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인간 세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근본 집착을 닦아버리다

산동(山東) 대법제자 신생

【정견망】

27년간의 수련 과정에서 나는 늘 자신은 무슨 근본 집착이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처음 대법을 수련할 때 대법이 자신의 병을 낫게 할 수 있다는 마음을 품고 들어오긴 했지만 《전법륜》을 읽고 나서 대법은 수련(修煉)이며, 사람을 반본귀진(反本歸真)하게 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부님의 근본적인 집착에 대한 가르침과 비교해 볼 때, 나는 근본적인 집착이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사부님의 근본 집착에 대한 법을 공부할 때마다 매번 그저 훑어보기만 했을 뿐, 자신에게 근본 집착이 있는지 진지하게 검토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수련하는 동안 나는 늘 자신도 말로 표현하거나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는 문제가 있는 것을 느꼈다. 늘 자신을 대법과 격리하는 어떤 것이 있음을 느꼈지만, 도대체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존재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얻지 못했다. 계속 스스로에게 질문도 해봤지만, 그 어떤 명확한 답도 찾지 못했다.

작년부터 딸과 함께 살기 시작한 후, 새로운 환경에서 딸 가족과 끊임없이 마찰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특히 딸과의 관계가 힘들었다. 딸은 종종 내게 이렇게 말한다.

“엄마는 어떤 문제나 사람을 볼 때, 늘 먼저 상대방의 문제를 찾아요. 특히 익숙한 사람이나 일일수록 상대방의 장점은 무시하고 단점만 확대 시켜요. 그러니 볼수록 더 불행해져요. 왜 다른 사람의 장점에 더 집중하지 않으세요?”

딸의 말을 듣고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왜 다른 사람의 장점을 많이 보지 못하는가? 원인은 무엇인가? 왜 나는 말할 때 종종 과장하는가?” 나는 이러한 사로(思路)를 따라 안으로 찾기 시작했다. 수련하기 전, 내 인생의 전반부는 고통으로 가득했다. 나는 아주 특수한 가정에서 자랐고 어린 나이에 친부모의 사랑을 잃었다. 나는 자신의 운명이 불운한 것을 원망했다. 양부모님과 함께 살면서도 그들의 잘못만 집중하고, 자신이 받은 좋은 것에 대해 감사하지 못하는 습관이 생겼다. 하루 종일 하늘을 원망하고 땅을 탓했다. 동시에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아첨하는 사람 마음이 생겼다. 나는 살면서 단 하루도 즐거운 날이 없었다.

수련 후, 나는 씬씽(心性) 방면에서 자신을 다스리려고 노력했다. 자신과 가족의 과거 잘잘못보다는 오직 내게 잘해준 것만 집중했다. 나는 오직 자신을 잘 수련해야만 이미 고인이 된 가족들에게 잘 보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수련 전 겪었던 고통에 대해서도 훨씬 담담히 보게 되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과거 일들이 떠올랐고, 여전히 불평하는 마음이 남았으며, 여전히 자신의 힘든 운명을 탓했다. 특히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주변의 관심을 받지만 나는 거의 받지 못하거나, 심지어 전혀 보살핌을 받지 못할 때면 더욱 그랬다.

작년에 딸 집으로 이사한 후, 네 식구가 걱정 없이 살고, 딸이 주변 모든 친지들의 사랑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은 다시 뒤집어졌다. 왜 이런가? 남은 왜 이렇게 잘 살 수 있는가? 왜 내 삶은 이렇게 힘든가? 나는 왜 불평을 가득 안고 살아가는가? 지난 몇 년간 동수들과 법 공부를 하면서 겪었던 문제들을 오늘에야 자세이 생각해 보니, 자신이 동수의 좋지 않은 일면만을 보았기 때문이 아닌가? 동수의 부정확한 표현은 사부님께서 나 자신을 수련하도록 배치하신 것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자신을 제고할 기회를 얼마나 많이 놓쳤는가? 동수는 마치 거울처럼 자신의 부족함을 비춰주는데, 나는 왜 그들의 부족함만 보고 늘 불평했는가? 때로는 또 차라리 회피했는데 왜 기회를 틀어잡고 안으로 찾아서 자신을 수련하지 못하는가?

과거 자신의 각종 표현을 되돌아보고 사부님의 법(法)과 대조하며 안으로 찾았다. 내가 남의 허물을 보는 것은 마치 구세력(舊勢力)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구세력은 오직 다른 사람만 개변시키려 할 뿐 자신을 개변하려 하지 않기에 정법에서 도태될 운명에 처했다. 내가 이렇게 밖으로 찾고 남을 닦게 하려는 것은 바로 구세력이 원하는 것이 아닌가? 자신도 모르게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따라 걸은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왜 구세력의 길을 걸었을까? 나는 계속해서 찾았다. 내가 남의 잘못을 보면서 속으로 심하게 불평할 때, 왜 동시에 일종의 원한심(怨恨心)이 생기는 걸까?

수련하기 전에는 나를 버리고 떠난 친부모의 마음이 너무 잔인하다고 원망했다. 또 어린 시절 나를 사랑하고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어려서부터 기쁨을 앗아간 양부모님이 너무 무정하다며 원망했다. 수련을 시작한 후, 법 공부와 내 수련을 지지해 주지 않는 가족을 원망했고, 불효한 딸을 원망했으며,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을 원망했고, 동수들이 나와 화목하게 교류해주지 않는다고 원망하는 등 온갖 원한심이 다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사람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나는 계속해서 찾았다. 27년을 수련했음에도 나는 왜 여전히 이런 사람 마음이 있는 걸까? 나는 무엇 때문에 고생 속에 몸부림쳤는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이런 것은 인간 세상에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려는 것이 아닌가? “인간 세상에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추구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이것은 장기간 내 마음속 깊이 묻혀 있던 집착심이 아닌가? 이것이 바로 나의 근본 집착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내가 27년 수련의 길에서 비틀거리고 때로는 정진했지만 때로는 정진하지 못했던 것 역시 당연하다. 모든 사람과 일을 수련인 답게 대하지 못했다. 바로 이 근본 집착이란 사람 마음이 내 정진을 가로막고, 내가 진정으로 무조건 안으로 찾아, 자신을 닦고, 자신을 잘 닦는 것을 방해했던 것이다.

오늘 나는 마침내 이 사람 마음을 찾아냈다. 나는 그것을 폭로해서 그것을 닦아버렸다. 발정념을 하면서 “인간 세상에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추구하는 이 사람 마음”을 겨냥해 강력한 일념(一念)을 내보냈다.

“나는 이런 사람 마음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대법제자이니, 오직 사부님께서 주신 것만 원한다.”

여기서 또 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또 딸이 나를 도와 자신의 근본 집착을 찾도록 도와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또한 딸과 주변의 모든 속인과 동수들께도 감사드린다. 내가 근본 집착을 찾은 후 오랫동안 화장실에서 물이 새던 욕실 현상이 갑자기 멈췄다. 나는 자신이 옳게 찾았음을 깨달았다.

나처럼 변변치 못한 제자를 떨구지 않으신 자비하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나는 자신의 근본 집착을 찾을 수 있었는데, 이는 전적으로 다년간 법(法)을 외운 결과다. 앞으로도 나는 반드시 수련을 잘해서 근본적인 집착을 닦아내고 더욱 정진할 것이. 나는 반드시 계속해서 법을 외우고, 心性(씬씽)을 닦아, 세 가지 일을 잘해, 서약을 실현해 더 많은 사람을 구도할 것이다.

개인의 작은 체험이니 법에 없는 곳이 있다면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감사합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5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