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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은 ‘매직거울’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다른 많은 집착심들에 비해 오만(傲慢)은 더욱 은폐되어 있고 교활해서 식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우리가 사람에 대해 선입견을 가질 때 흔히 그것이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한다고 느끼지만 사실 많은 때 오만에서 생긴 편견이다. 단지 자신이 이를 깨닫지 못할 따름이다.

오만은 마치 ‘매직거울’처럼 보는 것을 심각하게 왜곡시켜 ‘진상(真相)’에서 벗어나게 한다.

오만은 단점을 확대

나는 전에 동수 갑(甲)에 대해 선입견이 있었다. 그녀는 고집이 세고, 생각이 거칠며, 남을 이해하지 못하고, 당 문화가 있으며, 남을 가르치길 좋아하고, 남에게 강요하며, 과장한다는 등의 느낌을 받았다. 나는 이런 것들은 다 사실에 근거한 것이고 그녀 자신도 아주 많은 것들을 인정했기에 그녀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진 않았다고 여겼다. 아울러 많은 동수들도 공감했다. 나는 종종 그녀에게서 이런 문제들을 발견했고, 여러 해가 지났음에도 그녀는 이런 문제들을 고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나의 오만심(傲慢心)이 점차 약해짐에 따라 갑에 대한 나의 견해도 변하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그녀의 많은 장점을 볼 수 있었다. 가령 부지런하고, 집안일을 잘하며, 현대 관념이 없고, 허영심이 없는 등등. 게다가 이런 것들은 내게는 없는 장점들이다. 이런 견해는 자연스럽게 과거의 부면(負面) 견해를 쇄신시켰다.

나는 과거에 그녀에게서 보았던 문제들이 확실히 존재함을 알았지만 나중에는 그리 중시하지 않게 되었고 아울러 담담히 보게 되었고 그녀의 장점을 보다 중시했다. 이를 통해 나는 그녀에 대해 일종의 탄복, 공경, 존중, 이해하게 되었다. 이때 나는 지금의 관점이 맞고 과거의 관점이 틀린 것을 알았다.

나는 또 동수 을(乙)의 상태가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나빠지는 것을 느꼈는데 어쨌든 나는 을에 대해 ‘상태가 차하다’는 고정 관념을 가졌다. 이날 문득 생각해 보니 나는 마땅히 그녀가 정말 이러한지 새로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을에게도 많은 장점들이 있었다. 가령 그녀는 나보다 아이들을 더 잘 이해하고 포용하며, 선(善)과 인(忍)도 더 잘한다. 나는 또 전에 그녀가 공유해준 ‘어떻게 안으로 찾을 것인가’ 하는 방면에서 계발을 얻은 적이 있고 그녀는 아주 많은 시간을 세 가지 일에 투입한다. 이렇게 하나하나 생각해 보니 그녀에게는 내게는 없는 존중받을 만한 많은 장점들이 있음을 발견했다.

나의 오만심이 약해진 후 나는 많은 동수들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모두 새롭게 변했는데 장점을 더 중시하고 단점은 더 담담히 볼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 나는 지혜가 너무 부족해서 오만에 심지(心智)가 가로막혀 남을 공경하게 대하지 못했다. 사실은 자신의 손실이며 공자가 말한 것처럼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는 공손한 태도로 남의 장점을 배울 수 없었다.

오만을 표현하는 말 중에 ‘안하무인’이 있는데 아주 적절한 표현이라고 본다. 사실 내 눈으로 남의 장점을 보지 못하는 것으로 자신을 높이고 남을 내려다본다는 뜻이니 경솔하고 교만한 심태하에 있는 것이다.

오만은 ‘잔인함’을 초래한다

나는 또한 사부님께서는 모든 동수들의 문제를 꿰뚫어 보실 수 있지만 그들을 자비롭게 대하시는 반면, 구세력 역시 신(神)이라 동수들의 문제를 꿰뚫어 볼 수 있지만 심태가 ‘잔인함(狠)’을 깨달았다.

법에서 내가 이해한 것은, 구세력은 동수의 문제에 대해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박해를 가해 쳐내려 한다. 구세력은 일종 오만한 심태를 지녔는데 자신들이 신이라 여기기에 동수가 저지른 것들을 모두 저급한 잘못이고 너무 차(差)해서 근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여긴다.

나 자신에 대응해보면, 과거에 나 역시 다른 사람의 문제를 발견하면 확실히 일종 무시하는 심태가 있었고 늘 자신의 장점으로 남의 문제를 대조했으니 구세력과 확실히 똑같았다. 사실은 바로 구세력이 배치한 일종의 염두였다.

오만이 약해진 후, 나는 또 발견했는데 동수들이 각종 문제를 보아도 기본적으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심태로 변했고 어떤 문제라도 저급한 잘못이라 여기지 않았으며 자신이 상대방을 내려다볼 그 어떤 자격이 있다고 여기지도 않게 되었다. 필경 말후(末後)의 생명이라 내 문제 역시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무슨 자격으로 내가 남보다 조금 나은 방면에서 남을 혐오할 수 있겠는가? 이는 ‘오십보백보’가 아닌가?

나는 자신이 가진 매 하나의 문제 배후에는 다 고통(苦)이 있음을 깊이 깨달았다. 일부는 인식했어도 여러 해가 지나도 고치지 못했고, 일부는 지금 당장 또는 미래의 고통을 초래했다. 그러나 모든 집착심을 나도 기본적으로 다 갖고 있는데 일부는 이미 점차 쇠약해졌고 일부는 아직도 아주 심각하다. 그러므로 나는 정말로 그 어떤 동수의 그 어떤 집착이라도 무시할 자격이 없다. 이렇게 생각해야만 마음으로 이해하고 입장을 바꿔 생각할 수 있으며 상대 입장에 설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또 구세력이 배치한 사람들이 서로 각자의 약점을 미워하고 서로 불복하며 걸핏하면 누가 누구를 무시하는 등의 배치를 타파할 수 있다.

결론

많은 동수들이 오만이란 화제를 교류했는데, 오만은 사실 일종 마귀(魔鬼)의 심태로 홀시하기 쉽지만 그 피해는 결코 작지 않다.

나는 오만은 또 ‘자심생마(自心生魔)’의 온상임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자심생마’는 “내가 남보다 낫다고 여기는” 이런 염두에서 시작되기 때문인데 이게 바로 오만이다. ‘자심생마’하면 왜 바닥까지 떨어지는가? 개인적으로 이해하기에, 아마 오만이 ‘매직거울’처럼 작용해 사물을 볼 때 진실을 심하게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은 오히려 자신이 본 게 진실하다고 여긴다. 마음이 이미 모종의 마환(魔幻)의 장면에 들어갔기 때문에 벗어나기가 아주 어렵다.

이렇게 보면, 마음을 낮추고, 수시로 관점을 조정해서, 늘 겸손해야 하며 나라는 이 생명은 먼지만큼 보잘것없고 우주 중에서 극히 미미한 존재임을 명심하면서 늘 사람에 대한 공경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이점은 대단히 중요한데 이렇게 하면 사물을 왜곡시켜 보는 것을 피할 수 있고 남의 장점을 배울 수 있으며 또한 망념(妄念)이 팽창해서 오만방자해지는 위험한 심태에 도달하지 않을 수 있다.

개인의 깨달음으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09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