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북(河北) 대법제자
【정견망】
오늘 사부님의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을 공부하는데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럼 여러분 생각해 보라. 우리 수련생들로 말하면, 내가 당초에 당신들을 지옥에서 건져온 것과 같다. (박수) 나는 정말로 당신들을 대신하여 당신들이 저지른 천백 년의 죄를 감당했다. 단지 이러한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나는 이로써 또 당신들을 제도하여 신(神)으로 성취되게 하려고 했다. 이러한 과정 중에서 나는 당신들을 위해 온갖 고심을 했으며, 동시에 당신들이 그처럼 높은 신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나는 당신들에게 그처럼 높은 신의 영예와 당신들에게 그처럼 높은 층차에서 갖춰야 할 일체 복을 주려고 한다. (박수) 천지개벽 이래 어떠한 신도 감히 이렇게 하지 못했고, 또한 지금까지 이러한 일이 있어본 적이 없다.”
“당신들은 아는가? 구세력의 일체 생명은 나에 대해 탄복하기가 그야말로 오체투지(五體投地)이다!(박수) 비록 그것들이 나의 정법에 일부 장애를 만들기는 했으나 그것들은 오히려 여태껏 직접 나에게 무슨 나쁜 짓을 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나를 존경하기 때문이다.”
지금 형세에 비추어 보고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잔존한 구세력과 사령(邪靈)이 감히 우리 사부님께 어떠어떠하게 하다니 이는 우리 대법제자 단체(團體)의 경사경법(敬師敬法)에 문제가 나타난 것은 아닌가? 사악이 틈을 타게 한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2002년 필라델피아 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내가 말하는데, 실제로 속인사회에서, 오늘날에 발생된 일체 일들이 모두 대법제자들의 마음에 의해서 촉성(促成)된 것이다.”
1999년 사악한 당이 대법제자들을 박해하기 시작했을 때 대법 서적을 불태운 것은 당시 수련생들과 속인이 법을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왜 책을 태우려고 하는가? 그 때에 『전법륜』 책이 많기로 중국대륙 어디에나 다 있었다. 많은 수련생은 존경할 줄 몰랐고 속인들은 더욱 그러했다. 신(神)은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우주를 만든 천법(天法)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것들 구세력은 책을 매우 부족하게 하려 했고, 사람들로 하여금 이때부터 법을 찾고 그를 존경하고 이 법의 소중함을 알게 하려고 했다. 그것들은 당초에 이런 구실로 이 일을 한 것이다.”
우리 대법제자 단체를 돌아볼 때, 우리는 사부님께서 알려주신 법에 대해 조금의 의심도 없이 깊이 믿는가 아니면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가?
만약 우리가 우리를 지옥에서 건져내고, 우리가 역사상 천백 년간 지은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우리를 구도하기 위해 숱한 노력을 기울이시고, 아울러 우리에게 그렇게 높은 신(神)의 영광과 그렇게 높은 층차의 일체 복을 주신 사부님께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와 감사드린다면 우리가 지금처럼 이런 경사경법(敬師敬法)과 이런 수련상태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당신이 법(法)을 실증하는 일을 겨우 조금하고 나서 안주하고 자만한다면 곧 자신을 실증한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늘 자신만 못한 수련생들과 비교할 뿐, 법의 요구와 비교하진 않는다.
속인의 비유를 하나 들어보자. 우리가 집을 짓는데 부모님께서 우리가 할 대부분의 일을 도맡아 하셨고, 우리는 그저 옆에서 일손만 좀 도와드렸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했다고 여기면서, 자신이 마치 아주 큰 대가를 치른 것처럼 생각하거나 심지어 속으로 자신의 인내와 공로라고 생각하면서 부모님의 노고와 거대한 감당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럼 이 사람이 부모님께 효경(孝敬)한 것으로 칠 수 있겠는가?
또 마치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스승의 가르침에 따르지 않고, 심지어 가끔 선생님을 괴롭히는 장난을 친다면 이것이 스승을 공경하는 것일 수 있는가? 사실, 우리가 한 일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마땅히 법(法)의 표준에 따라서 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주의식(主意識)이 강하지 않아, 사람의 이치에 휘둘려서 하고, 심성관(心性關)을 만나면 넘기려 하지 않고 집착을 끌어안고 내려놓지 않으며 질질 끈다. 이것은 마치 학생이 스승의 말을 듣지 않는 것과 같지 않은가? 스승님께 심하게 불경한 문제가 아닌가?
어떤 수련생들은 겉으로는 세 가지 일을 다 한 것처럼 보이지만, 마치 임무를 완성하는 것처럼 대처한다. 이런 행동은 또한 사부님과 법에 대해 불경한 표현이다. 우리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제 구실을 못하는 제자들을 구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셨고 모든 것을 감당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사부님과 법을 공경하지 않는다면 구세력이 틈을 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는 종래로 우리에게 무슨 공양을 요구하신 적이 없으시며 단지 우리를 구도하고 싶어하실 따름이다. 사부님께서는 당신을 수련생들 사이에 놓고, 산 공사 현장에서 무겁고 힘든 일을 나서서 하셨다.
호주의 한 동수는 이렇게 회상했다.
“내가 산 주방에서 일할 때, 사부님께 두 차례에 걸쳐 음식과 과일을 가져다 드렸지만 사부님께서는 두 번 다 (대략적인 의미)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사부를 너무 특별하게 대하지 말라.’”
동수는 사부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주방을 책임진 동수에게 물으러 갔다. 그러자 주방을 책임진 동수는 그에게 모든 사람을 위한 과일이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사부님께서는 그더러 사부를 위해 특별한 일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렇게 아주 미세한 곳에서 위대함을 볼 수 있는데 이분이 바로 우리 위대하신 사부님이다.
나는 또 명혜망에 게재된 《주변 수련생들의 최근 수련상태에 대한 생각》에서 언급한 세 가지 문제에 대해 동의한다.
1. 백 퍼센트 사부님을 굳건히 믿지 못하고 대법을 굳건히 믿지 못하며, 지금까지도 대법이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고 진정한 자아를 찾지 못했다.
2. 지금까지도 진정한 수련이 무엇인지 모르고 마음속으로 진정한 수련인이 되려 하지 않았다.
3. 본질적으로 자신을 개변하지 않았다.
사실, 이런 모든 것들은 근본적인 문제로 직접적으로 진수(真修)하고 실수(實修)하는지와 관련되며 진정으로 대법 속에 들어가 문제를 볼 수 있는지와 관련된다. 하지만 일부 동수들은 여전히 이러한 관건 문제에서 흐릿한데 어떻게 경사경법(敬師敬法)과 정진실수(精進實修)를 말할 수 있겠는가! 이는 또한 경사경법을 하지 못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의 하나다.
우리 내심 깊은 곳에서 진정으로 창세(創世)하신 사부님께서 얼마나 위대한지 인식할 수 있다면, 우리가 닦는 우주 대법이 얼마나 홍대(洪大)한지 알 수 있다면, 우리에겐 오직 감은(感恩 은혜에 감사)과 경앙(敬仰)만 있을 뿐 어찌 감히 사부님께 불경하고 법에 불경할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 초기에 법을 전하실 때, 다른 공간의 생명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법을 듣는다고 말씀하셨다. 오직 사람만이 감히 불경할 수 있다.
20년 이상 수련한 오늘에 이르러 나는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내가 만약 당신을 제도하지 못한다면, 누구도 당신을 제도하지 못한다.”라는 구절의 법에 담긴 함의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은 나 개인이 수련을 잘하지 못하는 것은 상관이 없으며 역사상의 수련방식과 같다고 느끼고, 이로 인해 어떤 사람은 그리 정진하지 않으며, 수련을 하는 둥 마는 둥 한다. 그러나 당신은 생각해 봤는가? 당신은 이 세상에 올 때 일찍이 나와 서약을 맺었고, 당신이 그런 중생을 구도하겠다고 맹세했기에 당신은 비로소 대법제자가 될 수 있었으며, 당신은 비로소 이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신은 이행하지 않았다. 당신이 완전하게 이행하지 못하면, 당신이 담당한 당신에게 분배해 준 배후의 그러한 무량한 중생과 방대한 생명군(生命群)을 당신은 모두 구도하지 못하게 되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간단하고도 간단하게 수련에 정진하지 못하는 문제인가? 그것은 지극히 크고 지극히 큰 범죄이다! 비할 바 없이 큰 죄이다!”(《2016년 뉴욕법회설법》)
우리 자신에게 한번 물어보자. “우리는 정진했는가?”
내가 이해하기에 우리가 정진하지 못함이 바로 사부님께 불경하고 법에 불경한 것이다. 정법은 최후에 이르렀고, 수련도 최후에 이르렀음에도, 우리가 여전히 이 점을 인식하지 못했기에 구세력이 번거로움을 만들어 감히 사부님께 불경할 구실이 생긴 것이다. 만약 우리가 모두 정진실수(精進實修)하면서, 시시각각 매사에 늘 법으로 자신의 일사일념(一思一念), 일언일행(一言一行)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착실하고 착실하게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 일을 진실로 잘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사부님 말씀을 따르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경사경법이다.
만약 우리가 아직도 정신차리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의 수련을 엄숙히 대하지 못한다면 그건 정말 문제이고 그건 정말 영원히 영원히 보완할 수 없는 가슴 아픈 유감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가르침으로 서로를 격려하고자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최후에 당신이 원만으로 나가지 못할 때 당신 자신이 당신 자신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사부는 누구를 겁주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 이 역사적 기연(機緣)을 놓치고 이번 기회를 놓쳐 버린 다음, 놓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당신에게 살라고 해도 당신 자신이 더는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사부가 늘 慈悲(츠뻬이)하다고만 생각하지 말라. 당신들은 사부의 慈悲(츠뻬이)를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긴다! 대법제자는 표준이 있으며 법 역시 표준이 있다. 여러분이 함께 모여서 그럭저럭 지내면 고비를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매 한 사람의 심령이 모두 건드려지고 있고, 매 한 사람이 모두 착실하게 자신을 수련하고 있으며, 매 한 사람이 모두 자신의 생명에 대하여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생각하고 있다! 당신들 일부 사람은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는가?! 사부는 당신을 보면 정말로 조급하다! 사부는 당신을 보면 정말로 조급하다!”(《대뉴욕 지역 법회 설법》)
이상은 단지 개인의 단편적인 인식을 여러분들에게 참고로 제공할 뿐이며 법에 부합하지 않는 곳이 있다면 법을 스승으로 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50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