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수련생
【정견망】
며칠 전, 우리 소조(小組) 법공부 시간에 50대 초반의 기술 동수 한 분이 동참했다. 그는 소조 법공부에 자주 참석하지는 않지만, 이번 여름에 두세 번 정도 참석했다. 기술 동수는 매번 여러 사람들이 가부좌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최소 세 시간 이상 결가부좌를 틀고 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모두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동의했지만, 실천하기는 어렵다.
이 기술 동수[이하 대용(大勇)으로 간칭]는 말이 어눌하고 말수도 적은 편이다. 매번 법공부 시간에 결가부좌를 반듯하게 틀고 앉아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데, 몸을 곧추 세우고, 눈에는 결의와 지혜가 깃들어 있다. 정말로 불가(佛家)의 그런 장엄하고 보배로운 상(相)을 지녔고 부처의 위의(威儀)를 갖췄다! 법공부와 교류가 끝나면 곧장 가부좌를 풀고 일어선다. 법공부 중간에 다리를 여러 번 움직이고, 일어날 때면 몇 분간 다리를 풀어야 하는 우리들과는 달랐다.
이번에 교류하면서 대용 동수는 며칠 전 명혜망에 실린 문장을 언급했다. 그 글에서 수련생이 천문(天門)이 활짝 열렸지만 자신은 겨우 59점이라 불합격해서 절망과 회한을 느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가부좌와 수련 관계에 대한 자신의 깨달음을 강조하면서, 나더러 우리가 함께 교류한 내용을 정리해 달라고 했다.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역주: 글쓴이가 언급한 문장은 《꿈에 본 것 : 나는 59점(梦中所见:我得59分)》으로 아직 한글로 번역되지 않았다. 대략적인 내용은 대만의 한 수련생이 꿈에 대법제자들이 원만하는 장관을 보았는데 100점 만점에 60점을 넘지 못한 수련생들을 천문이 열렸어도 하늘로 날아오르지 못했고 자신은 59점이라 합격하지 못했으니 지금부터라도 분발해야 한다는 것.]
사존께서는 《정진요지》 〈불성과 마성〉에서 우리에게 “사람의 불성은 선(善)으로서, 慈悲(츠뻬이)로 표현되며 일을 함에 우선 남을 고려하고 고통을 참고 견딜 수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라고 가르쳐 주셨다. 불성의 세 가지 특징 중 하나가 바로 “고통을 참고 견딜 수 있는 것”이다.
대용 동수는 자신이 만난 수련생들 절대 다수가 인내력과 고생을 견디는 능력이 부족한데, 인내력과 고생을 견디는 능력을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또 정량적인 표준이 바로 결가부좌라고 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법은 끝없는바(大法無邊), 당신의 그 마음에 의거해 수련해야 하며, 당신이 얼마나 높이 수련할 수 있는지는 완전히 당신의 인내력과 고생을 견뎌내는 능력에 달렸다.”
“心性(씬씽)이란 무엇인가? 心性(씬씽)은 德(더)[德(더)는 일종 물질이다]를 포괄하고, 참음(忍)을 포괄하며, 깨달음(悟)을 포괄하고, 버림(捨)을 포괄하는데, 속인 중의 각종 욕망과 각종 집착심을 버리는 것이며, 또한 고생을 겪을 수 있어야 하는 등등 여러 방면의 것을 포괄한다.”(《전법륜》)
고생을 겪을 수 있는 것은 心性(씬씽)의 일부이고 고생을 겪을 수 없고 참지 못하면 心性(씬씽)이 높지 않고, 소업도 적어지며, 오성(悟性) 역시 낮으며, 층차도 그만큼이다. 씬씽(心性)의 척도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부좌를 트는 시간은 오히려 아주 명확하다.
대용 동수는 1999년 이전 법을 얻은 노수련생들이 세 시간 가부좌를 틀지 못하면 수련에 합격할 수 없다고 했다.(개인 의견임) 그의 설명에 따르면 한 달에 1분 씩 가부좌 시간을 늘린다고 해도 일 년이면 12분이라고 했다. 즉 박해 전 시간을 제외하고 99년부터 계산해도 26년이면 312분이니 벌써 5시간이 넘는다. 만약 한 달에 30초 즉 하루에 1초씩 시간을 늘린다고 해도 156분이니 두 시간 반 정도는 가부좌를 틀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많은 노수련생들이 한 시간도 버거워하는데, 30년을 더 수련해도 이와 같다면 무슨 용맹정진(勇猛精進)을 말할 수 있겠는가.
그는 자신은 3시간 결가부좌를 하고 난 후 자신의 오성(悟性)이 크게 강화되었고 전문 지식도 척 보기만 해도 이해할 수 있었고 씬씽(心性) 방면에서도 전보다 훨씬 많이 참을 수 있다고 했다. 아무리 억울해도 한번 웃고 넘어갈 수 있다. 발정념을 하고 진상을 알릴 때 에너지도 거대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神通加持法(선퉁쟈츠파)는 정공(靜功)수련법에 속하는 부처의 수인(手印)으로서 法輪(파룬)을 돌려 신통(공능을 포함함)과 공력을 가지(加持)하여 여러 가지를 함께 수련하는 공법이다.”
“가부좌를 틀고 앉는 시간은 길면 길수록 좋지만 공의 기초에 근거하여 정할 수 있다. 시간이 길수록 강도(强度)가 더욱 크며 공이 나옴도 더욱 빠르다.”(《대원만법》)
그는 더 나아가 제5장 공법은 공능(功能)과 신통(神通)을 연마하는 것으로 각 동작을 30분씩 하거나, 때로는 한 시간씩 연마하면 공능이 강해지고 신통이 나오니 사악도 감히 다가오지 못하는데 당신인 무슨 박해를 당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대용 동수는 1996년, 자신이 처음 단체 법 공부와 연공에 참여했던 경험을 회고했다. 당시에는 제5장 공법을 45분간 연마했는데 평소 15분밖에 앉을 수 없었다. 갈 때 다만 법을 공부하러 갔는데 나중에 제5장 공법을 단체로 연공한다는 말을 듣고 속으로 불안했다. 연공을 시작한 지 15분이 지나자 매 분 매 초마다, 뼈를 깎는 듯한 통증이 있었고, 모든 세포와 신경마저 다 경련하는 듯했다. 하지만 아무도 다리를 풀지 않는 것을 보고, 그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매 순간이 고통스러웠고, 마치 날카로운 칼날로 자신의 몸을 베는 듯했다. 당시 겨울이었고 난방도 없었지만 연공이 끝날 무렵,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는 진정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한 기분을 느꼈다.
7.20 이후, 대용은 잠시 소침하긴 했지만, 나중에 노정을 따라잡았다. 두 시간 가부좌를 돌파했을 때 대용은 마지막 10분이 특히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줄곧 사부님께서 《창춘 보도원 회의 설법》에서 하신 말씀을 기억했다.
“이 세상에서 수련보다 더욱 엄숙한 일은 없다. 당신은 돈을 벌기 위해 그렇게 많은 고생을 하고, 당신은 다른 일을 위해 그렇게 많은 고생을 할 수 있는데, 당신은 당신의 수련을 위해서 좀 고생을 겪을 수 없는가? 업력이 온몸에 가득한 한 사람이 부처가 되려 하고, 원만(圓滿)을 이루어 수련 성취하려 하는데, 이것보다 엄숙한 것이 또 있는가?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그것을 대하는가? 이런 문제가 아닌가?”
대용은 고통에 몸을 앞뒤로 움직이고 이를 악물었지만, 다리를 풀진 않았다. 대략 두 시간 결가부좌를 예닐곱 번 시도한 끝에 마침내 안정적으로 두 시간 동안 아프지 않게 되었다. 그 후 또 3시간과 4시간 내지 더 긴 시간도 거의 아무런 통증 없이 관(關)을 넘길 수 있었다. 이후 정공(靜功)을 연마할 때, 에너지가 온몸에 솟구쳐 오르며 아주 편안하고 특별히 아름다운 것을 느꼈다. 그는 가부좌는 고진감래(苦盡甘來)의 과정이며 고통과 즐거움이 함께한 과정이라고 했다.
대용 동수는 많은 노년 동수들, 특히 여성 수련생들이 연공에 대해 고생을 겪으려 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육친 정이 무겁고 자손들에게 빠져, 천륜(天倫)의 즐거움에 탐닉한다. 날마다 책을 보고 법을 공부하긴 하지만 법 공부는 사실 형식적이고, 씬씽(心性) 제고가 없으며 소업(消業)도 많지 않다. 지금은 스마트폰이 유행하면서 많은 동수들이 스마트폰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며, 소중한 수련 시간을 허비하고 수련 의지를 약화시키는데 이는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어떤 동수가 쓴 문장에 다음과 같은 단락이 있는데, 마지막으로 그것을 인용하겠다.
“수련은 반드시 고생을 겪어야 하며 고생을 겪으려면 반드시 참아야 한다. 참음에는 心性(씬씽)과 육체적인 것이 다 포함된다. 비록 마음을 닦는 것이 주요하긴 하지만, 연공 역시 인내와 정력(定力)을 체현할 수 있다. 시간이 날 때 연공을 많이 해야 하며 게으름과 변명은 모두 인내하지 못하는 표현이자 일종의 강렬한 집착심이다. 고생 겪기를 두려워하는 게으른 사람이 어떻게 대자대비(大慈大悲)한 무상정각(無上正覺)으로 수련 성취할 수 있겠는가?”
법(法)을 얻기란 쉽지 않다. 정법(正法)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사존께서는 아직도 기다리고 계신다. 동수들이 최후의 시간을 잘 닦아, 적어도 합격한 제자가 되기를 희망하는데, 자신을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이상 개인의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아낌없는 지적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