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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실한 수련 중에 깊이 감춰진 두려움을 제거

중국 대법제자 정련(淨蓮)

【정견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비바람 속의 수련 길을 돌아보며 비틀거리면서도 오늘까지 걸어오면서 사부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그동안 정진할 때도 있었고 나태할 때도 있었으며, 낙담하거나 어찌할 바를 몰랐던 적도 있고 감동을 받은 적도 있었다. 특히 대법 서적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해 자책하고 괴로워하며 후회한 일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정진하든 나태하든 대법 수련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으며, 사부님의 정법(正法) 노정을 바짝 뒤따라 반본귀진(返本歸眞)의 길을 행복하게 걸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십여 년의 세월 동안 추위와 더위를 가리지 않고 위험을 무릅쓰는 데에는 참으로 강한 의지력이 필요했다. 박해로 인한 심리적 압박, 때로는 친지의 몰이해와 세인의 비웃음, 동수 사이의 모순, 그리고 신체에 나타난 병업 가상이 주는 고통과 내려놓기 힘든 집착들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직면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사부님과 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었다.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마주한 크고 작은 위험과 마난(魔難), 관(關)을 넘은 것은 모두 사부님의 가지(加持)와 자비하신 보호 덕분에 위기를 넘기며 걸어올 수 있었다.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와 법의 위력에 무한히 감사드린다. 진상을 알리면 알릴수록 더 말하고 싶어지고 지혜가 생기며 세상 사람들을 감동시키게 된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그들 사상 속 매듭을 겨냥해 “얼마만한 종류의 병이 있으면 얼마만한 종류의 공능이 대처해 치료한다.”(《전법륜》)는 말씀처럼 대하니 점차 두려움이 줄어들었다.

한번은 동수와 함께 진상을 알리러 나갔다가 한 할머니를 보고 다가갔다. 나는 동수에게 “당신이 말해봐요, 내가 들을게요”라고 했다. 그때 무심코 근처를 보았는데, 차 안에 우리 마을 촌장과 그의 아내가 앉아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동수에게 “잠시 멈추세요”라고 말한 뒤 그들에게 다가가 차 문을 열고 말했다.

“나를 미행하는 건가요? 이런 일은 당신들에게 좋을 게 없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나요? 나는 나쁜 짓을 한 적이 없고, 하늘이 다 보고 있습니다. 덕을 쌓아야 자식들에게도 좋습니다.”

촌장이 나와 함께 가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기에 내 언니라고 답했다. 그는 미행이 아니라 볼일이 좀 있었다며 급히 차를 몰고 떠났다. 동수를 보니 여전히 할머니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다가가서 왜 피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동수는 “거의 다 탈퇴시키려던 참이라 그녀가 구원받을 기회를 놓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라고 답했다.

방금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다 보니 내 안에서 원망과 두려움이 솟구쳐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들이 내 사진을 찍었을까 봐 겁이 났고, 이전에도 그들 부부가 여러 번 나를 괴롭혔던 기억이 났다. 나는 그들 배후에서 조종하는 모든 사령(邪靈)과 난귀(爛鬼)를 제거하는 발정념을 하며 계속 걸었으나, 원망과 두려움은 수시로 뒤집혀 올라왔다.

쇼핑몰에 도착해 동수가 화장실에 간 사이 앉아 있는데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땀이 났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두려움이라는 물질에 빈틈을 보인 것이 아닌가. 사당(邪黨)의 거짓말에 속은 세인을 어찌 원망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얼마나 선(善)하지 못한가. 이때 머릿속에 “사부가 있고 법이 있는 한 무엇이 두려운가?”(《시드니 법회 설법》)라는 법이 떠올랐다. 마음속으로 스무 번 넘게 되뇌자 원망과 두려움의 물질이 사라지고 마음이 가벼워졌다. 얼굴에 다시 미소가 돌아왔고, 사부님께서 가지해 주시고 깨우쳐주셨음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법의 위력이다. 동수와 계속 진상을 알리고 돌아오는 길에 동수가 내일은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 나 역시 마음이 다소 흔들렸다.

다음 날 나는 평소처럼 진상을 알리러 나갔다. 중생이 진상을 들을 기회를 잃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대형 마트에서 생강을 고르는 한 여성을 보고 다가서서 말을 걸었다. 그때 등 뒤에 누군가 서서 듣고 있는 느낌이 들어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려 자리를 피했다. 다른 곳에서 인연 있는 이들을 찾아 몇 명을 탈퇴시키고 집으로 돌아왔다. 셋째 날에도 갈까 말까 망설여졌다. 안으로 찾아보니 역시 두려움이 장난을 치고 있었다. 나는 가기로 결심했고, 과정 중에 두려움이 점점 작아지고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동수와 서로 격려하며 정념을 가지해주었다. 법 공부를 강화하고 안으로 찾으며 발정념을 했다.

밤에 머릿속에 ‘선택(選擇)’이라는 두 단어가 떠올랐다. 마난 속에서 관을 넘기면서, 고통과 모손 속에서 모든 것은 다 선택이라는 깨달음이 있었다.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함에 있어 정정당당한 것, 이것이 바로 나의 선택이다.

사존께서 안배하신 집으로 가는 길을 걸으면서, 겉보기에 흉흉했던 박해들도 모두 사부님의 가지와 자비하신 보호 아래 비틀거리며 오늘까지 올 수 있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만 걷겠다고 다짐한다. 나는 오직 사부님과 대법만이 관장하시며 누구도 나를 건드릴 수 없다.

마지막으로 《2006년 로스앤젤레스 시 법회 설법》을 동수들과 나누며 함께 격려하고자 한다.

“수련인이 중시하는 것은 정념이다. 정념이 아주 강하면 당신은 무엇이든 모두 막을 수 있으며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신은 수련인이고 당신은 신의 길을 걷는 사람이며, 당신은 속인 요소와 저층 법리에 통제당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173