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질투심을 식별해 제고의 기회를 더는 놓치지 말아야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십여 년 전, 내가 검은 소굴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여러 동수들이 함께 교류하는데 한 동수가 현지의 한 협조인을 말하며, 그가 수련을 얼마나 잘했고 정념이 있다고 했다. 나는 들으면서 동수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말을 가로채며, 아주 명백하게 자신을 과시하면서, 내가 어떤 일에서 어떠어떠하게 닦았고 어떠어떠하게 했는데 정념이 있었다고 했다. 과시심과 질투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 동수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저는 이제야 질투심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았어요!“

그 순간 나는 얼굴이 빨개졌지만 자신이 잘 닦아내지 않은 집착심이 마치 어릿광대처럼 행동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속으로 ‘그녀가 어떻게 발견했지?’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끊임없는 법 공부와 착실한 수련을 통해 그때 나의 일념(一念)이 바로 질투심이 반영되어 나온 것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질투심을 대하는 문제에서 나는 여전히 진정으로 그것을 인식해서 그것을 제거하지 못했다. 다만 다른 사람이 잘 되면 부러워하면서 마음의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곧 질투심이라고 표면적으로 얕게 인식했을 뿐이다. 하지만 부동한 층차의 수련에 대해 법(法)은 더 높은 표준이 있다. 사부님께서는 두 가지 사례에서 내가 깨닫지 못하거나 또는 근본적으로 법에서 깨닫지 못한 것을 보셨다.

올해 5월 13일, 동수들의 원고를 정리하면서 어느 정도 제고가 있자 사부님께서 점화해 주셨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명확하게 “그 두 가지 일은 질투심을 닦는 것이다.”라고 알려주셨다. 나는 사부님의 점오(點悟)를 맹렬히 깨닫고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자신이 자태가 높고 心性(심성)을 제고했다고 여겼을 것이다!

먼저 이 두 가지 일을 말해보고자 한다. 동수들이 비슷한 일을 만났을 때 나처럼 하지 않고, 신속히 제고하기 바란다.

첫 번째 일: 북방 사람들은 만두를 만들어 얼리는 풍습이 있다. 지난겨울, Y 동수의 며느리가 Y에게 만두 빚는 일을 도와줄 동수들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그 며느리는 줄곧 대법 진상을 받아들이길 거부해 왔다. 나는 H 동수와 함께 이 기회를 빌려 며느리를 만나고 그녀가 대법제자들과 접촉하면서 점차 진상을 받아들이게 하고 싶었다. 어떤 동수들은 이는 대법제자의 시간을 빼앗는다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 있던 D 동수가 내 앞에서 내 이름을 언급하며 작년에 만두를 만들면서, 내가(내 이름을 거명) 아무개에게 부탁해 아무개와 함께 갔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도 사람을 찾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당시 이 말을 들으면서 매우 불편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이 내 이름은 말하는 것은 몰라도 왜 그 언니 이름을 함부로 말하는가? 그녀는 나이가 일흔도 넘는데 ‘언니’라고 부르지도 않다니.” (진한 정을 닦아버리지 못했음.)

당시 내가 자발적으로 D 동수를 찾아가 만두를 빚어 주었다. 내가 처음 만두를 빚으러 간 것은 팬데믹 때 그녀에게 열이 났다. 나와 그녀는 함께 법을 공부하고 밖에 나가 진상을 알린는데 그녀가 내일 집에서 만두를 빚어야 해서 나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그녀는 열이 있다! 얼굴도 붉고, 그녀가 만두를 빚으려면 남동생 것도 챙겨야 하는데. 매년 밀가루를 15~20킬로씩 빚는데 남동생과 남편 셋이 몇 시까지 해야 할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가서 우리 몇이 어두워질 때까지 하루 종일 일을 한 후에야 마쳤다.

이듬해 겨울, 만두를 빚을 때 나는 동수 언니를 찾았고 또 다른 두 언니에게 부탁해 빨리 끝내려 했지만 결국 하루 종일 일했다.

지금 D 동수의 이런 말을 들으니 정말 할 말을 잃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앞으로는 당신이 내게 부탁해도 가지 않겠다.’

그날 밤, 나는 마음에 평형을 이루지 못해 잠이 들지 않아 뒤척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부님 법상(法像) 앞에서 말했다.

“사부님! 저는 마땅히 안으로 찾고 자신을 닦아야 하는데, 머릿속에서는 늘 남의 것만 찾습니다. 동수가 제가 제고하도록 도와주지만 저는 마음속으로 도저히 넘기지 못하겠습니다.”

이렇게 잠자리에 들기 전 사부님께 한밭탕 말씀드리고 나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나는 이 일에서 내가 수련했다고 여기고 깊이 파고들지 않았다.

두 번째 일은 2019년 겨울에 일어났다. L 동수가 나를 찾아와 H 동수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법 공부 소조의 한 노동수(老同修)를 위해 쌀 네 포대(한 포대에 10킬로)를 사다 주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내가 H 동수에게 이 말을 전했지만, 쌀이 배달왔지만 노동수의 집을 찾을 수 없었다. 쌀 장사는 급히 쌀을 내리고 외지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자 동수 H가 내게 말했다.

“일단 당신이 이것을 받아주세요. 노동수 집이 이곳에서 멀지 않으니 나중에 동수 L이 오면 우리가 배송할께요.”

그래서 쌀을 우리 집에서 받고 내가 쌀값을 지불하면서 L 동수에게 전해주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H 동수가 돌아오더니 L 동수가 노동수에게 직접 쌀을 전달되지 않았다며 불만을 토로했다고 말했다. 당시 나는 수련인도 속인 마음이 있으니, 동수가 불평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L은 여전히 오지 않았다. 내가 먼저 노동수 집을 알아보고 아들에게 자전거로 쌀을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 가기 전에 혹시 노동수가 집에 없을까 봐 미리 알리러 찾아갔다. 노동수를 만나고 나서야 쌀이 배달되지 않자 L 동수가 이를 알고 H에게 다시 쌀을 사서 전달해 달라고 했음을 알았다. 우리 집에 내려놓은 쌀은 상관하지 않았는데 아마 노동수는 이 일을 몰랐을 것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면서 가슴을 두드리며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심성을 제고해야 해, 심성을 제고해야 해…”

집에 돌아와 보니 문 앞에 쌀이 쌓여 있어서 다시 안으로 날랐다.

아들이 놀라 물었다.

“엄마, 왜 다시 가져와요? 다른 사람한테 가져다주라고 하지 않았어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필요 없단다. 일이 해결됐어.”

수련 중에 부딪힌 일에 대해 나는 법을 실증하는 데 정면적인 일만 가족들에게 말하는데 그들의 선념(善念)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그 후 L을 만났는데, 그녀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나는 비록 그녀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이 일은 내 마음속에 그녀를 무시하는 마음의 씨앗을 심었다. 나는 동수가 이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전형적인 당 문화라고 생각했다.

“내게 전갈해 쌀을 사달라고 해놓고 자신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자 무시하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사실 나는 사람의 이치로 판단했고, 밖으로 찾고 밖으로 보았을 뿐, 전혀 법에서 수련하지 않았다. 이 일이 나타난 것은 나더러 어떤 집착을 닦아 버리라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나는 수련을 느슨히 했고, 아예 안으로 찾지 않았다. 더욱 두려운 것은, 그러면서도 자신이 자태(姿態)가 높아서 L 동수와 식견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줄곧 마음속에 숨긴 것이다.

사부님의 점화를 통해 나는 자신이 걸어온 수련의 길을 되돌아보았고, 사부님께서 내 心性(씬씽)을 제고하라고 세심하게 배치해 주신 얼마나 많은 기회를 놓쳤는지 뼈저리게 후회했다. 나는 마땅히 L 동수에게 감사드려야 한다. 더는 이런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를 인식한 후, 또 한번은 동수와 함께 사악에 납치된(불법 재판 중) 동수를 위해 발정념을 하러 갔다. 나는 너무 서두르다 계산대에서 돈을 가져오지 않았다. 그래서 H 동수에게 말했다. “내가 서두르다 돈을 많이 가져오지 못했어요.”

그러자 H가 대답했다.

“당신이 언제 돈을 가지고 온 적이 있나요?”

나는 이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진 않았지만, 갑자기 무언가 나를 누르는 듯한 느낌이 들어 숨쉬기가 힘들고 답답하고 불편했다. 왜냐하면 매번 밖에 나갈 때마다 택시비를 내가 냈기 때문이다. 가끔 나갈 때 H 동수가 “돈을 챙겨서 나오세요! 나는 돈이 없어요.”라고 일깨워주었다.

또 한 번은 택시비가 9위안인데 내가 10위안을 내자, H 동수가 기사에게 “잔돈은 가지세요.”라고 한 적도 있다. 그런데 오늘 그녀가 이런 말을 하자 나는 마음이 평형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바로 깨달았다.

‘이는 나더러 질투심을 닦으라는 게 아닐까? 나는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오늘 중요한 일이 있으니, 발정념으로 사악을 제거해야 한다. 너는 내가 이 일에 휘말리게 해서 나를 교란하려는 것인데 마침 너를 제거하겠다.’

시내(법원)로 가는 버스에 앉아 나는 발정념으로 질투심을 제거했다. 잠시 후 마음이 맑아지고 몸을 짓누르던 무거운 물질이 사라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악한 당 법정에서 발정념으로 사악을 제거하자 마음이 열리고 기분이 좋아졌다는 것이다.

다음 날, H 동수를 만나서 내가 말했다.

“언니, 어제 한 그 말씀에 감동했어요.”

나는 자신이 수련한 과정을 이야기했다. H 동수는 “나도 모르겠어요. 그냥 생각 없이 말했을 뿐이에요.”라고 말했다. 우리 둘은 허허 웃으면서 수련 제고가 우리에게 가져다준 즐거움을 누렸다!

이것이 바로 사부님의 위대함이다! 법의 위대함이다!

우리 이웃에 동수가 사는데, 집 안 구석구석에 바퀴벌레가 들끓어 몹시 괴로워했다. 어느 날, 이웃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내게 물었다.

“언니, 언니 집에도 바퀴벌레가 있나요?”

나는 이 말을 들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예전에 우리 집에도 바퀴벌레가 있었다. 더럽다고 생각했지만 죽일 수는 없었다. 아들이 바퀴벌레약을 사다 달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나는 사오지 않았다. 먼저 그것에게 중공에 대한 진상을 알리고 나가라고 하는 등 온갖 방법을 다 써봤지만 바퀴벌레는 여전히 존재했다.

아들의 거듭된 권유에 바퀴벌레약을 사러 가서 물건을 파는 상인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자 상인이 말했다. “(삼퇴하는데) 돈을 받나요?”

나는 엄숙하게 대답했다.

“돈은 필요 없고 목숨을 지킬 수 있습니다. 당신에게 돈이 아무리 많아도 죽으면 어디에 무슨 필요가 있겠어요?” 그러자 그는 기꺼이 삼퇴하겠다고 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 바퀴벌레약은 설치할 필요가 없었다. 바퀴벌레가 신기하게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방금 동수가 물었을 때 대답하지 못한 이유는 바퀴벌레가 이런 말을 듣고 다시 올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또 찾아보니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마음, 질투심이 있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 집에 바퀴벌레가 있다면 우리 집에도 바퀴벌레가 있겠죠.’

그러자 동수가 다시 물었고, 내가 말했다.

“당신이 내게 물을 때, 나는 운이 좋다면서 평형을 이루지 못했으니 이것도 질투심이 아닐까요?” “이렇게 사소한 일에도 건드려져서 마음의 평형을 이루지 못하다니 질투심은 없는 곳이 없네요!”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설법할 때 늘 질투심 문제를 말한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중국에서는 질투심의 표현이 극히 강렬하며, 강렬함이 이미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자신마저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질투심 이 문제는 아주 엄중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직접 우리가 수련하여 원만에 이를 수 있는지 없는지 하는 문제에 연관되기 때문이다. 질투심을 버리지 못하면 사람이 수련한 모든 마음이 모두 아주 취약하게 변해 버린다.”

“오늘 내가 연공인(煉功人)에게 말한다. 당신은 이렇게 잘못을 고집하여 깨닫지 못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도달하려고 하는 목적은 더욱 높은 층차의 수련으로서, 질투심은 반드시 제거해 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단독으로 내놓고 말한다.”

수련중에서 만난 사례를 말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동수들이 질투심을 똑똑히 인식하고 식별할 수 있게 돕고자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9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