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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실히 수련하면서 남편을 구하고 소제자를 잘 이끌다

중국 대법제자 성선(聖善)

【정견망】

나는 올해로 수련 10년째다. 그동안 많은 일을 겪었고 많은 수확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막 수련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2주 동안 불법 구금되었다. 자유를 되찾은 후 박해로 직장을 잃었다. 그 후 2015년 장쩌민 소송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가족과 동수들에게도 동참할 것을 권했다. 결혼한 후에는 가족이 진상을 알리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그 결과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삼퇴했다. 여러 어른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대법 진상을 알고 밝은 미래가 생겼다.

2021년, 둘째를 임신했을 때 사악이 다시 우리 올케(오빠의 아내)를 납치했다. 나는 친정 어머니, 남편과 함께 변호사를 찾아가 동분서주하면서 무려 2년 동안 경찰서, 검찰, 법원을 오가며 소송을 제기ㅣ했다. 이 기간에 사악이 남편을 납치해 한달 동안 불법 구금했다. 나는 다시 지역 경찰서와 검찰을 오가며 경찰의 불법 행위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다. 지금 오빠 부부는 다시 재회했고, 우리 역시 온 가족이 단란하며 두 아이도 귀엽고 건강하다.

여기서 내가 남편(동수)을 구출한 경험을 써서 여러분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1. 부부가 안팎에서 협력해 검은 굴을 나오다

어느 여름 아침, 지역 공안이 우리 지역에 계획적인 단체 박해를 진행했다. 남편이 집을 나간 직후, 사복 경찰들이 집에 들이닥쳐 불법으로 집을 샅샅이 뒤졌다. 나는 “사부님, 저를 구해 주세요!”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항의했다. 그들은 대법 서적, 프린터, 컴퓨터, 휴대폰 등 모든 전자 기기를 압수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조사에 협조해 달라고 했다. 그런 다음 남편을 직장으로 데려가 수색하고 불법 구금한 후, 나는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남편이 불법 구금되었을 때, 나는 즉시 정의로운 변호사에게 연락했다. 하지만 팬데믹 기간 동안 변호사 면담 일정을 잡기가 어려워 급히 일반 변호사를 만나기로 했다. 변호사에게 남편에게 사부님의 경전을 전해주고 아울러 이렇게 당부하게 했다.

“사부님께 청하고 발정념을 많이 하세요. 모든 박해를 전반적으로 부정하고 사악의 그 어떤 요구나 명령, 지시도 절대 협조하지 마세요. 집안일은 내가 있으니 별문제 없을 거예요.”

남편을 면담한 후, 변호사는 남편의 정념이 강하고 가져간 경문이 남편의 뜻과 부합한다며 사부님의 가지를 느낄 수 있었고 안에서도 동수들이 함께 서로 격려하고 가지한다고 했다.

나는 사부님을 믿고, 남편도 아무 문제 없이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 이 모든 일을 하는 동시에, 나는 매일 큰 아이를 동수가 운영하는 유치원에 보내 매일 법 공부와 발정념을 하며 두려워하지 않도록 했다. 작은 아들은 아직 모유 수유 중이었기에 어머니께 아들을 돌봐 달라고 부탁했고, 겸사겸사 시어머니를 돌보고 격려해 달라고 부탁했다. 시어머니는 속인인데 시아버지가 사악의 박해로 목숨을 잃으셨기에 충격이 더 컸다. 평소에도 정신이 멍한 상태였는데, 아들이 불법 구금되었다는 사실을 알자 큰 충격으로 자주 우셨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힘을 합쳐 시어머니를 격려하고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변호사의 말에 따르면, 사건은 보통 37일 후에 공안에서 검찰로 이관된다고 했다. 우리는 이 소중한 한 달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정의로운 변호사와 나는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경찰서에 갔지만 기각되었다. 그 후, 우리는 경찰서에 불법 체포로 법을 위반했다는 고소장을 제출했다. 또한 사실관계가 불분명하고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내용의 고소장도 제출했다. 재판 전 보석을 신청하고 사건 기각을 요청했다.

또한 관할 공안국, 법무국, 검찰청에도 사본을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안국에서 추가 수사를 진행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남편을 불법 체포했던 같은 경찰서의 경찰관도 다시 전화를 걸어 “재판 전 보석은 불가능하고, 사건 기각 또한 불가능하다.”라고 화를 내며 욕설을 퍼부었다.

우리는 침착함을 유지하고 마음을 가라앉히며 사부님의 가지를 구했다. 그리고 해당 경찰관이 “가족과 변호사를 위협하고 협박했다”는 이유로 다시 고소하고 사건을 공안국에 넘겼다. 경찰서 측은 전화로 사건을 조사하고 가능한 한 빨리 답변하겠다고 대답했다. 담당 경찰관이 다시 전화를 걸어왔는데, 목소리가 훨씬 차분했지만 여전히 남편을 석방할 수 없다며 보석을 거부했다. 간접적으로 나는 우리 지역의 집단 탄압은 시에서 배치한 것으로 아무런 이유도 없이 명단을 주고 사람을 체포한 것이란 이야기를 들었다. 경찰은 또 자신들은 체포할 권한만 있고 석방할 권한은 없다고 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나는 변호사가 작성한 법률 문서를 최고인민검찰원에 즉시 우송했다. 불안한 마음으로 최고검찰원에 찾아갔지만, 문에서 들어갈 수 없었다.

나는 변호사와 검찰에 고소장과 사건 취하서를 우송하며, 사실관계가 불분명하고 증거가 부족하다며 체포를 승인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지만, 한 달이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32일째 되는 날, 검찰 창구에 가서 사건을 문의했는데, 지난 금요일 퇴근 후 이미 검찰로 사건을 이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결과를 문의했지만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해 최고검찰원에 소장을 우송한 때였다. 나는 두 명의 정의로운 변호사와 함께 검찰청 문 앞에서 검사와 통화를 시도했지만, 검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겨우 한 번 보좌관이 전화를 받았고 검사에게 전달하겠다고 했다.

35일째 되는 날 아침, 변호사와 관할 경찰서에서 남편을 구치소에 가서 데려가라는 전화가 왔다. 사건의 진상이 불분명하고 증거도 부족하여 남편은 재판을 앞두고 보석으로 풀려났다. 마침내 남편이 검은 굴에서 나온 것이다.

이 기간에 나는 줄곧 사부님께 가지를 청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남편은 별문제 없고 반드시 돌아올 거야.“

스스로 정념을 유지하면서 힘들어 하거나 울지 않았고, 동수를 격려하고. 시어머니를 격려하며 자신을 격려했으며 오직 사부님께 가지(加持)를 청했다. 사부님의 가지 덕분에 두 아들도 아무 영향을 받지 않아 내게 큰 안도감을 주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2. 소제자를 잘 이끌고 사부님 은혜에 감사

두 아들은 세 살 반 차이가 난다. 큰아들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매일 나와 함께 법 공부와 연공을 했고, 심지어 지역 법회에도 참석했다. 아들이 태어난 후 나는 어디든 아들을 데리고 다녔다. 아들을 품에 안고 단체 법회와 지역 소규모 법회에도 데리고 다녔다.

두 살이 조금 넘었을 무렵에는 《파룬따파하오》, 《대법 소제자》, 《가부좌》 등 대법 노래를 부를 수 있었고, 많은 단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네 살 무렵에는 이미 《홍음》의 여러 시를 암기할 수 있었고, 종종 우리와 함께 발정념을 하기도 했다. 다섯 살 때부터 우리와 함께 법 공부를 시작했다. 큰아들은 얌전하고 예의가 바르다.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매일 숙제를 내주시는데 내가 없는 사이에 혼자 숙제를 했고, 내게 검사해달라고 한다. 내가 옆에 있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작은 아이가 형이 숙제할 때 끼어들어서 놀아달라고 한다. 그럼 가급적 동생에게 양보한다. 지금 큰 아이는 혼자 연공을 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가끔 깜짝 놀라게 하는 말을 한다.

나는 아이들을 정말 좋아한다. 가끔 아들에게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라고 물으면 아들은 “두분 다 좋아요.”라고 대답한다. 내가 기어코 “그래도 누가 더 좋아?”라고 물으면 아이는 “저는 사부님이 제일 좋아요! 엄마는 그 다음이예요.”라고 대답한다.

많을 때 아들은 나보다 훨씬 청성(淸醒)해서 사부님의 법을 인용해 나를 일깨워준다. 가끔 내가 동생을 안고 분주하게 노는 모습을 보면 “엄마, 이건 다 정(情)이에요. 사랑도 감정이고, 미움도 감정이고, 기뻐하는 것도 정이에요.”라고 말한다.

내가 남편에게 몇 마디 하면 “엄마, 이건 다 원망이니 빨리 제거하세요.”라고 말한다. 아이는 또 내 발정념을 돕는데 늘 나를 일깨워준다.

아이는 어려서부터 잠자리에 들기 전에 사부님 설법을 들었다. 팬데믹 기간에 큰아들은 여러 번 병업관(病業關)을 넘었다. 어떤 때는 열이 5일 이상 지속되고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다. 하지만 늘 9자진언(九字真言)을 외우며 지나왔다. 아들은 늘 사부님께서 자신을 도와주신다면서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사부님이 곁에 계시니 아들이 병업관를 겪을 때도 나는 늘 마음이 든든했다.

우리 가족이 함께 외출할 때면 다른 이들에게 가정의 따스함과 아이들의 행복을 느끼게 한다. 동수들은 모두 사악이 박해하는 지금도 대법을 수련하면 이런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말하는데, 또 이렇게 어린 소제가가 이렇게 견정(堅定)하게 수련했다고 말한다.

세 살밖에 안 된, 작은 아들은 비교적 활동적이고 장난기가 많지만, 집에서든 밖에서든 단체 법 공부를 할 때는 비교적 얌전하게 혼자 논다. 우리가 발정념을 하면 자기도 손동작을 따라서 한다. 형이 연공할 때면 동작을 따라서 한다. 말은 아직 어눌하지만, 연공 구결을 외울 수 있다.

올해 초, 우리는 두 아이를 데리고 두 차례 법회에 참가했다. 매 동수의 교류가 끝날 때마다작은 아들이 열렬히 박수를 치며 “사부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정월 대보름 전 우리 집에서 작은 법회를 열었다. 나와 여섯 살 난 큰아들이 함께 법회 사회를 맡았다. 우리는 함께 개회사를 읽었고, 아들은 사부님의 신경문을 읽고 또 법회 교류도 했다. 현장 분위기가 정말 감동적이었다. 큰아들은 무대 공포증 하나 없이 법회를 훌륭하게 진행해, 동수들에게 특별한 느낌과 격려를 주었다.

우리 전가족은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대법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과 함께하는 만고(萬古)에도 만나기 힘든 이 소중한 시각, 사람과 신(神)이 함께하는 이 소중한 시각에 우리는 대법의 아름다움을 세인들에게 알리고, 대법의 아름다움으로 세인을 감동시키며, 세인들이 미혹의 안개에서 벗어나 대법에 동화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또 수련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주변 동수들을 소중히 여기며, 함께 손잡고 원만해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