》〈불(佛)과 도(道)〉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도(道)는 조용히 수련함(淸修)을 주장하기 때문에 중생을 널리 제도하려는 소원이 아예 없다. 수련 성취한 후에는 곧 흩어져 떠돌아다니는 신선으로 된다. 천상에도 산천이 있는데, 그는 천상의 어느 산에 머물러 있다. 사실 도교의 출현은 여전히 속인의 그런 집착심이 조성한 것이다. 사람은 세력이나 단체를 만드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데, 사람은 모두 이런 공리심(功利心)이 있기 때문에 이런 것을 하기가 아주 쉽다.
사실 도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제자를 가르침은 단독수련이다. 도교를 만들어 제자가 아주 많다 해도 모두 진수를 전해 받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제자가 좋은지를 보고 하나를 골라 진수를 전하는데”
나는 1999년 이전 정상(正常) 수련 시기에 이 ‘공리심’을 제거하는데 주의를 기울였다. 그 당시에는 홍법(洪法)과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 늘 자신의 마음을 바로잡았고 일을 할 때도 마땅히 자비심으로 했으며 자신의 공리심을 만족시키거나 팽창시키기 않도록 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사부님께서 흔히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신 것이 수련 제고의 관건이 되는 경우가 많음을 잘 알고 있었다.
2000년 8월 9일, 경문 《정진요지 2》〈이성〉에서는 또 “慈悲(츠뻬이)로 홍법(洪法)하고 세인을 구도”하라고 하셨다.
여기서 위안이 되는 것은 공리심이 없을 때 한 일은 마음가짐이 아주 순정하고, 늘 자비와 유사한 감정이 많았다. 하지만 또 사람의 정이 작용을 일으킨 것은 아닌지 똑똑히 구별하기 어려워서 종종 자비심의 문제인지 아닌지 고려하지 못했다. 단지 늘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은 ‘나는 왜 첫 시기에 법을 얻었을까?’ ‘왜 나는 사부님의 정법(正法)과 같이 있을까?’였다.
첫 시기에 법을 얻은 것은 내가 법을 얻어 더 많은 사람들이 법을 얻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다면 절대 내가 먼저 법을 얻을 자격이 없다. 즉 내가 반드시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해야만 비로소 먼저 법을 얻을 자격이 있음을 의미한다.
왜 사부님의 정법 시기와 같이 있는가? 사부님께서 법을 바로잡는 시기에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너무나도 대단한 것이다. 이는 그 어떤 속인의 생각도 내려놓고 속인의 관념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어떤 각도에서 이해하자면 속인의 일념에 속박되는 것은 바로 신(神)이 이곳에서 죽는 것과 같다. 즉 진정한 자기인 신(神)이 사람에서 죽는 것이다. 슬프고 또 굴욕적인 일이다. 슬픈 것은 신의 일체가 흩어져 버리고 사람 속에서 미혹되어 곤경에 빠지는 것이다. 굴욕적인 것은 몸에 사명을 지니고도 중도에 포기했기 때문이다.]
공리심 때문에 ‘죽은’ 그런 수행자들을 보면 모두 이렇다. 공리심은 자신의 매 일념(一念)을 마치 상인(商人)의 일념처럼 만들고 “겉으로 하는 말은 선해도 마음은 마귀”가 되는데 겉으로 선량한 것은 위타(爲他)하게 보이지만 사실 공리를 계산하는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다.
반대 방향으로 가는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이 마음을 제거하지 않았고 오히려 사부님과 법을 원망하는데 수행을 무슨 거래로 여긴다! 그들을 추종하는 이들 역시 이 마음이 깨끗하지 않은데 역시 중생 구도를 제1위에 놓지 않고 사람의 정에 따라 자신의 혜명(慧命)을 질식시키고 진명(真命)을 경솔히 포기한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8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