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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定數)”를 말하다

일점(一點)

【정견망】

고인은 늘 “정수(定數)”를 말한다. “한번 물을 마시고 한번 쪼아먹는 것까지 미리 정해지지 않은 것이 없다[一飲一啄,莫非前定]”. 수련인이라면 다 알다시피 사람의 운명은 신(神)이 이 사람의 이전 선악(善惡)과 공과(功過)에 근거해 배치하는 것이다. 선악에는 보응이 따르고, 재앙과 복은 스스로 초래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 사람의 직전 세(世)의 언행(이런 언행이나 심지어 사상이 조성한 후과와 또 본인의 바람)에 근거해 다음 세(世)의 생명 과정이 배치된다.

일단 배치가 끝나면 마치 각본이 정해진 것과 같아서 쉽사리 변경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일단 변경하기만 하면 그 사람과 관련된 많은 사람과 사건들이 관련되어 있고 아주 넓은 인연관계가 모두 교란받기 때문이다. 다음 한 세(世)에 이 사람의 선악 표현이, 오직 일정한 범위 내에 있다면, 이미 정해진 이번 세(世)의 극본에 큰 변동을 주진 않을 것이다. 이러한 선행(善行) 악행(惡行) 및 후과(後果)는 모두 이번 세가 끝남(각본에 따른 연기가 끝남)을 기다려, 다시 신(神)의 평가와 총결을 거쳐서 이를 근거로 삼아(본인의 바람이 추가됨) 이 사람의 다음 세가 배치된다.

만약 이 사람의 선행과 악행이 일정한 범위를 초과한다면 그 사람의 다음 세의 각본이 변할 수 있다. 온갖 악행을 저지른 사람이거나 줄곧 선(善)을 지향하며 수련의 길을 걷는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즉, 만약 특수한 상황이 없다면 사람의 인생은 “정수”가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초등학생의 한 학기가 교사와 반 친구도 정해져 있고 심지어 좌석까지 배치된 것과 같다. 이 학생이 다음 학기에 어떻게 될지는, 정상적으로 진급할지, 유급할지, 아니면 월반할지는 일반적으로 학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학교에서 학생의 품성 및 학업 성취도를 종합적으로 평가한 후 새롭게 배치해야 한다. 만약 한 학기 과정에 국한해 본다면, 이 학생의 모든 것을 바꾸기란 매우 어렵다. 이 “정수”는 사람에 대한 제한이 아주 심해서 사람이 무력하게 보인다.

하지만 만약 한 학기의 한계를 넘어서서 더 큰 시간 단위에 본다면,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아우르고, 더 나아가 대학에 이르는 전 과정을 아우른다면 “정수”가 아닌 “변수(變數)”가 주선율(主旋律)이 된다. 이 학생이 정진하는 정도가 그의 졸업 여부를 결정하고, 어느 층까지 졸업하는지, 언제 졸업하는지 및 졸업 후의 향방을 결정한다.

온갖 나쁜 짓을 다 저지른 사람의 길은 누구도 걷고 싶지 않을 것이고, 선을 향한 길에는 “변수”로 가득 차 있다.

사부님께서는 “전체 인류사회는 바로 하나의 수련환경이다.”(《각지 설법 13》 〈2014년 샌프란시스코 법회설법〉)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이해하기에 수련은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 있으니 다시 말해 원래의 “정수”를 바꿀 수 있다. 예부터 지금까지 사실 매 사람마다 수련하고 있다. 그러므로 고대에 많은 사람들은 일세(一世)에 운명을 바꿨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단 이 사람이 수련을 시작하거나 또는 큰 선행을 하면, 그 일생의 각본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이, 그 일생에 곧 운명이 바뀔 수 있다.

당대(唐代)의 전기(傳記) 모음집인 《전정록(前定錄)》 한황(韓滉) 편은 바로 이 “정수”와 “변수”를 아주 생생하게 보여준다.

진공(晉公) 한황(旱荒)이 재상으로 있을 때 한 관리를 불렀다. 그가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자 한황이 화를 내며 채찍으로 그를 때리라고 명령했다.

그 사람이 말했다.

“제가 다른 소속이 있어서 제때 올 수 없었으니 부디 용서를 청합니다.”

한황이 말했다.

“너는 재상 수하에 있는데, 또 누구의 관할에 속한다는 말이냐?”

“저는 부득이 이미 저승 관아에 속해 있습니다.”

한황은 그의 말이 정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해 그에게 물었다.

“네가 기왕 저승 관아에 속해 있다면 직책은 무엇이냐?”

그러자 남자는 “저는 3품 이상 관리들의 음식을 관리합니다.”라고 대답했다.

한황이 물었다.

“그렇다면 나는 내일 무엇을 먹겠느냐?”

그러자 그 남자가 말했다.

“이는 작은 일이 아니라 함부로 말할 수 없사오니 부디 종이에 적은 후 나중에 다시 검증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한황은 그를 채찍질하는 대신 옥에 가두었다.

다음날 갑자기 황제가 한황을 불렀다. 황제를 알현할 때 마침 태관(太官 환관)들이 황제에게 음식을 진상하고 있었다. 그중 과자 한 접시가 있었는데, 황제가 맛있다면서 한황에게 남은 절반을 하사해 먹어보게 했다. 먹어보니 맛이 아주 좋았다. 이어서 또 다른 접시의 절반을 상으로 주어 먹으라고 했다. 한황이 조정에서 물러난 후 헛배가 불러 의사를 불러 진찰하자 의사가 말했다.

“음식물이 막힌 것이니 소량의 귤피차를 끓여 마시면 됩니다.”

그날 밤 그는 죽을 먹을 수 있었고 아침이 되자 병이 나았다. 한황은 전날 그 남자가 했던 말이 생각나서 그를 부른 후 그가 쓴 종이를 살펴보니 확실히 자신이 먹은 것이 그가 쓴 것과 일치했다.

한황이 그 남자에게 물었다.

“인간 세상의 음식까지 다 배치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가 대답했다.

“3품 이상의 관리는 날마다 한번 배치하고, 5품 이상의 관리는 열흘에 한 번 배치하며, 6품부터 9품까지의 관리들은 분기에 한 번 배치하며, 녹을 받지 않는 일반 백성들은 일 년에 한 번배치합니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 말이 깊은 영감을 준다. 고인은 “공직에 있을 때 수행을 잘해야 한다[身在公門好修行]”는 말이 있다. 관직이 높을수록 선과 악 사이의 선택에서, 마주하는 유혹과 압박이 커지고, 심성 표준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며, 그의 선택이 타인과 국가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다. 아울러 날마다 이런 선택을 할 기회가 있다. 잘하면 큰 덕(德)을 쌓지만 잘하지 못하면 큰 업(業)을 짓는다. 이런 사람들에 대한 신(神)의 총괄과 평가는 빈도가 극적으로 증가해서 “학기”가 짧아지고 “변수”가 증가한다.

대법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으며, 중생에게 근본적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법 공부 태만하지 않으니 변화가 그중에 있도다”(《홍음 2》 〈정진정오〉)

“더 분명히 말한다면, 당신이 대법(大法)을 보기만 하면 변하고 당신이 대법(大法)을 보기만 하면 제고된다.” “사상 중에 많이 담을수록 변화가 빠르게 마련이다.”(《정진요지》 〈법 중에 용해되자〉)

《전법륜》 〈제3강〉 “반수와 차공”에서 “그가 위에서 아래로 수련하면 빠른데”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최근에 한 가지 깨달은 것은 반수(返修)하는 사람은 본래 심성이 아주 높아서, 상응하는 에너지가 더해진 후, 그가 직면하는 심성 고험 역시 아주 엄숙해진다. 왜냐하면 표준도 따라서 높아지기 때문이다. 법(法)을 모르고 또한 공(功)의 내원과 의미를 모르는 상황에서 각종 복잡한 사람마음의 교란과 현실 세계의 유혹에 직면한다면 정말로 자신을 파악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만약 이러한 환경에서 심성을 지킬 수 있고, 당시 기공 고조의 천상(天象 대법이 널리 전해지는 길을 닦음)과 더 잘 협력해, 세인(世人)들이 기공에 대해 정면적인 인식을 갖게 하거나 심지어 장래 법을 얻을 기초를 다지게 했다면 이는 아주 큰 공덕(功德)이다. 반대로 심성을 지키지 못해서 반대로 한다면 공 역시 급속히 떨어져 내려갈 것이다.

개인적인 이해로 1999년 당시 사부님께서 모든 대법제자들의 공을 모두 제 위치까지 밀어주신 것은 “반수와 차공” 상황과 유사하다.

“제자: 사부님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99년 ‘7ㆍ20’ 이전의 제자를 모두 제 위치로 밀어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일부 개인수련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이들은 스스로 이 특별한 영예에 자격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따라온 이들 중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한시름 놓았습니다.

사부: 사실, 내가 매 수련생을 모두 제 위치로 밀어주었는데, 진실한 것으로, 당시 여러분들이 모두 느꼈으며 또 일부분은 보았다. 무엇 때문인가? 당신을 제 위치로 밀어주지 않으면 당신은 사부를 돕는 중에서 감당해야 할 그런 에너지가 없기에 당신은 사악을 막아내지 못한다. 당신을 제 위치로 밀어준 목적은, 전 세계 대법제자들을 모두 이렇게 했는데, 그러면 아주 높은 층차에서 온 사람을 구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념이 족할 때 당신이 한 말의 힘은 그를 제압할 수 있고, 당신이 한 말은 더욱 높은 층차의 진리를 안에 지니게 되며, 더욱 높은 층에서 사부가 그해에 당신을 제 위치로 밀어주었던 공이 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당신이 비록 사람의 말로 이야기하지만, 사람의 층면을 벗어난 후에는 모두 층층층층의 말로 변한다. 그 위치로 밀어주지 않으면 당신이 해낸 말은 중생을 구도할 수 없다. 모두 밀어주었지만 씬씽(心性)이 아직 제 위치에 도달하지 못하면 역시 공을 움직일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이 부동한 정황을 마주했을 때, 공덕과 心性(씬씽)이 모두 원만을 향해 걸어갈 때, 당신이 당신의 心性(씬씽)을 확실하게 제고해 올라가야만 비로소 된다. 수련 중에서 여전히 많고도 많은 집착을 반드시 제거해 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당신은 약속을 이행하는 중에서, 이번 박해를 마주하는 중에서, 당신이 그런 좋지 못한 것들을 제거할 수 있고, 간고한 환경하에서 당신이 여전히 가서 진상을 알리고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어야, 그 공이 비로소 떨어지지 않고 공덕과 心性(씬씽)이 모두 올라올 수 있다. 당신이 하지 않거나 혹은 잘하려고 하지 않으면 그 공은 곧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당신이 또 잘하면 그것은 또 조금 올라가고 당신이 잘하지 못하면 그것은 또 조금 내려간다. 당신의 수련은 바로 心性(씬씽)을 닦는 것이다.

일부 대법제자가 대법제자의 대오를 떠났을 경우, 다시 돌아오면 당신은 그를 노수련생으로 여기지 말라. 절대로! 왜냐하면 그는 그때 절대적으로 속인과 똑같기 때문이다. 이전에 배운 법을 그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대법제자는 응당 어떠한 상태여야 하는지 그는 전부 알지 못한다. 당신은 절대로 그를 노수련생으로 여기지 말아야 하고 반드시 신수련생으로 여기고 대해야 그는 비로소 걸어지나올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당신이 그를 노수련생으로 여기면 또 그를 내보내게 되는바, 그는 견디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는 완전히 신수련생이다.”(《각지 설법 14》 〈2016년 뉴욕법회설법〉)

지금 내가 이해하기에 당시에 공을 제 위치까지 밀어주셨지만 우리의 공덕과 심성은 아직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거나 또는 심성이 안정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구세력도 우리를 “고험”하기 위해 이번 박해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와 상응해서 당시 대법제자를 겨냥한 고험도 매우 컸다. 사부님께서는 9개월 동안 말씀하지 않고 우리더러 스스로 깨닫게 하셨는데 사악은 천지를 뒤덮을 듯이 전면적이고 누락이 없게 우리를 “고험”했다. 그때 대법제자들에 대한 신(神)의 총괄과 평가 빈도는 아주 크게 증가했다. 고험의 표준은 밀어 올려진 공의 위치와 대응하는데, 그것은 극히 높은 경지로 우리가 온 곳이다. 그러므로 많은 대법제자들이 박해받아 대열에서 떨어졌다.

일단 잘하지 못하면 공(功)이 심하게 떨어지고, 곧이어 새로운 문제에 직면한다. 엄숙히 반성하고, 진정으로 마음을 고요히 하고 법을 공부하며, 안으로 깊이 찾아 배전의 노력으로 따라잡을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면서 표면적으로 많은 일을 하면서 진정한 집착과 두려운 마음을 덮어 감출 것인지. 후자의 가장 두드러진 표현이 바로 “제 위치까지 밀어주셨다”는 사부님의 법을 단편적으로 이용해 모든 대법제자(자신을 포함)의 개인수련은 이미 끝났고, 심성에는 문제가 없으니 오직 “사람 구하는 일을 잘하면” 된다는 것이다.

사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정법(正法)의 시간이 거듭 연장된 것은 반드시 우리 대부분의 사람이 다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해에 사부님께서 제 위치까지 밀어주신 공이 이미 떨어져 내려갔음에도 스스로 자신은 “공이 제 위치까지 올라갔고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으며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여긴다면, 장기간 이렇게 나아간다면 모순에 봉착해서 안으로 찾을 수 없으니 이는 “자심생마(自心生魔)”가 아닌가? 일단 이런 상태가 대법제자 수련 환경을 교란하고 중생 구도를 교란한다면 후과는 곧 더 엄중해질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6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