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최근 나는 몇몇 동수들이 이런저런 말을 하면서 수구(修口)하지 못하는 것을 늘 듣는다. 동수는 내게 거울과 같으니 사부님께서 내게 이런 일을 보고 듣게 하신 것은 틀림없이 내가 수구 방면에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일시적으로 찾지 못했다면 그럼 법을 외우고 법에 동화하자!
“우리 일반적인 것을 말해 보자. 내가 무엇을 하려 하면 무엇을 하고, 지금 이 일을 어찌해야겠다고 해서 어찌한다면, 무의식중에 누군가를 해칠 수도 있다.”(《전법륜》)
나는 자신이 왜 “내가 무엇을 하려 하면 무엇을 하고, 지금 이 일을 어찌해야겠다고 해서 어찌한다면” “누군가를 해칠 수 있는지” 제대로 모르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동수를 찾아가 교류하며 그들이 어떻게 깨달았는지 물어보았다. 그들이 자신의 이해를 말해주자 나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내가 이 단락 법을 이해하지 못한 이유는 내가 그렇게 큰 자비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말하고 행동할 때 여전히 위사(爲私)에 기초해 행동하며, 자신의 감수만 고려할 뿐 다른 사람의 감수를 해칠 수 있는지 여부는 고려하지 않았다. 내가 ‘사(私)’에서 나오지 못했고 ‘위타(爲他)’와 ‘선타후아(先他後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 이 문제를 내가 지금 수련해야 하기 때문에 사부님께서 내게 자신의 문제를 보여주신 것이다. 나는 대법에 동화해 위타한 생명이 되어야 한다.
나중에 법을 공부할 때 답안을 찾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이 늘 慈悲(츠뻬이)하고 선(善)으로 남을 대하며,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다른 사람을 고려하여 매번 문제와 마주칠 때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이 감당해 낼 수 있는지 없는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지 안 되는지를 우선 생각한다면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전법륜》)
최근 몇 년을 끌어오던 집 문제가 해결되었다. 어머니 명의로 된 집이 하나 있었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큰오빠에게 주겠다고 구두로 말씀하셨다. 당시 나와 언니는 현장에 없었고 큰오빠는 집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로 이사를 나갔다. 몇 년 후 큰오빠가 갑자기 사망했다. 때문에 집은 여전히 어머니 명의로 남아 있었다.
큰올케가 우리와 상의해 우리에게 몇만 위안을 주고 상속을 포기하는 대신 집을 자기 딸 이름으로 등기하기로 했다. 우리 둘 다 동의했고 절차를 완료하기 위해 공증 사무실에 갔다. 이는 몇 년간 해결되지 않았던 일을 성공적으로 해결한 것과 같다. 나는 사부님께서 집에 대한 우리의 집착을 없애도록 도와주셨다고 생각한다.
문제를 해결한 후 내가 법 공부 소조 동수들과 토론했다. 두 번째 이야기했을 때 딸(동수)이 내게 이렇게 하면 큰올케와 그녀의 딸[둘 다 동수임]에게 모두 좋지 않다고 일깨워 주었다. 내가 생각해 보아도 동수들이 서로 다 아는데 잘못하면 그녀들에 대한 선입견이 생길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동수 사이에 쉽게 간격이 생길 수 있다. 보아하니 수구하지 않으면 정말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나는 딸의 건의를 받아들여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어서 법을 외웠다.
“우리가 입을 열어 말할 때, 모두 연공인(煉功人)의 心性(씬씽)에 따라 말하고, 시비를 일으키는 그런 말을 하지 않으며, 좋지 않은 말을 하지 않는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이 말을 마땅히 해야 하는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는 법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가늠해야 한다. 마땅히 말해야 하는 것은 법으로 가늠하여 연공인의 心性(씬씽)표준에 부합되면 문제가 없다. 또한 우리는 법을 말하고, 법을 선전해야 하므로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전법륜》)
이 부분을 늘 틀리게 외워 이 단락을 자세히 보았다. “연공인(煉功人)의 心性(씬씽)에 따라 말하고”, “법의 표준에 따라 가늠해야 한다”, “법으로 가늠하여 연공인의 心性(씬씽)표준에 부합되면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법의 표준’이란 무엇인가?
나는 이어서 계속 외웠다.
“우리가 수구해야 하는 것은, 속인 중의 그런 내려놓지 못하는 명리와 사회의 실제 사업 중에서 수련자와 관계없는 말을 하고, 동문제자(同門弟子) 중에서 서로 간에 쓸모없는 잡담을 하고, 집착심으로 자신을 과시하고, 주워들은 풍문으로 일부 골목소식을 전하고, 사회상의 기타 일부 일을 말하기 시작하면 곧잘 흥분하여 아주 말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서, 내 생각에 이는 모두 속인의 집착심이다. 이런 방면에서 나는 우리가 마땅히 입을 좀 닦아(修)야 한다고 보는데, 이것이 우리가 주장하는 수구(修口)다.”(《전법륜》)
나는 이것이 ‘법의 표준’임을 깨달았다.
그럼 어떻게 가늠하는가? 최근에 자신이 한 말을 떠올려 ‘법의 표준’과 하나씩 대조하면서 마땅히 말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해야 한다. 마땅히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은 “속인 중의 그런 내려놓지 못하는 명리”인가, “사회의 실제 사업 중에서 수련자와 관계없는 말”인가, “동문제자(同門弟子) 중에서 서로 간에 쓸모없는 잡담을 하거나” 아니면 “집착심으로 자신을 과시하거나” 아니면 “주워들은 풍문으로 일부 골목소식을 전하거나” 아니면 “사회상의 기타 일부 일을 말하기 시작하면 곧잘 흥분하여 아주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닌가?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말을 할 때 ‘법의 표준’에 부합하는 지 여부를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동수들과 교류할 때 가령 어느 동수의 딸이 이혼하고 집을 팔았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이것이 수구하지 못한 것이며 “동문제자(同門弟子) 중에서 서로 간에 쓸모없는 잡담을 한” 것임을 즉시 깨달았다. 동수에게 이 문제를 제기하자 동수들도 즉시 대화를 중단했고 모두 수구 이 문제에서 더 명확해졌으며 모두 제고되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모두 담론하는 것을 따라갔을 텐데 법 암송을 통해 깨달았다.
법 암송을 통해 나는 또 동수의 문제를 보았다면 선의로 지적하면 그만이고 말을 하면 그만임 을 깨달았다. 만약 당신이 직접 마주하지 않고, 뒤에서 담론하거나 또는 동수와 교류한 이야기를 도처에서 말한다면 이는 골목소식을 전하는 것에 속한다.
나는 또 그럼 어떤 말은 할 수 있는지 자세히 깨달아보았다. 가령 자신이 법 공부를 통해 어떻게 제고했는지, 어떻게 각종 집착심을 닦아 버렸는지, 동수의 문제를 선의적으로 지적하고 속인에게 진상을 알렸는지 등등이다.
우리 법 공부 소조의 노동수들은 늘 음식 및 요리를 어떻게 하면 맛있게 만들 수 있는지 자주 말하곤 한다. 그들의 대화에서 ‘맛있는 음식’에 대한 집착이 드러난다. 내 생각에는 요리를 말할 때 개인적인 생각이나 의견을 더하지 말고 그저 한 가지 일만 진술하는 것이 비교적 좋다.
즉 “이 요리는 이렇게 하면 정말 맛있어요” “저렇게 만들면 정말 좋아요” 등등을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냥 이 요리는 이렇게 만들고 저 요리는 저렇게 만든다고 말하면 된다. 나는 요리를 잘 못하는데 매번 식사를 준비할 때마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한번은 볼 일이 있어서 법 공부를 마치고 집에 갈 시간이 없어 동수 집에서 같이 식사를 했다. 나는 그녀가 아주 간단하고 빠르게 식사를 준비하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집에 와서 그 방법을 따라했는데 반 시간 안에 식사를 마쳤고 정말로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식사란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일 뿐, 간단하고 빨리 먹기만 하면 그만이다. 수련인에게 있어 요리란 ‘잘’ 먹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는 최근 수구에 대한 개인 인식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95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