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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과 진심 어린 칭찬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1)

최근 16년 된 우리 집에서 많은 물건들이 망가졌다. 문과 창문 손잡이가 부러졌고, 창문에서는 물이 새고, 욕실 미닫이문 틀의 윗부분이 부러져 긴 나사 두 개가 드러났다. 문을 여닫을 때마다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수리공에게 물어보니, 이런 경우에는 새 문으로 교체해야 하며 수리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며칠 전, 수련하지 않는 남편이 자발적으로 창문 두 개와 방문 세 개를 교체했다. 아들과 나는 원래 욕실 문을 원래처럼 접을 수 있는 미닫이문으로 교체할 생각이었다. 설치 기사가 가져온 것은 강화 유리문이었다. 남편은 이 문이 원래 미닫이문보다 품질이 좋아서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들이 좀 불만스러워하며 투덜댔다.

“원래 문은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아요. 품질이 좀 나빠도 미닫이 문으로 교체할 수 있는데 왜 우리에겐 아무 말도 없이 혼자 결정하셨네요! 아이고.”

내가 아들에게 말했다.

“이미 이렇게 된 걸 어쩌겠니. 아빠도 좋은 뜻으로 하신 거야. 지금 있는 걸 즐기면서 천천히 적응하는 게 좋겠다.”

(2)

며칠 전, 큰 물건 두 개가 택배로 도착했다. 내가 확인해 보니 남편이 아들을 위해 산 새 침대였다. 아들이 듣고는 말했다.

“왜 미리 말씀하지 않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걸로 고를 수 있었는데! 아빠는 늘 이런 식이에요. 늘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려고만 하세요!”

나는 설치 전에 번거롭지만 사진을 미리 보여주면 안 되냐고 물었다!

사진을 보고 나는 좀 실망했다. 겉보기에는 예쁘고 수납공간도 넉넉했지만, 침대 바닥이 거의 바닥에 붙어 있어서 로봇 청소기가 들어가 청소하기 힘들었다! 또 겨울철 실내 난방에도 영향을 주지 않을까?

나는 속으로 좀 불편했다. 만약 미리 상의했더라면 더 좋은 침대를 살 수 있었을 게 아닌가!

나는 생각했다.

‘일단 설치하고 나서 보자. 안 되면 침대 받침대라도 사서 바닥을 올리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여기까지 생각하자 마음이 놓였다.

(3)

시어머니가 우리 집 문과 창문을 새로 설치한다는 소식을 듣고 “창문에 필름은 붙이지 말아라. 방이 어두워지고 채광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라는 메시지를 보내오셨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급히 해명했다.

“아들 컴퓨터가 비싼 거라서 햇빛에 노출되면 안 돼요. 가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시어머니가 듣고는 아무 말씀도 않으셨다.

남편도 “벽에 뭐 붙이지 말라고 했잖아!”라고 했다. 아들이 이 말을 듣고 큰 소리로 외쳤다.

“벽에 페인트칠 안 한 지 몇 년 되었고 엄마가 스티커나 그림을 좀 붙이는 게 뭐가 잘못이에요? 집 전체를 페인트칠하는 것보다 훨씬 쉽고 시간도 절약되는데, 안 그래요? 아빠 방에 담배 냄새랑 얼룩이 가득한 걸 가리는 게 뭐가 문제에요?”

나는 아들이 내 편을 들어 말해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나는 나와 아들은 수련인임을 생각하니 대화하면서 이런 말투는 그리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마땅히 가족으로서 선의적으로 설명하고 따뜻하게 표현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이 집은 16년이나 우리와 함께했어요. 나는 집을 옮기고 싶진 않아요. 이 집 구석구석에 우리의 아름다운 추억과 헌신이 담겨 있으니까. 앞으로 살면서도 늘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 차길 바래요.”

남편이 이 말을 듣고 아주 기뻐했다!

사실, 나는 이미 인터넷에서 야광 스티커를 사서 욕실 문에 붙일 계획이었다. 이렇게 하면 밤에 일어났을 때 밝은 불빛이 먼저 보여서 어둡지 않게 할 수 있다. 아직 물건이 도착하지 않았을 뿐이다!

(4)

최근에 발생한 이런 일들을 생각해 보니 비록 모두 가족의 작은 문제들이지만 왜 내 마음이 평온하지 않은 걸까? 다른 의견을 들으면 왜 마음이 불편하고 기분이 나쁜가? 여전히 변명하는가? 만약 모두 내 의견을 듣고 만족하고 행복하다면, 이건 나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집을 꾸밀 때 남편에게 의견을 물어본 적이 없다. 늘 내 입장에서 결정했고, 누구도 간섭할 수 없었다! 설령 간섭한다 해도 듣지 않았을 것이다!

자세히 생각해 보니, 내 표현이 어디 온화하고 정숙한 여인의 모습인가? 마치 내 몸 안에 말괄량이가 사는 것 같다. 만족하지 못하면 성질을 내면서, 함부로 행동한다. 만약 대법의 단속이 없었다면 나는 벌써 오래전에 통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어떤 때 여러분은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든, 개인 수련을 포함하여 정체적으로 대법의 일을 하든, 확실히 완벽하지 못한 곳이 많이 있다. 가장 돌출된 것이거나 가장 큰 것, 또한 줄곧 장기간 해결되지 않은, 또 그런 신들이 내 귓전에 줄곧 이야기한 것이자 그들이 가장 불만스러워 하는 것을, 나는 여태껏 이 방면을 중점으로 이야기하지 않았으며, 나는 또 심하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무엇 때문인가? 대법제자가 오늘날 법을 실증하자면 아직도 사람의 용기가 좀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는 남겨두어 최후에 이야기하고자 했으며, 때가 됐다 싶을 때 내가 다시 이야기하고자 했다. 어느 방면인가? 바로 대법제자에게 잘못이 있을 때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인데, 말만 하면 폭발하여 누구도 말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제기한 의견이 맞아도 언짢아하고, 다른 사람의 말이 틀려도 언짢아하는데, 말하기만 하면 언짢아한다. 이 문제는 이미 상당히 심각해졌다.”(《로스앤젤레스 시 법회 설법》)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여러분이 생각해 보라. 나는 『전법륜』과 초기 설법 중에서 모두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나는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을 해도 대꾸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좋지 않게 대해도 당신은 그냥 웃고 지나야 하고, 다른 사람이 모순이 발생했을 때 제3자인 당신마저도 마땅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나는 마땅히 어떻게 해야 좋은가, 이 일에서 만약 나였다면 자신을 지킬 수 있고 수련인답게 비평과 이의에 대면할 수 있었겠는가? 수련이란 바로 안을 향해 찾는 것이라, 맞든지 맞지 않든지 모두 자신에서 찾아야 하며, 닦음이란 바로 사람의 마음을 닦는 것이다. 늘 지적과 비평을 받아들이지 않고 늘 밖을 향해 지적하며, 늘 다른 사람의 의견과 비평을 반박하는 그것이 수련인가? 그것이 어찌 닦는 것인가? 습관적으로 늘 다른 사람의 부족을 보고 여태껏 자신을 보는 것을 중시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은 수련을 잘했는데 당신은 또 어떻게 하겠는가? 사부는 당신이 잘 수련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닌가? 당신은 왜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늘 다른 사람을 보는가? 오히려 안을 향하여 닦지 않고 자신을 찾지 않는가? 자신에 대한 말을 꺼낼 때면 당신은 왜 좋지 않아 하는가? 당신들, 이 자리에 앉은 사람들 몇이나 갑자기 어떤 사람이 삿대질하며 당신에게 욕할 때 심정이 담담할 수 있는가? 몇이나 다른 사람의 비평과 지적에 직면해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을 수 있는가?”(《로스앤젤레스 시 법회 설법》)

사부님의 법(法)은 내게 여전히 법에 부합하지 않는 물질과 요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나는 반드시 그것들을 중시하고 제거해야 한다! 내가 그런 좋지 않은 마음을 내려놓은 후 남편이 뜻밖에도 처음으로 주도적으로 문에 붙일 스티커를 샀다. 주방에도 스티커를 사서 조용히 붙였고 붙이고 나서야 내게 알려주었다! 게다가 자신이 붙인 스티커를 봤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진심으로 남편을 칭찬했다.

“이 장식들 정말 예쁘네요! 당신 미적 감각이 정말 좋아요! 최고예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져요!”

남편이 기쁘게 말했다. “천천히 배워봐요.”

요약:

가정생활의 몇 가지 작은 일들은 모두 우리 수련인의 心性(씬씽)을 반영한다. 우리는 어디에 있든, 언제나 늘 잘해야 한다. 우리가 잘해야만 주변 가족을 이끌어 개변(改變)할 수 있고 이렇게 해야만 가족 및 친구들이 대법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9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