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흔(無痕)
【정견망】
최근 나는 사부님의 《도법》 등 경문을 계속 외우고 있는데, 마치 제호관정(醍醐灌頂 가장 뛰어난 최고의 관정)을 얻은 것 같다. 나는 불법위엄(佛法威嚴)이란 이 층(層)의 법리에 대한 자신의 인식이 심각하게 부족했고 바로 이 때문에 발정념 효과가 좋지 않았으며 또 사마(邪魔 사악한 마)의 박해를 받아 장기간 마난에 처했음을 깨달았다. 지난 과정을 총결하고 반성한 것을 써서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한다.
개인의 수련 층차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문장에서 언급된 몇몇 문제와 생각은 단지 자신에 대한 요구일 뿐, 다른 동수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니 단지 참고 자료일 뿐이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지적해 주기 바란다.
● 자비와 위엄은 불법(佛法)의 양면이며 어느 것도 빠질 수 없다.
내가 법에서 알게 된 것은 자비는 부처의 기본 특징이지만 위엄 역시 마찬가지로 불법의 또 다른 기본 특징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불법은 慈悲(츠뻬이)한 것이지만 신의 위엄 있는 일면도 있다.”(《각지 설법 2》〈2003년 캐나다 밴쿠버 법회설법〉)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법은 중생에게 慈悲(츠뻬이)하지만 위엄도 함께 존재한다. 법은 또한 표준이 있으며 중생에게 불변불파(不變不破)한 것으로서, 이는 함부로 좌우지할 수 없다.”(《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내가 이해하기에, 선(善)을 널리 알리는 일면이자 중생을 선화(善化)하는 것이 바로 자비다. 반면 악(惡)을 징벌하는 일면으로, 사(邪)를 눌러 혼란을 없애는 것이 바로 위엄이다.
● 정법 중에는 반드시 자비와 위엄이 동시에 진행해야
정법(正法)에서 자비란 여전히 선념(善念)을 지닌 중생을 겨냥해 중생을 도화(度化) 선해(善解)하는 것으로 창세주께서 그들을 대신해 죄업을 감당하고 정화하고 신우주(新宇宙)로 동화하는 것이다. 생명 중 마땅히 남길 것은 남기고, 층차가 떨어질 것은 떨어뜨리며, 올라갈 것은 올라가는데 일체는 다 창세주의 자비하신 조화이다.
정법에서 위엄이란 더는 구할 수 없는 사악한 생명을 겨냥한 것이다. 이런 생명에게 더는 자비를 베풀 수 없고, 소각할 것은 직접 소각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무한정 자비를 베푸는 것은 우주를 훼멸하고 선량한 중생을 훼멸하는 것과 같다.
● 위엄은 각 층차의 왕(王)과 주(主)가 반드시 갖춰야 할 특징
개인적으로 이해하기에 위엄(威嚴)이란 바로 정각(正覺)이 체현되어 나오는 장중(莊重)함이자 사람들이 숙연하게 공경하고 무시하지 않게 하는 것으로, 화를 내지 않고도 저절로 위엄이 있는 일종의 상태다. 기왕 (선한 자에 대한) 자비가 있다면 또 (악한 자에 대한) 위섭(威懾 위엄으로 떨게 함)이 있어야 한다. 그 위섭의 힘은 법력이 끝 없는 불법“신통”(佛法神通)을 통해 보장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한 사람이 보면 마음에서 환희와 경앙, 편안(현대인이 말하는 ‘안정감’을 포함)을 느끼고, 악한 사람이 보면 두려움을 느껴 감히 불법(佛法)을 어기거나 파괴하지 못한다.
만약 불법에 자비만 있고 위엄이 없다면 사(邪)를 제압하고 혼란을 없앨 수 없어 원용(圓容)할 수 없으며, 자기 천체와 천국 중생을 보호할 수 없고, 궁극적으로 불패(不敗)의 경지에 있을 수 없으며 천체와 천국 역시 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慈悲(츠뻬이)와 위엄이 함께 있는 것은 법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천체(天體)와 천국의 안위(安危)는 근본적으로 그 천국의 주(主)에 의해 보장되어야 하며 호법신 역시 천국 주의 능력에 의지해 법을 수호한다. 만약 그의 주가 이 천국을 보호할 능력이 없다면 호법신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방(一方)의 천체를 보호하려면 반드시 부처의 위엄을 펼쳐야 하며, 또한 반드시 신통을 펼쳐 사(邪)를 누르고 혼란을 없애야만 일방의 안위를 보호할 수 있다.
불법의 위엄은 단지 위협이나 강요로 다른 사람의 복종을 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덕행(德行), 지혜, 자비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힘이다.
남북조 시기 양(梁) 무제(武帝) 소연(蕭衍)은 불법(佛法)을 독실하게 믿었기에 자비롭고 관대했지만 오히려 그의 나라는 멸망했다. 단지 자기 백성을 보호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기 몸조차 보호하지 못하고 감옥에서 굶어 죽었다. 이 이야기는 이미 대법제자들에게 여러 번 인용되고 언급되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오늘날 정법(正法)에 어떤 문화를 다져주려는 것일까? 내가 이해하기에 오직 자비만 있고 위엄이 없었기 때문인데, 불법이 사악에게 패배하면, ‘원용불패(圓容不敗)’하고 ‘전복불파(顛撲不破 쓰러지거나 넘어져도 파괴할 수 없음)’할 수 없어서 천체와 천국의 안위를 보호할 수 없다.
● 위엄은 또 수련자가 첫 입문부터 반드시 점차 익혀야 할 능력이다
수련자의 신(神)의 일면 역시 위엄이 있는 것으로 또한 자신이 있는 층차의 신통을 갖추고 있으며, 또한 조사정법할 책임을 지고 있다.
대법제자는 애초 세상에 내려올 때 조사정법(助師正法)하기 위해 왔고, 조사정법하는 사명을 맡았다. 위엄은 또 조사정법하는 대법제자들이 반드시 해내야 하는 것이다.
인간 세상에서 1997년 ‘광명일보’ 사건 이래 대법제자들은 끊임없이 법을 원용해 세인들이 대법을 이해하고 동화할 수 있게 했다. 대법제자의 수련이 잘된 일면(一面)은 또한 신통법력(神通法力)을 갖추고 있다. 때문에 다른 공간에서 사부님을 도와 사(邪)를 누르고 혼란을 없앨 책임을 맡고 있다. 둘 중 어느 하나도 없어서는 안 된다. 대법제자는 미래 우주의 보위자(保衛者)이며 미래 우주의 희망인데, 내가 아니면 누가 있겠는가?
사부님께서는 이미 많은 경문에서 대법제자는 모두 신통법력이 있다고 하셨는데 여기에는 닫혀서 수련하는 제자도 포함한다.
법난이 닥친 지금은 말후(末後)의 말후이니 대법제자들의 위덕을 보여줄 때가 왔다. 나는 자신이 잘 수련된 그 일면의 신통을 충분히 발휘해 법을 박해하는 일체 사악한 생명을 철저히 소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인간 세상에 표현된 위엄
‘광명일보’ 사건부터 ‘4.25’, ‘7.20’을 거쳐 현재까지, 대법제자들은 줄곧 선(善)한 일면을 이용해서 대법을 원용해 왔고, 대법의 위엄을 드러내 왔다.
1) 먼저 직접 관련 부서 및 기관과 소통해 설명하고, 진상을 알리며, 권고했는데 이는 자비의 체현이다.
2) 만약 듣지 않으면 더 넓은 범위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박해를 폭로하는데 이는 위엄이란 일면의 체현이다.
세상 사람에 대해 늘 표면적으로 평화롭고 이성적으로 대함은 선(善)의 일면을 사용했다.
● 다른 공간에서 위엄의 체현
1) 먼저 선해(善解)하는데 잘 닦인 본성의 일면, 신(神)의 일면으로 하고, 해도 안되면 사부님과 호법신이 도와서 하신다.
2) 선해 해도 듣지 않으면 신통으로 제거하고 소멸하는데 그 방법이 바로 ‘발정념’이다.
사람의 일면(一面)에서 발출한 의념(正念)이 신(神)의 일면을 통해 신통을 펼쳐 사(邪)를 소멸한다. 관건은 만약 사람의 일면이 건성으로 하면, 신의 일면 역시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과거 이 법리에 대한 인식이 제 위치에 도달하지 못한 부분이다. 신(神)의 그 일면 역시 사람 이쪽 일면의 바른 염두(念頭)에 의해 지휘받고 통제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신의 일면은 곧 별개의 독립된 생명이 되고, 사람 이쪽 일면은 하나의 생명이 될 수 없다.
인간 세상의 일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중시하기 쉽지만, 다른 공간에서 볼 수 없고 접촉할 수 없는 것은 쉽게 미혹되고 무시하기 쉽다. 때문에 흔히 드러나는 표현은 세인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을 아주 중시하면서도 정념으로 악을 제거하는 것은 충분히 중시하지 않는다. 때문에 사악이 장기간 틈을 타게 했고 장기가 마난에 처하게 했다.
● 자비와 위엄은 모두 힘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한 사람이 자신의 어떠한 관념도 가지지 않고 남과 말하면서 남에게 그의 결점을 지적하거나 그에게 무엇을 알려준다면, 그는 감동하여 눈물을 흘릴 것이다.”(《싱가포르 법회 설법》)
자비는 사람을 감화할 수 있고 사람을 구도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진정한 慈悲(츠뻬이)의 힘은 일체 바르지 못한 요소를 해체시킬 수 있다. ”(《각지 설법 10》 〈맨해튼설법〉)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대법(大法)은 건곤(乾坤)을 바로잡을 수 있으므로, 물론 사악한 것을 짓누르고 난잡한 것을 소멸하며, 원용(圓容), 불패(不敗)의 법력(法力)이 있다.”(《정진요지》 〈정론〉)
내가 이해하기에 선은 감화를 통해 사람들을 개변하고, 위엄은 징벌을 통해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어 바로잡는다.
● 층차가 높을수록 위엄의 힘이 더 크다
부처의 위엄은 신통으로 나타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공능(功能)은 신통(神通)이라고도 하는데 현대인은 초능력(超能力)이라고 부른다. 공능이란 사실 생명의 본능이다. 층차가 높을수록 본능은 더욱 충분히 발휘해 낼 수 있으며, 반대로 층차가 낮을수록 본능을 발휘하기 어렵거나 혹은 충분히 발휘하기 어렵다.”(《정진요지 2》〈무엇이 공능인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층차가 높을수록 공력이 더욱 크며 공능이 더욱 강하다.”(《전법륜》)
내가 이해하기에 층차가 높은 신일수록 신통이 더욱 크고 위엄이 있으며 우주천체와 중생의 안위를 보호할 수 있다. 수련인은 수련 과정 중에 위엄의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 위엄과 악의 구별
악 – 사(私)에서 나오고 정(情)에서 나와 파괴성이 있다.
위엄 – 무사(無私)하고 위공(爲公)하며, 불법(佛法), 정의, 평화, 안정을 수호한다.
● ‘위엄’ 법리에 대해 반드시 깊이 이해해야
내가 이해하기에, 법리의 일부는 사람의 마음 수련을 지도할 수 있고, 다른 일부는 수련인들에게 신(神)의 배치와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따르도록 지도해, 법에 대한 의심이나 오해가 생기는 것을 막고 또는 편차가 생기거나 신의 뜻에 어긋나게 하는 것을 피하게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당신들에게 법의 장엄함과 신성함을 알려준 목적은 법에 대한 당신들의 미혹, 오해를 지워버리는 데 있다.” (《정진요지》 <도법>)
● 《도법》은 불법위엄에 관한 법리를 열어주셨다
개인적인 이해로, 1997년 《도법》이 발표되기 전까지는 주로 자비의 일면을 말씀하셨지만, 《도법》 이후 점차 위엄의 일면을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이는 법에서 반드시 없어서는 안 될 일면이며, 아울러 이 일면 역시 마찬가지도 박대정심(博大精深)하고 만상(萬象)을 포괄한다. 도(道)를 말하고 법(法)을 말하는 함의가 있기 때문에 《도법(道法)》이라 한다. “도사는 모질다(老道狠)”는 말이 있는데 ‘도(道)’에도 모질고 위엄 있는 일면이 체현되기 때문에 《도법》이라 한다. 이는 단지 개인적인 이해일 뿐이다.
● 나는 왜 이제야 이 층의 법리를 진정으로 이해했는가
초기에 나는 《도법》은 명백한 그 일면에 준 것이라 명백한 일면은 자연히 따라서 행동할 것이라 여겼다. 사람의 일면이 어느 정도까지 이해할 수 있으면 그 정도까지 이해하는 것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말할 나위도 없다.
근본적인 원인은 수련하는 사람이 표면적으로는 비록 능력이 낮아도 다른 공간에서 신통법력을 동원할 수 있음을 몰랐기 때문이다. 당초 나는 이 층의 법(法)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나중에 사부님께서 발정념을 말씀하신 후에도 여전히 자신은 이런 능력이 충분하다고 믿지 못했는데, 신사신법(信師信法)이 부족했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이렇게 여러 해 시달리고 장기간의 마난(魔難)을 거쳐, 점차 어떤 마난은 내가 마음을 닦고 안으로 찾는 것에 노력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외재적으로 억지로 더해진 요소임을 깨달았다. 때문에 결심을 내리고 불법위엄과 관련된 경문을 외웠다. 《도법》에서 시작해 《무엇이 공능인가》, 《정념의 작용》, 《대법제자의 정념은 위력이 있다》, 《정념으로 흑수를 제거하라》, 《정념으로 악행을 제지하라》, 《청성(淸醒)》 등으로 이어졌는데, 외울수록 신통을 사용하여 악을 제거함은 수련인이 반드시 중시하고 실천해야 할 일임을 깨달았다.
특히 신구(新舊) 우주가 교체하는 역사적인 순간에 조사정법(助師正法)하는 대법제자는 더욱이 구도할 수 없는 사악한 생명을 제거하는 책임을 맡아야 한다. 이는 할 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고, 진지하게 해야 하며, 장기간 해야 한다.
● 나는 왜 장기간 마난에 처했는가
사부님께서는 《도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장기간 대법(大法) 중의 중생, 특히 제자는 법에 대해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방면에서 일종 부동한 층차의 오해가 줄곧 존재하였다. 매번 마난(魔難)이 닥쳐올 때, 본성(本性)의 일면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완전히 사람의 일면으로 이해한다. 그럼 사악한 마(邪魔)는 이 점을 이용하여 끝없이 교란하고 파괴함으로써, 수련생으로 하여금 장기간 마난 속에 빠지게 한다. 사실 이것은 사람의 일면이 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빚어진 것이며, 인위적으로 당신들 신(神)의 일면을 억제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당신들이 이미 수련 성취된 그 부분을 억제하여 신의 일면이 법을 바로잡는 것을 저애하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장기간 눈병 병업에 시달렸다, 본문도 끊임없이 사부님께 가지를 간청한 끝에 겨우 간헐적이고 어렵게 완성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장기간 병업에 시달린 원인이 바로 내가 “불법위엄”이란 이 층의 법리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사악이 틈을 타게 했고, 장기간 발정념의 효과가 좋지 못해, 마난도 효과적으로 청리하지 못해 생긴 것임을 깨달았다. 때문에 이 점을 인식한 후 나는 발정념으로 사악을 청리하는 것을 더욱 중시하고, 사상을 더욱 집중하고, 염력(念力)을 더 단호히 하면서 더 꾸준하게 발정념을 하고 있다.
● 사악 제거는 반드시 꾸준해야 한다
나는 사악한 세력이 그것들의 얼마 남지 않은 힘을 틈이 있는 제자들의 공간장(空間場)에 집중시켜 일부 수련생들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을 인식했는데 나도 그중의 하나였다.
그러므로 내 공간장이란 이 국부 지역에서 사악이 아주 크다. 하지만 나는 또 일단 내가 이 층의 법리를 똑똑히 알고 나면 사마(邪魔)도 일부분씩 제거될 것임을 굳게 믿는다. 오직 내가 포기하지만 않고 사부님의 가지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한번 알면 한번 그것을 멸(滅)할 수 있다. 그것은 점점 더 작아지고 약해질 뿐이다. 이 과정이 겉보기엔 길어도, 언젠가 그것을 완전히 청리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나는 꾸준히 노력하고 중간에 포기하지 말라고 자신에게 일깨워준다.
● 후기
지금은 마침 법난을 앞에 두고 있어, 대법제자들이 신통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최근, 동수가 명혜망에 발표한 《다른 공간에서 본 뉴욕 에포크타임스 두 사무실 현황》, 《참전》 등의 문장에서도 모두 많은 동수들이 정념으로 악을 제거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아 법난이 신속하게 제거되지 않도록 했고, 다른 사람들이 조급하고 안타깝게 하는 장면이 나타났다고 언급했다.
본문은 바로 자신이 불법위엄에 관한 법리의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발정념 효과가 좋지 않았고 또 충분히 중시하고 적극적이지 못했던 상황 때문에 결과적으로 장기간 마난에 처한 침통한 교훈을 겪은 것을 분석했다! 나를 거울로 삼아 다른 동수들에게 경고가 되었으면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51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