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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에 들어가 호법한 한차례 경험

중국 대법제자 난화(蘭花) 구술

【정견망】

나는 1998년 봄 법을 얻은 대법제자다. 당시 이 공법(功法)을 배우면 질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데 기적적인 효과가 있어서, 1억 명이 연마하고 있고, 많은 난치병이 수련을 통해 치료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이 말에 감동을 받았다. 왜냐하면 우리 남편은 원래 위장에 문제가 있어서 20년 넘게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었고, 조금만 음식이 차가워도 먹지 못했으며, 심지어 감을 먹고 싶어도 냄비에 넣고 데워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내가 대법에 들어온 것은 남편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였다. 내가 법을 공부한 지 3일째 되었을 때 남편이 나를 따라 배웠다.

남편과 나는 글을 몰라서 동수들이 법을 공부하러 오면 나는 《전법륜》을 들고 글자를 짚어가면서 동수가 한 문장을 읽으면 따라 읽었다. 매일 이렇게 조금씩 법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모르는 단어가 많아서 동수들이 와서 다시 물어볼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때마다 동수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알려주었다. 몇 달 후, 나는 여전히 몇 가지 모르는 글자가 있었지만 그래도 혼자서 법을 배울 수 있었고 법 공부를 견지했다. 내가 법을 읽으면 남편도 귀를 기울였다. 1년 동안 법을 배우고 연공하자 남편의 위장병도 치료되어 무엇이든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매우 행복했고 아이들도 우리 몸이 좋아진 것을 보고 매우 기뻐했다. 그들은 모두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알았다.

1999년 7월 20일, 사악한 당이 연공을 불허했고 경찰서에서 대부대를 파견해 우리더러 담화하자면서 파룬궁을 연마할 수 없다고 했다. 남편은 그들에게 “내 위장병은 돈으로도 치료할 수 없었고 연공은 한 푼의 돈도 쓰지 않고 병이 좋아졌소. 나는 약을 살 여유가 없는 늙은 농부라 연마해야 합니다.”라고 항변했다.

사악의 박해가 시작된 후 우리 집에 법 공부 소조를 만들었다. 동수들이 매일 집에 와서 법을 공부했다. 2000년 5월 22일, 사부님께서 《심자명(心自明)》을 발표하신 후, 법 공부 소조의 동수들과 함께 진지하게 공부하고 반복해서 읽었는데, 며칠 만에 나도 다 외울 수 있었다. 나는 ‘천안문’이 ‘하늘로 돌아가는 문’임을 깨달았다.

이에 동수들에게 이번에 나도 천안문에 가서 법을 실증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날 밤, 소조의 한 동수가 천안문 광장에 가서 법을 실증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내일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나는 나이가 많고 집을 떠나 멀리 여행한 적도 없었기 때문에 북경에 가는 길을 아는 동수가 있으니 함께 가기로 했다. 그날 밤 우리 부부는 집에서 자고 다음날 사악을 피하기 위해 새벽 3시에 집을 나섰다. 우리 마을에서 함께 수련하는 다섯 명이었다.

우리는 모두 현수막을 들고 아침 7시쯤 천안문 광장에 도착했다. 남편과 다른 남성 동수가 현수막 중 하나를 펼치며 “파룬따파하오”라고 외쳤다. 내가 현수막을 펼치자마자 사복 경찰이 현수막을 빼앗아 갔고 나는 “파룬따파하오”를 외쳤다. 남편이 현수막을 펼치자마자 경찰과 사복 경찰이 몰려와 주먹과 발길질을 했다. 경찰이 남편을 구타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당신네 경찰은 아직도 사람을 때리고 있군요.“

이렇게 말하면서 경찰을 옆으로 밀었다. 경찰이 돌아서서 내 얼굴을 세게 때렸다. 그 후 우리를 경찰차에 태우려 했다. 우리 십여 명의 사람들은 서로 팔짱을 끼고 위무(威武) 당당하게 버텨냈다. 사복 경찰이 아무리 밀고 당겨도 움직일 수 없자 한참을 대치한 후에야 우리를 떼어냈다.

우리는 어느 감방으로 끌려갔고 경찰이 물었다.

“당신들은 모두 어느 지역 사람인가?”

“북경 사람입니다.”

“(북경) 어디서 왔습니까?”

“우주에서 왔습니다.”

“이름이 뭡니까?”

“대법제자입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우리는 저녁에 모두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78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