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대법제자 왕정우(王正宇)
【정견망】
북경 방송국에 청원하고 《뿌리를 캐다》라는 경문을 공부한 수확
1998년 5월 말, 아내(동수)와 나는 소조에서 법을 공부하다 보도원이 북경 방송국의 ‘북경 익스프레스’ 프로에서 파룬궁을 비방하는 내용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보도원은 우리가 보는 앞에서 방송국에 전화를 걸었는데 내 기억에 당시 저쪽에서 “당신의 의견을 경청했고 우리도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이 문제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방송에서 대법에 대해 그런 식으로 보도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매우 불편했다. 아내와 나는 그날 집에 돌아온 후 이 문제에 대해 논의했고, 우리 역시 대법의 혜택을 받은 사람으로서 방송국에 가서 이런 부적절한 발언이 다른 사람들의 대법에 대한 견해에 영향을 미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느꼈다. 우리는 다음 날은 그래도 출근해야 해서 3일째 되는 날 시간을 내어 방송국에 가기로 결정했다.
셋째 날 이른 아침, 우리는 북경 방송국에 가본 적이 없어서 거기까지 가는 방법도 몰랐다. 때문에 일단 차를 타고 덕승문(德勝門)까지 가기로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첫 번째 택시를 불렀지만 기사가 거기까지 갈 수 없다고 했다. 두 번째 차를 세웠지만 택시 기사가 또 거기에는 갈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한참을 지체했고 세 번째 택시를 잡은 후에야 겨우 갈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리가 법을 실증하지 못하게 하려는 마의 교란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끝내 사부님의 가지(加持)로 북경 방송국에 갔다.
그때 북경 방송국 앞에는 큰 마당이 있었는데 일부 동수들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가 상황을 반영하러 온 것을 보고는 곧 말했다.
“당신들은 돌아가세요. 이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고 별일 아닙니다. 마음 놓으세요!”
우리는 이미 일이 해결되었다는 말을 듣고 곧 집으로 돌아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문 앞에 서서 우리를 기다린 동수들은 얼마나 자비롭고 얼마나 무사무아(無私無我)했는가! 우리가 떠난 후 얼마나 많은 동수들이 또 문제를 반영하러 왔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동수들에게 일의 진행 상황을 알려주는 이 한마디를 위해 줄곧 문 앞에 서서 기다렸던 것이다. 이 얼마나 대단한 선심(善心)인가!
나중에 북경 방송국에서 또 대법에 대해 정면(正面)적으로 보도하는 다른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당시 제대로 하지 못했고 법을 제1위에 놓지 못했다. 만약 하루만 더 일찍 갔더라면 방송국에 직접 상황을 반영할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출근해야 한다고 생각해 하루를 지체했고, 바로 이 생각 때문에 홍법(弘法)할 기회를 놓쳤다. 내 생각에 당시 아주 많은 출근하는 동수들이 법을 제1위에 놓고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각종 곤란을 극복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곳에 갔을 것이다.
나중에 사부님께서는 《뿌리를 캐다》와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라는 두 경문을 발표하셨고, 우리는 다시 한번 이 일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경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관건적일 때, 내가 당신들에게 사람과 결별하라고 하면, 당신들은 나를 따라오지 않는데, 기회는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다.”(《뿌리를 캐다》)
겉보기에 이것은 평범한 일로 보이지만 오히려 매 수련자의 경지를 반영한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줄곧 우리에게 기회를 주셨지만, 사부님께서 주시는 기회에는 늘 도전과 선택이 동반된다. 매 차례 기회는 마치 하나의 사다리와 같아서 만약 한 번에 지나가지 못하면 다음에 다시 기회가 올 때는 지난번과 같은 수확이 없을 것이다. 이번 한 차례는 이성적으로 인식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기초가 없으면 쉽사리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아 남들이 하는 말에 따르게 된다.
사부님께서 전문적으로 이 사건을 겨냥해 두 편의 경문을 발표하셨고 또 명혜망에 ‘북경 방송국 상방’과 ‘4.25 만 명 평화 상방’, ‘천안문 분신자살 날조사건’을 한데 놓은 것에서 전반 정법 노정에서 이 일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확실히 막 법을 얻은 동수들이 많았고, 또 법에 대한 인식이 아직 감성에서 이성적인 정도에 이르지 못한 동수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부님의 뚜렷한 지시가 없고 또 총보도소나 보도소의 요구가 없는 상황에서 확실히 매 하나의 수련자에 대해 한 차례 시험이었다.
이 일은 26년이 지났고 우리는 정말로 마땅히 “기회는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다.”(《뿌리를 캐다》)는 중요한 의미를 알아야 한다. 생활 속의 작은 일이건 아니면 갑작스레 닥친 큰일이건 우리는 모두 마땅히 이성적으로 자각(自覺)하고 자주(自主)적으로 대하고 사고해야 하며 또한 마땅히 자발적으로 법의 요구에 따라 해야 한다.
당시 한 차례 경험을 통해 우리는 이듬해 4·25 때는 마침내 가장 먼저 중남해로 달려가 중국과 세계를 놀라게 한 평화 청원에 참여했다. 사실 수련에서 닦는 것은 바로 그 일념(一念)으로, 일에 부딪혀 만약 신념(神念)으로 생각할 수 있으려면 그럼 반드시 사람의 것을 내려 놓아야 한다. 한 수련인으로서 한 미래 ‘신(神)’의 상태에 따라서 해야 한다. 내 생각에 이렇게 해야만 정법시기 대법제자에게 마땅한 상태다.
층차에 한계가 있으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05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