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朱同)
【정견망】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공이 자라는 가장 빠른 수련 방법은 바로 착실하고 착실하게 법공부, 연공하고 자신이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개인적인 소감을 써서 교류하고자 하니 적절하지 않은 곳이 있다면 법(法)을 스승으로 삼길 바란다.
우리의 수련은 가장 미시적인 것부터 가장 표면까지 이르는데, 층층층층의 미시에서 대법에 동화한 후 사부님께서는 곧 우리를 도와 격리하신다. 우리가 모두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념이 강할 때는 약간의 느낌이 있다. 그들은 모두 신(神)의 생각(수련이 잘된 부분)이며 완전히 그 한 경지의 대법 법리에 부합한 것으로 끊임없이 법을 공부하면 곧 보다 고층차의 법리와 법의 구체적인 체현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직접 그곳[자신의 공(功)]에 있기에 그들의 감수가 바로 자신의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잘 닦이지 않은 부분은 사람의 감각인데, 괴로울 수 있고 집착심이 있을 수 있다. 또 일부 칠정육욕(七情六慾)의 표현이 있을 수 있다. 그것들은 단번에 깨끗이 자를 수 없고 점차 담담해진다. 담담하고 또 담담하게 느껴지면 정념(正念)이 강하면 그것들을 억제할 수 있고 수련 과정 중에 넘어가지 못할 게 없을 것이다. 중점은 넘어졌다면 빨리 법을 공부하고 연공을 다그쳐야지 바닥에 엎드려 있지 말아야 한다. 때로 너무 부끄러워서 법을 배우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죄책감이 들 때가 있는데 이는 자신이 아니다. 가장 마땅히 할 일은 당장 법을 공부하고 연공하는 것이다. 법을 공부할 때 사람의 일면(一面)이 전화(轉化 근본적인 전환)되어 대법의 표준에 동화되면 좋지 않은 부분이 곧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대법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일이나 말과 같은 실수는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만 고려해선 안 되며 우리의 말과 행동이 대법에 끼칠 영향까지 고려해야 한다. 모든 정법(正法) 수련은 살생을 허락하지 않으며, 또 남녀 간의 부적절한 관계도 없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수련에는 두 가지 방면이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더 높은 경지로 수련해서 대법에 대해 더 높은 이해와 더 높은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체(人體) 부분이 점점 더 줄어드는 것이다. 원만하기 전에 우리에겐 틀림없이 사람 마음이 있을 것이며 틀림없이 사람의 행동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관건은 사람 마음의 교란(교란이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에)을 받지 않는 것이다. 방법은 정념이 반드시 충족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정념이 있어야만 정행(正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념이란 무엇인가? 나는 정념이란 대법에 부합하는 것이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이 바로 정념이라고 생각한다.
수련에 입문하기 전 특히 주의해야 할 교란은 바로 대법이 좋은지, 수련을 할지 말지 의심하는 것이다. 파룬궁은 가장 좋은 법(法)이고 가장 높은 법이며 가장 근본적인 법이다. 내 말이 옳은지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아무 관념도 갖지 말고 《전법륜》을 몇 번 읽어보는 것이다. 나는 한 번 다 읽지도 않고 반개오(半開悟)했는데 너무나 많은 대법의 진실한 체현을 보았다.
수련 후 가장 흔한 교란은 바로 법공부를 하고 싶지 않고 연공하고 싶지 않고 자신이 마땅히 할 일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인데 이런 것들은 모두 업력의 교란이다. 내 관찰에 따르면 집착심과 업력은 모두 생명이 있는 것으로 모두 살아 있다. 일반적으로 모두 검은 색이고 자신의 모양인데 집착심은 곧 자신이 집착하는 것을 고집하고 강화시키는데, 외마(外魔)가 교란할 수 있는 것은 마음속에 마가 있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마가 없다면 외마는 곧 웃음거리에 불과하다. 업력의 생각은 곧 각양각색으로 사람을 해치는데 자살, 자해, 우울 이런 것들은 모두 업력의 생각임에도 사람은 그것을 자기 생각이라고 간주한다. 우리 수련인에 대해 말하자면 수련을 파괴하는 사상과 행위의 배후는 모두 업력 또는 집착심의 교란이 있다.
만약 끊임없이 정진하고, 끊임없이 제고하면, 신(神)의 부분이 갈수록 많아지고 갈수록 강해지며, 사람의 부분은 갈수록 줄어들어 괴로움도 갈수록 줄어들고 갈수록 행복한 느낌이 들 것이다. 공기둥[功柱]의 감각도 마치 끊어지지 않고 연결된 산맥 위에 앉아 있는 것처럼 아주 안정적이고 아주 착실한 느낌을 준다. 제거하지 않은 집착심은 산맥 위로 자란 산봉우리와 같은데 수련을 잘하지 못하면 하나의 분체(分體)가 위에서 떨어질 듯 흔들리고, 수련을 잘하면 곧 안정되어 한 몸으로 연결된다.
과거에 어떤 사람은 신선(神仙)은 부럽지 않고 원앙(鴛鴦 금슬 좋은 부부)은 부럽다고 말한다. 세상에서 어찌 둘 다 완전히 만족시킬 수 있겠는가? 여래(如來)와 배우자를 다 저버리지 않으려 하는데 내가 보기에 모두 잘못이다. 왜냐하면 반본귀진(反本歸真)해서 자기 생명이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감은 모든 생명이 세상에 온 본래 소원이고 다른 생각은 모두 세간의 환상에 미혹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외에 인간 세상은 또 대법의 한 층차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각양각색의 인생의 길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제고해서 좋은 사람이 되고,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 고생이 있고 재난이 있음은 업력 때문이다. 세간에서 고생스런 환경을 이용해 다그쳐 업을 갚고 제고하는 것만이 정견(正見)이다. 수련인의 다양한 시달림은 개인 수련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며 우리는 최대한도로 속인에 부합해서 수련해야 한다. 만약 문제가 나타났다면 반드시 자신의 방법이 틀린 것이며 우리는 세계 및 환경과 모두 원융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보기에 수련이 제고될수록 외부 사물[外物]은 점점 더 필요하지 않다. 많은 외면적인 것들은 사실 마치 오염과 같아서 자기 안에 들여올 수 없다. 사악한 공산당은 우리가 정권, 돈, 특정한 것들에 관심이 있다고 떠들어 대지만 이은 아무것도 모르는 평범한 사람들만 속일 뿐이다. 사악한 당이 이런 것들을 선전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그것들 자신이 이런 것들을 추구하는데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수련 과정에서 줄곧 마땅히 알고 있어 할 도리는 처음과 같다. 예를 들어, 우리는 주원신을 수련하므로 주의식이 강해야 하고, 우리는 성명쌍수(性命雙修)라 닦으면서 또 연마도 해야 한다. 우리는 법이 사람을 연마[法煉人]하는 공이고, 불이법문(不二法門)이고, 심성이 얼마나 높으면 공이 그만큼 높고,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함[不失不得]은 절대적인 진리다. 만약 모든 집착심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수련은 사실 어렵지 않고, 소업의 고통은 비록 과정은 고통스러워도 반드시 지나갈 수 있는 등등.
수련하면서 언제나 사람 마음의 교란을 받지 말아야 하는데 사람 마음은 사실 아주 작고 약하다. 우리의 신체(神體 신의 몸)가 격리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분명 교란이 존재하는데 교란이 있기 때문에 계속 수련할 수 있다. 우리가 교란받을 수 있는 부분은 대부분 잘 수련되지 않은 부분이다. 때문에 집착심이 너무 강하다고 느낄 수 있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것은 반드시 법 공부와 연공을 하고, 할 일을 계속 해야 하는데, 교란에 미혹 당하지 말고, 대법으로 가늠하고 정념으로 가늠해야 한다. 교란이 심할수록 마땅히 더 법을 공부해야 하며 법을 잘 공부한다는 전제(前提)에서 내게 한 가지 어리석은 방법이 있는데 바로 연공을 많이 하는 것이다. 본체(本體)를 많이 개변하면 집착심을 제거하는데 도움이 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5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