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백(漸白)
【정견망】
세간에서 다그쳐 기연을 잡아 법(法)을 얻고 법을 인식할 수 있도록 나의 첫 대입은 실패했다. 이듬해 대학에 입학한 나는 인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대학 생활은 훨씬 더 자유롭고 뜻대로 할 수 있었다. 나는 대학이라는 곳은 바로 인생의 궁극적인 의미와 답을 찾기 위해 4년이란 시간을 벌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막 대법을 접촉한 것과 동시에 겁수(劫數 액운)도 찾아왔는데, 나는 사랑에 빠졌고 그녀는 우리 반에서 가장 예쁜 여학생이었다.
그녀는 성(省) 수도 출신으로 집안이 아주 좋았고 부모님 모두 일정한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었다. 반면 내 고향은 작은 현성(懸城)이었다. 처음 몇 학기 동안은 그녀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었고, 그저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고 생각했고 많은 사람이 그녀를 쫓아다녔다. 그런데 대법을 만나기 며칠 전 갑자기 나도 그녀와 사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우리 두 사람은 눈이 맞았고 함께 지냈다.
그 직후 기연(機緣)이 움직였고 나와 가장 친한 동창이 파룬따파 설법 영상을 보러 가자고 했다. 장소도 참 공교로웠는데 계단식 강의실 입구에 있는 방이었다. 마침 교수님이 해외에 나가 여자 대학원생이 수련생이었는데 무상으로 장소를 제공했다. 어떤 동창이 집에서 대형 TV를 가져왔고 곧바로 사부님의 설법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계단식 강의실이 우리 둘이 함께 공부하고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였다.
구세력은 내가 법을 얻는데 하나의 겁난을 설치했고, 연애와 법을 얻는 것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 두 가지 일이 같은 날 발생했다. 둘 다 오후 6시였다. 나는 일단 설법 영상을 먼저 보기로 선택했고 영상을 보고 나서 그녀에게 가기로 결심했다. 두 가지를 다 얻으려 했다.
나는 (사부님 설법을) 제2강부터 시청했고 제8강까지 보았다. 아직 제9강을 보지 못했는데 여동생의 수능 원서 작성을 도와주러 집에 가야 했다. 비록 7개 강의밖에 보지 못했지만 나는 첫날부터 수련하리라 발원했고, 제8강을 본 후에는 끝까지 수련하리라 결심했고 어떤 고생이든 다 겪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법을 얻는 것은 우리 가족 모두 법을 얻는 것과 관련될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과 가정이 법을 얻는 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법을 얻은 지 3개월 후, 구세력은 더 큰 고험(考驗)을 배치했는데 바로 우리 두 사람의 이별을 준비했다.
그녀가 제시한 이유는 대학원 입시 때문에 함께 할 시간이 많지 않다면서 그래도 함께 영화 정도는 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웃으며 동의했지만 그녀에게 영화를 보러 가자고 청한 적은 없다.
이별을 인정하기 싫었던 나는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이 과정에서 기숙사 복도에서 함께 연공했던 동수를 만났는데, 나더러 함께 법공부와 연공을 하자고 권했지만 나는 바빠서 시간이 없다며 미뤘다. 그가 두 번째 만나 또 같이 법공부하고 연공하자고 했을 때 나는 반성해 보았다. 수련이란 자신의 일인데, 남에게 두 번이나 법공부와 연공하자는 말을 듣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다. 나는 이에 대학원 진학을 과감히 포기했다. 대학에서 교수, 대학원생, 본과생, 전문학교 학생들이 함께 모여 법을 공부하고, 각 대학 별로 교류하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수련에서 빠르게 성숙했다. 대학에서 1년 넘게 법을 공부한 것은 내게 아주 좋은 수련 기초를 다져 주었다
나중에 그녀와 같은 도시 출신의 기숙사 친구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같은 반 동창들 중 가장 늦게 결혼했고 나와 헤어진 후로는 결혼할 때까지 줄곧 다른 사람을 사귀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그녀를 미워한 적은 없고 또 그녀를 나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녀가 대학원 진학이란 현실 이익을 위해 나를 버린 것이 불공정하다고 불평했을 뿐이다.
자고로 사랑에 빠지면 원망을 남기고 이런 원망은 끝없이 이어진다.
비록 미워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원망은 남아 있었다. 그녀와의 연애를 늘 추억으로 여기면서 10년이 지나도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29년이 지났음에도 늘 남아 있다.
나는 정(情)이 너무 크고 또 아직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법리(法理)에서 승화하지 않고 어떻게 제거할 수 있겠는가? 구세력의 험악(險惡)과 정법 중에서 그것들의 모든 배치는 생명 본질의 근본적인 변이를 해결할 방법이 없음을 절감했다.
최근 자신의 염두를 관찰해 보니, 속인 중에서 살아가는 과정에서 한순간도 고요할 수 없음을 발견했다. 잠시 이렇게 하고 싶다가, 잠시 후에는 또 저렇게 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 이렇게 해서 안 되면 저렇게 하고, 저렇게 해도 안 되면 이렇게 했다. 나는 깨달았다! 모든 사람이 움직인 염두는 다 일을 이루려는(成) 것으로 어떻게 하면 일이 이뤄질까,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하는 것이다. 늘 일을 ‘이루고(成)’ 싶어 하는데 일을 ‘이룬(成)’ 후에는 반복해서 어떻게 ‘머물지(住)’ 생각했고, ‘머문’ 후에는 어떻게 하면 그것이 ‘나빠짐(壞)’을 늦출 수 있는지 생각하고, ‘나빠진’ 후에는 어떻게 ‘멸망(滅)’하지 않을 수 있는지 생각한다. 전반 속인 사회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늘 성(成), 주(住), 괴(壞), 멸(滅)을 생각한다. 성(成)이 아니면 주(住)고 괴(壞)가 아니면 멸(滅)이다.
매 하나의 사람은 다 입자이고, 모두 성, 주, 괴, 멸을 생각하는데, 이 또한 고층 생명이 사람 이곳에 반영되어 조성된 것으로 고층 생명 역시 이번 정법의 ‘성(成)’을 주시하면서 그것들의 ‘멸(滅)’을 구하려 한다.
이렇게 본다면 여자 친구가 사랑을 깨고 대학원 시험을 본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데 단지 생명 본능의 생존 공포 때문이다.
그녀를 내려놓지 못했을 때는, 그 도시가 그녀였지만, 그녀를 내려놓자 그녀는 도처에 있는 중생이었다. 아무리 높은 구생명(舊生命)·구세력(舊勢力)이든 마찬가지인데, 모두 성주괴멸(成住壞滅)에서 맴돌 뿐이며 정법(正法)을 거치지 않으면 “멸(滅)”의 운명을 벗어나기 어렵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6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