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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천에 관한 작은 인식

중국 대법제자 청천(清泉)

【정견망】

병업(病業) 등 부정확한 상태가 나타난 일부 동수들을 겨냥해 대부분의 동수들은 모두 법(法)에서 이성적으로 인식하고, 심성을 제고해, 안으로 찾으며,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할 수 있다. 이 글은 공(功)의 각도에서 이 문제를 한번 말해보고자 한다. 개인 인식이니 부족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주천(周天)’을 말씀하셨는데 전에 이 단락에서 말씀하신 수련계(修煉界) 특유의 일부 기공 명사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고 또 마치 심성 제고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여겼다. 때로는 대주천이 통하면 아주 현묘할 것 같았고 때로는 동수와 희희낙락하며 “내가 운반공을 사용해서 어느 물건을 찾았다”고 했는데 이것이 이전에 주천에 대한 나의 이해였다.

오늘 정법의 각도에서 사부님의 《전법륜》에서 ‘주천’ 단락을 깊이 공부한 후 활연히 주천이란 절에 보다 깊은 내함(內涵)이 담겨 있음을 발견했다.

사부님께서는 처음부터 직접 우리에게 파룬따파(法輪大法)의 주천을 언급하지 않으셨고 우선 도가(道家)에서는 주천이 무엇이고 불교에서는 주천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며 선정(禪定)에서의 주천은 어떠하고, 또 대소주천(大小周天)을 말씀하셨다. 또한 이들 법문(法門)에서 주천이 통하는 과정을 말씀하셨지만 우리 파룬따파의 주천에 대해서는 오히려 아주 정확히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렇다면 우리 파룬따파의 주천은 어떠한가?

“4. 파룬쩌우텐파(法輪周天法) 공리(功理) ― 이 법은 인체의 에너지를 폭넓게 유동시키는 것으로서, 어느 한 갈래 혹은 몇 갈래 맥(脈)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인체의 음면(陰面) 전체에서 양면(陽面)으로, 끊임없이 왕복 순환하기에 일반적인 통맥법이나 또는 대·소주천을 훨씬 넘어섰다.”(《파룬궁》)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의 수련은 일맥이 백맥을 이끄는 이런 형식을 피하여, 시작부터 백맥을 이끌어 동시에 열며, 백맥을 동시에 운행할 것을 요구한다.”(《전법륜》)

법(法)에서 나는 불가든 도가든 과거의 모든 수련 방법은 모두 일맥(一脈)이 백맥(百脈)을 이끌고, 단도(丹道)로 가며 또한 모두 부원신(副元神) 수련임을 안다. 우리가 생생세세(生生世世) 오늘까지 윤회전생하면서 얼마다 많은 배역을 맡았는지 자신조차 기억할 수 없지만 대법을 얻기 위해 우리 아주 많은 수련인들은 다 수련의 역사와 기억을 지니고 있고 이런 문화를 다졌으며 아마 일찍이 도(道)를 수련했거나 또는 부처 수련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생생세세 얼마나 많은 법문(法門) 중의 사부를 거쳤고 신체 속에 또 얼마나 많은 그 한 법문의 사부가 준 ‘기제(機制)’가 있겠는가. 이런 ‘기제’들은 과거 수련 중에서 우리가 오늘 법을 얻기 위한 기초를 다지고 바탕을 다져주었다. 하지만 오늘날 정법(正法) 수련 중에서 만약 우리가 법에서 그것들을 구별하지 못하고 그것들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것들은 곧 우리가 고층차로 돌파하는데 장애와 저지가 되거나 심지어 우리 신체가 고에너지 물질로 전화(轉化)하는 것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중생 구도와 조사정법(助師正法)을 교란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다른 법문 중의 공(功)의 형식은 주천을 포함해, 모종의 의미에서 우리에게 오늘날 정법 수련을 위한 감별을 제공하는 동시에 그런 법문 중의 법을 바로잡는 것임을 깨달았다.

“정법(正法)은 바로 우주 과거의 바르지 못한 법을 바로잡는 것으로, 그중에는 우주 중의 일체 고층생명과 저층생명을 포괄하는데, 물론 그들이 부동한 층차에 남겨 놓은 법과 사람에게 전한 수련하는 법까지 포괄한다.”(《정진요지 3》〈길을 바르게 걷자〉)

오늘날 우리 수련 중에 나타난 각양각색의 부정확한 상태는 과거 수련 방식 및 방법을 인정한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한 대법제자가 잠재의식 속에 여전히 “일맥이 백맥을 이끄는 것”을 인정한다면 또는 대소주천과 우리의 법륜주천법을 구별하지 못한다면, 이런 법리의 부족이 우리의 신체를 전화(轉化)하는데 영향을 줄 수 있지 않겠는가? 구(舊) 기제가 우리 신체에서 작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오래 지나면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걷는 게 아닌가? 마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당신이 어느 한 문의 종교 중에서 수련한 것이 아무리 좋을지라도, 당신은 그 해에 불타(佛陀) 혹은 예수가 당신에게 가르친 것에 절대적으로 따라 수련한 것이다. 아무리 높이 수련하더라도 단지 그 해 석가와 예수가 전한 그 최고의 이치에 도달할 수 있을 뿐으로, 다만 16K금, 18K금인데, 당신이 그래도 이 족금의 세계 속으로 돌아갈 수 있단 말인가?”(《북미 제1기법회 설법》)

신우주(新宇宙)는 절대적으로 순정하고 아름다운데, 만약 우리 공(功) 속에 약간의 불순한 것이 있다면 신우주로 가져갈 수 없다. 그럼 이 공간에서 이런 불순함이 표현되는 것이 신체적으로 나타나는 각종 부정확한 상태가 아니겠는가?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우리는, 한편으로는 법에 대한 인식을 제고해 과거 수련의 사상 의식과 구 관념을 구별해 그런 과거 수련의 기제를 배척하고 부정하는 동시에, 아직도 대법제자 수련을 배치하는데 참여한 구신(舊神)에게 대법과 대법제자와의 관계를 바로잡고 정법(正法)에 부면(負面) 작용을 일으키지 말아야 하며, 대법에 동화해 신우주로 들어가는 것만이 당신들과 당신들에게 무한한 희망을 기탁한 천체 중생들의 진정한 희망이라고 알려주어야 한다.

개인의 작은 인식으로 층차에 한계가 있으니 여러분들의 포용과 지적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45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