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重生)
【정견망】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수련이란, 사람과 신(神) 사이는 바로 그 일념(一念)의 차이다.” (《2004년 뉴욕 국제법회 설법》) 라고 하셨다. 그렇다! 이 일념의 차이가 천리의 차이가 난다.
우리 수련인이 수련 과정에서 사상 속에 움직인 어떤 일념(一念)이든 모두 그리 간단하고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한번 말해보고자 한다.
1. 법 공부 문제
법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서, 만약 우리가 줄곧 사람의 생각으로 법을 대하고 이성적으로 법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곧 대법을 속인의 위치에 놓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단지 속인의 복보(福報)만 얻을 뿐, 자신을 더 높은 층차로 수련할 수 없게 할 것이다.
만약 법을 공부할 때 속인의 일부 사람 관념을 지니고 법을 공부한다면, 그럼 오직 대법에서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는가 하는 이치만을 볼 수 있을 뿐, 더 높은 층차에서 대법의 내함(內涵)은 볼 수 없다. 또한 대법이 우리를 더 높은 층차로 수련하도록 이끌지 못하게 해서 그저 장기간 저층차에 배회하면서 더 높이 수련해 올라갈 수 없게 한다.
만약 우리가 사람의 그 어떤 관념도 지니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하고 수련인답게 그렇게 법을 공부한다면, 대법의 내함이 우리에게 드러나 우리가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사부님께서 “진정으로 배우고 진정으로 수련해야만 비로소 고층차의 이치를 보아낼 수 있다.”(《세계 파룬따파의 날 설법》)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자연히 어떻게 해야 수련인이 마땅히 잘해야 할 세 가지 일을 잘할 수 있는지 알게 되고, 또한 사부님 정법의 발걸음을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구세력의 교란도 받지 않고, 수련의 길에서 우리가 집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수많은 장애도 없을 것이다.
2.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문제
만약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할 때 사람의 생각을 지니지 않고 한다면, 그럼 구세력이 인간 세상의 나쁜 사람을 이용해 우리를 박해하는 일을 당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사람들에게 진상(眞相)을 알릴 때 듣지 않고 대법제자를 악의적으로 고발하는 현상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세인들은 진상을 받아들여 구원받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신성한 일을 할 때, 흔히 사람 마음을 지니고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진상 자료를 배포할 때,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지 못해, 두려운 마음이나 명예를 구하는 마음을 지녀선 안 된다. 배포하지 않으면 원만하지 못한다고 두려워하거나 자신의 위덕이 없을까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신성한 일을 속인의 일로 삼아 한다면 구세력은 아주 똑똑히 볼 수 있기에 곧 교란과 파괴를 진행할 것이다.
수련인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순 문제를 대할 때, 무조건 안으로 찾고 자신의 문제을 찾으며 자신을 잘 수련해, 법에서 제고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발생한 모순을 잘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밖으로 보고 남의 문제를 찾으며, 수련인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모순은 더욱 격화될 것이다. 구세력은 모순을 확대시키고 이를 통해 잘 수련하지 못한 대법제자들을 훼멸할 것이다.
3. 병업을 대하는 문제
수련인들은 ‘병업’ 문제를 대할 때 흔히 사부님께서 업을 없애시는 것으로 여긴다. 그들은 즉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으로 자신의 부족과 사람 마음을 찾고 발정념으로 이런 사람 마음과 부족함을 없애고 심성이 제고해 올라오면 ‘병업’ 가상은 즉시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만약 사람마음을 지니고 대하면 마음이 불안해서 자신이 병이 난 게 아닌지 의심하거나, 사부님께서 더 이상 자신을 관할하지 않으시는지 의심한다. 때로는 수련하지 않는 가족의 권유로 병원에 입원하여 속인의 병으로 간주해 치료를 받기도 한다. 그 결과는 뻔하다.
4. 연공을 대하는 문제
수련인이 연공을 대할 때 종종 연공을 자기 수련의 일부로 여기고 매일 아침 연공을 견지한다. 그러면 신체는 당연히 줄곧 건강해지고 아울러 갈수록 더 젊어지며, 진정으로 대법의 신기를 실증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이 수련인의 몸에서 대법의 신기(神奇)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속인의 마음으로 연공을 대하면 연공은 자신의 신체 건강을 보증하는 것으로 되어 연공하지 않으면 자신의 신체가 건강하지 못할까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병을 치료하려는 목적을 품고 연마하면 당연히 마땅히 있어야 할 좋은 효과에 도달할 수 없다.
5. 모순을 마주하는 문제
수련인이 다른 이의 잘못을 대할 때면 선량한 마음을 품고 대해야 한다. 타인이 자신을 좋지 않게 대할 때에도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고 다른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모순을 대하지 말아야 한다. 자비로운 마음을 품고 모순을 대해야 한다. 설령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여전히 상대방을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경찰이 대법제자를 납치할 때도, 대법제자가 여전히 경찰을 위해 생각하고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 대법의 아름다움을 알려주며 삼퇴(三退)해서 평안을 지키라고 권할 수 있다. 많은 대법제자들의 자비는 곧장 사악의 박해를 해체해 경찰이 대법제자를 신속히 풀어주어 집으로 돌려보내게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 다른 사람의 잘못을 대할 때 사람 마음을 지닌다면, 상황을 정반대로 만들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좋지 않게 대할 때, 사람 마음을 지니면 오직 상대방의 잘못만 보게 되고, 이기적인 심리가 즉시 우세를 차지한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욕할 때, 우리는 진심으로 수련인이 마땅히 해야 할 욕을 먹어도 대꾸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 마음으로 문제를 보면 먼저 생각하는 것이란 ‘욕을 하다니 내게 덕(德)을 주는구나. 욕을 많이 할수록 내게 주는 덕이 더 많아진다.’ 라고 생각할 것이다.
경찰이 동수를 납치할 때, 첫 일념이 ‘경찰이 악행을 저질렀으니 보응을 받을 것이다.’라고 여기면서 경찰에게 어떻게 진상을 알릴지 생각하지 못하는데 그럼 구세력은 곧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를 더욱 가중시킬 것이다. 따라서 같은 납치 사건이 각기 다른 대법제자에게 발생하면 완전히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하나는 동수가 즉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악당이 무고하게 몇 년 형을 선고하는 것이다.
이처럼 많은 차이가 있고 너무나 많은 것이 달라진다. 정말로 일념(一念)의 차이가 천리의 차이가 난다.
개인의 작은 인식이니 법에 부합하지 않는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28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