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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신법하니 스승님의 보호가 있다

흑룡강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1997년에 법을 얻은 올해 66세인 여자 대법제자이다. 28년의 풍파를 겪으며 수많은 크고 작은 어려움과 시련을 겪었다. 때로는 잘 지나가고 때로는 잘 지나가지 못했지만, 매번 사부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항상 곁에서 나를 보살펴 주시고 보호해 주셨다. 그래서 내가 위험하지 않게 여기까지 걸어올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사부님은 제자를 대신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견디고, 얼마나 많은 심혈을 기울였을까! 제자는 영원히 감사하기 그지없다! 지금 자신의 수련 과정에서의 경험과 체험을 써내어 스승님께 보고하고, 동수들과 나눈다.

1. 운 좋게 대법을 만나다

법에 얻기 전에 나는 여러 가지 질병을 앓고 있었다. 그중에서 자율 신경이 혼란해져서 매일 잠을 잘 수 없고 매우 고통스러웠다. 또한 위장병, 치질, 류머티즘, 뇌 혈액 공급 부족, 심근 허혈, 전신에 좋은 곳이 하나도 없었다. 부인병도 매우 심각하고, 혹이 매우 커서 하반신에 피가 나며, 7~8개의 작은 것도 있었다. 그때는 온몸에 힘이 없었고, 사람이 말라서 겨우 60여 근에 불과했으며, 70근만 되어도 몹시 기뻤다. 매일 희망없이 생활하니 사는 것이 의미가 없었다.

​나중에 큰언니가 먼저 법을 얻었을 때, 그녀는 나에게 대법을 배우라고 했다. ‘이 대법은 정말 훌륭하다. 병을 물리치고 건강을 유지하는 데 뛰어난 효과가 있으며, 또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책을 읽어봐. 이것이 불도를 닦는 대법이다’. 내가 대법을 보니 너무 좋았다. 사람들이 ‘진, 선, 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니, 나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대법을 수련하고 싶었다.

처음 대법 수련을 시작했을 때, 나는 법공부 팀에서 법을 배우고 있었고, 매일같이 법을 공부하고 연공하여 매우 행복하고 매우 기뻤다. 그때 내 체중도 120근이 넘었고, 모든 질병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졌다. 성격도 좋아졌고, 무슨 일이 있어도 참고 양보할 줄 알게 되었고, 몸과 마음이 환골탈태했다. 친한 친구들은 내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희고 통통하다고 말했다. 나는 매일 대법의 홍은 속에 푹 빠져, 대법은 끊임없이 내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있었다. 은사님께서 저를 고해에서 건져내고, 새로운 생명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나는 전에 없이 마음이 편안해지고, 삶의 아름다움, 가벼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2. 세 차례의 정치 심사에서 사람 마음을 버리다

1999년 7월, 강씨 불량배 집단은 모든 여론, 행정 기관, 공안, 검찰, 사법부 등 부서를 동원하여 대법과 대법 제자들을 미친 듯이 박해했다. 파룬궁에 대한 끊임없는 비방, 유언비어, 명예훼손에도 불구하고, 나는 항상 사부님이 대법을 굳게 믿고 흔들리지 않았다. 군부대도 악의 통제가 심한 곳으로 군인과 가족에 대한 대비가 철저하다. 아들은 공군에서 근무하며 군 복무를 했고, 2년 후에는 지원병으로 전환하여 급여를 받았다. 4년 후에는 매년 한 번씩 정치 심사를 받아야 했다. 정치심사에 직면하여 나는 세 번의 시련을 겪었다.

​1) 나는 대법을 원한다.

첫 해에, 군부대에서 정치 검토를 위한 양식을 보내왔다. 가족 구성원과 사회 관계를 기입하고, 해외 관계가 있는지, 가족이 파룬궁을 연마하는지를 중점적으로 점검하며, 수련자가 있는 사람은 모두 안된다. 양식을 작성하고 지역 파출소, 동사무소, 공안국 및 무장부에서 날인을 받아야 한다.

당시 나는 수련을 포기할 수도 없고 아들이 수련으로 앞길을 잃을까 봐 걱정돼 몸 둘 바를 몰랐다. 남편도 아이의 앞길을 망쳤다고 나무랐다. 나는 법공부 동수들과 교류했다. 부칠까요, 말까요? 안 보내는 것도 방법이 아니다, 안 보낸다고 하면 안 돼. 동수가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법을 원합니까, 아니면 아이의 앞날을 원합니까? 나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나는 대법을 원합니다. 사부님께서 나를 이렇게 구해주셨는데, 나도 수련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구체적인 일은 어떻게 하지요? 이 몇 년 동안 저는 대법을 공부했는데, 아이는 나를 잘 이해하고 지지해 주었으며, 대법에서 혜택을 받았습니다.

내가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어느 날 아들이 전화를 걸어와서 그 몇 글자를 칼로 긁어내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나는 탁 깨우쳤다. 나는 이것이 사부님의 자비로운 점오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둔한 제자가 어찌할 바를 몰랐을 것이다? 그렇게 스승님의 자비로운 보살핌 아래 표를 작성하고, 순조롭게 몇 개의 도장을 모두 찍어 부대에 우편으로 보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이것이 나에 대한 시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나는 대법과 아이의 진로 문제에 있어서 대법을 선택했는데,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주셨다.

2) 내가 무엇이 두려운가?

다음 해에 군부대에서 또 정치 심사를 하게 되었다. 처음 양식을 작성했던 경험이 있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양식을 작성하고 도장이 필요할 때 먼저 시동생과 며느리를 시켜 도장을 찍게 했다. 그녀가 가고 이틀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 나는 내가 “진, 선, 인”을 배우는 것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무엇이 두려운가? 돌아서 가고, 다른 사람을 보내느냐. 이것은 관문을 넘는 것이다, 사람 마음을 버릴 때, 나는 여전히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나는 누구도 필요 없고 나 스스로 가겠다. 하지만 마음이 여전히 불안해서, 안으로 자신을 찾아보니 여전히 두려움과 걱정이 있었다. 아들에 대한 애정도 내려놓지 않았고, 사부님에 대한 믿음이 없어 당당하게 마주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법을 많이 배우고 발정념을 하고, 사람 마음을 내려놓으며, 사부님을 굳게 믿고, 법을 굳게 믿고,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는데 무엇이 두려우냐?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내려놓았을 때, 자신도 편안함을 느꼈다. 내가 도장을 찍으러 갔을 때, 모든 것이 순리대로 이루어졌으니, 그야말로 ‘버드나무 피고 밝은 또 하나의 마을이 있도다(柳岸花明又一村)'(‘전법륜’)였다.”

3) 나는 사부님을 굳게 믿었다

3년째 되던 해, 부대에서 또 정치 심사표를 보내왔다. 두 번의 정치 심사를 거치면서, 나는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수련자로서 이것은 모두 시험이고, 괜찮다. 나는 스승님을 믿고 법을 믿는다고 생각헸다, 대법을 배우는 것은 잘못이 없다, 대법을 배우는 집의 아이는 복이 있다, 이 사람 때문에 연루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스승님을 굳게 믿었다. 하지만 마음속에 약간의 불안이 남아 있어, 나는 불안한 감정을 억제하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남편도 그렇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괜찮다고 말했다. 이 몇 군데는 그가 처리할 것이다. 남편은 먼저 파출소와 동사무소로 가서 처리하고, 끝나면 다시 무장부에 가서 처리했다. 무장부에 도착하는 날 도장 찍는 사람은 안 와서 조수도 찍을 수 있으니까 기다리라고 했다. 남편은 두 시간을 기다렸는데, 퇴근 시간이 거의 다 되어 가는데, 도장 찍는 사람이 아직 오지 않았다. 이때 한 상사가 와서 찍어주라고 했다, 몇 년 동안 찍어주었으니 착오가 없을 것이다, 찍어주고 그들을 보내시오. 그래서 남편은 무사히 찍었다.

세 번의 정치심사를 통해 나는 깊이 깨달았다. 수련은 곧 자신의 마음을 닦는 것이며, 사부님은 제자가 대법을 굳게 믿는 마음을 가질 것을 원하신다! 마음이 제 위치에 도달하면 사부님이 못하는 게 없으시다. 모든 것은 사부님이 하고 계시고, 사부님이 장악하고 계신다!

3. 놀람은 있어도 위험은 없다

예전에 동수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기차역에서 어떤 파룬궁 수련생들이 경찰의 검문을 받고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있는데, 나도 두 번 겪었는데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아슬아슬하게 지나왔다.

몇 년 전, 남편과 나는 아들 집에 가기 위해 기차를 탔다. 아마도 내 신분증이 지역 “610”에 표시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가 표를 사고 나서 역에서 차를 기다리던 중, 경찰 한 명이 와서 나와 함께 가자고 했다. 경비실에 도착하자마자 경찰은 내 주머니를 뒤졌다. 주머니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그들이 찾으려는 물건도 없었다. 당시 나는 두려움이 없었고, 주머니에 대법의 물건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경찰이 mp3 플레이어를 보고 이게 뭐 하는 거냐고 물었다.

​나는 두 사람이 춤추는데 쓰는 노래라고 했다. 그는 보지도 않고, 나를 놓아주었다. 아슬아슬했다. 나는 이 플레이어에 사부님의 말씀이 있는 걸 깜빡했다, 나중에 너무 무서웠다. 사부님이 도와주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나는 깨달은 후 눈물을 흘렸다. 사부님께 드릴 말씀이 없었다. 내가 못했는데도 사부님께서 이렇게 보호해 주시다니, 정말 사부님께 부끄러웠다.

나중에 또 한 번은 남편, 아들과 셋이 함께 기차를 타고 아들 집으로 갔다. 마침 보안 검색대를 막 지나갔을 때, 두 명의 경찰이 와서 나에게 가방을 들고 그들과 함께 가자고 말했다. 나는 먹을 것이 든 가방을 손에 쥐었다. 경찰은 당신이 누구냐고 물었다. 파룬궁 수련하는 거 아니오? 여전히 배울거요? 난 웃으면서 대답을 안했다. 경찰이 가방 안의 물건을 꺼내 보라고 했다, 척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한 경찰관이 전화를 걸어서 말하기를, 먹을 것이 좀 있고, 다른 것이 없는데 그녀를 보내줄까요 말까요? 전화기 쪽에서 그녀를 보내라고 말했다. 사부님의 보호 덕분에 나는 위험에서 벗어났다. 이 두 가지 일을 통해 가족들은 사부님은 어디에서나 보호하고 계심을 보았고 대법의 신비로움을 목격했다.

4. 상은 마음에서 생긴다-相由心生

나는 현지 동수와 자주 협력하여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한다. 한 번은 저녁 9시쯤, 나는 여섯 명 동수와 “파룬따파하오” 등 대법 진상 표어를 뿌리기 위해 갔고, A와 함께 한 조를 지었다. 글자를 뿌리고 있을 때, 나는 무의식적으로 옆으로 돌아보니 뒤에 불빛이 있어서 A동수에게 말했다. 그녀는 우리 동수니 괜찮다고 했다.

우리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계속 뿌리고 있었다. 말하는데 밝은 빛이 다가왔다. 그때 우리는 다가오는 세 사람을 보았다. 그 중 한 명은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세 명은 우리를 보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마치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며 지나갔고, 우리와의 거리는 1미터 차이로 스쳐 지나갔다. 아슬아슬했다! 사부님의 보살핌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은 어디서나 제자들을 보호하고 계십니다. 사부님은 동수의 입을 빌려 괜찮다고 하셨으니 괜찮았고, 모든 게 순조롭게 돌아갔다.

​한 번은 동수와 협력하여 진상을 이야기하는데, 나중에 50대 남자가 뒤따라오는 것을 발견했다. 동수는 약간 불안해서 누군가가 자꾸 우리를 따라오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뜻밖에 그에게 돌아서서 가라고 말했다. 말이 끝나자마자 내가 뒤돌아보니 그는 정말 몸을 돌려 걸어갔다. 정말 사부님께서 말씀하신대로였다,: “상유심생”(《각지설법10》〈따지웬회의에서의 설법〉)

5. 자궁종양이 보이지 않다

사악이 대법(大法)을 박해하기 시작한 초기 몇 년 동안 탄압은 매우 심했고, 법 학습, 그룹 공부도 없어졌다. 나는 비록 법을 깊이 배우지 않았고, 법에 대한 이해가 제한적이었지만, 여전히 대법을 굳게 믿고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팀에서 함께 공부하고 비교할 수 있는 환경이 없어서, 법공부, 연공에 느슨해져서 그다지 정진하지 못했다.

하루는 배가 너무 아팠고, 나중에는 생리도 정상적이지 않았다.

남편이 병원에 가보라고 했는데, 병원에 가보니 자궁근종이었고, 혹이 매우 커서 병원에서 수술을 하라고 했다. 그때 나와 남편은 모두 실직했기에 우리 집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다.

나는 병원도 내 병을 고칠 수 없다니 수련이 태만해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안으로 찾아보니, 세 가지 일을 다 하지 못했고, 아직도 많은 사람의 마음이 있어서 내가 정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스승님을 믿고 법을 믿으면 스승님께서 나를 도와주실 수 있다고 믿었다. 분명 괜찮을 거야.

남편은 시종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몇 달 후, 그는 나에게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라고 했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았고, 나는 괜찮아졌으니 검사하러 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굳이 가라고 했고, 나는 진상 책자를 가지고 가는 길에 배포하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말했다. 그는 반대하지 않고 묵인했다. 그래서 나는 20~30권의 소책자를 가방에 넣고, 가는 길마다 배포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기적이 나타났다. 의사가 수술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큰 혹은 이미 없어졌고, 아직 작은 혹은 좀 있었다. 2년 후 휴가가 끝나면 없어질 테니 돌아가라고 했다! 마음속의 그 감격! 사부님은 너무 위대하시다, 사부님은 못하는 게 없으시다! 남편도 정말 기뻐했는데 나는 남편한테 이것은 사부님께서 도와주신 거 아니에요? 라고 했다.

​집에 돌아온 후, 남편은 친척과 친구들에게 말했다.

“대법이 정말 신기해. 봐. 그녀가 수술하지 않은 혹이 다 없어졌어.”

때때로 그는 내 뒤에서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말했다.

“그녀가 얼마나 건강한지 봐, 성격도 변했어. 예전에는 성격이 급해서 도리에 어긋났는데, 지금은 다른 사람이 됐어. 대법이 너무 신기하고 초상적이야!”

맺는 말

매번 내 과거의 수련 경험을 떠올리거나 말할 때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여러 번 목이 메었다. 그것은 사부님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었다! 그것은 행복의 눈물이었다! 사부님은 나를 고해에서 건져내어 새로운 생명을 주셨고, 우주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대법제자가 되게 해주셨다. 이보다 더 행운은 없을 것이다! 사람이 법을 얻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법을 얻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서유기”에서 “무릇 사람 몸 얻기 어렵고, 중국 땅에 태어나기 어려우며, 정법은 만나기 어려우니, 이 세 가지가 다 있으면 행운이 막대하다.”

대법제자들은 다 가졌다.

이 만고에 드문 대법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위대한 스승님께서 친히 전하신 덕분이며, 항상 보호하고, 점화하신 덕분이다. 이것은 스승님의 성은이자 최고의 은혜이다! 때때로 나는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스승님과 대법을 떠올리면 마음속에 자신감이 넘친다. 대법이 나에게 부여한 무한한 지혜와 힘은 어떤 나쁜 일도 순식간에 해결한다. 사부님이 계셔서 좋다! 사부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오직 정진! 다시 정진!하여 스승님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94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