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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 아니다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우리 지역에서 직접 사람을 만나 진상을 잘하고 날마다 삼퇴명단을 가져오던 적지 않은 동수들이 정법이 최후에 이르렀음에도 다양한 정도로 신체에 부정확한 상태가 나타났다. 어떤 이는 걸음이 비정상이고, 어떤 이는 등이 굽었는데, 그래도 여전히 밖에 나가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것을 견지한다. 심지어 어떤 이는 자신이 세 가지 일을 하는 데 영향을 주지 않으니 이런 증상이 좀 있어도 상관없다고 여긴다. 이 글에서는 이런 동수들과 법리에서 한번 교류해 보고자 한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가장 낮은 층차에서 수련할 때는 하나의 과정이 있는데, 바로 당신의 신체를 완전하게 정화해 주어 사상 속에 있는 모든 좋지 못한 것, 신체 주위에 있는 업력장(業力場)과 신체를 건강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를 전부 다 청리(淸理)해 내보내는 것이다. 청리하지 않으면, 이런 혼탁한 신체, 거무칙칙한 신체와 더러운 사상을 가지고 어떻게 고층차 수련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720 이전 법을 얻은 노수련생들은 거의 모두 이런 신체 정화 과정을 겪었고 대법의 초상성을 체험했는데 정말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100분의 8, 9십 사람들이 현재 모두 온몸이 가벼운 상태에 도달했으며 병이 없다.”(《전법륜》)

내가 깨달은 것은 신체가 정화된 후 나타나는 부정확한 상태는 “병”은 아니지만 이 공간에서는 병의 “증상”으로 나타나는데, 이때 대법제자가 깨달을 수 있는지, 법에서 자신의 정념(正念)을 견정히 하고 심성을 제고할 수 있는지 여부를 보는 것이다. 병의 “증상”이 지속된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쉽사리 가짜를 진짜로 오인하고 대법제자의 정념을 동요하게 만든다. 특히 원래 병 치료를 목표로 대법 수련에 들어온 그런 제자들은 만약 사상이 장기간 개인이 병을 치료하고 몸을 건강히 하는 층차에 정체되어 있다면 더 높은 층차로 승화할 수 없고, 법에 입각해 진정으로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할 수 없으며, 병 증상이 더는 나타나지 않도록 줄곧 보장하기란 더욱 어렵다.

사부님께서는 《2002년 필라델피아 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어떤 수련생들은 말하기를, 나는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한다고 한다. 큰 환경 속에서는 그가 아주 잘 파악할 수 있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곧 자신의 정념(正念)을 쉽게 해이하게 하는데, 정념(正念)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곧 문제가 나타나기 쉽다.”

신체의 부정확한 상태에 대해 방임하는 태도, 세 가지 일을 하는 데 방해만 되지 않으면 버틸 수 있다는 이런 심리야말로 구(舊) 사상과 요소의 표현이 아닌가? 마땅히 그것을 부정하고 타파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한 노년 동수가 계단을 올라갈 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숨이 차기 시작했다.

그는 생각했다.

‘대법제자의 신체는 백맥이 전부 열려 있기 때문에 마땅히 걸음걸이가 바람처럼 가벼워야 하지 않는가! 그것을 부정한다! 이것은 대법제자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상태가 아니다!’

그는 이렇게 몇걸음 내딛자 헐떡이지 않고 꼭대기까지 성큼성큼 올라갔다.

그러나 만약 대법제자가 이런 사소한 일에서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내가 나이가 들었나? 마땅히 쉬엄쉬엄 가야하나?’

이런 사유는 바로 구세력의 배치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가? 시간이 오래되면 이런 사유가 더 많이 생성되고 구세력은 곧 이를 구실로 삼아 신체에 부정확한 상태를 연화하는데 왜냐하면 대법제자 스스로 원한 것이라 사부님께서도 관할 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모두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님께 달렸음을 안다.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 심성이 제고되고 사상 경지가 제고되면 사부님께서는 이미 다른 공간에서 그 좋지 않은 것을 떼어가시고 그 업은 이미 사라진다. 하지만 시공(時空)의 차이 때문에 이 공간에서는 여전히 뚜렷한 효과가 없을 수 있다. 이 역시 수련인의 오성에 대한 검증이다. 어떤 수련인은 “눈으로 본 것만이 확실하다”는 관념이 아주 완고해서 시종 표면적인 병의 증상이나 또는 그런 감수만 바라보는데, 어떻게 해도 변화가 없다고 생각하면, 의심이나 바르지 못한 염두가 생기고 또한 인위적으로 병 증상이 지속되는 시간을 늘일 수 있다.

정법 중에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람의 사상과 집착을 남겨놓으셨는데 이는 우리가 사람 속에서 사람을 구하고 사명을 완수할 수 있게 하신 것이지 결코 우리더러 마난을 감당하라고 남겨놓으신 것이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전(史前) 역사과정 중에서도 줄곧 정법시기 제자의 위대함에 따라 당신들의 일체를 만들고 있다. 그러므로 배치 속에서 당신들이 일반적인 원만의 표준에 도달했을 때 세간(世間)에서 아직도 속인의 각종 사상과 업력이 있을 수 있는데, 목적은 정법 일을 하는 한편 진상을 똑바로 알리는 중에서 당신 자신의 세계의 원만을 위해 제도할 수 있는 생명들을 수집하고, 당신들 자신의 세계를 원만하게 하는 동시에 또한 당신들의 최후의 업력을 제거하고, 점차 사람의 사상을 제거하며, 진정하게 사람에서 걸어 나오게 하는 데 있다. 가장 근본적으로 말하면 당신들은 아직도 구세력의 박해를 타파하는 과정 중에서 위대한 위덕을 세워야 하고 당신들의 가장 높은 위치로 되돌아가야 한다. 이것은 일반 경지에서 원만하는 문제가 아니며 또한 통상적인 원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정진요지 2》 〈정법시기 대법제자〉)

정법 수련에서 사부님께서는 장계취계(將計就計)로 구세력의 배치를 이용해 대법제자를 성취 시키신다.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각자 자신의 길을 걸어 나오길 원하시는데 그것은 미래에 남겨주기 위한 것으로 표준을 절대 낮출 수 없는데 대법제자는 장차 천체(天體) 일방(一方)을 주재하는 우주 대각(大覺)·대신(大神)의 위덕을 성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깨달음이니 부족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5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