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최근 나는 법 공부를 하루에 한 강 이상 하고, 연공도 뒤처지지 않고, 발정념도 6번 이상 하지만 수련이 그 자리에서 맴돌며 뚜렷한 제고를 느끼지 못했다. 때로는 짜증이 나고 소침하며무기력해 져서 힘이 나지 않았고 다리도 아파서 병목 상태에 처해 있다.
어느 날 컴퓨터를 켜고 전에 다운받은 교류문장을 보는데 문득 두 편의 글에서 감수가 아주 컸다. 하나는 《남을 무시한 교훈》이고 또 하나는 《‘공경심’을 지킨 작은 체회》 였다. 문장을 읽는 과정에 나는 자신이 병목에 빠진 원인을 찾아냈다. 바로 자신이 ‘겸손’과 ‘공경심’을 닦아내지 못했고, 자신이 대단하다고 자부해, 미시적으로 안개와 같은 것이 가득 차게 했기 때문이다. 나는 자신을 반성했고 발정념으로 이런 요소들을 제거했다. 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면에서 반대로 보고 관념을 개변해 겸손한 마음으로 대했다. 그 후 마치 담을 무너뜨린 것처럼 마음이 훨씬 밝아졌다.
수련하기 전에 나는 성격이 외향적이고 승부욕이 아주 강했다. 수련하고 나서 많이 변하긴 했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가령 큰소리를 잘 치고 결론을 잘 내리며 작은 법리를 깨달으면 드러내놓고 과시했다. 겉으로는 정진하는 것 같았지만 기초는 오히려 튼튼하지 못했다. 동수 문장에서 언급한 현상이 내게는 다 있었다.
남을 가르치길 좋아하고, 거만하며, 자기 표현을 잘하고, 남을 평가하며, 성실한 사람을 무시하고, 겁쟁이를 무시하고, 분별심이 강했다. 마음속에 이런 것들이 있으니 어찌 겸손과 공경심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전에 나는 이런 것들을 ‘작은 일’로 여겼지만 오히려 큰일이었다. 평화(平和), 자선(慈善), 겸손, 공경한 심태는 신(神)이 중시하는 것이고 오만방자함은 마성(魔性)으로 제고의 가장 큰 장애다. 겸손한 마음과 공경심이 있으면 자연히 달라지는데 일사일념(一思一念)에 주의할 수 있고 한 상태에서 배회하지 않을 수 있다.
2년 전 한 동수를 만나러 갔다. 그는 감옥에서 박해를 받아 뇌혈전을 앓았는데, 출소한 후에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대화 중에 그는 끊임없이 왼손을 움직이면서 손이 저리고 잘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 나는 그를 동정하거나 배려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과거 누락을 생각했다. 그가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그의 누락을 보고 그를 엄하게 말렸지만 그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에게 이런 상태가 나타난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만약 그가 애초 내 말을 들었더라면 오늘 이런 일이 있었겠는가? 나는 속으로 화를 냈다.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매일 법 공부를 얼마나 하나요? 몇 번이나 발정념을 합니까?”
“아주 적습니다.”
나는 듣자마자 조급해져서 말했다.
“다들 당신을 걱정하는데 당신 자신은 왜 조급하지 않습니까? 왜 발정념을 더 하지 않습니까? 왜 구세력의 박해를 부정하지 않습니까? 왜 자신의 누락을 찾지 않습니까? 당신이 이렇게 향상하려는 의욕이 없는데 어떻게 이 상태를 돌파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시 나는 그를 위한 방할(棒喝)이라 여겼지만 사실 선념(善念)이 전혀 없었고 마성이 크게 폭발한 것이다. 그의 상태는 구세력에게 박해를 받은 상태로 나는 위타(爲他)한 각도에 서서 그를 돕지 못했다. 자신을 반성하고 나는 몹시 후회했다. 내 눈에는 온통 그의 단점만 보였는데 겸손과 자선심이 전혀 없었으며 내가 한 말은 연꽃이 아니라 얼음이었다.
그는 억울하게 10년 넘게 감옥에 갇혔고, 나와보니 아내는 다른 곳에 시집갔고 집도 아내가 차지했으며 아이도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친척들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으며 친구들도 그를 비웃었다. 그가 거리를 떠도는 것을 안 어느 동수가 그를 도와 집을 빌려주었다. 이렇게 힘든 상황임에도 그는 대법을 포기하지 않았고 여전히 견정하게 전진했으니 이 얼마나 감동적인가!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를 방할할 수 있는가?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나는 그처럼 할 수 있는가? 여기까지 생각하자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잘못을 인정하고 그에게 참회하고 용서를 구했다. 발정념을 할 때 다른 공간에서 그를 박해하는 사악한 요소를 제거했고 나는 마음속에 그에 대해 겸손하고 경앙(敬仰)이 올라왔고 그가 아주 크게 느껴졌으며 존경하고 탄복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만 동수를 소중히 여기고 양해하며 도와줄 수 있다. 나는 예전에 겸손한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남의 단점을 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동수와 함께 있을 때 누군가 다른 사람을 논하면 덩달아서 말하곤 했.
“음 그 사람은 별로예요.”
가족이 누가 좋지 않다고 말하면 나는 덩달아서 말했다.
“음, 그 사람은 누구만큼 좋지는 않아.”
자신을 낮게 놓은 후 나는 감히 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배후에서 남을 의론하는 것은 비록 그 사람이 눈앞에 없더라도 마찬가지로 덕을 잃고 업을 짓는 것이다.
전에 나는 돋보이는 일을 하려 했는데 가령 자료점에 돈이 부족하거나 어느 동수가 유리실소(流離失所)한다는 말을 듣거나, 누군가 곤경에 처해 있다는 말을 들으면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다. 하지만 눈에 띄지 않거나, 힘만 들고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남들이 하려고 하지 않는 일은 관여하기 싫었다. 사실 그것이 바로 수련이고, 그것이 바로 경계다. 좋은 일을 하고서도 말하지 않아야만 대단한 것으로 신(神)이 중시하는데 조용히 해야 넓고 커질 수 있고 겸손해야 사람을 사랑하고 존경할 수 있다. 말하지 않고도 선한 일을 해야 위대해질 수 있고, 겸손해야 마음이 넓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겸손하게 했다면 신(神)은 당신에게 그렇게 할 것이다. 일사일념을 바로잡는데 습관이 되어야만 수련에 소질이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과거에 나는 많은 유감스런 일을 했는데 자아가 강했기 때문이다. 마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 말하는 태도마저도 다르다.”(《전법륜》)
한번은 내가 동수를 도와 그에게 컴퓨터를 보내고 정진하라고 격려하며 늘 그의 상태를 물어보곤 했다. 나중에 보니 그는 휴대폰에 중독이 되었고 쟁투심이 강했으며 연공을 견지하지 못했고 남과 논쟁하는 등 수련이 아주 형편없었다. 나는 여러 번 그를 꾸짖고, 훈계하고 방할했다. 지금 이 일을 생각해 보면 후회막심인데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를 야단치는가? 나는 얼마나 자사(自私)했는가? 누구나 다 쉽지 않고 누구나 다 잘 수련하고 싶은데 모두 사부님을 따라 집에 돌아가고 싶어하며 누구나 다 고민이 있다. 동수를 도우려면 따스하게 격려하며 남을 양해하고 거만한 태도를 취하지 말아야 하며, 자신과 똑같이 보지 말고 상대방의 단점에 초점을 맞추지 말아야 한다.
이를 인식한 후 나는 마음속으로 그에게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당신에게 다년간 상처를 줬네요. 용서하세요. 반드시 고치겠습니다.”
참회한 후 내 마음이 변한 것을 느꼈는데 자신을 뛰어넘는 것 같았다. 비록 작은 일이지만 참회하고 나니 마음이 넓어진 것을 느꼈다. 내가 느끼기에 마음 닦음은 얼마나 중요한가! 언제 어디서나 늘 닦을 것이 있다. 인터넷 접속이 차단된 기간에 나도 며칠 동안 인터넷에 접속했는데, 나중에 들으니 내가 보기에 좀 얌전하고 겁이 많은 사람조차 몇 차례나 쉽게 접속했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좀 불편했고 “그가 어째서 나보다 나은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곧 이는 질투임을 깨달았고 즉시 제거했다! 누가 나보다 수련을 잘했다면 나는 더욱 기뻐해야 옳지 않은가!
고향에 혼자 수련하는 친척 동수가 있는데 전에 내가 그를 도와준 적이 있다. 또 늘 그를 그리워하며 만날 때마다 첫마디는 “어때요? 무슨 물어볼 문제가 있나요?”라고 했다. 나는 내가 다년간 그의 희망이자 후원자로 여겼는데 수년 동안 나는 이런 오만함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아내는 나에게 간접적으로 찬물을 끼얹어 내가 자기 집에 오는 것을 환영하지 않았다. 나는 맹렬히 각성했고 너무 부끄러웠다. 사실 그는 수련이 그리 차(差)하지 않다. 내가 겸손한 마음이 없어서 자신을 높이 놓고 그의 장점을 보지 못한 것이다. 나는 그에게 내 잘못을 마음속으로 인정하는 동시에 정(情)을 내려놓았다. 그 며칠 나는 머리의 에너지가 아주 강하고 머리가 팽창하는 것을 느꼈다.
예전에 나는 나에 대한 남들의 태도에 몹시 신경을 써서 또래나 후배를 만날 때 상대방이 먼저 인사하지 않으면 기분이 나쁘고 소외감을 느꼈다. 또 만약 연회에서 누가 나를 무시하거나 나를 피하면 체면이 말이 아니고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상대에게 무슨 잘못을 한 적이 있는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겸손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갖고 대하게 되자 이런 일에 마음을 쓰지 않게 되었다. 남에게 겸손해지자 마음도 활달해졌고 더는 이런 세속적인 일들에 흥미를 잃었다.
나는 전에 그들에게 많은 도움을 준 친척과 친구들이 은혜를 모른다며 원망하고 때로 또 험담하면서 속으로 불평했으며 그들에 대해 감정이 좀 상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들을 귀인(貴人)으로 여기는데 내가 누구를 도와준 것은 잊고 누가 나를 도와주면 기억한다. 그들을 소중히 여기고 그들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며칠 동안 내가 상처를 준 친척과 친구들에게 속으로 참회하고 일일이 사과하며 내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청했다. 내가 이렇게 한 것을 그들은 비록 모르지만 나는 자신이 커진 것을 느낀다. 이는 마치 교회에 가서 고해하는 것과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일부 작은 일에서 일사일념(一思一念)에서 방심하지 말아야 하는데 대학 졸업 학점은 아주 중요하다. 떨어져 내려온 나한이 기뻐하고 두려워하는 일념(一念)의 의미가 무엇인지 똑똑히 알았다면 아마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 마음, 사람 생각은 중량이 있는 것으로 더 순정할수록 미시적인 공간을 더 크게 돌파한다.
최근에 가부좌를 하는데 다리가 아파서 조용해질 수 없었고 몹시 괴로웠다. 자신이 차(差)하고 쓸모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는 생각이 다른데 지금 필요한 것은 업력을 전화해 공이 자라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리가 아픈 것은 좋은 일이니 마땅히 기뻐해야 하지 않는가? 조용해지지 못한다고 조급해하지 말아야 한다. 대법은 미시적인 곳에서 표면으로 닦는 것으로 미시적인 그곳은 분명 조용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나를 구도할 신심(信心)이 있으신데 내가 또 앞뒤를 걱정할 필요가 있겠는가? 무엇을 생각하든 다 사(私)니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고 유감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
친척 중에 성실하지만 참지 못하고 외모가 좀 별로인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인색하고 내 덕을 많이 보았다. 나는 전에 그를 업신여기고 또 여러 번 혼냈다. 내 창고가 그의 창고 옆에 있는데, 한번은 그의 창고에 비가 새자 내게 와서 물었다.
“어떻게 보세요?“
말 밖의 뜻은 나더러 수리비를 지불 하라는 의미였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 일이네 왜 나를 찾는가?’
나는 “상관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날 밤 사부님께서 꿈에서 내게 힌트를 주셨다. 머리에 철사가 감겨 있는 작은 뱀이 구멍 속으로 쪼그라드는 것이었다. 나는 뱀(蛇)은 버림(捨 역주: 발음이 비슷하다)이고 철사(鐵絲)는 사(私 역주: 絲는 私와 발음이 같다)이니 마땅히 사를 버리고 그를 도와야 함을 깨달았다.
다음날 내가 그에게 말했다.
“내가 방수재료를 사줄 테니 작업은 당신이 하세요. 할 수 있죠?” 그는 몹시 기뻐했다. 과거에 나는 그를 미워하고, 경멸하고, 원망했는데 이 얼마나 불선(不善)하고 많은 업을 지었겠는가! 사부님의 점화 덕분에 나는 과거의 잘못을 만회하고 원연(怨緣 억울한 인연)을 선해(善解)할 수 있었다. 이 일을 마치고 나니 마음이 아주 밝아졌고, 동시에 전에 상처를 준 것에 대해 그에게 용서해 달라고 마음속으로 사과했다.
그 후 나는 또 다른 꿈을 꾸었다. 화장실에 가서 대변을 많이 봤고 물을 내렸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 좋은 곳으로 간다면서 즐겁게 작별 인사를 했다. 나는 자신이 제고한 후에 단지 그를 구했을 뿐만 아니라 미시적으로 아주 많은 중생을 구도했음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 이 사람은 한 가지 습관이 있어, 나에게 한 장(丈)이 있으면 나는 한 자[尺]라고 말하는데, 당신은 내가 허풍을 떤다고 해도 좋다. 사실 이것은 조금만 말했을 뿐이며, 더욱 높고 깊은 대법(大法)은 층차가 너무나도 차이 나므로, 나는 전혀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말해 줄 수 없다.”(《전법륜》)
나는 《전법륜》을 약 천 번 정도 읽었는데 사부님께서 ‘한 자’라고 말씀하신 것은 내가 이해하기에 내가 아무리 많은 법을 얻고 아무리 많이 제고했더라도 늘 ‘한 자’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대법 앞에서 나는 너무나도 낮아서 아이와 같다. 아이보다 더 작은 아이다. 겸손과 경건, 공경하며 자아가 없어야만 신속하게 성숙할 수 있고 신의 중시를 받을 수 있다. 사부님과 대법이 없다면 나는 바로 구우주에서 멸(滅)할 생명이다. 그러니 겸손하게 대법을 수련하고 경건하게 중생을 구도하며 겸손하게 동수들과 일체를 대해야만 신우주로 진입할 수 있고 이것이 바로 사부님께서 바라시는 것이다.
작은 깨달음으로 자신을 일깨우며 격려하고자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00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