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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물쇠를 여는 열쇠는 법(法) 속에 있다

혜지(慧持)

【정견망】

돌아보면 당시 나는 운 좋게 야외에서 연공하면서 홍법(洪法)하던 파룬궁 수련생을 만났는데 그가 내게 집에서 읽을 수 있도록 구판 《전법륜》을 빌려주었다. 그 안에 포함된 저자의 짧은 전기에서 사부님이 아동 시기에 특이공능이 나왔다는 대목이 있었다. 나는 당시 이것은 그야말로 너무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앞으로 꼭 파룬궁을 연마해야겠다고 여겼고 다른 기공은 모두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 여전히 돈벌이에 너무 집착했고 속으로 은퇴한 다음에 수련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야외 연공장에 가서 다른 수련생들을 따라 함께 배우지는 않았다. 하지만 파룬궁 관련 서적에 관심이 많아서 각지 설법들을 계속 빌려다 읽었다. 그러다 《전법륜 2》에서 〈퇴직하여 다시 연마〉를 보고 은퇴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생각을 바꿔 일단 먼저 법을 배우기로 했다. 그래서 보도원 집에서 개최한 파룬궁 9일 비디오 학습반에 참가했다.

법을 얻고 나니 나는 자연스레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와 가족에게 천서(天書)인 《전법륜》를 읽어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와 아이를 제외하고 다른 친지들은 천서를 보고도 무관심했다. 그들이 대법 수련에 걸어들어올 가능성은 더더욱 희박했다. 나는 “연분이란 정말 강요할 수 없음”을 한탄했다. 나는 또 다른 동수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수련을 권했다 실패한 일들을 정리해 보니, 그들이 내세운 이유는 주로 다음 두 가지였다.

첫째, 연공할 시간이 없다는 것

둘째, 대법 수련에서 요구하는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즉 이 두 가지 문제가 어디 이들 가족과 친지들만의 문제겠는가? 모든 대법 수련인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우리 대법 수련인 이곳에서는 두 가지 문제가 더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걸까? 그것은 법 공부가 우리에게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장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어느 단락의 법을 찾아야 할까? 불법(佛法)은 무변하니 불법 속에는 분명 답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에야 나는 마침내 답안을 찾았다. 단지 시간이 이미 지났고 상황이 바뀐 것이 아쉬울 뿐이다. 주마간산 식으로 법을 공부한 자신을 탓해야 한다. 눈으로 이 답안을 읽고 지나친 것이 셀 수 없이 많았다! 물론 이것은 내가 이 두 가지 문제를 마음에 두지 않았고, 사람들이 이 두 가지 장애물을 제거하도록 도울 만큼 열정이 부족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눈 깜짝할 사이에 20~30년이란 시간이 지나갔고, 더 이상 시간을 과거로 되돌릴 수는 없다. 사람들이 “연공할 시간이 없어요”라고 말할 때면 나는 즉시 《전법륜》 제3강 〈수련은 전일해야 한다〉의 마지막 문단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 문장을 한번 읽어보게 하는데 그러면 문제가 해결된다.

[역주: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이 단락을 명시하면 다음과 같다.

“고층차 수련에 이르면, 특별히 우리의 공법은 자동적이며 모두 완전히 자동적인 수련이다. 오직 당신이 心性(씬씽)을 제고하기만 하면 당신의 공은 곧 자라며, 당신은 심지어 어떤 수법도 쓸 필요가 없다.”]

또 남들이 “대법에서 요구하는 집착을 내려놓는 게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고 말할 때면 나는 즉시 《전법륜》 제3강 〈반수와 차공〉에서 3~6번째 문단을 반복해서 읽어보게 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곧 인간 세상에 와서 수련하지 않으면 다른 출로(出路)가 없다는 도리를 명백히 알 수 있다.

[역주: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저자가 언급한 문단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고층차에서 보면, 사람의 생명은 사람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람의 생명은 우주공간 중에서 생겨난 것이기에, 우주의 真(쩐)ㆍ善(싼)ㆍ忍(런) 특성에 동화한 것이며, 본성은 본래 선(善)하고 선량한 것이다. 그러나 생명체가 많아진 후에 그도 일종의 사회적 관계가 생겼다. 그리하여 그중 일부분 사람들은 이기적이거나 좋지 않게 변해, 아주 높은 층차에 있을 수가 없어 아래로 떨어졌으며, 한 층차 중으로 떨어졌다. 이 층차 중에서 그는 또 좋지 않게 변해 또다시 아래로 떨어지고 떨어져, 최후에는 속인 이 층차 중에 떨어져 내려왔다. 이 층차에 떨어지면 사람을 철저히 없애버려야 하지만, 그런 대각자(大覺者)들은 慈悲(츠뻬이)로 가장 고통스러운 환경 중에서 사람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로 결정하여, 이런 공간을 창조했다.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은 모두 이런 신체가 존재하지 않고, 그는 떠오를 수 있으며, 그는 또 크게 변하거나 작아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공간에서는 사람에게 이런 신체, 우리 이 육신이 있게 했다. 이 신체가 있은 후, 추워도 안 되고, 더워도 안 되며, 힘들어도 안 되고, 배고파도 안 되는데, 어쨌든 고생이다. 병이 있으면 당신은 괴롭고, 생로병사(生老病死)해야 하는데, 바로 당신에게 이런 고생 속에서 업을 갚게 하며, 당신이 또 되돌아갈 수 있는지 없는지 보려고, 당신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 바로 그래서 사람은 미혹 중에 떨어져 온 것이다. 이 속에 떨어져 온 후에 당신에게 이 한 쌍의 눈을 창조해 주어, 당신이 다른 공간을 보지 못하게 하고, 물질의 진상을 보지 못하게 한다. 당신이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가장 고생스러운 것도 가장 진귀한데, 미혹 중에서 깨달음에 의거해 되돌아 수련하는 데는 고생이 매우 많아 되돌아감도 빠르다. 당신이 더 나빠진다면 생명은 곧 없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볼 때 사람의 생명은, 사람이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당신으로 하여금 반본귀진하여 되돌아가게 하는 데 있다. 속인은 이 점을 깨닫지 못한다. 속인은, 속인사회 중에서 그는 바로 속인인지라,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 어떻게 잘살 것인지 생각한다. 그가 잘살수록, 그가 더욱 이기적일수록, 더 많이 점유하려고 생각하는데, 그는 우주의 특성과 더욱 어긋나며, 그는 곧 멸망을 향해 나아간다.

고층차에서는 바로 이렇게 보는데, 당신은 전진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후퇴한 것이다. 인류는 과학을 발전시켜 진보한다고 느끼지만, 사실 다만 우주 법칙에 따라감에 불과하다. 여덟 신선 중에 장과로(張果老)는 당나귀를 돌아앉아 탔는데, 그가 왜 당나귀를 돌아앉아 탔는지 아는 사람이 아주 적다. 그는 앞으로 가는 것이 곧바로 후퇴라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는 돌아앉아 탔다. 그러므로 일부 사람이 수련하려고 생각할 때, 각자(覺者)들은 이 마음을 극히 진귀한 것으로 여겨 무조건 도와줄 수 있다. 마치 우리 오늘 여기에 앉은 수련생들처럼, 당신이 수련하려고 하면 나는 무조건 당신을 도와줄 수 있다. 그러나 한 속인으로서 당신이 병을 보려 하고, 이것을 구하고 저것을 구하려 한다면 안 되며, 당신을 도와줄 수 없다. 무엇 때문인가? 당신은 속인이 되려 하는데, 속인은 마땅히 생로병사(生老病死)해야 하고, 마땅히 그래야 하며, 모든 것이 다 인연관계가 있어 혼란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사람, 당신의 생명 중에 본래 수련이 없었으나 현재 당신이 수련하려고 생각하면, 그럼 이후의 길을 당신에게 새롭게 안배해 주고 당신의 신체를 조정(調整)해 줄 수 있다.

그러면 사람이 수련하려는 이 소원이 나오기만 하면 각자들이 보고 그야말로 대단히 진귀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어떻게 도울 것인가? 세상 어디에 사부가 있어 가르치겠는가? 게다가 50여 세나 되는 사람이다. 대각자들은 가르칠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가 당신 앞에 나타나 당신을 가르치고 당신에게 설법하고ㆍ공을 가르쳐 준다면 그것은 천기(天機)를 누설하는 것으로서 그 역시 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나쁜 일을 하여 이 미혹 중에 떨어져 왔으므로 미혹 중에서 깨닫고 수련해야 한다. 그러므로 각자들은 가르칠 수 없다. 생생한 부처가 당신에게 설법하고 또 당신에게 공을 가르쳐 주는 것을 본다면, 십악불사(十惡不赦)한 사람도 모두 와서 배울 것이며 누구나 믿을 것인데, 그렇게 되면 또 무엇을 깨달을 것인가. 깨닫는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은 스스로 미혹 중에 떨어져 왔기 때문에 마땅히 훼멸되어야 하지만, 당신에게 한 차례 이 미혹 중에서 되돌아갈 기회를 주었다. 되돌아갈 수 있으면 되돌아가고, 되돌아가지 못하면 그것은 바로 계속되는 윤회와 훼멸이다.”]

마지막으로 《홍음 6》〈대법제자가 항로를 인도하고 있다네〉를 같이 나누고자 한다.

말후(末後) 대겁(大劫)의 시간 머지않으니
세인은 원래 천상(天上)의 왕이었다네
사람이 되어 창세주를 기다렸나니
다시 정과(正果)를 수련해 천당으로 돌아간다네
만고의 기연(機緣)이 곁에 있거늘
사람은 개인이익 위해 고달프고 분주하네
구도의 진상이 도처에 전해지거늘
편견에 치우치면 두 눈이 먼다네
닫힌 마음 열고 진상을 찾으시라
대법제자가 항로를 인도하고 있다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69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