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대법제자
【정견망】
사부님께서는 《로스앤젤레스 시 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당신들이 한 그 일체를 나는 다 보았고 또 정말 대단하지만 가장 근본적으로, 가장 본질적으로 한 사람이 수련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증명하자면,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하게 하는 이것은 반드시 제거해 버려야 한다. 당신이 어느 방면에서나 다 잘했더라도 이 방면에서 좋지 않다면, 그건 수련인일 수 없다. 과거에 그 수련인은 올라오자마자 먼저 이 방면부터 하였고, 이는 또한 제자를 선택하는 조건이었다.”
나는 줄곧 심각할 정도로 “남이 말하지 못하게 하는” 문제가 있어서, 늘 남들이 뭐라 할 수 있는 잘못이나 체면을 잃는 일 등을 은폐해 사람들이 나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구실을 제거하곤 했다. 또 만약 남이 나를 말하기만 하면 늘 해명하고 반박하거나 논쟁했는데 어쨌든 자신이 옳고 도리가 있으며 사연이 있는 것이지 자신은 잘못이 없음을 증명하려 했다.
최근에 들어와서야 나는 이것이 심각한 문제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처음으로 이 문제에 직면해 자신을 감추지 않거나 덜 감추는 것부터 시작했고, 남의 지적을 받은 후 해명하거나 논쟁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했다. 일단 시작한 후 나는 점차 수련은 반드시 이 방면에서 닦아야 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수련인은 남이 지적하는 것과 남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고 남에게 푸대접 당하며, 자극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이 자체가 바로 수련의 일부이고,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소업(消業)이자 제고이고 공이 자라는 일환이자 하늘로 돌아가는 하나하나의 계단이다. 이런 계단을 허물고 어찌 하늘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는 《전법륜》 제3강에서 말씀하셨다.
“우리 예를 들어 말해 보자. 당신의 금후 인생행로 중의 각종 업력(業力)을 모두 집중시켜 그것의 일부분을 없애버리는데, 절반을 없애버린다. 나머지 절반도 당신은 넘지 못하는데, 산보다도 더 높다. 어떻게 하는가? 당신이 도를 얻을 때, 아마 장래에 많은 사람이 모두 이득을 볼 것이다. 이리하여 많은 사람이 당신을 대신하여 한 몫씩 감당한다. 물론 그들로 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또한 당신 자신이 연련(演煉)해 낸 많은 생명체가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신 자신의 主元神(주왠선)ㆍ副元神(푸왠선)을 제외하고도 또 많은 당신이 있으므로 모두 당신을 대신하여 한 몫씩 감당한다. 당신이 겁난(劫難)을 지날 때는 얼마 남지 않게 된다.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 역시 상당히 커서 당신은 여전히 넘지 못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가? 그것을 무수한 여러 몫으로 나누어 당신이 수련하는 각개 층차 중에 배치해 놓고, 그것을 이용하여 당신의 心性(씬씽)을 제고하게 하고, 당신의 업력(業力)을 전화(轉化)하여 당신의 공을 자라게 한다.”
개인적으로 이해하기에 이 단락 법에서 언급하신 “무수한 여러 몫” 업력의 대부분은 사람들과의 모순을 통해 제거되는데, 이는 수련에 없어선 안 될 부분이자 사부님 자비의 체현이다. 이런 종류의 난(難)을 감당하는 것은 사실 심성을 제고하기만 하면 넘길 수 있는 것으로 구세력이 억지로 가하는 박해나 거난(巨難)이 아니다. 만약 이런 난을 “남이 말하지 못하게 하는” 집착으로 밀어벌리고, 자신이 굴욕이나 억울한 일을 적게 당하고 싶어한다면, 그럼 어떻게 소업할 수 있겠는가?
나는 또 비교적 정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격이 아주 강경한 일부 동수들 중 어떤 이들이 병업마난을 겪은 것을 발견했다. 물론 우리는 구세력의 박해를 승인하지 않는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우리는 사존의 법(法)에 따라 자신을 바로 잡아야 하며 “남이 말하지 못하게 하는” 문제를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일부 성격이 강한 동수들 중 다수가 “남이 말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발견했는데, 다른 사람이 자신과 다른 의견을 표현하면 싫어하고, 어떤 사람은 곧 원망하며, 어떤 사람은 쉽게 충격을 받거나 화를 내며, 어떤 사람은 성질을 부리거나 성격이 좋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만약 자신이 생생세세 쌓은 업채(業債)를 모두 한 사람 한 사람 나를 지적하는 모순을 통해 하나하나 줄일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자비롭게 업을 갚는 방식이 있겠는가?
최근 대법 사이트에서 일부 소제자들의 수련 이야기를 읽고 감수가 아주 컸다. 어떤 소제자는 반 친구들에게 이유 없는 괴롭힘을 당하고, 매를 맞거나 욕을 먹어도 늘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고 상대방과 견식이 달랐으며 마음속으로 또 “고맙다”고 했다. 이는 수련의 가장 기본적인 ‘기본기’가 아닌가? 본래 수련을 시작할 때부터 마땅히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작은 체험이니 부당한 곳이 있으면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3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