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江蘇) 대법제자 한매(寒梅)
【정견망】
나는 1998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다. 이 20여 년의 수련 중에서 나는 수련하는 듯 마는 듯하다가 진정한 대법제자로 바뀌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농촌에서 자랐다. 집에 형제자매가 많아서 생활이 매우 어려웠고, 게다가 아버지는 아들을 중시하고 딸은 무시했다. 나는 겨우 소학교를 졸업하고 집에 돌아와 마을 노동에 참여하여 집 부담을 줄였다. 이듬해 마침 요란한 문화대혁명이 일어났다. 열세, 네 살의 나는 그 격류(洪流) 속에 휘말려 홍위병에 가입했다. 당시에 농촌에서 나는 어느 정도 글을 안다는 이유로 학습 지도원으로 선발되어, 노동 휴식 시간에 모두에게 신문과 모택동 저작을 읽어주었다. 사악한 당의 주입식 교육 아래에서 나는 전통문화를 봉건적 자본주의적 수정주의로 간주했다.
낡은 네 가지를 깨뜨리고 새로운 네 가지를 수립하며, 남녀가 모두 같고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여자도 할 수 있으며, 여자가 하늘의 절반을 떠받친다는 것 등을 굳게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더럽고 힘든 일을 앞장서서 했고, 모택동 저작을 활발하게 배우고 활용한 적극분자로 평가받았으며, 현(縣)과 시(市)의 빈농 대표, 당 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다. 직장 생활도 공사(公社)나 현 기관에서 했다. 요컨대 어디에 있든 뒤처지기를 싫어했고, 몸이 고생할지언정 체면을 구길 일은 하지 않았다. 명예를 다투고, 강한 것을 다투어 이기려는 마음이 나에게서 특히 두드러졌다. 이로 인해 나는 또한 무신론자가 되었고, 신체에는 많은 병이 생겼다.
1. 법을 얻어 소업
1998년에 동료의 소개로 《전법륜》을 보게 되었다. 일부를 보고는 이 책이 사람들에게 선(善)을 향하도록 가르치고 명예, 이익, 정(情)을 담담하게 여기도록 가르치니 아주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담담하게 여긴다면 화를 내지 않을 것이고, 화를 내지 않는다면 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좋다, 나도 이 수련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신론 사상이 타파되지 않았기에 연공에 참여하면서도 법을 배우지 않았고, 진정으로 득법하고 수련한 것이 아니라 단지 기공으로 몸을 튼튼하게 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럼에도 사부님께서는 나를 돌봐주셨고, 나의 신체를 정화해 주셨다. 법을 진지하게 배우지 않아 신체 정화가 무엇인지 몰랐다. 발목뼈 주위에 붉은 작은 발진이 한 바퀴 생겨서 이것저것 약을 발랐다. 동수가 보고는 당신은 어째서 아직도 약을 바르느냐, 사부님께서 당신의 신체를 정화해 주시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 번은 가족들이 내가 갑자기 많이 수척해진 것을 보고 내가 무슨 불치병에 걸린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아이도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가 병에 걸리면 어떻게 하냐고 말했다.
아이 때문에 나는 병원에 가서 위내시경 검사를 했고, 검사 결과 십이지장 궤양으로 확진되었다. 두 종류의 약을 처방받아 복용한 다음날 아침 다섯 번째 연공 동작을 할 때, 다리가 발에 눌린 부위에 붉은 발진이 생겨 매우 가려웠다. 몸의 가려운 곳을 손으로 긁으니 붉게 부어올랐고, 나중에는 온몸이 부어올랐다.
동수가 사부님께서 신체를 정화해 주시는데 당신은 왜 약을 먹느냐고 일깨워 주었고,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셋째 날부터 나는 약 복용을 중지하고 단체 법 공부와 연공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여러 해 동안 삐었던 발목뼈가 나았고 위장병도 나았다. 다만 몸에 긁는 곳마다 부어오르는 현상이 1년간 반복된 후에야 완전히 깨끗하게 정화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미 20여 년 동안 약을 한 알도 먹지 않았고, 신체가 건강해서 걷거나 산을 오를 때 보통의 젊은이들도 나를 따라잡지 못한다. 대법제자들과 함께 법을 공부할 때, 동수들의 변화와 느낌, 그리고 나 자신의 몸과 마음이 수혜를 입은 것을 보고 들으면서 점차 나의 무신론 사상을 돌려세웠고, 끝까지 견정하게 수련하겠노라고 결심했다. 이것은 위대하고 자비하신 사존(師尊)께서 나에게 이 모든 것을 주신 것이며, 나의 신체를 정화해 주심과 동시에 나의 영혼도 정화해 주셨다. 무신론 사상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수련의 길을 걷게 되었고, 영광스럽게도 한 명의 진정한 대법제자가 되었다.
2. 박해에 반대해 법을 실증
1999년 7월 20일 장쩌민이 파룬궁을 박해하면서 단체 법 공부와 연공 장소가 강제로 해산되었다. 많은 사람이 감히 수련하지 못했고, 외지로 이사한 사람도 있었으며, 보도원은 체포되어 단체 법 공부와 교류 환경이 사라졌다. 대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나는 은퇴하기 전에 회사에서 개설한 컴퓨터 초급반에 참가해 초급 컴퓨터 사용 지식을 조금 익혔는데, 이는 훗날 자료를 인쇄하는 데 밑바탕이 되었다. 은퇴 후 동료에게 부탁하여 인쇄기를 샀다. 명혜에 접속할 수도 없었고, 더욱이 진상 자료를 다운로드할 수도 없었다. 매년 고향에 돌아갈 때마다 각종 자료를 수집해 와 복사해서 동수들이 나눠줄 수 있도록 제공했다. 나중에는 고향 동수에게 부탁하여 중고 컴퓨터를 사서 시스템을 다시 설치하고, 시디 복사기를 사서 시디를 구워 나눠주는 등 이 작은 자료점을 설립하여 한 송이 작은 꽃을 피워냈다.
단체 법 공부와 교류 환경이 사라지면서 법 공부가 해이해졌고 일을 하려는 마음이 아주 강했다. 매일 인터넷에 접속하고 다운로드하고 인쇄하고 배포했다. 또 안전 의식도 없고 경험도 없어서 결국 사악이 틈을 타게 했다. 2013년 초, 내가 주민센터에 속아 문을 열어주었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이닥쳐 나를 납치하고 집을 수색하여 나의 모든 대법 서적, 컴퓨터, 인쇄기, 복사기, 진상 자료 하드디스크, USB, 심지어 집 열쇠와 딸의 금 목걸이까지 모두 강탈해 갔다. 두 경찰이 나를 경찰차에 밀어 넣을 때, 아래 광장에는 방학이라 놀고 있는 학생들, 아이들, 부모들로 가득했다.
나는 경찰에게 이렇게 끌려가면 사람들이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고 오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모든 사람이 경찰이 대법제자를 박해하고 있음을 알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큰 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真善忍好)”를 외쳤다. 광장에 있던 모든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되었다. 나중에 어떤 사람이 나에게 당신이 그때 정말 큰 소리로 외쳤다고 말했다. 나는 이것이 분명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주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세뇌반에 한 달 반 동안 감금되었다. 풀려난 후 나는 그들의 중점 감시 대상이 되었다. 대법 물품이 손해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해, 동시에 분하고 굴복하지 않는 마음도 있어서, 나는 반드시 나의 모든 물품을 되찾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마지막까지 돌려주지 않는다면 큰 간판을 만들어 공안국 문 앞에 가서 싸울 각오까지 했다. 그때는 아주 강한 쟁투심이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다. 나는 늘 지도자 일을 했기에 강경한 태도가 아직 남아 있었다. 나는 매주 한 번씩 파출소에 갔고, 파출소와 구 610 서로 책임을 미루었다. 나는 미루는 곳마다 찾아갔고, 결국 컴퓨터, 인쇄기, 복사기를 모두 돌려받았다. 아쉬운 것은 경찰에게 진상을 알려주지 않고, 단지 불법적으로 압류한 나의 모든 물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데 그쳤다는 것이다. 그때 나의 법 공부가 미흡했고, 일하는 마음과 강렬한 쟁투심이 있었다. 이전에는 여장부처럼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았다. 심각한 교훈이 아닌가.
3. 정념으로 공안 검찰 법원 직원들을 대하다
수련은 엄숙한 것으로, 일사일념도 반드시 법에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관을 넘을 수 없다. 대략 2019년경, 은퇴 사무실과 회사 기율위원회 및 파출소 등의 인원들이 우리 집으로 나를 찾으러 왔다. 당시에는 무슨 일로 나를 찾는지 몰랐기에 두려운 마음이 생겨 외지로 가서 며칠 숨어 있을까 생각했다. 동수를 찾아가 이 문제를 논의하니, 동수가 정념으로 대하면 아무 일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계속 숨어 다닐 수 없으니 그들을 대면해 진상을 알려야 한다. 나와 동수는 매일 나가서 진상을 알리고 정오에야 집에 돌아왔기에 그들은 나를 찾지 못했다. 나중에 나에게 화요일에 은퇴 사무실로 오라고 통지했다. 나는 그들에게 협조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회사 건물 기율위원회로 가겠다고 요구했다. 그곳에는 회사 사무실의 모든 직원들이 있었고, 나에게 무례하게 대하면 큰 소리로 구호를 외쳐 건물 전체 사람들이 알게 하려고 했다.
다음날 건물에 갔을 때 경비원이 카드를 찍으라고 요구하여 전혀 들어갈 수 없었다. 기율위원회 직원이 나를 길 건너편 1층에 특별히 마련된 상담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주요 해결 과제는 당적(黨籍)을 가질 것인지 아니면 파룬궁을 수련할 것인지였다. 나는 그들에게 나는 이미 오래전에 당원이 아니며, 은퇴 후 10여 년 동안 당비를 내지 않았고, 당의 어떤 활동에도 참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헌 규정에 따라 6개월 동안 당비를 내지 않고 조직 활동에 참여하지 않으면 자동 탈당에 속하므로 나는 이미 오래전에 당원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들은 그러면 서명을 하라고 말했다. 결국 나는 서명하고 수인(手印)을 찍었다. 문을 나설 때 그들은 며칠 후에도 여기에 있을 것이고, 시 610 인원들이 당신을 다시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여기에는 아무도 없으니 장소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러면 은퇴 사무실로 하자고 말했다. 집에서 가까우니까. 그들은 동의했다. 집에 돌아와 생각할수록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만약 그들이 나를 데리고 가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정념이 약간 부족했고 두려운 마음도 나왔다. 동수를 찾아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논의하니, 동수는 정념으로 대하면 아무 일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동수에게 진상 자료 몇 부를 인쇄해 달라고 부탁하여 가져갔다. 그러나 마음은 줄곧 불안정했고, 화요일 은퇴 사무실에 가기 직전에 정념을 발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바로 내 곁에 계시는데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생사를 내려놓으면 신(神)이고, 생사를 내려놓지 못하면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확 트였고, 주위의 풍경이 모두 맑아졌다. 밖에 나가니 하늘과 환경의 색깔이 평소와 달랐다. 아파트를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경찰차 한 대가 정면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들이 나를 보지 못할 것이고 나와는 관계없다고 생각하고 지나갔다. 은퇴 사무실 건물 아래에 도착하니 삼륜 오토바이가 보였고 경찰이 아래에 있었다. 이것도 가상의 교란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와 관계없다고 생각하고 곧바로 3층으로 가서 담당자를 찾아 그가 어느 사무실에 있는지 물었고, 그에게 진상 자료 한 부를 건네주며 잘 알아보라고 말했다. 우리는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사람답게 살고 있고,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우 긴장하며 말했다. “좋습니다. 제게만 주시면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주지 마세요.”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니, 은퇴 사무실 서기 한 명과 낯선 사람 두 명이 보였다. 나는 매우 편안하게 웃으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고, 자연스럽게 그들 각자에게 진상 자료를 한 부씩 건네주며, 파룬궁 박해가 위법이라는 것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그들이 좀 알아보도록 했다. 마지막에 그들은 당신을 찾은 주요 목적은 이전에 나눈 대화 기록에 틀린 점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니, 당신이 보고 서명하라고 말했다. 나는 좋다고 말하고 자료를 받아들였다. 그들이 안경을 주려고 하자 나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들이 이 나이에도 눈이 이렇게 좋다니 놀랍다고 말하자, 나는 우리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다고 말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도 나쁘고 몸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그러면 당신들은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면 당신들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자신들도 은퇴 후에 수련하겠다고 말했다. 떠날 때 나는 앞으로 또 나를 찾을 것이냐고 물었다. 그들은 찾지 않을 것이라고, 더는 찾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나는 동수와 함께 법을 배우고 법을 외우며, 일사일념(一思一念)도 법으로 헤아리고 안으로 찾을 줄 알게 되었다. 끊임없이 법을 배우고 외우면서 많은 당 문화의 것을 수련하여 없앴고, 진정으로 법 속에 융입(融入)되었다. 사부님께서 끊임없이 나를 격려해 주시고 나의 정념을 가지해 주시어 마침내 이 두려운 마음을 돌파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원문위치: https://zhengjian.org/node/299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