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예전에 나는 다른 공간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시종 막연했다. 직접 체험해 본 적도 없고, 또 다른 공간이 대체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도 전혀 몰랐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만약 당신이 세포와 분자 사이, 분자와 분자 사이에 진입한다면, 당신은 곧 이미 다른 공간에 진입했음을 체험할 것이다. 그 신체가 존재하는 형식은 어떤 것인가? 물론 당신은 현존하는 이 공간개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으며, 당신의 신체는 그런 공간이 요구하는 존재 형식에 동화해야 한다.”(《전법륜》)
이 부분을 공부할 때마다 나는 늘 명백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공간이 요구하는 존재 형식에 동화”할 수 있을까? 그러다 반복적으로 착실히 수련하고 깨달은 후에야 비로소 점차 그 속에 담긴 내함(內涵)이 점차 명백해졌다.
예전에 일하면서 문제를 처리할 때 늘 속인의 사유로 처리하곤 했다. 나중에 한 차례 일을 배치하면서 대법의 지혜로 해야 한다고 스스로 일깨웠다. 기왕 책임을 맡았으니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다하는 동시에 타인을 배려해야 하며, 또한 각 분야의 특성, 동료들의 신체 상태, 성격, 취미 등을 고려해 “질서 있는 배치”를 완수해야 한다. 내가 심태를 바로 잡은 후 본래 아주 긴 시간이 걸려야 완성할 수 있었던 일이었지만 단번에 새로운 방법이 떠올라 아주 빨리 적절히 배치했다. 나는 당시 아주 신기하다고 여겼지만 오히려 ‘공간’의 요소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후 일부 경험을 통해 나는 다른 차원의 존재 형식에 대해 더 명확히 감수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가르칠 때 이렇게 묻는다.
“이 과목 시험을 보는데, 여러분은 마땅히 어떤 심태로 문제를 풀어야 할까?”
대답은 바로 “정신을 집중해서요.”였다. ‘정(精)’과 ‘신(神)’을 모두 공부에 사용하고 한눈을 팔거나 잡념이 없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눈에 생기가 돌고 머리가 맑아져서 지혜가 자연스럽게 펼쳐질 것이다.
이렇게 하자 어떤 학생이 시험지를 매우 빨리 제출했다. 내가 그에게 체험을 묻자 그는 “정신을 집중해서 문제를 풀었더니 속도가 전보다 훨씬 빨라지고 아울러 바깥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요. 예전보다 훨씬 즐겁고 또 시간도 훌쩍 지나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나는 깊은 놀라움과 함께 갑자기 깨달았다. 정신을 집중한다는 자체가 하나의 공간이며 그것도 대단히 아름다운 공간이다. 오직 사람이 그것의 요구에 부합하기만 하면 그속에 들어갈 수 있다. 나는 자신이 “책임지고 남을 위하며 질서 있는 배치”를 한다는 법리로 일을 지도할 때면, 마찬가지로 지혜가 드러나 “책임지고 남을 위하며 질서 있는 배치”라는 다른 공간에 들어감을 깨달았다. 이런 아름다운 공간들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존재한다. 내가 그 공간에 들어갈 때면 곧 그 공간의 특성을 체험할 수 있고 아울러 그 속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다시 말해, 내가 진정으로 “책임”의 특성에 부합할 때면, 나는 즉시 “책임”이란 공간에 들어갈 수 있고 바른[正] 에너지를 느낄 수 있으며 “책임”의 지혜를 지닐 수 있다.
공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짐에 따라, 나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사상적으로 정면(正面)으로 이끄는 것을 더 주의하게 되었다. 많은 학생이 오성(悟性)이 아주 좋아서 늘 신기하고 아름다운 경지를 체험하곤 했다.
예를 들어 한번은, 내가 정정당당한 이치로 학생들에게 단정한 학습 태도를 이끌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학생이 수업 시간에 몰래 잡담하고, 그림을 그리거나, 숙제를 하고, 음식을 먹거나, 딴짓을 하는 이런 것들이 모두 ‘바르지 못한’ 것이며, 표현되는 것은 몰래 하거나, 두리번거리는 눈빛, 그리고 뭔가 떳떳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배우기 위해 학교에 다니는 것이 아니며, 몰래 나쁜 짓을 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제거해서, 교실 질서를 바로잡고, 좋은 것은 남기고, 나쁜 것은 없애야 한다. 정정당당하게 학습하고 하나의 올바름이 백 가지 삿된 것을 누르면[一正壓百邪] 바르지 못한 것들은 자연히 다가오지 못할 것이다.”
수업 후, 학생들에게 체험을 공유해달라고 하자 한 학생이 말했다.
“정정당당한 심태로 공부하니 전례 없는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마치 꿈같은 세계에 들어온 것 같은데 그곳에는 소음도 없고 그 어떤 나쁜 것도 없었습니다. 외우는 것도 아주 빠르고, 기억력도 눈에 띄게 향상되었으며, 글을 쓰는 속도도 빨라졌는데 정말 멋진 체험이었습니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정정당당”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얻었다. 정정당당한 공간 속에는 두려움도, 박해도, 그 어떤 바르지 못한 것도 없으며, 모든 것이 다 바른 것이다.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우리는 정정당당하게 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은 실증과학의 틀과 개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당신이 그 공간에 들어가려면 그 공간의 형식에 부합되어야 만이 비로소 들어갈 수 있다.”(《시드니 법회 설법》)
이를 통해 나는 다른 공간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실증과학의 틀과 개념을 버려야 함을 깨달았다. 그 공간에 들어가는 것은 육신(肉身)이 아니다. 육신은 단지 인간 세상이란 이 공간에서의 존재 형식일 뿐이다. 다른 공간의 생명 형식은 육안으로 볼 수 없으며, 인간 세상과는 전혀 다르다. 오직 우리의 사상이 그 공간의 특성과 법의 요구에 진정으로 부합하기만 하면 우리의 元神(주왠선)은 즉시 그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상은 내가 착실한 수련을 통해 얻은 깨달음 중 일부이며,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6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