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련(淨蓮)
【정견망】
나는 1997년 법을 얻은 대법제자다. 사악한 당의 전면적이고 누락없는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 속에서 나 역시 마난을 겪었고 가족과 사회의 큰 압력을 받았지만 폭풍우 속에서 다행스럽게도 사존(師尊) 법리(法理)의 인도와 동수들의 지지하에 매 하나의 난관(難關)을 걸어올 수 있었다. 대법제자들은 큰 어려움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사람을 구하는 사명을 짊어지고 용감하게 걷고 있다! 제자는 사존의 자비하신 구도에 감사드리며, 자신의 얕은 경험을 써서 사존께 보고드리고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1. 대법을 얻자 사부님 법신이 신체를 조정
1997년 10월 남편이 대법을 얻은 후 보서(寶書) 《전법륜》을 집에 청해왔고, 나는 마치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듯 끝까지 읽었다. 마음이 활연히 밝아졌는데 이것은 원래 내가 찾고자 했던 것이다! 원래 세상에 와서 사람이 된 목적은 반본귀진(反本歸真)일 뿐이다.
우리는 대학교 캠퍼스 단지에 살았다. 학교 안에 연공장이 있었고 운동장 울타리에는 홍법 게시판이 걸려 있었으며 매주 단체 법공부가 있었다. 법을 얻은 사람들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바닥에 둘러앉아 일제히 《전법륜》를 읽었는데, 장면이 아주 상화(祥和)해서 몸과 마음이 법에 녹아들어 즐겁게 웃는 풍경이었다. 매일 아침 5시에 모여 단체 연공을 했는데 에너지가 매우 강했고 연공을 마치고 나면 몸이 가볍고 기분이 좋아졌다. 예전에는 머리 옆쪽이 저린 증상이 있어서, 학교 다닐 때 물리치료실에서 침 치료를 받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법을 얻은 후 비몽사몽간에 침대 앞에 여러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를 좀 더 조정해 주자”는 목소리가 들렸다. 깨어났을 때 나는 이는 내 몸을 조정해 주신 사부님 법신임을 알았다. 신기하게도 그 이후 머리가 저린 느낌이 사라졌고 툭하면 걸리던 감기도 사라졌다.
처음에는 가부좌를 틀자마자 너무 아파서 바로 내려놓아야 했다. 하지만 계속 법을 공부하고 심성을 제고하자 원래 5분에서 10분, 15분에서 30분, 마침내 1시간까지 시간을 늘릴 수 있었다. 물론 연공은 고생스럽고 몸과 마음이 시달리며 다리도 심하게 아파서 심장이 심하게 뛸 정도였다. 당시 5장 공법을 연마할 때 늘 눈물을 흘렸는데, 아마도 명백한 일면이 사부님께서 나를 구도하시는 어려움과 홍대한 자비를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당시 우리는 거리로 나가 단체 연공하면서 세인들에게 홍법(洪法)했고 때로는 집에서 수련생들을 조직해 사부님의 설법 영상을 시청하기도 했다. 동수들은 서로 비학비수(比學比修)하면서 심성이 빠르게 제고되었다.
2.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도 정정당당하게 연공
99년 7.20 이전에도 이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부 낯선 사람들이 연공장에 자주 나타났고, 그 당시 특무들이 이미 대법제자들을 염탐하고 있었다. 한 번은 보도소에서 시내 무역 센터에서 연공과 홍법을 조직했다. 전날 오후 우리 직장의 상사가 전화를 걸어 “공안국에서 알고 있으니 내일 연공하러 가지 마라, 그곳에 가면 결과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조금 긴장해서 《홍음》 〈위덕〉을 외웠다.
대법이 몸을 떠나지 않으니
마음에 真善忍(쩐싼런) 있네
세간의 대나한(大羅漢)
신도 귀신도 몹시 두려워하네
대법은 가장 바른 것인데,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그날 밤 나는 특별히 목욕을 하고 다음날 새벽 동이 트기 전에 무역 센터에 갔다. 동수들이 대열을 짓고 음악에 맞춰 연공하고 있었고 심신이 이미 법(法)속에 녹아 들었다. 연공을 마치고 눈을 떠보니 주변에 경찰차가 주차되어 있고 사복 경찰들이 삼삼오오 걸어 다니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아무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고 정정당당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3. 착실히 수련하며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
99년 7.20 이후, 대법제자들은 박해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또 자신을 닦고 세인을 구도해야 했다. 사부님께서는 가르쳐주셨다.
“많은 수련생은 다만 연공하고 법 공부하는 것을 수련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그것은 직접 법의 일면을 접촉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착실히 자신을 수련하고 있을 때에 당신이 접촉하는 사회가 바로 당신의 수련환경이다. 당신이 접촉하는 직장환경, 가정환경 그건 모두 당신의 수련환경이며, 모두 당신이 반드시 걸어야 할 길로써, 반드시 대면해야 하고 반드시 정확히 대면해야 하는 것으로, 어느 한 가지도 적당히 얼버무릴 수 없다.”(《2006년 캐나다 법회 설법》)
다년간 수련하는 과정에서 가족, 동료, 그리고 세인들과 접촉하는 동안 나는 대법제자에 대한 그들의 인정을 들을 수 있었다.
(1) 어머니는 둘째를 가장 사랑해
우리 집에는 일곱 명의 자매가 있는데, 나는 자매들 중 두 번째로 나이가 많아 동생들은 나를 둘째 언니라 부른다. 나는 집에서 자신을 수련인이라 생각했다. 어머니는 매우 열심히 일하셨고 85세까지 밭일을 멈추지 않으셨다. 수년 동안 겨울과 여름 방학이 있었기 때문에 휴일마다 어머니의 일을 돕기 위해 집에 갔고 게으른 적이 없었다. 일상 생활에서도 동생들에게 더 많이 베풀고 항상 동생들의 이익에 양보하는 자세를 가졌다. 수련하기 전에 나는 자신이 매우 계산적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수련 후에는 자매들이 모두 바쁜 것을 알기에 부모님 생신 축하, 수의 구입, 관 짜기 등에 돈을 더 부담했고 목수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나는 자매들을 많이 생각했고 그들의 고민을 풀어주려 노력했다.
2015년, 불법 구금에서 풀려났을 때 어머니께서 틀니 때문에 음식을 먹기 불편하다고 했지만 다른 자매들은 그 말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말했다.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틀니를 해드릴게요.“
이렇게 어머니를 모시고 여러 번 치과에 가서 만족하실 때까지 새 틀니를 해드렸다. 넷째와 가벼운 대화를 나누던 중, 넷째 동생이 말했다.
“어머니는 형제 자매들 중 둘째 언니를 제일 좋아해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조금 놀랐다. 아마도 어머니께서 전화로 내 이야기를 자주 하셨을 것이다!
남동생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내 형편도 좋지 않았지만 1만 위안이 넘는 돈을 계속해서 지원해 주었다. 그는 진심으로 “둘째 누나가 최고야!”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심하게 편찮으실 때, 어느 날 오빠가 말했다.
“어머니! 보살님께 공양하셨잖아요? 빨리 외워보세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어머니는 불쑥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듣고 나서 마음이 놓였다. 어머니는 글자를 모르시기 때문에, 내가 《전법륜》을 읽어드렸다. 어머니는 어디를 가든 책을 갖고 다니시며 다른 사람들에게 읽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셨다. 어머니는 《전법륜》을 거의 다 읽으셨다.
(2) 시동생이 ‘삼퇴’하다
시댁에는 형제가 많은데, 나는 그들과 사이좋게 지냈다. 시아버지는 좀 편애가 있어서 아껴 쓰며 모은 재산을 대부분 셋째 아들에게만 주셨다. 셋째 시동생이 집을 살 때 시아버지는 현금 8만 위안을 주셨다. 하지만 나는 자신을 대법제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들과 이익을 다툴 수는 없다.
나중에 시부모님이 연로해서 남의 집에 살면서 이사 다니기 불편해서 내가 집을 사서 개조한 다음 두 분을 모셨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셋째 시동생은 카드에 남아 있던 만 위안이 넘는 돈을 몰래 가져갔다. 시어머니는 수입이 없고 한 달에 겨우 100위안 남짓밖에 받지 못해서 우리가 시어머니를 몇 년간 모셨다. 이 기간에 다른 자녀들은 시어머니를 오랫동안 모시지 못했고, 셋째 시동생은 시어머니를 자주 찾아뵙거나 전화도 자주 드리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타후아(先他後我) 무사무아(無私無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하라고 하셨기에 대법제자는 마땅히 일을 하면서 남을 고려해야 한다.
남편은 셋째 시동생에게 “너는 편안히 돈이나 벌어, 어른들은 우리가 모실게.”라고 말했다. 셋째 시동생은 집을 사고 아들 결혼식 비용도 우리에게 빌렸다. 그는 남편이 불법 구금되어 있을 때조차 집에 오지 않았고, 형의 안부도 묻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그를 원망했다. 다른 동서들도 “그에게 돈을 주지 마세요. 무슨 염치로 돈을 달라고 합니까?”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수련인이라 속인과 논쟁할 수 없고, 더군다나 원한심을 가져선 안 된다. 단번에 평형을 이루지 못하던 마음이 사라졌고 도리어 그가 불쌍해 보여 흔쾌히 돈을 주었다.
올 설날, 셋째 시동생이 우리 집에 저녁을 먹으러 왔다. 형제들이 모두 그 자리에 있었다. 술을 마신 후 그는 일어나 내 어깨에 두 손을 얹고 말했습니다.
“형수님, 어머님 외에 제게 잘해 주시는 분은 형수님뿐입니다!”
나는 말했다.
“내가 파룬따파를 배웠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겁니다. 도련님도 빨리 탈당하세요!”
전에 내가 탈당하라고 하면 침묵만 지키거나 화제를 돌렸지만 이번에는 진상을 아는 둘째 동서가 이렇게 조언했다. “빨리 탈퇴하세요. 그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자 셋째 시동생이 말했다.
“저는 오래전부터 당비를 내지 않았습니다. 마을 간부들에게도 탈퇴한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래도 여기에 성명을 해야만 독한 맹세를 지울 수 있어요. 하늘이 당신을 보호해야만 좋은 미래가 있을 수 있답니다.”
이 말을 들은 그가 “탈퇴하겠습니다, 탈퇴할께요.”라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그를 위해 기뻐했고, 또 한 생명을 구했다.
(3) 이익심을 내려놓고 모순을 해소
외손녀를 돌보기 위해 우리는 학교 안에서 큰 집을 빌렸다. 사람들은 우리 집주인이 다루기 힘들다고 말했다. 나는 ‘나는 수련인이니 아무리 어려운 일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집주인은 고집이 세고 하수관 문제로 아래층 이웃과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다. 이사 온 날, 아래층 이웃이 와서 문을 두드리며 물을 조심해 아래층으로 새지 않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걱정마세요. 어떤 문제든 우리 상의합시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자세히 살펴보니 주철로 만든 하수도 관이 녹슬어서 물이 새어 나올 수 있었다. 게다가 배관 이음새도 단단하지 않았다.
위층 이웃이 “모두 PVC 배관으로 같이 교체하는 것을 상의해봅시다”라고 말했지만, 집주인이 동의하지 않아 교체하지 못했다. 나중에 내가 아주 조심해서 물을 써도 여전히 물이 샜다. 집주인과 수리에 대해 상의하자 집주인은 “하수관은 당연히 학교에서 수리해야 한다”며 고집을 부렸다. 하지만 이웃은 “하수관 수리는 당연히 집주인이 돈을 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전에 중단되었는데, 어떻게 해결할까?
남편과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돈을 내자!”고 의논했다. 수리를 위해 사람을 부르자 이웃이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내가 알아보니 당신은 학교에서 인정받는 좋은 사람이더군요.” 이렇게 이사 온 후 수리비로 2,000위안이 넘게 들었다. 나중에 집을 뺄 때도 보증금이 1,000위안 넘게 남아 있었지만 집주인은 여러 가지 이유로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사위가 너무 화가 나서 따지려고 했다. 우리는 “안 주면 그만이야”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집주인 부인과 아들은 사리에 밝았다. 집주인 아들에게 전화를 걸자 아들이 말했다.
“엄마, 빨리 아주머니한테 돈을 드리세요!” 나는 집주인 부인에게 진상 USB를 주고 또 진상을 알려 삼퇴를 권했다. 나중에 그들은 모두 대법 사이트를 방문했고 공산당의 본질에 대해 아주 똑똑히 알게 되었다. 그들은 “우리는 당신들 파룬궁을 동정합니다. 공산당은 너무 나빠요.“라고 말했다.
비록 20여 년간의 수련의 길에서 여러 번 걸려 넘어지고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나는 사부님의 자비와 법의 위대함 때문에 원래 이기적이고 따지기 좋아하던 내가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선타후아(先他後我)할 수 있고 명리(名利)나 득실(得失)을 담담히 볼 수 있는 수련인이 될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이 혼탁한 세상에 진아(真我)를 찾을 수 있고 사부님의 정법(正法)을 돕고 세인을 구하는 신성한 대법도(大法徒)가 될 수 있었다.
이상의 내용은 지난 20년간 내가 수련하면서 얻은 일부 경험이니 혹시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71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