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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수련하는가

공령(空靈)

【정견망】

일부 동수들의 깨달음에 따르면 최근 발생한 법난은 아직까지 우리 제자들 중에 근본 집착심을 제거하지 않은 이들이 여전히 많은 것이 이번 법난을 일으킨 원인 중 하나다.

동수들은 모두 대법이 좋음을 아는데, 어느 점이 좋은가?

사존께서는 《정진요지 2》 〈원만을 향해 나아가자〉에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대법(大法)이 자신의 과학 관념에 부합한다고 여기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사람 되는 도리에 부합한다고 여기며, 어떤 사람은 자신의 정치에 대한 불만에 부합한다고 여기고, 어떤 사람은 대법(大法)이 부패한 인류의 도덕을 구원할 수 있다고 여기며, 어떤 사람은 대법(大法)이 자신의 병을 낫게 할 수 있다고 여기고, 어떤 사람은 대법(大法)과 사부님이 바르다고 여기는 등등이다.”

나는 근본 집착은 아주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사람 마음이 얼마나 많으면 근본 집착도 그렇게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수련을 통해 병을 치료하고 싶다거나, 수련을 통해 예뻐지고 싶다거나, 수련을 통해 젊어지고 싶다거나, 수련을 통해 어려움을 피하고 싶다거나, 수련을 통해 나쁜 일을 적게 하고 업을 덜 짓도록 자신을 단속하고 싶다거나, 수련을 통해 건강한 생활 방식을 선택하고 싶다거나, 수련을 통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해지고 싶다거나, 수련을 통해 인생의 길을 더 매끄럽고 부드럽게 만들고 싶다거나, 수련을 통해 사존께서 내 업을 없애주실 것을 생각하거나, 수련을 통해 가족에게 혜택을 가져다주고 싶다는 등등.

이렇게 많고 많은데 또 하나뿐이 아니라서 중첩 되는 경우도 있다. 근본 집착을 제거하지 않으면 곧 수련을 통해 자신의 인간 세상의 집착을 실현하려는 것이다.

사존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당신에게 한 가지 진리를 알려주겠다.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내가 깨달은 것은 수련이란 바로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것으로, 집착심을 끌어안고 내려놓지 않는 것은 이미 잘못이며, 수련을 통해 자신의 집착심을 실현하려는 것은 더욱 큰 잘못이다.

사존께서는 《사부의 가족을 대함에 정확히 하라》에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지금 인류의 일원(一員)으로서 특히 대법제자의 일원으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부를 기만(欺)하는 것! 또 하나는 중생구도를 교란하는 것! 왜냐하면 이것은 생명이 남거나 제거되는 근본적인 경계이기 때문이다. 건드리기만 해도 안 된다.”

내가 깨달은 것은 근본 집착심을 제거하지 않으면 그것은 “사부님을 기만하는” 일종의 표현임을 깨달았다. 그리 적절하지 않은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당신과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당신의 돈이나 당신의 지위, 당신의 인맥을 탐하고, 진심으로 친구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서 좋은 점을 얻으려 한다면 당신이 생각해보라, 이 사람은 당신을 기만하는 것이 아닌가? (비록 속인들 사이에 이러한 현상이 아주 흔하긴 하지만).

만약 우리가 근본적인 집착심을 제거하지 않고 겉으로 사존의 말씀을 따르면서 수련하려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수련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얻으려 한다면 이는 사부님을 기만하는 것이 아닌가?

사존께서는 《사부의 가족을 대함에 정확히 하라》에서 말씀하셨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사부의 慈悲(츠뻬이)는 거의 무한하나 생명의 구도 여부에 대한 요구, 대법제자에 대한 표준은 지극히 엄숙한 것이다.”

내가 깨달은 것은 근본적인 집착심을 제거하지 않으면 대법제자의 표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법을 얻은 지 곧 30년이 되는데, 막 철이 든 소년에서 반백이 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는 내심 깊은 곳에서 자신의 근본 집착심을 제거하지 못했음을 안다. 사존께서 점화해 주셨지만 이 근본 집착은 한두 개나 두세 개가 아니라 내 인생 전체였다. 매번 대법을 떠날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늘 고통스러워서 살고 싶지 않았지만, 이 고통은 사람 마음의 고통인데 왜냐하면 인생의 모든 아름다운 동경을 전부 대법에 기탁했기 때문이다. 나는 오직 수련하는 인생만이 가장 완벽한 인생이라 여겼고 이렇게 해야만 가장 가치 있는 인생이라 여겼으며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인생이자 가장 의지할만한 인생이라 여겼다. 이 얼마나 탐욕스러운가, 나는 수련을 통해 인생의 모든 행복과 의지처를 얻으려 했던 것이다.

사존께서는 《정진요지 2》 〈원만을 향해 나아가자〉에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사람이 이 세상에 오면 인연에 따라 인생의 길과 인생 중의 득실(得失)이 결정되는데, 어찌 사람의 관념으로 인생의 매 과정을 결정할 수 있겠는가?”

내가 깨달은 것은 근본 집착 그것 역시 집착이며, 수련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집착인데 모두 현실을 너무 중시한 데서 비롯되며, 만약 현실을 담담히 볼 수 있다면 제거할 수 있다.

사존의 자비하신 구도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자신의 수련에 영원한 유감을 남기지 않기 위해, 그리고 내 천국 중생의 미래를 위해 우리는 모두 자신에게 “왜 수련하는가?” 물어보고 자신의 근본 집착을 찾아내 구세력의 최후의 발악을 해체해야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5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