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색욕지심은 수련의 제1관

과객(過客)

【정견망】

사람이 수련하려면 색욕지심(色慾之心)을 제거하는 것이 첫 번째 관(關)이다. 불경(佛經)에는 음심(淫心)을 제거하지 않으면 속세를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그것을 아주 중시했고 예전 고인(高人)이 도제(徒弟)를 받을 때 가장 먼저 고험한 것이 바로 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 여부였다.

《요재지이(聊齋志异)》에 한 서생(書生)이 입산수도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부가 그에게 방안에서 가부좌하고 그 어떤 일을 만나도 마음을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그가 한창 가부좌를 하고 있는데 밖에서 무언가 문을 긁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그가 창문쪽으로 몸을 기울여 보니 호랑이가 있는 것을 보고 꽤 겁이 났다. 하지만 사부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급히 심신(心神)을 가다듬고 계속 가부좌를 했다. 호랑이가 방 안으로 들어와 선비 주위를 빙빙 돌며 코로 냄새를 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소리가 들리자 호랑이는 즉시 밖으로 뛰쳐나갔다.

잠시 후 한 미녀(美女)가 다시 들어왔는데 몸에서 난초와 사향 냄새가 코를 찔렀다. 미녀는 침대에 조용히 앉아 있다가 서생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저 왔어요.”

서생이 여전히 감히 눈을 뜨지 못하자 미녀가 다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주무세요?”

그런데 이 목소리는 아내와 아주 흡사했다. 서생은 마음이 한번 움직였다. 하지만 즉시 이것이 사부의 고험임을 생각하고 여전히 미녀를 무시했다.

미녀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했다.

“쥐가 움직여요!”

원래 서생 부부는 하녀가 같은 집에 살았는데 하녀에게 부부관계를 알리고 싶지 않아 “쥐가 움직인다”는 말을 암호로 정해 놓았다. 서생이 이 말을 듣고 눈을 떠보니, 정말 아내였다. 그래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묻자 아내는 그가 외롭고 집이 그리울 것 같아서 자신이 시중을 들러 왔다고 했다. 이렇게 두 사람이 다정하게 함께 했다. 날이 밝자 밖에서 사부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고 아내는 급히 옷을 입고 도망쳤다.

사부가 들어와서는 그의 정연(情緣 정의 연분)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며 그를 쫓아냈다. 원래 방안에서 발생한 모든 것들은 다 환상이었다.

사람의 욕망은 이 신체(身體)에 붙어 있고, 이 신체가 없으면 욕망도 없고, 수련에서 닦는 것은 사람의 진체(真體)이며 궁극적으로 포기하는 것은 이 육신이라 그것을 너무 중시할 필요는 없다. 색욕이란 사람의 것이고, 사람이 되려면 이것을 떠날 수 없지만 수련하고 싶다면 반드시 이 마음을 제거해야 한다.

과거 종교에서는 이 마음을 없앤 방법은 이성(異性) 신체의 각종 더러운 것들을 생각하게 했다. 신체는 이 아름다운 가죽 주머니를 제외하고 안에는 모두 근육, 농혈(膿血 고름과 피)로 가득 차 있고, 썩으면 악취가 심하니 진실로 미련을 둘 것이 아무것도 없다.

수련이 이 단계에 이르렀을 때, 전에 자신이 좋아했던 미녀를 보고, 자세히 살펴보면 뼈와 내장, 늙은 후의 모습과 죽은 후 부패하는 것을 보기 때문에 자연히 좋아하지 않게 된다. 예전 종교에서 이런 관상(觀想) 역시 내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은 천목(天目)이 잠겨있어 이런 것들을 볼 수 없으니 그럼 이치로부터 이 법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아름다운 얼굴이 아무리 완벽하다 해도 역시 몇십 년에 불과하며 생명의 영구(永久)함과 비교하면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당신은 잠시 피었다 사라지는 꽃과 시들지 않는 불괴(不壞)의 황금 연꽃 중 어느 것을 원하는가?

경(經)에서 이 법을 말씀하시면서, 속세에서 수련하는 사람은 그것을 단절하라는 것이 아니라 속인 중에서 어떻게 그것을 담담히 보고 내려놓으라고 하셨다. 젊은이들이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는 것은 모두 문제가 없다. 일단 수련하기만 하면 공문(空門)에 들어가 승려나 비구니처럼 된다면 인류는 멸종될 것이다. 수련인은 자각적으로 자신에 대한 요구가 높아야 하며, 일반인처럼 자신의 욕망을 방종하지 말아야 한다. 심성(心性)이 제고됨에 따라 이 마음도 점차 담담해지는데,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된다. 최후에 당신은 정말로 이 마음이 사라지는데 당신의 에너지가 주위 사람의 망념(妄念)을 억제해 당신의 배우자도 난잡한 생각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도가 수련에서는 연정화기(煉精化氣)를 말하는데 인체는 이런 물질을 재료로 삼아 수련할 필요가 있다. 이 마음을 제거하지 않고 늘 새어 나간다면, 명(命)을 닦을 방법이 없다. 성명쌍수(性命雙修) 공법이든 아니든, 다른 공간의 쩐티(真體)는 모두 이 물건을 이용해 고층차의 물질을 연화한다.

티베트 라마교에서는 고급 단계에 도달하면 남녀쌍수(男女雙修)를 말하는데 티베트의 많은 사원에는 부처가 벌거벗은 여인을 안고 있는 환희불(歡喜佛)이 있다. 그것은 특수한 지역, 특수한 법문에서 채택한 특수한 수련 방법이며 법(法)이 작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는 것인데, 조금만 부주의하면 빗나갈 수 있다. 불도(佛道) 양가 수련은 근본적으로 남녀쌍수를 채용할 필요가 없는데 인체에는 저절로 음양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부좌할 때 남자는 좌측 다리를 우측 다리 위에 올리고 다시 우측 다리를 좌측 다리 위로 올리고 여자는 정반대로 한다. 또 두 손을 중첩시켜 고리처럼 만들어[역주: 제인(結印)을 말한다] 자연스럽게 음양을 조절한다.

현재 사회에는 많은 유혹이 존재하고 음란한 것들이 도처에 다 있다. 기본적으로 모두 동물 부체와 지옥의 귀신에게 통제당한 것으로, 많은 타락한 여성들의 몸에는 모두 여우가 부체되어 있다. 사람들이 그런 음란한 것들을 보고 자위할 때면 그것들은 다른 공간에서 사람이 배설한 것의 정화를 채집해 사람의 정신을 나른하게 하고 신체가 점점 더 나빠지게 만든다.

사회는 이미 이런 모양이 되었지만 수련인들은 함께 흘러가 오염될 수 없다. 그럼 끊임없이 바른 것을 사용해 나쁜 것을 배척해야 하는데, 법을 많이 공부하는 것이 아주 관건이다. 어떤 사람들은 늘 나더러 자신이 흥미를 지닌 화제를 말하라고 하는데 무슨 차 문화, 옥 문화 등이다. 나는 당신이 경서를 보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데 책 속에는 무엇이든 다 있고, 사람이 수련하고 제고하는 일체 문제는 당신이 보기만 하면 모두 답안을 얻을 수 있다. 자신의 업무나 학습과 무관한 인간 세상의 지식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바로 수련인이 내려놓아야 할 사람 마음이다. 진정한 수련은 자신의 업무나 학습과 무관한 속인의 지식에 대해 흥미를 갖지 않을 것이다.

매 층차마다 모두 표준이 있는데 삼계(三界) 밖에서는 이런 마음이 나타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천녀(天女)와 보살은 모두 매우 아름답다. 인간 세상의 미녀도 멀리서는 그래도 볼만 하지만 확대해서 보면 피부의 모공이 커서 무서울 정도다. 하지만 천상 사람의 피부는 아무리 확대해도 매끄럽고 깨끗하다. 이 사람의 색욕지심을 제거하지 않고 천상에 오면 그는 곧 허튼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 공간에서 사람의 사상은 실질적인 변화가 생길 것이다.

예수도 말하지 않았는가?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음란한 생각을 품는다면 이 사람이 간음죄를 저지른 것이다.” 신(神)의 일념은 하나의 우주를 만들 수 있는데, 당신이 생각해 보라, 사람 마음을 제거하지 않고 당신이 신이 된다면 당신이 얼마나 큰 죄를 짓겠는가? 이런 일이 존재하도록 허용할 수 있겠는가? 때문에 그 경지의 요구에 도달할 수 있어야만 승화해 올라갈 수 있다.

동물은 어디서나 짝짓기를 하지만 사람은 왜 할 수 없는가? 왜냐하면 이것이 사람이 되기 위한 표준이기 때문이다. 물론 더 고층차의 신(神)과 부처가 되려면 요구는 당연히 훨씬 더 높은데 심지어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 표준에 도달했을 때 당신더러 생각하라고 해도 당신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이런 생각 자체가 너무 역겹다고 여길 것이다.

마치 돼지우리에 사는 돼지가 더러운 물에서 자고 대변을 먹는 것조차 세상의 별미라고 여기는 것과 같다. 만약 돼지가 승화해서 사람의 사상이 있다면 여전히 돼지우리의 삶이 그립겠는가? 생각만 해도 역겨울 것이다. 남녀 간의 일 역시 이런 것이고 인간 세상의 모든 마음이 다 이와 같다. 천상에서 인간 세상을 보면 정말이지 너무나 더럽다. 심지어 인체(人體)마저도 진흙과 같은 물질로 여기는데 전설에서도 신(神)이 진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고 하지 않는가? 진흙으로 만든 사람이 진흙에서 뒹구는데 누가 이런 곳에 오려고 하겠는가? 때문에 사람을 구도하러 세상에 내려온 각자(覺者)는 너무나도 위대한 것으로 그 순수함은 자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불교 수련에서도 음계(淫戒 음란에 관한 계율)를 매우 중시했기 때문에 계율을 어기면 곧 절에서 쫓겨나 수련할 수 없었다.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해 사찰 규정에 여자가 절에 머물 수 없게 했으며 승려들도 혼자서는 여자 손님을 만나지 못하게 했다. 나중에 음계를 색계(色戒)라 불렀는데, 사실 불교에서 말하는 색(色)은 단지 미녀의 색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는 모든 표상(表相)을 통칭한 것이다.

수련이란 사람의 마음을 닦는 것으로, 사람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비록 그가 음계를 범하지 않았다 해도 여전히 수련해 올라갈 수 없다.

정말 수련하고자 한다면 곧 그것을 담담히 보고 결국에는 그것을 철저히 내려놓아야 하는데 하지 않는 것에서 나아가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 나쁜 사상을 배척하는 것을 한 번에 내려놓기란 어렵지만 점점 더 담담해질 것이다. 사람이 이곳에서 정상적으로 살려면, 사람 마음이 조금도 없다면 이곳에 머물 방법이 없다. 때문에 수련의 전반 과정에서 늘 마음을 닦고 욕망을 끊으며 용맹정진해야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5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