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범(揚帆)
【정견망】
나는 소심한 사람이라 마땅히 과시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는 내 바람과는 달리 과시심이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어떻게 발견했는가?
가족 동수가 체포되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늘 해외 동수들의 골목 소식을 듣길 좋아하고, 심지어 다른 사람들에게 신나게 떠들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나는 리(李) 스승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었다.” 여러 사람이 에워싸고 듣는데, 그는 거기에서 말하면서 자신의 이해를 보태어 주워들은 소식을 전한다. 무슨 목적인가? 여전히 자기를 과시하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주워들은 소식을 전해 그가 그에게 전하고 그녀가 그녀에게 전하는데, 흥미진진하게 거기에서 말하는 것이 마치 그의 소식이 빠르다는 듯하다. 우리 이렇게 많은 수련생이 모두 그보다 알지 못하며, 다른 사람은 그보다 아는 것이 많지 않다는 듯한데, 그는 이미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자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는 잠재의식 중에 곧 이런 과시심리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주워들은 소식을 전해서는 뭘 하는가? 또 어떤 사람은 스승님께서 어느어느 때 산으로 돌아간다고 전한다. 내가 산에서 나온 것도 아닌데 내가 무슨 산으로 돌아가는가? 또 어떤 사람은 스승님께서 어느어느 날 누구에게 어떤 말을 했으며 누구에게 특별대우를 해주었다고 한다. 이런 것들을 전해서 무슨 좋은 점이 있는가? 좋은 점은 하나도 없으며, 다만 우리는 이것이 그의 집착심이며 과시심리임을 보았다.”
골목 소식을 전하는 것은 과시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것을 본 것 역시 우연이 아니며 나 역시 닦을 것이 있다. 나는 자신에게 과시심이 있는지 찾아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내가 찾지 못했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나는 이 단락 법을 외우기로 결심했다.
외우는 과정에는 늘 외워지지 않는 문장이 하나 있었다. 나는 놀라서 그것이 어떤 문장인지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이미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자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전법륜》)
여기서 “이미 자연스럽게 형성되어”라는 문장이 있었는데 설마 그래서 내가 그것을 찾지 못했단 말인가? 나는 자신에게 존재하지만 이미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기 때문에 찾아내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법리(法理)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자신의 과시심이 어디에서 표현되는지 여전히 몰랐다. 하지만 비교적 자신의 언행에 주의하며 내게 정말 과시심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사부님께서 내게 이 마음을 제거하려는 소원이 있는 것을 보시고 한 가지 일을 통해 자비롭게 나를 점화해 주셨다. 사정은 이랬다. 어느 날 딸이 옷을 하나 사서 집에 와서 내게 보여줬다. 유행하는 스타일의 카키색 재킷이었다. 내가 좋다고 했지만 딸은 내가 별로라 여긴다고 생각해서는 해명했다. 이 옷은 자신이 구입한 다른 옷들과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어서 내가 옷을 살 때는 늘 독특한 스타일을 선택한다고 조언했다.
말하고 하다가 나는 멈추고는 딸에게 “이것이 과시심이니? 늘 남과 다른 것을 사고 싶어 하는 것은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니?”
딸은 “그래요”라고 말했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독특한 상의를 사면 그 상의에 어울리는 바지, 신발 등을 구입하는 데 시간을 들여야 하고 또 코디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한다.”
나는 이미 50이 넘었고 30년을 수련했음에도 옷을 살 때 늘 이런 심리를 갖고 있었다. 또 이것이 과시심의 외부적인 표현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만약 가족 동수의 일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그것을 찾는데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시심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스스로 곰곰이 반성해 보고 나의 관념을 발견했다. 즉 옷을 살 때 ‘남달라야 한다’는 관념이 이미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관념은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 내가 과거를 회상해보니 10대 때 소녀들은 아름다움을 동경하는데 나 역시 그랬다. 나는 상대적으로 키가 작고 왜소해서 현지에서 적당한 옷을 구하기 어려웠다.
당시 나는 옷에 관심이 많았고, “상해 패션” 등 잡지를 몇 년간 구독하면서 책과 잡지에 나오는 내용을 참고하여 옷, 바지, 스커트 등을 만들어 입었다. 그래서 평범한 옷에 대한 아무 느낌이 없었고, 책에서 찾은 것들은 모두 독특한 디자인의 옷이었다. 나는 양장점 주인에게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대로 옷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당시에는 개인 양장점이 많았다.)
그때부터 관념이 형성됐다. 이런 옷을 입은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면 분명 당신더러 이 옷이 정말 좋다고 칭찬할 것이고 거리에서도 고개를 돌리며 쳐다볼 것이다. 사실 당신의 과시심이 장난을 친 것으로 이 옷이 보기 좋든 아니든 색심(色心)이 작용을 일으킨 것이 아닌가?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기뻐하든 기뻐하지 않든, 정(情)을 움직인 것으로 수련인이 보고도 보지 못한 듯 들어도 듣지 못한 듯 해야 하는 것과는 천양지차가 아닌가. 이후 나는 옷에 관한 관념을 완전히 바꿔 대중적인 스타일을 골랐고 이 과시심을 닦아버렸다.
내게 이렇게 많은 사람 마음이 있음을 보게 해 그것을 닦아버릴 기회를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9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