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난과 고험에 대한 작은 인식
경심(耕心)
【정견망】
최근 법난교류에 관한 여러 문장들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는데, 문장에서 제출한 일부 법(法)에서 벗어난 표현과 대조해 보니 나 역시 많은 누락이 있음을 발견했다. 자신의 일사일념(一思一念) 및 배후의 심층 요소를 살펴보니 원래 법의 표준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작년 상반기에 처음 매체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비록 이것이 구세력 악령(惡靈)이 틈을 타고 박해하는 것임을 알았음에도, 매체 주요 책임자를 비난하고 원망하는 생각이 더 컸고 심지어 이번에 좀 방할(棒喝)해서 마땅히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했다. 때문에 당시 나의 태도는 냉담과 방관이었다. 사부님의 《법난》이 발표되었을 때 나는 여전히 완전히 청성하지 못했다. 원한심(怨恨心)이 내 심지(心智)를 가렸기 때문에 사부님의 법을 단편적으로만 이해했다. “현재 대법제자가 운영하는 매체에서 나타난 문제는 주로는 수련생 스스로 잘하지 못해 조성된 것이지만 인류 배후 다른 공간의 요소도 있다.”(《법난》)
자신의 집착(원한심, 냉담과 방관)에 대한 구실을 찾았다.
사실 나는 매체에 종사하지 않기 때문에 매체의 실제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모르면서 단지 가끔씩 부면(負面)적인 뉴스를 우연히 들을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부면적인 인식이 생겨 원망심이 형성되었고 이런 집착심에 이끌려 이지(理智)를 상실하고 대법 항목이 사악의 의도적인 박해를 받고 있음에도 무관심했고 또한 보려하지 않거나 심지어 이런 박해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또 미래에 어떤 큰 파장을 일으킬지 보려하지 않았다.
나는 안으로 찾아 뿌리를 파보았다. 나는 왜 이렇게 강한 원망심을 느끼는 걸까? 사부님께서는 《경지》에서 말씀하셨다.
“악자(惡者)는 질투심의 소치로 자신을 위하고, 화를 내며, 불공평하다고 한다. 선자(善者)는 늘 慈悲心(츠뻬이씬)이 있어, 원망도 증오도 없이,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 각자(覺者)는 집착심이 없으며 세인들이 환각(幻)에 미혹됨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자세히 생각해 보니 나는 미워하는 마음을 여전히 닦아버리지 못했고 위사(爲私)하고 화내는 마음이 여전히 아주 무거웠다. 비록 나는 매체 협조인을 모르지만 그들에 관한 일부 부면 소식을 들을 때마다 곧 심하게 화가 났고, 그들이 항목에 부면적인 영향을 끼쳤고, 그들의 자아가 팽창했다고 여기면서 화가 나서 그들을 한 방 때려야만 분이 풀릴 것 같았다.
이런 심리는 구세력 구우주(舊宇宙)의 생명과 아주 비슷한데 그것들은 대법제자의 그 어떤 집착이나 이지적이지 못한 행동을 보면 늘 몹시 분노하며 “당신 이런 사람이 대법제자가 될 자격이 있는가? 우주 중생의 미래를 당신들에게 맡기면 어찌 되겠는가? 설마 아직도 당신을 손보지 않으면 안된단 말인가?”라고 여기며 이에 몽둥이로 치는데 당신이 참아내면 당신이 대단하다고 치지만 참아내지 못하면 그럼 때려 죽이면 그만이다. 그것들은 차라리 동귀어진(同歸於盡)할지언정 이 모든 것을 훼멸할지라도 당신을 놓아 주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구우주 생명의 악(惡)인데, 그것들이 가장 잘하는 수단은 바로 악(惡)으로 악을 다스리는 것이다. 어찌 일체를 선해(善解)하는가? 그것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악(惡)의 근원이 바로 사(私)이며 이 역시 구우주 생명이 구우주 ‘성주괴멸(成住壞滅)’ 법칙에서 해탈하지 못하게 한 숙명이다.
이런 ‘사’가 표현되어 나온 것이 악(惡)인데 부동한 층차에 부동한 반영이 있다. 사부님께서는 《2004년 뉴욕 국제법회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장래의 생명은 모두 타인을 위하는 것이다. 과거의 생명은 자신을 위하였다. (박수) 어떤 생명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생명을 상관하지 않는데, 이것이 세간에서 표현되는 것 역시 적나라하다. 어떤 세인은 자신의 체면을 위해 어떻게 타인을 해치든 상관하지 않으며, 전혀 타인을 고려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이 사(私)를 표현하는 것이 아주 악하고, 어떤 사람은 전문적으로 사람을 괴롭히며 언제나 타인을 얕잡아 본다. 그에게 이러한 권리를 준 사람이 없다. 당신들은 이렇게 해서는 안 되며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은 모두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사부님께서는 또 《북미 대호수지구법회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얼마나 사악한가! 그러나 발생한 이 일체 사악을 방대한 우주 중의 층층 생명인 그들로서도 감지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일체 생명은 모두 변이중에 있기 때문이다.”
지난 6개월 동안 법난에 대한 자신의 태도와 표현을 보자면 사부님의 설법과 비교했을 때, 나와 대응한 우주체계(宇宙體系) 중 아직 아주 많은 곳이 대법(大法)에 의해 바로 잡히지 않은 구우주(舊宇宙)의 생명들이 있어서, 그것들이 사(私)를 위하고 분을 풀기 위해 악(惡)을 한다. 그러나 변이된 후의 생명은 오히려 자신이 변이되어 패괴(敗壞)했음을 모르거나 심지어 자신이 법(法)을 위해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게다가 대법을 원만하기 위해 이미 최선을 다했다고 여긴다. 이것이 바로 구우주 생명의 비참하고 가련한 처지인데 가장 어리석고 가장 나쁜 짓을 하면서도 자신은 모른다.
누가 구세력인가? 구세력은 어디에 숨어 있는가? 나는 전반 우주대궁(宇宙大穹)을 대법제자들이 나눠 감당하고 있다고 보는데 매 대법제자와 대응하는 대우주(大宇宙) 천체 중에는 또 법에 동화하지 않은 그런 부분의 생명이 있으니 바로 구우주의 생명이다. 그중 20%가 비교적 활동적이고 계통적으로 정법(正法)에 참여한 구세력이고, 나머지 관망하는 것들은 비록 움직이진 않았지만 여전히 모두 불순(不純)해졌고 많은 때 표현이 마비되거나 냉담하거나 또는 적당히 한다. 수많은 세인(世人)들의 표현과 극히 비슷하다. 중공사당(中共邪黨) 및 그 추종자들은 직접 또는 명확하거나 비밀리에 대법을 파괴하는데 참여한 사람이니 바로 인간 세상에서 구세력의 반영이다.
대법제자로서 주의식(主意識)이 강해야 하며 마음이 반드시 올발라야 하는데 수련 성취한 일면이 다른 공간에서 정념으로 악을 제거하든, 아니면 표면 주체 사람의 일면이 세간에서 진상을 알리고 반박해하든 늘 마땅히 사부님 말씀에 따라 “이지(理智)로 법을 실증하고, 지혜로 진상(真相)을 똑바로 알리며, 慈悲(츠뻬이)로 홍법(洪法)하고 세인을 구도”(《정진요지 2》〈이성〉)해야 한다.
주의식이 강하지 않으면 구세력의 교란을 받기 쉬운데 표현되는 것은 졸거나, 딴짓하거나, 나태하거나, 소침하거나, 잡념과 사념(邪念)이 많은 등이다. 아울러 구세력은 또 구세력에 대응하는 다른 사람들과 안팎에서 결탁하기에 자신이 잘하지 못하면 단지 자신을 해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해치게 되니 죄업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주의식이 강하고 길을 바르게 걷는 근본 보장은 바로 진지한 법공부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악독하고 파괴적인 검증 중에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나는 사전에 모두 설법 중에서 당신들에게 말해 주었다. 진정으로 착실하게 수련하지 못한 사람은 넘기가 몹시 어렵다. 이제 여러분들도 내가 왜 당신들에게 책을 많이 보라고 했는지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히 할 수 있다.”(《정진요지 2》〈교란을 배제하자〉)
법난은 고험이며, 정법은 반드시 성취된다! 사부님께서는 《법난》에서 말씀하셨다.
“대법제자가 사부를 따라 중생을 구도하는 이것은 역사의 필연이고, 또 당신들이 사전에 한 서약이며, 더욱이 우주 창립 이래 있어 본 적이 없는 위대하고도 신성한 영예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어렵고도 험악하다.”
“법난 중에서 또 최후에 남겨질 생명과 도태될 생명을 선택하고 있는데, 또한 대법제자 중에 될 수 있고 될 수 없는 사람을 포함한다.”
얕은 견해이니 잘못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4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